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4.12 00:15

찬양 411회

The Faith is the Economy



1

The faith is the economy, the economy of God

믿음은 경륜, 하나님의 경륜


The household administration, the dispensing of our God

가정 경영, 하나님의 분배


The truth is the contents, the reality of the faith, According to God’s economy.

진리는 그 내용,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믿음의 실재


Godliness is a living that expresses The divine reality,

경건은 신성한 실재를 표현하는 생활


An expression of God in all His riches Full of all gravity.

장중함이 가득한 그분의 풍성의 표현. 



2

Healthy teaching, words, and speaking Are the ministry of the truth,

건강한 가르침, 말씀과 말해냄이 진리의 사역


Ministering into people the reality of these truths;

이 진리들을 사람들 안으로 사역한다네.


Eternal life is the means and the power to carry out, The divine realities of the faith;

영원한 생명은 신성한 믿음의 실재를 수행하는 방법과 능력



3

Faith is the response to the truth of the faith

믿음은 믿음의 진리에 대한 응답이요


Conscience is a test and a check to preserve us in the faith.

양심은 믿음 안에서 우리를 보존하기 위해 시험하고 점검해


The faith is the economy, the economy of God,

믿음은 경륜, 하나님의 경륜


The household administration, the dispensing of our God;

가정 경영, 하나님의 분배


4

The faith, the truth, expressed in healthy words,

건강한 말씀 안에 표현된 믿음과 진리는


Carried out in power by His life

그분의 생명에 의해 능력 있게 성취된다네.


Expressed in Godly living responded to by faith,

믿음에 반응하는 경건한 생활로 표현되어


Kept and held in check by our conscience.

우리의 양심으로 유지되고 보존된다네.





지방교회 - 찬송가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3.07 00:15

찬양 385회

God is love


1

God is love, Who sent His beloved Son.

Man is fallen with corruption,

But You sent Your dear Son.

God commends His kindness and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

Christ died for us.

  God You did not spare Him,

Your beloved Son.

Father, how we praise You

For this precious One!

2

Who can know the love from our Father’s being?

Ears have never heard, eyes have never seen,

But Lord, I’ve been redeemed.

God is love. O God, a man You became;

A cursed man to be, God, You died for me.

Lord, You hung from a tree.

  Father, You have sent Him,

Your beloved Son.

He shed His blood on Calvary.

Your love reached me.

3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us His Son.

Just believe in Him. Be not perishing,

But have eternal life.

Just believe in Him. Be not perishing,

But have eternal life.



지방교회 - 찬송가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0.19 00:00

하나님 경륜 적용하기- 그림자와 실재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어릴 때 '그림자 놀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밤에 희미한 조명을 배경으로 벽을 향하여 각종 손 모양을 해 보이면 손 모양의 그림자가 개도 만들고 닭도 만들고 토끼도 만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주로 그림자를 쳐다보며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러나 게 중엔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손재주 좋은 형들의 손 모양을 유심히 바라보며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또 달 밤에 그림자 밟기 라는 것도 했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그림자를 쫒아가서 밟는 놀이입니다. 이긴 사람은 이리 저리 도망 다니며 그림자를 안 밟히려고 하고 술래(진 사람)는 그림자를 밟고 술래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쫒아다닙니다. 

위 두 가지는 다 실물이 움직이는대로 그림자가 따라 한다는 것이 공통된 현상입니다.  성경은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도 그림자에 해당되는 것이 있고 또 그것의 실재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다른 말로 허상입니다. 있는 것 같으나 막상 잡으면 아무 것도 없는 그런 것들... 솔로몬은 부귀와 영화 높은 지위를 맛보았으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다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헛된 것을 대치할만한 실재 또는 참 실물을 발견하고 소유하지 않은 한 '헛된 바람을 잡는 것 같은' 그림자 밟기 놀이는 여러 세대를 이어서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임종시 인생의 헛됨을 토로하는 어른들을 보면서도 자신도 그런 같은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뭔가에 홀리지 않고서야 다른 일에는 그리도 똑똑한 그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그림자들을 좇는 허무한 인생을 살리가 없습니다(엡2:1-3, 4:17-18).  

신약 서신서에서 '그림자'(shadow)를 언급한 곳이 몇 군데 있는데(골2:17, 히8:5, 10:1) 저는 그 중에서 골로새서 2장에 있는 다음 부분을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which are the shadow of the things to come)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6-19). 

위 말씀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 아닌 종교적인 의식들'을 대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눈에 보이는 의식들이 그림자다 이렇게 뭉뜽거려 말하지 않고, 먹고 마심, 절기, 월삭 등등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또는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회심한 주의 제자들이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각종 의식과 관련하여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기에 그런 밖의 행위들은 안의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함을 바울은 말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 레위기 11장을 보면 먹을 수 있는 생물들 리스트가 주욱 열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참된 먹거리는 그 그림자들의 실재인 주님 자신입니다. 신약 도처에서 주님을 먹고 성령을 마시는 언급과 사상들이 발견됩니다. 

