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8:00
성경말씀  

(눅1:30-31)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보십시오,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1:38) 그러자 마리아가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이니, 그대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자, 천사는 떠나갔다. 

 오늘의 만나

 마리아와 같은 젊은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위임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녀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여, 만일 당신이 나에게 이것 외에 다른 것을 하라고 하시면 그것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이를 잉태하라니요! 이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기록을 읽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가령 우리 가운데 어떤 젊은 자매가 오늘 밤 그러한 위임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녀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그러한 위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만일 어떤 천사가 여러분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천사의 말을 들은 후에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이니, 그대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눅1:38).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 대가는 지극히 높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 마리아는 매우 높은 대가 - 그녀의 온 존재 - 를 지불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낳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값싼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낳으려면 우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했습니다.

출처 : 이기는 생명 - 창간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45
성경말씀  

(사36:6)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오늘의 만나

 
 척추를 다친지 몇 년이 되어서 지팡이 없이는 다닐 수 없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믿는이였습니다. 비록 의사가 지팡이 없이 걸어다니는 연습을 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감히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위층에서 내려오다가 다리를 헛디뎌 그대로 아래까지 굴렀습니다. 그순간 그녀는 지팡이를 잃고, 땅바닥에 누워서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지만 공교롭게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난간을 짚고 몸부림치며 지팡이 없이 걸어 보았습니다. 이때 이후로 그녀는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걸려 넘어져서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그녀 일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종종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 자신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하여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하는 지팡이를 가져가십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35
성경말씀  

(고후2:10) 여러분이 어떤 일에서 누구를 용서한다면, 나도 용서합니다. 내가 어떤 일에서 용서했다면, 내가 용서한 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용서한 것인데 

 오늘의 만나

 
 고린도후서 2장 10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은 헬라어로 ‘그리스도의 얼굴’로서 눈 둘레의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는 안에 있는 생각과 느낌의 표시인 표정이며 그것은 사람 전체를 보여주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그리스도의 눈에서 표현된 그분 전체의 표시에 따라 그리스도 앞에서 살고 행동했던 사람이었음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혼란 상태에 있는 고린도의 믿는이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 뒤이어 후서를 썼습니다. 그들이 첫 번째 서신에 있는 사도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여 회개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그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대단히 개인적이고, 부드러우며, 다정하게 이 서신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후서는 어느 정도 그의 자서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는 그리스도와 가장 가깝고도 친밀하게 접촉하며, 첫 번째 서신에서 그분에 관하여 쓴 대로 그리스도를 살았고, 그분의 눈 언저리를 따라 행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적셔져 그리스도와 하나였던 사람이었고, 천연적인 생명은 부시지고 심지어 끝났으며, 의지는 부드럽고 융통성이 있으며, 감정은 다정하나 제한받고, 생각은 사려깊고 냉철하며, 그의 영은 믿는이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 대해 순수하고 참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믿는이들이 자기처럼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30
성경말씀  

(살전1:2~3)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여러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일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그의 기도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있는 세 가지를 기억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입니다. ‘믿음’은 역사(役事)의 본성과 힘을, ‘사랑’은 수고의 동기와 특징을, 그리고 ‘소망’은 인내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것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 즉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구성된 생활의 구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믿는이들의 타고난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주입된 데서 나옵니다. 또한 이러한 생활은 믿는이들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사랑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들이 사랑하는 주님에 대한 것과 주님께서 사랑 안에서 죽음을 통하여 구속하신 그분의 지체들에 대한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생활은 믿는이들이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의 지속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함없이 계속되고 견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장차 오시어 믿는이들을 자기에게로 데려가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20
성경말씀  

(엡3:5~6)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신언자들에게 이처럼 분명하게 영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비밀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상속자들이 되고, 함께 몸의 지체들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는 다른 세대에서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로소 계시되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5절의 성령은 헬라어에서 ‘사람의 영’ 즉 사도들과 신언자들의 사람의 영을 가리킵니다. 이 영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거듭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영입니다. 그것은 연합된 영 곧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사람의 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합된 영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신약의 계시가 사도들과 신언자들에게 열어 보여지는 수단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계시를 보기 위해 동일한 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서 택함받고 구속받고 거듭난 이방인들과 믿는 유대인들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하나님 자신을 상속받습니다. 구원받은 이방인들과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함께 지체들로서 그분의 유일하신 표현이 됩니다. 이방인 믿는이들과 유대인 믿는이들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모든 축복에 관하여 구약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10
성경말씀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기를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사랑은 성내지 않고 남의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오늘의 만나

