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50
성경말씀  
(히7:7) 두말할 필요 없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축복을 받습니다. 
(마11:11)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도 요한보다 큽니다. 

 오늘의 만나 

 히브리서 7장 7절에서 우리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축복하는 축복의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분량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분량에 따라 크거나 작은 것입니다. 요한이 그보다 앞서 일어났던 사람들보다 더 큰 것은 그가 그리스도와 매우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크기는 했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침례 요한은 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1:21)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례 요한보다, 그보다 앞서 간 모든 사람들보다 더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큰 자인지 작은 자인지는 우리의 그리스도의 분량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많이 소유할 때 여러분은 큰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많이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큰 자라면 우리는 그들을 축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언제나 큰 자가 작은 자를 축복하기 때문입니다. 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그리스도의 분량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보다 크다면 그것은 나보다 많은 그리스도의 몫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작은 분량을 가진 사람들은 더 큰 분량을 가진 사람들의 축복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참예하고 누리는 그 그리스도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릴 때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더 많은 그리스도를 ! 갖습니다 . 이렇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55
성경말씀 

 (수7: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오늘의 만나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믿는 이들의 첫 번째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일종의 습관이라 할 수 있고 주일에 집회에 가는 것 또한 습관이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믿는 이들이 더욱 갖추어야 할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믿는 이들은 이런 습관을 양성시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은 지 수년이 되었는데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축복과 은혜를 누린 적이 한 번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가련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얻고자 한다면 일찍 일어나는 공과를 잘 배워야 합니다. 만일 많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배운다면 교회는 전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 형제가 빛을 얻을 때 교회 전체가 빛을 얻게 됩니다. 한사람이라도 빛을 조금 더 얻는다면 교회가 전체적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교회가 빈곤한 이유는 머리로부터 공급을 받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만일 개개인 성도가 머리로부터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 얻은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모두 합하면 매우 풍성하게 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4. 18:10
성경말씀  

(요21:5~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어린 자녀들이여, 여러분에게 먹을 물고기가 좀 있습니까?”하고 하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잡힐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오늘의 만나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들은 바다로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영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 계시는 생명 공급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극한 상황에 대해서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심으로써 그분이 그들의 생명 공급이셨음을 그들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생명 공급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해주기 위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생명 공급은 바다, 곧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에서 어떤 사람이나 어떤 다른 것으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생명 공급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9:50
고후13: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요6;63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욱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오늘낭 회복 안에서 우리의 일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공급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죄인들을 구원하고,성도들을 양욱하며, 그들을 온전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가 공급하는 하나님은 단지 건축하시는 하나님만이 아니다. 그분은 또한 건축되신 하나님이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공급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우리의 일은 나무와 풀과 짚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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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9:25
성경말씀  

(롬6:5)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 안에서 그분과 연결되어 자랐다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 안에서도 그분과 연결되어 자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로마서 6장 5절의 ‘그분과 연결되어’라는 말은 유기적인 연합을 암시합니다. 그 의미는 아주 풍성합니다. 그것은 피부 이식에 비유할 수 있는데, 외과 의사는 환자의 다리에서 살 한 점을 잘라내어 그의 팔에 붙입니다. 몇 일 후에 다리에서 잘라낸 피부는 팔의 살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의 성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 접붙임 되어, 그분의 생명과 그분의 풍성을 공급받습니다. 성장은 우리가 그분을 누릴 때 일어납니다. 접붙임은 살아 있는 나무에 살아 있는 나무를 접붙여야 하며, 연합은 연결뿐만 아니라 더 좋은 나무의 생명의 풍성을 누리는 가지와 함께 유기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연결과 성장’은 성공적인 접붙임을 위해 필수불가결합니다. 만일 두 조각의 살점이 접붙인 후 함께 자라지 않는다면, 몇 일 내에 접붙혀진 피부는 썩게 될 것입니다. 함께 연결되는 것은 성장을 가져올 것이며 그럴 때 두 생명은 하나됩니다.
출처 : 생명메시지3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9:10
성경말씀 

 (엡3:8)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이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오늘의 만나

 
 무엇이 우리를 자라게 합니까? 그것은 합당한 영양분을 섭취함에 의해서입니다. 만일 약간의 살이 우리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 위에 또 다른 살을 접붙인다면, 몇일 내에 그 접붙인 살은 새로운 위치에서 그 살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양분이 없다면 어떤 살도 그 몸에서 함께 자랄 수 없습니다. 둘 다 유기적이지만 그것들은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양소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살고 그분이 우리의 몸 안에서 확대될 때, 우리 모두는 그분의 몸으로 함께 자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참여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지식의 범주 안에 있다면, 그 결과는 분쟁이 될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음식과 음료로 누린다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그 결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출처 : 생명메시지3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7:25
성경말씀 

 (눅15:23) 또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거워하자. 

 오늘의 만나

 
 우리는 능력이나 마술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먹음으로써 점차적으로 성장하고 변화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살진 송아지’는 공허한 용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음식으로 우리 안에 취하여 들일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신다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열고 그분의 말씀을 기도로 읽으므로 그분을 취하여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형상을 이루며,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영양 공급을 얻기 위해 말씀을 읽을 때는 한 번에 적은 양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한 입에 삼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루 서너 차례의 소식(小食)이 점진적이고 꾸준한 영적 성장과 변화에 가장 좋습니다. 예수를 먹는 것이 신약의 초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홀히 되어 왔습니다. 말씀을 기도로 읽으므로 예수를 살진 송아지로 먹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50
성경말씀  

(고후3:3) 왜냐하면 우리가 사역하여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그 영께 속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 영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로 충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은 자연히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며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산 편지들이 되게 했습니다. 편지들이 사도들의 마음과 믿는이들의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은 합당한 새언약의 사역이 항상 그 사역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사역하는 사람들 마음에 무엇인가를 항상 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사역은 생명의 길에 있으며 쓰는 것의 본질인 생명주는 영으로 수행됩니다.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진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지는 판(板)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 안으로 쓰여져 우리를 그분의 산 편지가 되게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사도가 사용한 ‘영’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이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이들 안으로 공급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되게 했습니다. 신약을 위한 사도들의 사역은 구약을 위한 모세의 사역과는 달리, 죽은 문자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영에 속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3:30
성경말씀  

(엡4:29~30)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도록 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혜는 우리의 누림과 공급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건축하는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예수께서 사셨던 것처럼 은혜와 실재로 충만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은혜는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시고 실재는 우리의 실재로서 계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재를 살며 말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실재로서 표현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이 누리기 위한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성령을 기쁘시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히 거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즉 세부적인 일상생활에서 은혜와 실재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을 때 그분은 근심하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