만일 누가 레위기 말씀을 지키려고 토끼나 사반 고기는 안 먹고, 새김질하는 소고기는 먹으면서 정작 요한 복음 6장과 고전12장이 말하는 생명의 떡이신 주님과 생수이신 성령을 먹고 마시는 것은 소홀히 한다면 그는 그림자를 주목하고 실재는 놓치는 종교인인 확률이 높습니다.  

 또는 레위기 23장이 말하는 각종 '절기'와 이에 더하여 소위 교회력에 있는 사순절이니 고난주간이니 하며 특정 날을 지키면서 그 실재인 주님을 맛봄으로 인한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면 그 역시 그림자는 중요시하되 그 실재를 놓친 자입니다. 

'월삭'(new moon)(민28:11)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어둠가운데 있다가 빛이신 주님으로 돌이켜 새로운 시작을 갖는 것이 오늘 날 월삭을 참되게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안식일(레23:3)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장로교 모 교단 총회장을 역임했던 분의 자녀였던 한 형제님은 주일성수하려고 그 다음 주 월요일이 중요한 시험이라도 주징 자정을 넘기지 전까지는 시험 공부를 할수 없었다고 간증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안식교단 이외에도 안식일 준수(주일성수?) 교리가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일 준수는 그분이 쉬신 것처럼(창2:3) 우리도 육체의 열심과 노력을 그치고 영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주는 참된 영적 실재는 바로 완성과 안식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과 연합하여 한 영됨을 누릴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육신 안에서는 '한 손 마른 자'를 고치기도 하고 배고프면 밀이삭을 잘라 먹어도 가합니다. 

오랫만에 휴가를 맞이하여 낮잠도 자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실컷 쉬어 보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좀이 쑤시고 지루해지며 도리어 안식이 깨지는 경우를 우린 경험합니다. 참된 안식은 안식일의 실재이신 주님 안에서만 있습니다. 이런 이해가 골 2:17이 말하는 그림자와 실재를 바로 푸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이 글 제목이 하나님의 경륜의 적용임으로 실제적인 몇 가지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1. 안식교가 주장하는 안식일 준수 

물론 구약 성경에 안식일 준수에 대한 언급이 여러 군데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규례들은 참으로 그림자일 뿐이며 신약의 성도들도 지켜야 할 실재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 본문 위에서 보듯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때 우리들의 죄와 죄들을 처리하셨을 뿐 아니라 안식일 준수를 포함한 모든 의문에 쓴 증서들을 도말하셨기 때문입니다 (Blotting out the hand-writing of ordinances)(14절). 

만일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안식일 준수(내지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 불의하다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료하신 주님이 먼저 불의한 자로 정죄 되어야 마땅합니다(마12:9-14). 

그러나 주님 자신은 영원토록 의로우신 분 이십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며 불의가 없으십니다. 또한 만일 우리가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인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면 안식일외의 다른 모든 율법들도 엄격하게 지켜야 마땅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3:10). 이어서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자가 없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의인임을 말합니다. 

2. 신약 교회가 소위 교회력을 지키는 일 

언제부터인가 개신교 안에도 교회력이니 사순절이니 하는 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교회력 개념 안에는 전통적인 의식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오순절 등도 포함이 됩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교회력'이라는 검색어를 쳐 넣어서 나온 다음과 같은 자료는 오늘 날 '특정한 날을 지키는' 소위 골2:16 본문의 변종이 얼마나 신약 성도들 안에 만연되어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 다. (교회력 구글 검색)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것이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림자에 해당될 뿐입니다. 

그림자를 붙들고 실재를 놓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하는 대적의 고차원적인 수법입니다. 즉 엉뚱한 것에 세월을 낭비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주목치 못하게 하는 전략입니다(엡5:16 -21). 

위와 같이 성경이 '그림자'라고 판단한 것들을 붙들고 귀히 여기는 분들은 최소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딤전 1:4)에 대해서 선명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입니까? 

본문 문맥을 따라 설명하자면 골2:19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마디와 힘줄에 해당되는 지체들이 다른 성도들을 공급하고 연합케 하여 그들 각자 안에 하나님의 증가로 인한 생명의 성장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 안에서의 하나님의 증가(원문 참조)는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바로 이 몸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이기 때문입니다(엡1:23). 

