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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06 장로교 합동측의 "기독교의 이단들"에 대한 반박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6. 05:00

아래의 글은 장로교 합동측 교육국 주관으로 펴 낸 <기독교의 이단들>이란 책자에서 (지방)교회들을 거짓되게 소개하고 비판한 것을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한 서신입니다.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이곳에 소개합니다. 독자들이 성경과 신앙 양심 가운데 공정하게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발신인 : 000 외 1인 - 1998. 4. 30.(미국시간)
The Church in Fullerton 1330 N. Placentia Ave Fullerton, CA 92831
전화 : 714-996-8190, 팩스 : 714-996-8195 

수신인 : 심 창섭 교수님 외 3인 서울 강남구 대치3동 1007-3 총회회관 4층 교육국
 전화 : 서울 564-0783, 팩스 : 539-0203
 참조 :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제목 :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 중 (지방)교회를 언급한 부분에 대한 항의 및 시정요청  

저희들은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본 서신은 귀 측이 저술하여 시판하신 '기독교의 이단들'이라는 책자에서 저희가 믿는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을 근거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이단시하는 것'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단'이라는 용어가 단순한 교리해석상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위험한 사교집단'처럼 여겨지는 한국교계의 풍토를 감안할 때 저희 측은 귀하들의 인쇄된 문서를 통한 이단정죄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단들

같은 믿는 이들을 이단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롬 14:10-13). 또한 이단정죄를 받는 측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영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가하는 행위임으로 지극히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 내에 한국 장로교단 내에서 너무도 경솔하고 무책임하게 남을 이단시하는 경향들이 관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근에 장로교 통합측 소속 어느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삼분설을 믿으니까 이단'이라는 참으로 상식 이하의 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목사의 엉터리 이단기준에 의하면 이분설을 지지하는 장로교인들만 정통이고 삼분설을 지지하는 전세계 침례교인들, 하나님의 성회 성도들도 다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된 내용들을 반복해서 문서로 유포하는 무책임하고 불법한 행위는 이방인들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참되게 믿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한 자기 말에 대해 책임을 추궁 당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출 20:16, 마 12:36-37). 

 저희들은 귀하들이 저술하신 위 책자를 심도 있게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위 책자에서 귀 측이 취했던 연구관점과 접근방법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의 신앙을 진실 되게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시각으로 본 사물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롯한 (지방)교회 성도들은 성경 적이고 근본주의 적인 신앙유산에 따른 지극히 건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지 귀 측의 단정처럼 이단 사교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귀하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근거로 책자를 통해 저희들을 정죄하신 것을 공개적으로 바로잡는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우선, 저희들은 오해에 근거한 귀 측의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자 합니다. 

I. 귀하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근본주의의 뿌리인 존 넬슨 다비의 신앙유산을 이어 받은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한 채 그분들을 체계적인 신학수업도 못 받았고 소위 '정통신앙'에서 빗나간 사람들로 취급하신 것(위 책자, 163쪽)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관을 참되게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신앙배경과 그 사람이 쓴 책자들 전반에 나타나는 내용들을 파악한 후 유일한 기준인 성경말씀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귀측은 문서를 통해 남을 공개적으로 이단시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면서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앙배경을 전혀 고려치 않으셨고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시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자들은 읽어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판사가 재판기록을 보지도 않고 사형을 선고한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인 것입니다. 

 1. 귀하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판함에 있어서 두 분의 신앙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 채 기본적인 신앙조차도 없는 사람들처럼 단정하신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교회역사를 볼 때,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신실한 믿는 이들이 계속 있어 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한 분들과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신앙형태를 형성하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귀하들이 장로교인들로서 칼빈의 영향을 받으셨듯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근본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넬슨 다비의 신앙유산을 이어받은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미국종교백과사전'을 쓴 고오든 맬튼 박사가 최근에 5판까지 수정 보완된 자신의 백과사전에서 일관되게 (지방)교회존 넬슨 다비의 형제회와 함께 정통기독교의 범주인 '근본주의'(Fundamentalists)계열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http://local-church.tistory.com/283)

