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16 05:00

"삼위일체론은 신학 전반의 초석이 되는 신학의 본질적 원리(principium essendi)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이는 어떠한 신학도 세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초석이 잘못 놓여졌을 때, 신학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위 내용은 삼위일체 신학에 있어 한국교계 권위자중 한 분인 차영배 박사의 개혁교의학-삼위일체론(총신대 출판부, 1986년) 서문 중 일부입니다. 삼위일체 신학은 비밀이요, 복잡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이단적인 가르침들을 분별할 수 있고 또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정통 삼위일체론 :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구별은 되지만, 분리됨 없이, 영원토록 서로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더 분배해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해 가시는 것입니다. 위에 나온 정통 삼위일체론과 다르게 아래 사항은 이단적인 가르침입니다.  

1. 양자론: 혹은 단일신론(Monarchianism) 이단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인정하고 아들과 성령의 신성을 한 단계 낮게 평가하거나 아예 부인함으로 '하나님이 한분 뿐'이라는 말씀을 지키려는 무리들입니다. 아들 하나님의 여호와 되심을 부인하고, 성령 하나님을 하나의 power로 생각하는 여호와의 증인들(Arianism)이 이 범주에 속한 이단입니다. 

2. 양태론: 혹은 사벨리안주의(Sabelianism, 혹은 Modalistic Monarchianism) 이단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구별된 위격을 부인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일본질의 세형태, 세 에네르기가 한 단자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완전히 한 격위(Person), 삼위는 동질일 뿐 아니라 동격이다 등으로 주장했던 이단입니다.  

3. 삼신론: 잠재의식 속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될 뿐 아니라, 심지어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믿는 이단입니다. 아버지, 성령은 아니고 아들만 성육신 했다, 지상사역시의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셨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각각 한 영으로서 도합 '세 영들'이다라고 주장하는 전 예장 통합측 사이비이단 상담소장 최삼경 목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개혁교의학-삼위일체론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하나님을 포함한 완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하셨으며(골2:9), 지상 사역시의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시며(요14:10, 20), 하나님을 영으로 표현했지만 세 영들로 말한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요4:24). 심지어 최삼경 목사와같은 장로교도인 존 캘빈도 성부는 성자와 함께 동시에 한 성령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서 본질적으로 성부및 성자와 다른 신일 수 없다.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전적으로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전적으로 계시기 때문에 옛 교부들은 삼위의 본질이 서로 분리되는 것을 용납지 아니했다"(차영배, 전게서, 229쪽)고 성경적으로 말함으로 정통 장로교인들과도 다른 최삼경 목사의 이단성을 선명히 드러내어 주고 있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09 05:00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보낸 해명서는 다음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전용복 목사에게 보낸 항의서신입니다.
 

발신인: Daniel Towle 외 2 인,   1997. 9. 20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Tel : 714-996-8196, Fax : 714-996-8195   

수신인 : 경남 울산 갈릴리 교회 전용복 목사님
Tel : 0522-35-9354, Fax : 0522-35-1191   

제목 :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정죄 시정요구 및 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어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자료수집과정에서 확보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소책자와 원고들을 많은 고려 끝에 정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의했음을 통보드립니다('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1989, 진영문화사), '지방교회의 정체'(유사종교연구 합본 제3집, pp. 149-167), '지방교회의 정체'(1990, 교회교육연구원),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pp. 48-51).  

교리적인 오해와 왜곡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은 위 글들의 머리말에서 (지방)교회를 '오대양사건', '짐 존스의 인민사원사건'과 교묘히 연결시켜 마치 (지방)교회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집단살인극이나 벌이는 단체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동일한 머리말에서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그 이단성을 교묘히 위장하여 순진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인들에게 파고 들어오는' 악한 단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님은 진영문화사가 발행한 소책자의 결론( 27쪽)에서 '지방교회는 성경을 너무도 잘못 가르치고 파괴하는 이단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요 정식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된 말들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목사님이 책임지셔야할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정짓는 두려운 일을 하려면 당연히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기준은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글을 검토해 볼 때, 우리는 목사님이 충분한 사실파악이나 판단기준의 공정성도 없이 자신의 단편적인 지식과 목사님의 교단이 지지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함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추후 진리토론시 다루되 간략하게 문제점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현재 목사님이 다루신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통합측 최 삼경 목사님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해 공개토론 중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참고하시면서 우리가 지적한 것들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I. 하나님에 대한 교리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1) 삼위일체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양태설을 주장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양태설을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태설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위트니스 리의 '금등대'의 예에서도 분명히 아버지(금)와 아들(등대)과 그 영(일곱 등잔)의 '구분' 또는 '별개'의 위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 책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된,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상의 내용은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에 잘 나타나 있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는 상식에 속한 내용들입니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편, 35-41 쪽, 281-311 쪽, 진리의 변호와 확증, 9-23 쪽, 49-83 쪽,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7년 3월호, 97년 7월호). 이러한 성경적이며 정통적인 가르침을 양태설이라고 한다면 이는 양태설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내용들은 결코 양태설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건대, 목사님이 사용하신 '삼위의 독립된 위격'이라는 말은 '분리된 삼위'의 의미로 쓰이면 삼신론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같은 난해한 주제에 