 
 생명은 하나님의 요소입니다. 사랑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표현되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7절까지 열거된 사랑의 열다섯 가지 미덕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신성한 미덕들입니다. 이런 생명은 고린도전서 12장에 열거된 외적인 은사와 다릅니다. 고린도인들은 외적인 은사들을 추구했으나 하나님의 생명의 표현인 사랑을 소홀히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전히 육신에 속해 있었고, 육적이었으며, 혼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하면서 사랑으로 표현되는) 생명 안에서 자라야 했으며, 그들이 영에 속하도록 외적 은사들이 아닌 사랑을 추구해야 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00
성경말씀  

(히12:5下~7)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서 책망하실 때 낙심하지 마라,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징계를 받을 때 여러분은 견디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들처럼 다루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의 만나

 
 벌새 한 마리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렀습니다. 깃털도 많이 자라고, 그들에게 나르는 법을 가르칠 때가 되었습니다. 어미새가 그중 한 마리를 훈련시켜서 즉시 날개를 펴고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는 둥지 옆에서 당황하고 놀란 모습으로 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미새가 주위를 맴돌며 재촉했지만, 겁많은 새끼는 바깥 세상은 너무 넓고 자신은 미약하고 작다는 것을 알고는 감히 날개를 펼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미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의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작고 마음 약한 새는 둥지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잠시 후 땅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왔습니다. 새끼는 적의 공격으로 생각하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날 용기도 없어서 고개를 돌래 벌을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땅벌은 더 가까이 왔고 그 소리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새끼는 너무 무서워서 몸을 굽혀 급히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비로소 날개를 펴서 날면서 땅에 내려왔습니다. 물론 잠깐 긴장되었지만 무사히 땅에 내려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는 새끼를 들어 다시 둥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벌새는 둥지에 있기 싫은지 즉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때 환경을 일으켜 각종 시험과 환난을 임하게 하시는데, 그 목적은 믿는이들로 믿음을 사용하여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50
성경말씀  

(고후3:3) 왜냐하면 우리가 사역하여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그 영께 속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 영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로 충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은 자연히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며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산 편지들이 되게 했습니다. 편지들이 사도들의 마음과 믿는이들의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은 합당한 새언약의 사역이 항상 그 사역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사역하는 사람들 마음에 무엇인가를 항상 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사역은 생명의 길에 있으며 쓰는 것의 본질인 생명주는 영으로 수행됩니다.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진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지는 판(板)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 안으로 쓰여져 우리를 그분의 산 편지가 되게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사도가 사용한 ‘영’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이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이들 안으로 공급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되게 했습니다. 신약을 위한 사도들의 사역은 구약을 위한 모세의 사역과는 달리, 죽은 문자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영에 속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45
성경말씀 

 (롬8: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16~17) 그 영께서 직접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자녀들이라면 또한 상속자들, 곧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만일 참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로마서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죄인들을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하고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의 ‘아들들’은 16절의 ‘자녀들’보다 신성한 생명의 성장에서 더 진보한 단계를 가리키지만, 17절의 ‘상속자들’만큼 진보된 것은 아닙니다. ‘자녀’는 아들의 자격의 초기 단계 즉 영 안에서의 거듭남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아들들’은 혼의 변화 단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아들들은 영 안에서 거듭나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활하며 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롭게 됨의 단계에 있는 ‘상속자들’은 몸의 변형을 통하여 그들 존재의 각 부분이 완전히 성숙될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합법적인 상속자로서 신성한 유업을 청구할 자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35
성경말씀 

 (요일4:15~16)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지금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오늘의 만나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함으로 그분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적인 세린티안들은 이것을 시인하지 않았으므로 그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시지 않았고 그들 또한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그는 신성한 생명과 본성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인 그 사랑으로 습관적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내적인 내용과 외적인 표현으로 삼는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내적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외적으로 우리의 생활이 되십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