대부분의 개신 교단들이 성경적 진리에서 멀리 빗나간 천주교의 오류로부터 점진적인 개혁을 꾀하는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반면에, (지방)교회 성도들을 포함한 근본주의 노선은 천주교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성경자체에서 믿음생활의 본을 찾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교도인들이나 웨슬리 파가 했던 것과는 달리 존 넬슨 다비를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자들은 사도시대 교회(초대교회)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성경에 집중함, 성경적인 생활양식, 성경적인 신학, 성경적인 교회론'의 채택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흐름이 워치만 니를 비롯한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곳 미국에서 정통 근본신앙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신학교들 - 예를 들면, 달라스 신학교, 무디 성경학교, 바욜라 신학교 - 과 D. L. 무디, 피어슨, 무어 해드, 부룩스 등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의 신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다섯 가지 근본신앙'으로 지칭되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격(그분의 동정녀 탄생을 포함),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리적 속죄,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로부터의 실제적 부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재림'을 굳게 믿음으로써 1920년대 현대주의 이단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정통신앙을 수호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롯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도 기본신앙을 구성하는 이러한 다섯 가지 항목들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를 믿지 않으므로 이단이다'라는 식의 귀 측의 정죄는 너무나 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비판인 것입니다. 

2. 워치만 니는 한국복음서원에서 전집형태로 발간한 62권에 해당하는 저서가 있고 위트니스 리는 약 20년에 걸쳐 완성한 신구약 전체 주석을 포함, 약 400권 분량의 저서가 있으나 귀하들은 이러한 책자들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치 못한 채 성급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신약의 결론

특히 한국복음서원이 1991년에 출판한 '신약의 결론' 8권 -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1,2),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 은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관찰에 의하면 귀하들이 워치만 니를 비판하고 위트니스 리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공개적으로 책자화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면서도 그의 조직신학인 '신약의 결론' 책자들을 단 한 번도 참고하지 않으신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역사를 경륜적인 관점에서 쓴 몇 권의 책자(예를 들면, 하나님의 경륜, 그 영과 몸)를 그것도 처음부터 (지방)교회를 정죄할 의도로 왜곡되게 쓰여진 책(번역서)에서 거짓된 결론을 인용해서 비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귀하들도 언급(위 책자, 146쪽)하셨듯이, 위 내용들이 악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거짓된 자료들임이 이 곳 일간신문에 수개월 동안 게재된 저희 측의 반박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된 바 있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모든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짓정죄가 반복되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귀 측이 이러한 <사실도 아닌 내용>을 근거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을 함부로 이단시하여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할 치외법권적인 권한을 가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귀 측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없이 경솔하게 추론하여 정죄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첫째, '지방교회의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 변화, 또는 그 과정으로만 설명한다'(위 책자 154쪽) '성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가 곧 아버지라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지방교회는 생각할 수 없다'(위 책자 155쪽). '지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적인 죽음으로 보지 않고 계략적인 죽음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결과로 죽으신 것이 아니고...(위 책자, 160쪽)  

-반박 : 귀하들의 경솔한 비판과 달리, 위트니스 리는 칼케돈 신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정통기독론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믿습니다(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pp163-166, 98년 5월호 참조). 또한 위트니스 리는 자신이 쓴 '그리스도론' 611-612쪽에서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마태복음 20장 28절을 근거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지방)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죄의 결과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귀 측의 말도 안 되는 정죄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저희들은 심창섭 교수님외 3인의 신앙양심을 향해 질문드립니다. 귀하들은 위와 같이 심히 거짓되고 엉뚱한 내용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을 이단시하는 책자를 제작 배포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기 전에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를 장장 709쪽에 걸쳐 집대성한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 책자 '그리스도'(1991년, 한국복음서원)를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습니까? 

 둘째, '지방교회가 삼위일체가 아닌 일위일체를 믿기 때문이다' (위 책자, 156쪽) 

-반박 : 뒤에서 항목을 달리하여 반박할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 책자 '하나님'(총 510쪽)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위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기초로 남을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셋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신학지식의 빈곤과... 체계적인 신학지식을 갖고 있지 못함이 그들의 주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워치만 니는 그의 간증에서 1926년에 '십자가의 의미'를 1927년에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1934년에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초급과정에서나 다루는 그야말로 기초적인 내용을 그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과대평가 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위 책자 163-164쪽). 