신약의 결론 - 하나님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신앙을 판단함에 있어 위트니스 리의 책자에 흩어져있는 내용들을 일부씩 떼어내는 식의 연구로는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연구를 위해 적어도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요약한 책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을 여러번 정독하셨어야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것과(고전 8:6), 세 구분되는 위격이 계신 것(마 28:19)과, 세 분 모두 영원하시고(사 9:6, 히 1:12, 히 9:14), 상호내재하시며(요 14:10, 20), 동시존재하시는 것(고후 13:13)을 믿습니다. 

(2) 그리스도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하셨을 때 그는 그의 두가지 본성을 혼합해 사람도 하나님도 아닌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인 새로운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라고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말과 '새로운 본성'이라는 말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변호와 확증 - 위트니스 리

만일 이러한 문제가 위트니스 리가 그의 책에서 사용한 '밍글링'(mingling)이란 단어의 오해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측이 상세히 반박한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pp164-166)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는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결코 그리스도 안의 양성의 혼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분(그리스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다. 그 분은 완전한 인성 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 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96 쪽, 1996, 한국복음서원). 이러한 관점은 칼케돈 신조와 정확히 일치되는 정통적인 관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목사님은 '주님이 인성을 취하실 때 그 인성도 벌써 하나님의 아들의 한 속성이 된 것이며 거룩한 것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목사님 말씀대로 변화산에서 이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또한 '내가 오늘(예수님의 부활시)' 너를 낳았다'(행 13:33)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문맥상 이 말씀이 성육신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성령  

목사님은, '지방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만 강조할 뿐 회의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말하며 사도행전 15장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 28절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라고 말합니다. 즉, 외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회의는 인간의 시기와 다툼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회의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의는 성령의 임재가 가득하여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의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좋은 사람이 되려하거나 여러분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하지 말라' 는 말을 오해하셨습니다. 그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인간의 노력 또는 율법의 행위는 주님 앞에서 쓸모 없으며 오직 내적 기름부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내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페이지에서 위트니스 리는 주님의 역사로 자신이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골로새서의 말씀은, 주님이 만유가 되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생활을 개선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II. 인간에 대한 교리(신인연합, 삼분설, 죄)

(1) 신인의 혼합, 연합  

목사님이 '혼합'(mingling) '연합'(compounding)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지적하신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출애굽기 30장의 관유에 포함된 향품에 대해 강해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표론 상 이 구절들에서 '관유'와 '네가지 향품'의 연합을 신성과 인성의 연합(compounding)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밍글링(mingling, 혼합)은 레위기 2장 4절에서 양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소제'(기름과 고운가루)를 만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성경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성경에 연합의 사실은 있으나 혼합된다는 말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혼합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도의 신격화를 가리키며 이러한 주장은 너무도 참람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목사님의 생각처럼 사람이 신격화 된다거나 하나님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영원히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일 뿐이며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0-162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고린도 전서 6장 17절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는 말씀 중에서 이 '한 영'이 '성령인지 사람의 영인지를 말하기 어렵다'고 한 말을 비판하며 이러한 표현이 너무도 참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이 말씀에서 '한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 밝혀주시고, 왜 이것이 성도의 신격화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 삼분설 

 초대 교회 교부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각 교단은 좀더 현실적인 사안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목사님은, '삼분설이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이분설도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며 이분설이 '인간구조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라고 했으나 사실은 '장로교 신학의 견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분설은 루이스 벌콥의 견해요 그의 저서를 대부분 번역하여 자신의 가르침으로 사용하는 박 형룡 박사의 견해입니다. 목사님은 장로교단 외에 수많은 교단에서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삼분설을 지지하는 수 많은 교부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언급할 수 있으나 지면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영과 혼과 마음의 각 부분들에 대한 가르침도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 보이는 '영혼'은 원문에 의거해서 '혼' 또는 '영'으로 번역되어야 맞습니다. 헬라어나 영어는 '영'과 '혼'이 각각 다른 단어이며 또한 '영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나 영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강해 - 위트니스 리

