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1. 05:00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형제 

‘지방교회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는 말은 비판자들이 만든 말


워치만 니는 신앙적 교만을 가장 경계

풀러신학교 공개적으로 지방교회 인정

<지방교회 신앙과 생활>이라는 신앙고백서에서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태도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 안에, 교파들 안에, 독립된 단체들 안에,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참된 믿는 이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분들을 주님 안에 있는 형제 자매로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교회들이 지방교회에 대하여 생소하게 느끼고 심지어 어느 정도 교제의 벽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문제가 있는가?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는 ‘자기네만 교회라고 한다’ ‘지방교회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라고 한다는 식의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자들이 유포시킨, 사실과 다른 말들이 걸림돌이 되었을 수 있다. 이 점은 기성교회들이 사실에 근거한 바른 인식을 가짐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지방교회 내부적인 요인들도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에 익숙지 않은 진리항목과 실행들 그리고 그들의 기성교회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지방교회측은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1. 진리와 실행상의 차이점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한 노선, 즉 ‘존 넬슨 다아비로 대표되는 소위 형제회’와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특징들 중 일부를 공유한 것이 있다. 그 외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강조했던 진리항목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것들은 개혁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교계 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 강조이다. 
워치만 니는 자신의 영적 유모와도 같은 마가렛 바버 선교사를 통해 앤드류 머레이, 제시펜 루이스, 이반 로버츠, 오스틴 스팍스 등을 통해 이어져 온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에 대한 진리를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 위트니스 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러한 노선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위 신비주의로 분류되는 마담 기용, 페네롱 신부, 윌리암 로우 등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 한국교계는 이런 방면 전체를 ‘신비주의’로 보고 이것을 경계하는 시각이 강하다. 따라서 일반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이 방면의 서적을 읽거나 공개적으로 동조하기에는 주저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성경을 벗어난 그릇된 영성이나 잘못된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저 하늘 보좌와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골 1:27),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사실’(롬 6:6),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심’(갈 2:20),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름’(마 16:24) 등의 말씀을 어떻게 삶 속에서 체험하고 실제화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과제이다. 

 둘째, 교회생활 관련 진리와 실행이다. 
교회 역사를 볼 때, 존 넬슨 다아비로 대표되는 형제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러한 형제회의 유산이 지방교회를 대표하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교계에서는 다아비의 신학이 세대주의를 기초로 하고 평신도-성직자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엡 4:12)는 주님의 위임과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 제사장 제도’를 어떻게 실행하고 또 완성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더 깊은 관심과 추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셋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강조한 진리 항목들이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경륜’ ‘그리스도의 몸’ ‘새 예루살렘’ ‘신화’(神化, deification)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 항목들은 하나님의 주권, 선택, 예정 등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교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딤전1:4, 엡 1:9, 3:2)은 사도 바울의 사역 안에서 거듭 강조되었고 ‘그리스도의 몸’ 역시 그러하다(마 16:18, 엡 1:23). ‘새 예루살렘’(계 3:12)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을 가리키며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자 핵심주제이다. 신화 진리 또한 정통 초대 교부인 아타나시우스가 그의 ‘성육신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에서 강조한 진리로서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다(He was made man that we might be made God)’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러한 사상은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로 현재도 가르쳐지고 있다. 따라서 지방교회와 기성교회는 이러한 진리들에 대해서 서로 배우는 자세로 교제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2. 지방교회 성도들의 기성교회를 향한 태도 
지방교회는 본의야 어떻든 기성교회를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그것이 상호 교류에 장애가 된 면이 없지 않다. 어찌되었건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할 대목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신다(벧전 5:5). 사실 워치만 니도 다음과 같이 신앙적 교만을 경고하고 있다. “주님께서 정하신 교회의 노정은 빌라델피아이다. 빌라델피아의 노정을 가는 사람의 가장 큰 시험은 바로 교만이다. 즉 “우리가 당신들보다 낫다! 우리의 진리가 당신들의 진리보다 분명하고,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많이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교만이 없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토해내신다. 우리는 결코 교만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이것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워치만 니, 50 필수과정(V), 한

워치만 니, 50 필수과정(V)

국복음서원, 2002년, 135쪽). 미국 교계는 지방교회를 일체 이단시하지 않는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만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 Stream Ministry(LSM)가 ‘미국 복음주의 출판협의회’(ECPA) 의 투표권 있는 정회원 중 하나로서 교계 지도자들과 이미 활발한 교류를 갖고 있고, 신학잡지인 ‘확증과 비평’을 수년 째 발간해 옴으로 교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지방교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 풀러신학교측은 지방교회측이 성경적인 정통 그리스도인들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미국교회의 선례는 한국교회에서도 참고가 될 만하다. 따라서 지방교회측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성교회측에 다가감으로 교제의 폭을 넓히고, 기성교회측은 대국적 관점에서 “나와 다소 다르나 주 안에 참된 형제들을 받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롬 15:7).  