-반박 : 한국교계 내에서 비록 (지방)교회 생활을 하진 않지만, 워치만 니 책자를 통해 은혜를 받은 분들이 일반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들 중에도 많이 있다는 점은 귀하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곳 미국에는 위트니스 리의 신구약 주석서(오디오 메시지)를 매일 또는 주 1회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이 미 전역에 걸쳐 50개(스페인어, 중국어 133개는 별도)가 넘습니다. 귀하들은 체계적인 신학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20년에 걸쳐 신구약 전체 주석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위 두 분의 저술들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경솔한 비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워치만 니가 '십자가'나 '교회의 하나'나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실행이 없는 공허한 신학지식을 알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귀하들의 지적처럼 신학교 초급과정에서 위와 같은 진리를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신학생들이 '십자가'를 배웠으나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이 없고, '교회의 하나'를 배우고 나와서 오히려 끊임없이 교회를 분열시키거나 분열을 방관한다면, 또는 그리스도 이외의 것에 마음이 분산된다면 그 배운 지식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나 귀하들이 비난하는 워치만 니는 핍박과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본 진리의 빛대로 살았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그처럼 문제가 많은 것은 신학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댓가를 지불하고 절대적으로 자기가 본 이상을 따라 사는 사람(행 26:19)이 부족해서가 아닙니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공정합니다.  

II.'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성경 안에 묻혀있고 사람들에게 감취어져 있다. 그 진리는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새롭게 발견된다"는 워치만 니의 말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성경을 지나치게 영해 했고 이것이 오늘날 지방교회의 이단적 주장의 요소가 되었다는 비판(위 책자, 148-149쪽)은 사실이 아닙니다. 

귀하들은 위 워치만 니 주장에 대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 들어 반박하셨습니다. 이 말은 완전한 계시를 담고 있는 성경 자체를 말할 때는 맞지만 역사적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면죄부가 사람을 구원시킬 수 있다는 부끄러운 실행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으나 말틴 루터에 의해 '이신칭의'의 진리가 회복됨으로 구원관이 바로 잡아졌습니다. 하나님은 말틴 루터 이후로도 그분의 비밀한 말씀들을 주님을 사랑하는 무리들에게 계속 열어주고 계십니다(고전 2:9-10).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상실치 않는다는 진리(성도의 견인) 는 비록 알미니안주의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주의 종이었던 캘빈을 통해 주님이 보여주신 귀한 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의 모든 진리가 장로교인들에게만 열려졌다거나 장로교인들이 지지하는 진리는 항상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캘빈이 유일하게 주석서를 쓰지 못한 요한계시록은 여전 히 많은 장로교인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을 대부분의 장로교인들은 실제의 광물질인 금과 보석들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박형룡, 교의신학-내세론, 361쪽 1988).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계시록 21장 9-10절에 의하면 참으로 불경스럽고 이단적인 것이 됩니다.(해당 본문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곧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지 박형룡 박사의 해석처럼 새 예루살렘을 신부가 그 안에 거주하는 물질적인 성이라고 하지 않았다). 즉 성경은 일관되게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지 '광물질'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고후 11:2, 계 19:7-8, 22:17, 호 2:19-20). 물론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집의 건축재료로 언급된 금과 은과 보석이 실제 광물질이 아니듯이 새 예루살렘을 구성하는 요소인 금과 각종 보석들도 영적 해석이 필요한 표징이지 실제 광물질이 아닌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신약성경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엡 1:23)(에클레시아)가 건물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인 예가 전혀 없는데도(이종성, 교회론,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95, 36-42쪽). 장로교인 중에는 심지어 예배당 건물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 간다' '나가시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식의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들이 살아 계신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광물질(새 예루살렘)을 신부로 취한다고 믿고 있고 콘크리트(또는 나무)로 만들어진 예배당 건물도 주님의 몸(교회)의 일부라고 믿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이단사상이라고 비판받는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교회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진리는 주님의 긍휼로 오늘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 성경 전체의 조망가운데 투명하게 열려졌습니다. 신약의 결론-교회론, 새예루살렘 책자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의 성경해석 방식은 원어의 의미와 문법과 역대의 신실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감안한 균형잡힌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성경해석에 관해 자신이 쓴 책자(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한국복음서원, 1991년)에서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59쪽)을 최우선 원칙으로 제시한 것은 위트니스 리가 성경을 지나치게 영해한다는 귀하들의 정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III. 귀하들은 "워치만 니 사상이나 가르침만 가지고는 그 이단성을 규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148쪽)라고 했고,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에 담긴 주요 교리들을 상세히 소개(149-151쪽)한 후,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지방교회의 교리가) 정통교회의 신조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시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이 (지방)교회에 이단성이 있다고 지적한 모든 내용들은 위트니스 리의 책자들(하나님의 경륜, 그 영과 몸)에 대한 귀하들의 오해와 잘못된 시각에서 온 것이지 (지방)교회가 다르게 가르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희들은 (지방)교회의 신앙을 오해한 귀 측의 비판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자 합니다. 