우리는 목사님이 영지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시는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물질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이고,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처음에는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 후 부패되었다'고 주장함에도 목사님은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인간의 전인적 타락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몸은 육체가 되었고 혼은 부패되었으며 영은 죽었다고 함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선명하게 가르칩니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 보급판, 한국복음서원, pp. 257-271, 사람의 영, p.47,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참조).  

(3) 죄 

목사님은, "죄는 사람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타락의 원인측면에서만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Sin) 또는 악이 인격의 형태로 사람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사람들)에 들어왔다(롬 5:12상)'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다만 죄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롬 5:10)요 '마귀의 자녀'(요일 3:9)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생명과 본성이 마귀의 자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 밖의 공중에서 역사하는 인격으로서의 사단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시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 사단을 처리하셨습니다(히 2:14). 이러한 말씀이 목사님 표현처럼 '참으로 괴상한 망언'이라면 목사님은 히브리서 2장 14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이 입으신 육신은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매달은 놋뱀으로 예표되었습니다(요 3:14-15). 이 예표에서 장대는 십자가를, 뱀은 사단을, 놋뱀은 육신을 가졌으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즉 그분은 죄가 없으셨으며 다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 만을 입으신 것입니다(롬 8:3). 이러한 진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곧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는 말씀으로도 확증됩니다.  

III. 구원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혼합(연합)되지 않았다...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따라 어떻게 '주와 합(연합)하는 자가 되며(고전 6:17), 신(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벧후 1:4),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습니까(갈 4:19)?  

IV. 성경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경시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저서의 문맥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가 언급한 '낡은 성경적 지식을 따르지 말라... 오직 예수뿐이다' 등의 의미는 '율법의 마침' 또는 '구약의 모든 예표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의미이지 결코 성경을 경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구약의 예표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실물인 자가 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의 사진만 붙잡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사진 자체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가나안 땅을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각종 원수들은 무엇입니까? 천국에도 믿는 이들의 원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풍성한 산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을 예표하며 각종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리의 육신과 세상을 상징합니다.  

V. 교회에 대한 교리

(1) 지방교회만 유일한 참 교회라고 주장한다. 

 목사님은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말을 오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교회(사람들)'라는 단어와 '집회소(건물)'이라는 단어를 혼돈했기 때문에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는데 과연 한 집회소에서만 모였을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라는 단어는 '부르심 받아 나온 무리들(사람)'이라는 뜻이며, 집회소(건물)는 교회가 모이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소는 여러 개일 수 있으나 그 지방에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저런 교파가 일체 없고 오직 그 지방의 명칭을 따른 교회만 있습니다. 거듭난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므로 다만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행 8:1). 그 외에도 많은 성경구절들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진리를 증명합니다(행 13:1, 롬 1:7, 고전 1:2, 엡 1:1, 빌 1:1, 골 1:2). 거듭난 무리들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지 하나님에겐 그들 모두가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교파를 만드는 것은 분열이며 그리스도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고전 1:11-13). 바울은 분열을 강하게 책망했으며 이 일에 있어서 어떤 합리화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목사님과 같은 장로교 학자이신 이종성 박사와 '한국장로교회사'를 쓰신 김진복 교수님도 교회의 분열을 개탄스러워 하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합니다.  

(2) 모든 조직, 제도, 직분, 규율, 사업을 부인한다. 

(지방)교회는 성경에 있는 모든 직분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을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적인 계급질서를 가져오는 소위 '성직자-평신도 제도'는 주님이 미워하시므로(계 2:6) 우리도 미워합니다.

목사님은 현재 일반 기독교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신학교, 목사고시제도, 교회매매, 권위주의적 목사제도, 총회선거시의 정치 정략 등에 대한 분명한 성경근거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3) 예배의 모든 형식, 규범을 무시한다.

목사님은, '인도자가 없이 아무나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배를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목사님 표현처럼 '제멋대로 말하는' 예배는 성경에 없으나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말할 수 있고(고전 14:31, 23) 화평의 하나님을 따라 찬송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예언하는 예배는 있습니다. 목사님이 지지하시는 주보 순서에 따른 예배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성경근거는 무엇입니까?