이러한 진리인식이 분명하다면 결코 그림자에 불과한 '대강절'이니 '사순절'이니 하는 절기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생명의 성숙을 통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이라는 하나님의 갈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실재는 없는 그림자 밟기 놀이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 모두의 마음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의 기뻐하심이 무엇인지 참되게 보게 하시고 모든 그림자에서 돌이켜 실재이신 주님자신만을 주목케 하소서!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9.07 05:00

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 - 율법과 그리스도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 - 율법과 그리스도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우리가 알듯이 바울이 딤전1:4에서 말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 안에 분배하심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할 단체적인 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본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그의 온 힘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골1:28).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보지 못했던 시절의 그는 가는 곳마다 옳은 것으로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정죄하고 핍박하는 인생을 살았었습니다(딤전1:13, 빌3:6).
 
 

생명되신 그리스도 자신을 살고 공급함으로 사람의 참된 필요를 채우는 길을 걷는 사람과 성경이 하라 하지 말라고 한 율법적인 요구에 묶여 결국 사람들의 참된 필요를 외면하고 오히려 정죄하는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열매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사울의 대비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 12장을 읽었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사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였습니다.  즉 주 예수님은 안식일 날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 잘라 먹은 것에 대해 성경적으로도 잘못이 없다며 그들을 두둔하는 입장에 서셨습니다. 물론 '그들의 참된 필요인 배고픔'도 돌아보는 마음이 있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이에 더하여 비록 안식일이긴 하지만 손이 오그라들어서 불편한 사람의 참된 필요도 관심하셨고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제단에 차려 놓았던 진설병을 먹었으나 죄가 되지 않았던 사실(삼상21:6),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은 점(민28:9-안식일에도 제사장들은 안식일 제물을 드리기 위해 일해야 했음),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점(호6:6) 등의 진리적 당위성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는 사실만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범한 제자들을 두둔할 뿐아니라 한 수 더떠서 자신이 직접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을 깨뜨리신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도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안식일을 범한(그들의 눈에) 주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counsel)를 열었습니다 (마12:14). 

이러한 사건은 율법적인 유대인들이 이후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에스겔 20:12, 신명기 5:15 등의 구절들을 예수님을 정죄할 근거말씀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들 자신은 성경을 잘 지키는 정통이지만, 성경내용의 바로 그 주인공이신 주 예수님은 그들의 판단에 의하면 이단이요 비성경적인 분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단편적인 성경지식은 있으되 그러한 안식일의 주인(마12:8)이신 주 예수님 자신을 보는 영적인 눈은 멀어 있었습니다. 바울 이전의 사울이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사실을 보는 눈이 먼 것이 소위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종교인들의 치명적인 약함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한 부분만을 붙잡고 '배고파 밀 이삭 먹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많은 때 그들은 배고파 밀 이삭 잘라 먹는 사람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주고자 하시는 그들의 주인 그들의 하나님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시고 품으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짓밟고 정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주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데서 더 전진하여 주님 자신까지도 극렬하게 반대하며 저지하고 심지어 죽이려 듭니다(마12:14). 즉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데 이러한 그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밖의 율법을 준수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받고 그영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차별없이 다만 사랑하시고(요3:16) 그들에게 주님자신인 생명을 주시고 또 주심으로(요10:10) 그들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인 주님자신으로 충만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어 가시고(엡1:23) 마침내 거룩하고 흠없는 신부로 단장해 가시는(고후11:2, 계19:7, 21:2, 9-10) 현재의 주 예수님의 일 하심에 다만 아멘하고 동역하기를 갈망합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6.12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1) - 하나님의 경륜이 뭐예요?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1) - 하나님의 경륜이 뭐예요?

-지방교회들에 소속된 분들은 일반 성도들이 잘 못들어 본 단어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경륜'이란 말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뭡니까?  

한 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인데, 한국복음서원에서 펴낸 '하나님의 경륜'(위트니스 리)이란 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예, 기회가 되면 한번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거기서 오래 생활하셨으니, 나름대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이해하고 계신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한번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그럼, 부족하지만 제가 이해한 하나님의 경륜을 조금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경륜은 위트니스 리나 소위 (지방)교회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라 성경 용어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 4절을 보면 나옵니다. 거기서 앞 뒤 다 빼고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란 말만 마음에 담아 두셨으면 합니다. 

  -제가 '경륜'이란 단어를 검색에 쳐 보았더니 일곱명이 하는 자전거 경주 이야기가 나오던데, 물론 그런 뜻은 아닐 거구요. 아, 저 사람은 얼굴에서 경륜(연륜)이 느껴져 라는 식으로 일이나 조직을 지혜롭게 잘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예, 저도 호기심으로 경륜이라는 단어를 검색에 쳐 본적이 있는데, 진짜 '창원경륜공단' '한국 경륜선수위원회' 이런 단어들이 뜨더라구요.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두 방면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그 단어 원문의 의미를 푸는 방식이구요, 또 하나는 그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쓰인 내용들을 몇 단어로 압축해서 요악하는 식입니다. 우선 '경륜'이란 말은 위 디모데 전서 1장 4절 말고도 엡1:10, 3:2, 9, 골1:25, 고전9:17 등에서도 쓰였어요. 헬라어 원문은 '오이코 노미아'입니다. 이것은 '집'의 의미인 '오이코스'와 '관리'의 의미인 '노모스'의 합성어예요. 따라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집 관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따라 말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주님자신', '분배' '표현' 이 세 단어로 압축해서 정의할 수 있어요. 