  1.신론에 대한 반박 

 삼위일체의 교리는 비밀하여 사람의 제한된 머리로 체계화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진리를 다룰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겸손한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또한 역대로 신실한 주의 종들을 통해 밝혀진 진리의 빛들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귀 측이 제시하신 니케아 신조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하여 성자는 성부와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에 그 강조점이 있었습니다(이장식, 기독교신조사 1집, 11쪽). 동일 본질을 가지시면서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실질적인 위격을 가진다는 삼위일체관(실질적 삼위일체론)은 근본주의 노선 안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도 변개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와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도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8년 5월호 참조).  

'한 하나님 세 위격'이라는 말은 사람(인성)과 연관되지 않을 때는 그리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이 되시고(요 1:14, 골 2:9, 딤전 3:16),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마지막 아담(예수님)이 생명 주는 영이 되시는(고전 15:45, 골 9:39, 요 20:22) 경륜적인 방면을 언급하는 성경말씀들은 '하나님의 인성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말함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거룩한 하나님이 실제로 육신을 입으신 것(새로운 존재방식)을 부인한다면 즉시 이단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레니우스, 힙폴리누스, 터툴리안 같은 초대교부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구별하여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라고 불렀습니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56-262쪽). 

 만일 누구든지 '내재적 삼위일체론'만을 고집한다면, '삼신론'에 빠질 위험이 있고, '경륜적인 삼위일체론'만 고집한다면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이 되는 것을 교회 역사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역사가인 필립 샤프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Many passages of the Nicene fathers have unquestionably a tritheistic sound, but are neutralized by others which by themselves may bear a Sabellian construction ; so that their position must be regarded as midway between these two extremes"(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I, p 674,”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5-166쪽). 

위와 같은 진리인식이 분명한 위트니스 리도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집대성한 교부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이종성, 262, 261쪽) 및 다른 정통교부들과 동일하게 이 두 방면-내재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모두를 취함으로 삼위일체론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삼위일체론은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할 진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의 균형 잡힌 삼위일체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저희 측이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믿는 것처럼 오해하심으로 다음과 같이 거짓되게 정죄하셨습니다(위 책자, 153쪽). 

 귀측의 비판1 : "지방교회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이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동등하게 존재하는 분임을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책에서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소유하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하나님의 세 단계인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겉다르고 속다른 것이다"(위 책자, 151쪽) 

 -반박 : 귀하들이 비판을 위해 인용한 위 내용들은 오히려 위트니스 리가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일체론 모두를 지지하는 균형 잡힌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은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하나님의 경륜'은 책제목이 말해주듯이 경륜적 삼위일체론의 방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지방)교회의 가르침이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귀하들이 오해하는 '한 하나님의 세 단계'라는 표현도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분리할 수 없는 한 하나님(삼일 하나님)으로서 거치신 단계를 말하는 것이지, 양태론자들처럼 한 위격이신 아버지가 아들이 되시고(고유한 아버지는 없어짐), 아들이 성령이 되심(고유한 아버지, 아들은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판2 : "지방교회는 일신 삼위가 아니고 일신 삼역이라는 것이다'(위 책자, 152쪽), '하나님이 잠시 예수 그리스도로 변하여 나타났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따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고 이미 계신 하나님이... 모양만 달리하여 나타났다고 주장한다"(152-153쪽). '하나님 혼자서 자신의 경륜 을 이루실 목적으로 세 가지 역할을 하셨다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신관이 바로 이 양태론을 따르고 있다... (지방교회는) 한 위격의 하나님이 단지 삼역을 해낸다는 삼중적 의미로만 이해한다(153쪽)'. '그러나 지방교회는 삼위를 믿지 않는다..."(154쪽) 