(4) 성례를 규모 없이 함부로 행한다.

성찬을 매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역자만 말씀과 성례집행을 할 수 있다는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VI. 종말에 관한 교리

(1) 이기는 자들의 환난 전 휴거

계시록을 합당하게 해석하려면 우선 본문을 100 번 이상 정독한 후 계시록 전체의 조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그 특성상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사건의 시점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어 볼 때, 개인의 주장은 있으나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은 12장의 '사내아이'는 예수님을, '올려간다'는 말은 '부활과 승천'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사내아이'는 이기는 자를,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를, '올려간다'는 말은 '휴거'를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해와 달과 별을 가진, 광야로 도망간 여자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며 둘째, 사내아이가 올려간 직후 하늘에서 사단이 내어 쫒겼으며 셋째, 본문의 말씀은 대 환란이 임박한 시점이므로 주님의 부활과 승천과는 시점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기는 자들로서 환난 전에 휴거되어 사단을 쫓아낼 자들입니다.

목사님은, 14장의 14만 4천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4절에서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모든 성도들이,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거나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거나 입에 거짓말이 없거나 흠이 없는 자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이들의 징계

목사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잘못해도 결코 징계를 받지 않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죽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징계를 말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성도 중에서도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며, 구원을 얻기는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으리라고 말하는 고린도 전서 3장 15절을 목사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또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하라고 경고하는 로마서 14장 10-13절과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고린도 후서 5장 10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 불태워질 공력만 쌓고, 형제들을 함부로 판단하며, 악을 행한 믿는 이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문맥에 의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구원받은 성도이며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만일 목사님 말씀대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구원받은 사람도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영벌과 멸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VII. 결론

이상에서 간단히 본 바와 같이 목사님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자세히 연구하지도 않으신 채 함부로 이단으로 단정지어 인쇄 배포하심으로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셨습니다. 문서는 그 특성상 일단 인쇄되어 배포되면 내용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그 효과가 반영구적입니다. 또한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계속 재인용되어 거짓을 확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 책자들과 관련된 이러한 구체적인 피해사례들을 이미 수집하여 보관 중입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저술한 내용으로 인한 피해는 너무 지속적이고 심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주님 안에서 평강 가운데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합니다;

첫째, 충분한 연구 없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정죄 하는 일을 삼가 해 주십시오.

둘째, 이 편지에서 저희측이 개괄적으로 언급한 항목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셋째, 목사님의 글들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피해에 대한 목사님의 해명서를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 앞으로 보내 주십시오.

넷째, 이미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제의합니다. 주제선정과 토론방법 등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참고로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종말론을 주제로 쌍방 각 6회씩의 원고를 한국 내 기독교 잡지 또는 교계신문에 연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을 발신일로부터 14일 내에 팩스로 보내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진리를 사랑하시고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상호간 오해와 갈등을 씻어내고 무엇이 밝은 진리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저희의 건설적인 제안에 대한 목사님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7.06 05:00

워치만 니 에 대한 오동생 (吳東生) 박사의 평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연합 신학대학원(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  Berkeley) 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TED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리젠트 대학(Regent College)에서 ‘영성 형성의 신학과 실행’ 과목을 가르쳤다. 그의  저술 중에 워치만 니의 이해영성지식형성 ( 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1] 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기독교적 영성 안의 전통들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 워치만 니의 영성 신학을 면밀히 조사한 책이다. 

워치만 니 의 영성 신학은 보편적인 복음주의 신학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토착 중국 신학의 걸작이기도 하다.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함,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와 조망,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추론(reasoning)의 차이, 믿는 이들의 삶 속에 있는 성령의 다스림, 자아 생명을 깨뜨릴 필요성, 교회 안에서의 믿는 이들의 생명의 교제에 관해 깊이 이해 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것들을 실제로 적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비록 워치만 니의 인간 삼분론이 존재론에서 충분한 근거가 부족한 듯 하지만, 최근의 성경적 연구는 사람의 기호(inclination)와 기능 안에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이 있다는 관점을 지지하고 있으며,  모든 세대에 걸친 성도들의 체험 역시 이러한 관점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영과 생각의 기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워치만 니의 견해는 성경과 부합하고 기독교 영성의 역사 안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뛰어난 인물들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워치만 니의 영성 신학은 중국 신학에게는 위대한 보물이다. 이 신학은 우리가 오늘날의 믿는 이들과 교회들의 생활과 삶 속에 더 깊게 탐구하고 실제적으로 적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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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amazon.com/Understanding-Watchman-Nee-Spirituality-Knowledge/dp/1610975324