  -주님 자신을 분배해요? 아무리 이해하는 마음으로 들으려고 해도 '분배'라는 말은 좀 귀에 거슬리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실 겁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할 성경 구절들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위 고전 9:17을 보시면 개역성경으로 '직분'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오이코노미아'인데, 이것을 KJV은 'dispensation' 이라고 번역했어요. 그 단어를 영한 사전에서 찾아보시면 첫 의미가 바로 '분배' 또는 '나누어 줌' 입니다. 

 즉 바울이 위 구절에서 '직'을 맡았다고 했는데, 무슨 직분인가 하면 쉽게 말해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생명으로 나누어주는(소개하는) 직분입니다. 그런 직분을 통해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되고, 믿고 영접하게 되는 소위 복음의 역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해석이 조금 인위적으로 느껴지시면 좀더 설득력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요한복음 10장 10절 후반절이예요.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양들인 우리 편에서는 생명을 얻고 또 얻는 것이지만, 생명을 주시는 그분 편에서 보면 생명을 주고 또 주시는 것이지요. 이것을 생명을 분배하신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분배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이지요. 그런데 생명이 무엇인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에 근거해 보면 주님자신이 생명입니다. 

 이처럼 '주님자신' '분배'가 이뤄질 때 나타난 결과가 바로 '표현'입니다. 사람 안에 생명이 처음 분배된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에 계속 분배되는 생명을 그 거듭난 사람들을 영적으로 자라서 성숙하게 합니다. 이런 거듭난 사람들, 생명이 성숙한 사람들은 불신자와는 다른 어떤 예수 믿는 냄새가 납니다. 얼굴에서 그들의 말에서 생각하는 관점에서...그것이 표현입니다. 

 이처럼 생명이신 주님자신이 우리를 통해 안으로부터 충만히 표현되는 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엡1:23)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계21:11). 

 질문은 짧은데 어찌하다보니 제 답이 너무 길어것 같아 죄송하네요. 

  -예, 나름대로 성경을 토대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계시구나 하는 인상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내용들이 다 이해가 된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시간을 가지고 다시 한번 찬찬히 검토해 보고 추가 질문이 있으면 나중에 또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참고로 시간이 나시면 엡1:4-5, 3:2-6, 골1:24-29 등도 함께 연구해 보시면 제가 오늘 설명드린 내용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좋은 시간 가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더 감사하지요. 그럼 나중에 또 뵙지요. 안녕히 가세요.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4:35
성경말씀 

 (눅16:10)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불의합니다. 

 오늘의 만나

 
 신약경륜에서 신약의 믿는이들이 물질적인 소유를 관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그분께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대상29:14, 16),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패되었고(롬8:20~21), 악한 자인 사탄에게 강탈되었습니다(요일5:19). 따라서 그것들은 타락한 사람에게 속해 있고 불의합니다(눅16:9). 하나님은 이 시대의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 믿는이들의 매일의 필수품을 공급하시며, 이 시대에 그분의 청지기들에게 이 물질적인 재산의 일부를 맡기시어, 그들이 훈련받고 배우도록 하심으로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음 시대에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그들은 이 재산 중 어느 것도 그들의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믿는이들은 세상을 상속받고(롬4:13), 그들 자신을 위해 변함없는 소유를 가질 것입니다. 이 시대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신 물질적인 것에 대하여 신실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그들이 오는 시대에 얻게 될 영원한 소유에 대하여 신실하기를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출처 : 감추어진 만나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1 16:55
골3:10-11  새샤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랆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골로새서 3장3절과 4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의 초점이시며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심을 본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새사람의 조성 성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새사람의 유일한 조성 성분이시기 때문에, 새사람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미국인과 중국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노예와 자유인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 새사람 안에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나는 이 이상을 봄으로써 우리 속에서 깊은 열망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께 점유되고 사로잡히며 당신의 소유가 되기 원합니다. 저는 제 속의 모든 공간과 여지를 완전히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체험하는 일에서 제한 받거나 좌절되기를 원하신 않습니다. 저는 어떠한 제한이나 재약이나 얽매임없이 당신을 누리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문화가 아닌 오직 당신만을 얻기 원합니다. 저는 어떤 종류의 문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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