 -반박 : 위 비판은 (지방)교회는 '삼위'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므로 귀하들이 비난의 근거로 삼은 동일한 책자인 '하나님의 경륜'에서 위트니스 리가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귀 측의 주장이 근거 없는 거짓말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트니스 리가 귀 측의 주장처럼 정말로 '한 위격'의 하나님만 믿는다면 '삼위'를 언급하는 부분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는 위 책자 도처에서 세 위격의 하나님(삼일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 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우리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엡 4:6), 그리스도가 계시고(고후 13:5), 성령이 계신다(롬 8:11)는 사실이다. 삼일 하나님(삼위일체)의 세 인격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31쪽). "주님을 찬양하라. 이 놀라운 분, 삼일하나님이 오늘 우리 영 안에 계신다'(38쪽). "오늘날 삼일 하나님이... 죽음에 들어 가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셨다. 그 놀라운 삼일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이 모든 실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 안에 있다"(43쪽).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이다. 부활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삼일 하나님 자신이 있고, 우리의 생명과 본성이신 그분이 있다(169쪽). "우리가 구원받을 때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셨다"(201쪽).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인격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은 이제 우리 영 안에 계신다"(247쪽).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가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는 양태론자라는 귀하들의 정죄는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일체론을 함께 믿는 위트니스 리의 정통적 삼위일체관을 바로 파악치 못하고 경솔하게 단언한 잘못된 정죄임이 밝혀졌습니다. 저희들은 결코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세 위격이 서로 안에 거하시는(상호내주)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은 귀하들의 글을 검토하면서, 귀하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고유하신 구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는 분리된 세 분 하나님(삼신론)을 믿는 것은 아닌가-세 위격 간의 서로 안에 거하심(상호내주)을 부정함-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 점은 추후 규명될 날이 올 것입니다.  

2. 기독론에 대한 반박 

귀 측의 (지방)교회의 신론에 대한 오해는 당연히 기독론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을 '성자가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뜻'(위 책자, 155쪽)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신 것입니다. 또한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가 쓴 '분리되어 있지 않다'라는 말을 잘못 해석한 나머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지방교회는 생각할 수도 없다'라고 말함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믿음도 없는 사람들처럼 매도하셨습니다. 

-반박 : 위와 같은 오해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구별되나(distincto)' '분리(separatio)'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전통적인 개념(이종성, 그리스도론, 1994년판, 294쪽)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위트니스 리의 '분리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귀하들이 '세 위격 간에 구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의 위 말은 하나님은 분리된 두 하나님 또는 세 하나님이 아니고 한 분이시지만(고전 8:4,6), 그렇다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고유성이 혼잡 되지도 않으신다('구별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물론 위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고유하고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고 확실히 믿습니다(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지방)교회측 원고 참조). 

성경은 아들 하나님(성자)이 성육신 하셨음을 말하지만 이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과 분리된 성자가 아니라 아버지, 아들, 성령이 상호내주하시는 아들이십니다.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보내는 쪽과 보냄을 받는 쪽이 분리될 수밖에 없지만 영적이고 비밀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즉 성경은 보내신 분이신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실 뿐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아들과 지상 사역시 서로 안에 계신다(상호내주)고 말합니다(요 8:16, 29, 14:8-11, 17:21,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162-163쪽). 

정통 신학자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상호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즉 어거스틴은 상호내재를 "both( 아버지, 아들, 성령님)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로 정의했고, George Bull 주교는 "상호내주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재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로 정의했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투스 스트롱도 상호내주를 "거룩한 삼위일체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지방)교회측 원고 참조). 