Dongsheng Wu (吳東生), Ph.D.

holds a Ph.D. in Christian Spirituality from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 Berkeley, CA, and a master’s degree fro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in Chicago, IL. He taught theology and the practice of spiritual formation atRegent College in Vancouver, Canada. His publications include 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 a book that examines the spiritual theology of Watchman Nee in dialogue with traditions in Christian spirituality.  Watchman Nee’s spiritual theology is a masterpiece of indigenous Chinese theology as well as a great contribution to evangelical theology universally. Watchman Nee had a very deep understanding concerning the riches of the life of Christ, the revelation in and enlightenment from God’s Word, the distinction between God’s revelation and man’s reasoning, the ruling of the Holy Spirit in a believer’s living, the necessity of the breaking of the life of the self, and the believers’ life of fellowship in the church; he also had a practical way to apply them. Even though Watchman Nee’s view of trichotomy may not seem to have sufficient basis in ontology, contemporary biblical research is able to support the view that in man’s inclination and function there are three parts: spirit, soul, and body, and the experiences of the saints throughout the generations also match this view. Furthermore, Watchman Nee’s view with regard to the distinction between the functions of the spirit and the mind not only corresponds to the Bible but is also in accordance with the understanding of many important figures in the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 Watchman Nee’s spiritual theology is a great treasure to Chinese theology. It awaits our further mining and practical application to the life and living of today’s believers and the churches.

 출처: http://an-open-letter.org/testimonies/#19

Dongsheng John Wu (吳東生), Ph.D.

伯克萊神學研究聯院(GTU)基督教靈修學博士(Ph.D.),三一福音神學院(TEDS)碩士。曾 在溫哥華維真神學院(Regent College)教授「靈命塑造的神學與實踐」。出版了一本研究倪 柝聲屬靈神學與靈修傳統對話的論著《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
倪柝聲的屬靈神學是華人本土神學的傑作,也是對普世福音派神學的一大貢獻。對於基督生命的豐盛、神話語的啟示與光照、神的啟示與人的理性的區別、聖靈在信徒生活中的管制、人的己生命破碎的必須、教會信徒交通的生活等方面,倪柝声都有非常深刻的理解、及切合實際的應用。 倪柝聲的三元人論雖然似乎不能在本體論上有足夠的論據,但是認為人有靈、魂、體三方面的傾向與功用的觀點,是當代的聖經研究可以支持的,也與歷代的聖徒經歷相吻合。倪柝聲關於靈性與理性之分別的看法,既合乎聖經,也與靈修歷史中許多重要人物的理解相似。 倪柝聲的屬靈神學是華人神學的一大寶庫,有待我們繼續挖掘、且切實應用到今天信徒與教會的生命和生活當中。

출처 : http://an-open-letter.org/ch/testimonies/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6.30 05:00

지방교회 탐구 - 3

“교회 직제는 달라도 고백은 같다”

  - (기독론) 예수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 위트니스 리는 약 701쪽 분량의 ‘그리스도론'(한국복음서원) 을 썼으나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양성을 부인한 적이 없다. 조사보고서상의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는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부활시 예수님의 육신이 육의 몸에서 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셨다고 한 것을 지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 말씀 그대로일 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본다(고전15:44, 빌3:21). 지방교회측은 “뭔가 오해가 있는 듯 싶다”고 밝히고 있다. 

  - (인간론) 삼분설을 취하면서 사람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함으로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다 : 우선 인간 구성을 이분설로 보든 삼분설로 보든 그 차이가 이단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학적 논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사보고서의 지적처럼 위트니스 리가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믿음으로 참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다. 우리는 통합측과 토론시 우리가 온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한 전인적인 타락을 믿는 근거들을 상세히 제시했다. 그러자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고 말함으로 연구 보고서상의 지적을 스스로 뒤집은 바 있다(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 교회론 관련 문제 제기들 : (지방)교회의 공식 교회론은 위트니스 리가 쓴

신약의 결론 - 교회

‘교회론(530쪽 분량)'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통합측 조사 보고서가 이 책 외의 자료 여기 저기에서 문맥의 흐름과 무관하게 떼어 낸 몇 가지 자극적인 표현들은 다소 오해 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을 인용 소개시 오류가 있거나, 핵심진리가 아닌 장로교단과 침례교단이 차이점을 가지되 서로 허용하는 정도의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 기성교회를 바벨론이라고 한다 : 계시록 17:5의 ‘큰 바벨론'을 ‘로마 천주교'로 보는 근본주의 성경교사들의 기존의 해석을 위트니스 리도 답습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해석이 이단시 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측은 어떤 교단 소속이든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인정한다. 아울러 통합 교단을 포함한 타 교단 내에서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인정함은 물론이다. 