지방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3 , 교회연합신문 657호 다운로드 - 첨부파일 (하단클릭)
교회연합신문657호060723_편집.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 전통따라"

지방교회, 바른이해와 교제희망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대해 존경하는 목회자신문 독자 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목회자 신문사측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글은 예장통합 교단과의 오해로 인한 간격을 좁히는 차원에서 통합교단 제 77차 총회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인 진리항목들을 다루기에 앞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신앙의 특색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지방)교회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근본주의 신앙>과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의 교집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근본주의 5대 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육체적 재림(또는 기적의 인정)을 굳게 믿는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체험함(골1:27)을 추구한다. 

따라서 일부 성경해석상 이견이나 용어표현상 이질적인 면이 다소 있을 수 있으나, 핵심진리(유다서, 3절)에 관한 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지면의 제한상 77차 총회 결의를 통해 통합교단이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핵심 요점만 간략하게 해명을 드리고자 한다. 

  1. 신론에 대하여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 -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함이니라'(롬8:29)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요일3:2)라는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경우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처럼 일부 설명에 본의 아니게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 한영>이 지방교회 삼위일체이다. 이에 대해 통합측 토론자는 <세 인격, 세영들>을 기준삼아 양태론 이라고 함으로 양측에 이견이 생겼다.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란 표현은 출처로 제시된 책 110쪽에 발견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존재하심을 전제로 한 설명임으로 양태론이 아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다. 

  2. 기독론에 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는 지적-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 육신은 부활을 기점으로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몸>-영광의 몸(빌3:21)-으로 바뀌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5:42, 44). 그러나 이것을 인성의 변질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3. 인간론에 대하여 

1) 삼분설을 가르친다는 지적- 지방교회측이 삼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분설, 이분설은 상대적 관점일뿐 이단성 여부를 가릴 진리항목은 아니라고 본다.

2)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며 전인적 타락을 부인한다는 지적 - 이 점은 통합교단 토론자가 토론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 잘 해결되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지방교회측은 전인적 타락을 굳게 믿는다. 

  4. 교회론에 대하여 

1) 기독교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천주교'로 이해했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경교사들 대다수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2)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한다는 지적 -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풀타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이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풀러신학교측 총장과 신학대학장이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2년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지방교회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통합교단과도 더 많은 교제를 통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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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_목회자_527호_070210.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30. 05:00

지방교회 탐구 - 3

“교회 직제는 달라도 고백은 같다”

  - (기독론) 예수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 위트니스 리는 약 701쪽 분량의 ‘그리스도론'(한국복음서원) 을 썼으나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양성을 부인한 적이 없다. 조사보고서상의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는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부활시 예수님의 육신이 육의 몸에서 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셨다고 한 것을 지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 말씀 그대로일 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본다(고전15:44, 빌3:21). 지방교회측은 “뭔가 오해가 있는 듯 싶다”고 밝히고 있다. 

  - (인간론) 삼분설을 취하면서 사람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함으로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다 : 우선 인간 구성을 이분설로 보든 삼분설로 보든 그 차이가 이단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학적 논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사보고서의 지적처럼 위트니스 리가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믿음으로 참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다. 우리는 통합측과 토론시 우리가 온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한 전인적인 타락을 믿는 근거들을 상세히 제시했다. 그러자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고 말함으로 연구 보고서상의 지적을 스스로 뒤집은 바 있다(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 교회론 관련 문제 제기들 : (지방)교회의 공식 교회론은 위트니스 리가 쓴

신약의 결론 - 교회

‘교회론(530쪽 분량)'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통합측 조사 보고서가 이 책 외의 자료 여기 저기에서 문맥의 흐름과 무관하게 떼어 낸 몇 가지 자극적인 표현들은 다소 오해 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을 인용 소개시 오류가 있거나, 핵심진리가 아닌 장로교단과 침례교단이 차이점을 가지되 서로 허용하는 정도의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 기성교회를 바벨론이라고 한다 : 계시록 17:5의 ‘큰 바벨론'을 ‘로마 천주교'로 보는 근본주의 성경교사들의 기존의 해석을 위트니스 리도 답습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해석이 이단시 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측은 어떤 교단 소속이든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인정한다. 아울러 통합 교단을 포함한 타 교단 내에서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인정함은 물론이다. 

  - 목사와 예배 제도를 부정한다 : 지방교회가 기존교회와 다른 차이는 계급적인 성직자 평신도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장로들이 특정 교회를 다스리고 목양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보아 이들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예배 실행은 형식상으로는 다양성이 인정된다고 보며 그 안에 주님의 임재 등 참된 경배 요건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요4:24). 

  -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 어떤 단체이든 거듭난 성도들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교파에도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이 부분 역시 전후 문맥과 함께 읽을 때 풀릴 수 있는 오해들 중 하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 :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우리를 구속하거나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이들은 “이런 오해는 아마도 구원의 여러 방면 중 사도행전 2:40이 말하는 ‘(지옥이 아닌)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는 구절을 설명하는 문맥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성명한다. 