이처럼 위트니스 리는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기독론을 가지고 있음(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그리스도,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163-169쪽)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이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신 것은 사신 하나님 앞에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3. 인간관에 대한 반박 

 (지방)교회의 인간관에 대한 귀하들의 비판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는 달리 성경은 사람 안에 사탄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요, 위트니스 리가 로마서 6:6과 7:24를 해석하면서 죄와 사망을 사탄과 동일시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다음과 같이 차례로 반박하고자 합니다. 

 비판1 : 성경은 사람 안에 사탄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박 : 이러한 주제는 대단히 복잡한 신학적 논쟁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서신 안에서 자세히 다루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추후에 있을 진리 토론시 충분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원칙적인 면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선 위트니스 리는 사탄을 인격적 존재를 가진 타락한 천사장으로 보며 주관적으로는 타락시 사람 안에 죄(Sin,롬 5;12)로 들어와서 사람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역사하고 있고(롬 7장, 엡 2:2, 마 16:23, 베드로=사탄), 객관적으로는 공중에서 역사 하다가 결박당한 후 무저갱에 갇힐 존재(계 12:9-10, 20:1-3)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의 '사탄이 사람 안에 있다'라는 말의 의미는 한 면으로는 사탄이 여전히 사람 밖에서 존재하며 역사 하지만 타락한 사람 안에서도 죄성을 통해 역사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 독사의 자식-라고 말합니다(요일 3:10, 8, 12, 요 8:44, 마 3:7, 23:33). 이러한 말씀들은 사탄이 사람 밖에 있을 뿐 아니라 사탄(마귀)의 자녀 안에서도 유기적인 관계(자녀관계)를 통해 역사 하는 자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 8장 44절에서 보듯이 사탄의 자녀들은 아비인 사탄에게서 전수받은 어떠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내주하는 죄(Sin)를 악(the evil)과 동일시했는데(롬7:0-21), 이 '악'은 또한 사탄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악한 자는 사탄 자신인 것입니다(요일 5:18-19, 2:13-14, 3:12, 마 6:13, 요 17:15 원문참조) 

 그러나 박형룡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타락한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은 강조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마귀의 자녀(요일 3:10)'가 되었는지 그리고 주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요 3:14, 12:31, 히 2:14)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학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적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저희들이 귀하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마귀의 자녀가 되었으며 마귀의 자녀들은 그 아비인 마귀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것도 다만 비유일 뿐이고 실제가 아니라고 하시겠습니까?

비판2 : 위트니스 리가 사탄과 죄와 사망을 동일시했다는 비판에 대하여

-반박 : 우선 귀하들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인용했다는 원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book of Romans uses two terms, "the body of sin(6:6) and "the body of death" (7:24). The body is called "the body of sin" because Sin is in the body. The body simply became the residence of Sin, which is the embodiment of Satan. What, then is "the body of death"? The source and power of death is Satan. Sin is the embodiment of Satan and death is the issue or effect of Satan"(Witness Lee, The Economy of God, P109)

위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위트니스 리는 '사탄의 체현'(the embodiment of Satan)이 죄'(단수인 Sin)라고 했고, '사탄에게서 나온 결과'(the issue or effect of Satan)가 '사망'이라고 했지 귀하들의 비판처럼 죄=사망=사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이지만 죄와 사망은 결코 인격적 존재가 아니므로 죄와 사망과 사탄을 동일시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귀하들의 비판은 위트니스 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비판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12절이 말하는 사람 안에 들어온 '죄'가 다만 '불순종한 행위'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죄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 속에 들어와서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타락한 사람들 속에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인지는 추후 토론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162-164쪽 참조). 또한 사망이 사탄에게서 나온 결과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경이 말하는 바(히 2:14)임으로 별도의 입증이 필요없다고 봅니다.