  - 목사와 예배 제도를 부정한다 : 지방교회가 기존교회와 다른 차이는 계급적인 성직자 평신도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장로들이 특정 교회를 다스리고 목양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보아 이들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예배 실행은 형식상으로는 다양성이 인정된다고 보며 그 안에 주님의 임재 등 참된 경배 요건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요4:24). 

  -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 어떤 단체이든 거듭난 성도들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교파에도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이 부분 역시 전후 문맥과 함께 읽을 때 풀릴 수 있는 오해들 중 하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 :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우리를 구속하거나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이들은 “이런 오해는 아마도 구원의 여러 방면 중 사도행전 2:40이 말하는 ‘(지옥이 아닌)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는 구절을 설명하는 문맥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성명한다. 

  - 주 예수 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 충만 방법이라고 한다 : 고린도전서 12:3하, 로마서10:12에 근거하여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 충만되는 많은 성경적인 방법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따라서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으며 그렇게 말하지도 않으며 역시 전달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중요한 핵심진리(유3절)에 대해서는 정통성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되 지엽적인 진리나 실행들의 차이는 그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유지되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 여부를 규정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이며 참된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임을 양심가운데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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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3 15:40


상호내재를 혼동하는 변형된 삼신론이단


토론에서 이인규 님의 글쓰기 습관은 마치 스케치북에 데생 하듯 하는 것이라면, 저는 정밀화를 그리는 식입니다. 짧은 지면에 단어하나 차이로도 정통과 이단이 판가름나는 복잡 미묘한 삼위일체를 다루면서 가볍게 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양측의 글의 분위기와 다루는 범위에 차이가 있게 될 경우 독자들은 약간의 혼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차제에 저는 토론에서 제기된 모든 항목들에 대해 성심껏 입장을 밝힐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중요한 쟁점은 자세히, 오해나 근거 없는 비방은 매우 간단하게 다룰 것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다보면 꼭 그 바로 다음의 글에서 모든 것을 다 다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점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합니다. 

Ⅰ. 삼위일체 토론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

저는 최00 목사를 지지하는 어떤 분과 수 개월 동안 지금과 똑같은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지방)교회측)와 ○○○님(소위 정통교회측)은 토론 과정 중에 『1) 하나님은 독립된 삼위(세 인격)이시다. 2) 각 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이인규님이 정통교회 삼위일체 개념으로 제시한 내용들을 양측이 똑같이 믿고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 바 있습니다. 전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실상 이 정도는 상식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토론은 이 정도의 원론적인 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양측이 위와 같은 소위 「정통교회삼위일체」를 모두 인정했는데도 『삼위가 각각 온전한 하나님이신 데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실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인 1) 상호내재의미에 대해 해석이 서로 달랐고 2) 경륜적인 삼위일체에 대한 관점이 한 쪽은 분명하고 다른 쪽은 없는데서 오는 성경본문을 대하는 시각 차가 뚜렷하게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이인규 님과의 토론 쟁점도 먼저 번 토론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님들은 위 두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해 누가 성경적인 말을 하고 누가 정통 신학자들과 일치하는 말을 하는지를 진리의 주님이신 그분 안에서 기도가운데 자세히 살펴보시면 이 신론 토론의 핵심을 파악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지난 토론에서는 상대방인 ○○○목사님이 「삼위가 한 분이심은 마치 남편과 아내가 각각 독립된 인격체들이지만 한 부부인 것과 같은 개념」이라는 소위 『부부론』을 주장했고, 저는 그것은 인격의 「구별」에서 지나친 「분리」의 개념이며 명백한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약 두 달간의 뜸을 들이다가 중간에 갑자기 일방적으로 포기함으로 토론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인규 님은 말로는 자신은 상호내재를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인격 안에 다른 인격은 없다』-물론 이 때 인격 안에 인격이 있다는 주장은 인격의 혼동이나 무시가 아니라 인격 상호 간의 구별을 손상하지 않는 상호내재를 뜻함을 주의-며 『정통적인 상호내재 개념』을 사실상 부인함으로 결국 삼위를 분리시키는 변형된 삼신론 사상을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 남은 신론 토론기간 내내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강조하여 다루어질 것입니다. 즉 요 14:10-11에서 나타난 『상호내재 개념』을 누가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가가 이 토론의 핵심입니다. 