  - 주 예수 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 충만 방법이라고 한다 : 고린도전서 12:3하, 로마서10:12에 근거하여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 충만되는 많은 성경적인 방법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따라서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으며 그렇게 말하지도 않으며 역시 전달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중요한 핵심진리(유3절)에 대해서는 정통성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되 지엽적인 진리나 실행들의 차이는 그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유지되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 여부를 규정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이며 참된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임을 양심가운데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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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신문_지방교회탐구3.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8. 05:00

미국 풀러신학교 지방교회를 ‘정통’으로 인정


미국 풀러신학교 지방교회를 ‘정통’으로 인정


“지방교회의 관심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이기는 자가 되게 하는데 있다”


한국교회에 소위 지방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대부분은 이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커녕 지방교회란 말조차 생소할 것이다. 인터넷상의 부정적인 자료에 의해 그려진 지방교회 사람들은 자신들만 잘 믿는다며 다른 기독교인들을 정죄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다. 혹자는 지방교회 사람들은 이상은 높은데 실제 생활은 그에 못 미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방교회 성도들에 대한 외부인들의 이러한 평가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짚어 본다면 현실 교회에서 어떤 비판의 여지도 없이 완벽한 교단이나 단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 약함이 있다. 그런 점에서 특정 단체가 지향하는 핵심신앙이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 3절)에 부합한지는 냉철히 따지되, 성경해석상의 소소한 차이나 약함과 허물은 서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이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길이다(엡4:3). 

이런 차원에서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교회가 과연 무엇에 신앙의 중점을 두고 있는지를 본인들에게 직접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복음서원에서 출판된 각종 도서나 현 지방교회 인도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 ‘생명’ ‘그리스도의 몸’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이들의 주된 관심사의 주제다. 

  1. 하나님의 경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책자에서 이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워치만 니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표현함). 지방교회측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인, ‘내가 마케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다’(딤전1:3-4)라는 말씀을 자신들에게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 자신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창세전에 선택되고 예정된 우리가 장성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엡1:4-5). 성경 말씀 그대로이니 이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2. 생명 
‘생명의 인식’ ‘생명의 체험’ ‘생명의 성장’ ‘이기는 생명’ ‘생명주는 영’ 등 지방교회 사람들은 생명이란 단어를 유달리 많이 사용한다. 이들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는 말씀에 근거하여 주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물론 그분은 우리 죄사함을 위해 죽으셨지만 그 죄 사함조차도 결국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 25),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3:4) 등에 근거하여 <주님 자신이 생명>이심을 믿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몸 
지방교회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묘사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지체들 간의 조화와 기능발휘가 현재의 교회생활 중에 실현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직분자들과 성도들의 각양 봉사는 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적인 출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엡4:12,16). 실천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4. 이기는 자가 됨 
성도는 누구나 ‘이기는 자’여야 한다. ‘이기는 자’라는 말은 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 각각의 말미에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 모두가 비중있게 다루었던 주제이다. 이들이 말하는 이기는 자란 쉽게 말해 거듭난 후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영적생명이 성숙한 자를 말한다. 계시록 3장 12절의 필라델피아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이기는 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달리 특별한 상급이 주어진다. 따라서 모두가 이기는 자일 수 없고 추구하여 그 표준에 이른 자만이 이기는 자라는 것이다. 이기는 자가 되려면 일상생활에서 자기 유익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하고 매사에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빌 1:21). 

소위 ‘지방교회 교인이 되어야만 이기는 자가 된다’고 가르친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지방교회 교인이 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소위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생명과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하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행상으로는 만인 제사장 제도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 이런 사람들을 성경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성경의 중점을 붙잡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것일 수 있다. 

혹자는 위와 같은 진리와 실행은 다 좋은데 이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지나치게 따르는게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다. 즉 뛰어난 두 성경교사를 존경해서 그들을 통해 밝혀진 진리와 계시를 따르는 것이지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고난당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당신은 모든 것들에서 얼굴을 돌려야 한다. 여러분의 방 친구를 보지 말라. 장로들을 보지 말라. 나이든 자매들을 보지 말라. 나를 보지 말라.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분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 말라. 우리는 주님을 신뢰한다. 우리는 그밖에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온전케 하는 이시므로, 우리의 믿음은 바로 예수시다.”(위트니스 리, 고봉메시지 제11권 - 로마서 결정연구). 

그동안 한국 교계는 지방교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거나 일부 이단 감별사들이 특별한 의도를 전제로 연구한 자료에 의존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작 그 장본인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풀러신학교측에서 지난 2년여 동안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신앙고백이 주요 신조와 일치하는 정통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교제가 가능한 주 안의 형제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방교회를 이단시하고 형제로 여기려 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교계 내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특정 교단 교리가 아닌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특정교회가 믿는 진리와 실행에 관해 재평가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들어 한국의 지방교회 인도자들이 전과 달리 다른 단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방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4 , 교회연합신문 660호 다운로드 하단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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