4. 구원에 관한 반박

성경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과거시제)고도 말하고(엡 2:8), 더욱 구원을 이루라거나(빌 2:12), 더욱 구원을 얻을 것(미래시제)(롬 5:10)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구원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만도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박상걸, 성경적 구원론, 1995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의 구원관에 대한 진지한 연구도 없이 함부로 (지방)교회의 구원관이 성경적인 구원관이 아니라고 단정하셨습니다. 저희는 '(지방)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사탄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지 않는다'라는 등 귀 측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단언에 대해 경악할 뿐입니다. 귀 측은 주님 앞에서 충분한 기도 후에 이러한 책자를 발간하셨습니까?

귀 측이 참되게 (지방)교회 성도들의 구원관을 알고자 하신다면 위트니스 리가 장장 천 페이지가 넘게(1084쪽) 믿는 이들의 구원에 관해 밝혀 놓은 책자들인 '신약의 결론-믿는 이들 I, II'(한국복음서원, 1991년)를 정독하여 보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그러나 귀하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저희의 구원관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삼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요 1;14, 29, 19:30, 행 20:28). 부활하신 후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 15:45, 요 6:63, 10:10 원문). 그 후 그 영은 믿는 사람들 안에 영원한 생명(요 3:16, 요일 5:11-12)으로 들어오셔서 믿는 이들의 영을 거듭나게(구원)하시고(요 3:6), 점차적으로 혼을 구원하고 계시며(벧전 1:9 원문, 고후 3;18), 결국엔 몸을 구속하심(롬 8:23, 빌 3:21)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롬 5:10 원문참조, 히 2:10).

이러한 (지방)교회의 구원관은 귀하들의 거짓된 정죄(위 책자, 158-161쪽)와 달리 지극히 성경적인 구원관이라고 저희들은 확신합니다.

5. 교회관에 대한 반박

교회관에 대한 귀하들의 비판 요지는 지방교회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졌고,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교회관을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난1 (지방)교회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지고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 저희들은 '배타적인 교회관'이 아니라 정상적인 모든 믿는 이들이 동일하게 인정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저희가 보고 믿는 진리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실하게 실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1) 교회관 : 성경은 교회(그리스도의 몸)가 주님이 갈망하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마 16:18, 엡 3:9-10). 그리고 목회자들을 포함한 모든 은사자들은 이러한 교회건축을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엡 4:11-12). 그러므로 무엇을 교회로 볼 것인가는 신앙생활의 목표와 연관지어 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그리스도)의 충만'(엡 1:23)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주님과 하나된 유기체(행 9:4, 요 15:5)만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성교회는 건물이나 사람이 만든 조직(또는 기관)도 교회라는 잘못된 인식(이종성, 교회론, 153쪽 참조)을 가지고 '거듭난 사람들인 유기체만'이 교회라고 성경적으로 말하는 (지방)교회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명도 없는 조직이나 건물이 주님의 몸을 구성한다는 발상은 신앙생활의 핵심을 빗나가게 할 뿐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2) 교회직분 : (지방)교회는 장로와 집사라는 성경상의 직분(딤전 3:1-13)을 인정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다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는 진리도 믿고 실행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주일 날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소위 목회자만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성직자는 물론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으로써 직접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14:4 원문참조, 14:1, 31, 벧전 4:10-11, 엡 4:15). 특별히 고린도 전서 14장 4절의 원문에 따르면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하는 자가 교회(그리스도의 몸)를 건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31절은 '너희는 다...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몸의 분열 : 저희들은 주님의 몸은 하나이며 믿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엡 4:4, 고전 1:10-13, 3:3)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교회를 건축하고 계시는 주님의 사역을 정면으로 훼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성교회의 태도는 믿는 이들 간의 분열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처럼 보입니다(예를 들면, 통합 측의 최삼경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교파의 분열도 있다고 하고, 고신 측의 전용복 목사님은 분열의 유익성을 말하기까지 함). 그러나 개신교 측의 한 양심적인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분열'을 '죄악'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개신 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다. 종교개혁자들 자신이 분열 상태에서 개혁운동을 전개하여 각기 자신들의 교파교회를 세웠다. ... 1517년부터 개신 교회는 분열, 따라서 예수의 몸을 찢는 일에 대한 반성도 없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칼빈은 보이는 교회는 분열되어 있으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하지만 그것은 성서적 교훈이 아니다"(이종성, 교회론, 152쪽).