  Ⅱ. (지방)교회 삼위일체관 

지난 번 최00 목사와의 토론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아는데... 위트니스 리는 1) 삼위일체를 성경 말씀이 계시하는 그대로 믿는다 2) 성경 본문끼리 상호 모순되는 듯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억지로 체계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3) 특히 신약성경에서 두드러진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들」을 강조하여 말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보아도 이것은 가장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삼위일체관입니다. 

즉 먼저 교리를 정립하고 그 틀 안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고, 성경 본문들을 중시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교리적인 설명을 도출해 내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교회측이 교회역사상 다뤄진 다양한 삼위일체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도 아닙니다. (지방)교회측 자체 신학계간지(http://www.lsm.org/a&c/welcome.html)에서 삼위일체론만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신다면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성경본문 자체가 신학과 충돌을 일으킬 만한 내용들(마28:19, 고후3:17, 사9:6, 요1:14, 고전15:45)을 다룬 위트니스 리 글을 자신의 교리적인 틀로 함부로 비판하다가 성경 본문 자체를 부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님의 오해는 경륜적인 방면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이인규님은 앞으로도 자신의 잘못된 삼신론 기준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위트니스 리의 가장 성경적인 언급들을 님이 보유한 위트니스 리의 책 몇권에서 계속 뽑아내어 인용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실상 삼위을 분리시키는 이인규님의 삼신론 이단사상은 더욱 또렷이 폭로될 것입니다. 

  Ⅲ. 이인규 님의 변형된 삼신론의 실상  

제가 지난 글에서 이인규님을 『변형된 삼신론자』라고 단정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충분한 근거와 확신을 가지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확신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인규 님은 자신은 「삼위간의 상호내재를 굳게 믿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분리된 인격이란 말을 한 적이 없다」며 항변했습니다. 막연한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님의 글에서 나온 표현이나 구체적인 성경해석―예를 들어, 성육신 한 예수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성부고난설로 연결시키시는 것―에 있어서는 님은 사실상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지적한 님의 이단적인 주장을 다시 인용하고 비판해 보겠습니다. 

  A. 변형된 삼신론 주장 1  

 『즉 최목사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세 인격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비난을 한 것이고 ...』 ―이 말은 님이 말하는 『세 인격의 독립성은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의미의 독립성』입니다. 이것은 『고유의 인격의 구별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인격 간에 서로 상호내재 하시는 정통교회의 상호내재와 다른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B. 변형된 삼신론 주장 2  

 『<한 인격> 예수님 하나님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들어 있다면...결국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 속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이 되고…』 이러한 최00 목사의 주장에 대해 이인규님은 『한 인격에 다른 인격이 들어 있지 못하다는 뜻이 분명하다. 만일 한 인격 안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장소적인 개념이 된다.... 서로 다른 세 인격이기에, 즉 인격적으로 다른 인격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상호내재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들 안에 아버지가 구별된 인격으로 상호내재 하심을 말하는 요한복음 14:11의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는 말씀과 다르고 다음과 같이 칼빈대학교 김석환 박사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인용한 정통 교부의 신앙과도 다른 이단사상입니다.   

『위격 간의 상호내재 : 닛사의 그레고리는 신격의 위격들이 시간 안에서, 장소 안에서, 직무 안에서(in pursuit), 또는 활동 안에서(in operation)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일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역사되며, 아들에 의해 준비되고, 또 성령의 뜻에 의존한다. 거룩한 삼위일체께서 모든 활동들을 수행하시는데, 위격들의 수에 따른 분리된 행위에 의해서 수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게 전달되는 선한 의지의 한 운동과 성향이 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228쪽,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년, 원출처: Gregory of Nyssa, QNTD (5:334)). 