비판2 :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교회관은 터무니없고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 많은 분들이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한 지방에 한 교회'를 ' 한 지방에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무리로 구성된 교회'로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졌다는 비판도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귀하들도 인용하셨듯이, (지방)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기성교회 교인들까지)을 그 지방에 있는 한 교회의 지체로 인정(위 책자, 161쪽)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장로교인, 침례교인, (지방)교회 교인의 구분이 따로 없고 거듭난 사람들은 다 '그 지방에 있는 교회(단수)의 구성원'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교회관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귀 측의 교회관은 무엇입니까?

또한 지방의 범위의 문제는 믿는 이들 사이의 분열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한 지방, 한 교회' 원칙은 대부분의 서신서의 명칭(제목)과 각 서신서의 수신인의 범위(고후 8:1, 갈 1:2, 계 1:11, 롬 1:7, 빌 1:1, 골 1:2)를 볼 때 초대교회에서 일관되게 실행된 진리였습니다('도'(province)를 언급할 때는 '교회들'(복수)로, 한 도시(city)를 지칭할 때는 '단수의 교회(행 8:1)'로 구분함).

이처럼 우주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인데 공간과 시간의 제한이 있음으로 편의상의 주거지역인 지방을 기준으로 00교회라고 부를 때(행 8:1, 13:1, 14:23, 딛 1:5) 모든 분열은 즉각 폭로될 것입니다. 주거지역을 기준으로 교회를 구분하는 원칙이 분열을 방지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개신교 신학자의 글을 통해서도 확증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큰 문제중 하나를... 개교회주의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이에 대한 해결책은) 한 교회가 한 지역을 책임지는 형태이다. 이 제도가 정말로 정착되면 교회나 교단 사이의 대립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같은 교단 소속 교인들을 주거지역의 교회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불필요하리 만치 갈갈이 찢어져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재결합과 연합이 우리의 최대과제라 생각한다"(정훈택, 총신대교수, 교회와 신앙 96년 12월호, 99-101쪽)

지금까지 본 것처럼 귀하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시한 내용들은 오해(양태론, 일신삼역)였거나 성경진리(사탄의 소재, 교회의 범위)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귀 측의 문서를 통한 이단정죄는 한 무리의 신실한 믿는이들에게 반영구적인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 생명의 능력을 공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서 너무도 쉽게 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현실에 대해 깊은 아픔을 느낍니다. 더구나 비교적 균형있는 관점을 가지고 계신 합동측 목회자(신학자)들이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을 오해함으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을 문서로 이단시 한 것은 피차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서에 의한 상처는 반영구적인 것이며 반드시 문서로 치유되어야 합니다. 저희들은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다음 사항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1. <기독교의 이단들>에서의 (지방)교회에 대한 입장은 귀하들 개인의견인지 아니면 합동측 교단의 공식의견인지를 밝혀 주십시오.

2. 앞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지방)교회를 이단시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해 주십시오.

3. <기독교의 이단들>책자는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허위사실>을 담고 있음으로 서점재고를 즉각 회수하여 주시고, 재판 발행의 중단을 문서로 약속하여 주십시오.

4.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로 인해 (지방)교회가 입은 심각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귀 교단 소속 신문을 포함한 2개 기독교 신문에 저희들의 본 항의서한 전문과 귀 측의 해명서를 게재하여 주십시오.

5. 만일 귀 측의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고 느끼신다면 우리는 제 3자가 진실을 판단 할 수 있도록 귀 측이 선정하는 기독교신문 또는 월간지를 통한 지상토론을 제안합니다.

위와 같은 저희 측의 요청에 대한 귀 측의 원칙적인 입장을 1998. 5. 30.(발송 일로부터 30일)까지 팩스로 보내 주시고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귀 측이 이러한 제안을 무시하고 방치함으로써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귀 측에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양 측 모두를 중재하사 좋은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귀 교단 소속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첨부 :

1. '다락방 류광수 왜 이단이라 하는가'(박진규 목사 저)에 대한 항의 서한 사본 2부

2. 위트니스 리의 라디오 방송국 리스트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