  님은 상호내재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다』 라고 하시지만 위 인용에서 정통교부는 『장소 안에서도 분리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은 지상 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위격의 구별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실제로 상호내재 하심을 부인하는 것이 님의 글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그리고 은밀히 감추어진 채 진리를 변질시키는 무서운 변형된 삼신론 이단사상입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세 위격이 함께 내재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이 어떻게 상호관계를 가지느냐에 대하여…이 문제를 깊이 이해하면서 삼위간의 교제관계를 강조한 것은 동방의 3대 신학자와 아우구스티누스였다…아우그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내적관계성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세 위격(페르소나) 사이에 동등성이 있다 (2) 세 위격이 각기 완전할 뿐 아니라, 셋이 합하여 완전한 동등성을 이룬다. (3) 신성 안에는 일체의 분리가 없다. (4)그 셋은 함께 서로 내재한다(이종성, 삼위일체론, 대한기독교출판사, 258-260쪽, Augustinus, De Trin.,VII.1, 2)』 『하나님(아버지)과 아들이 분할할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67쪽)』 

위 사실은 편견으로 인해 상대방의 글에 대해서 정확하게 읽지 않으시는 님께서 읽어보셨는지 모르지만『누가 이단인가』책에서도 언급해져 있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분리되지 않는 삼위 하나님의 상호내재 하심에 대해,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라고 명쾌하게 설명합니다』『George Bull 주교도 상호내재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Defense of the Nicene Creed, Oxford, 1851)이라고 했다. 아우구스트스 스트롱도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라고 말했다(Systematic Theology(Phila 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물론 이런 말들은 삼위의 영원한 구별을 전제하는 말들입니다. 

  위트니스 리 형제님도 다음에서 보듯이 위와 동일한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이 되셨을 때도,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존재적으로) 그분과 함께 계셨다(요16:32)(위트니스 리, 성경의 기본계시, 한국복음서원, 1986년, 26쪽)』 이인규님은 위의 신학자들의 이름을 모르실지 모르지만 정통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다 아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상호내재에 관한 이해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이인규님의 삼위일체론은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난 명백한 변형된 삼신론입니다. 조금 더 보겠습니다. 

  C. 변형된 삼신론 주장 3 

『예를 들지요...한 학교의 10명이 같은 반 1학년 1반입니다....그들은 각자 독립된 인격입니다. 그들이 독립된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들이 서로 인격적인 교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1학년1반에서 분리된 것과 뜻이 다릅니다. 』 위 님의 설명은 독립된 세 인격을 자꾸 분리된 방식으로 주장하심으로 「독립과 분리」의 개념을 정의해 달라는 지나가다님의 주문에 대한 님의 답변인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제 말은 위 님의 설명에서 삼위 하나님의 독립된 인격을 학교 학생들이라는 사람들의 인격적인 독립처럼 동일시하는 발상 그 자체가 이미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통 신학자들은 삼위 하나님간의 독립개념을 세 사람 간의 독립개념으로 보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점이 님이나 최00 목사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위에 인용했던 칼빈대학교 김석환 박사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인용된 정통 교부들의 가르침을 이곳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님은 정통교부들의 주장은 존중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위격으로는 셋이나 실체는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 하나님의 실체를 아담과 하와와 셋에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역시 잘못된 것이다』(위 책 241쪽). 결론적으로 이인규님은 원론적으로는 상호내재를 믿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실상에 있어서는 『인격 안에는 인격이 없는 즉 요14:11의 아들 안에 아버지는 없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믿는 변형된 삼신론자입니다. 』 이 점은 이인규님이 빛 비춤이 있어서 잘못된 것을 시인하시고 회개하실 때까지 중점적으로 반복해서 지적될 것입니다. 왜 이러한 감추어진 삼신론 이단 사상이 악한지는 차츰 더 구체적으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Ⅳ. 이인규님의 여러 주장들에 대한 반론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지금부터 다룰 님의 이런 저런 주장들은 다음 항목들에 대한 님의 오해나 무지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1) 님의 상호내재에 대한 비성경적인 이해. 2) (지방)교회측이 성육신 하신 주체와 부활하신 주체를 『아버지와 성령이 영원히 구별되시지만 분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이 분이 입으신 육신은 죄는 없으시나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고 계심을 일관되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무지. 3)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입으신 육신이 부활시 육의 몸에서 신령한 몸(즉 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신 후 그 안에 포함된 영이시라』는 진리인식―이것을 개혁신학자 중엔 앤드류 머레이가 보았음, 그의 「그리스도의 영, 기독교 문서 선교회 출간」참조-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들입니다. 

 다음은 님의 인용이고 저의 반론과 문제제기입니다. 

  첫번째 인용 : 다시 묻겠습니다. 1) 지방교회 삼위일체가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와 동일하다는 것입니까? 2)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가 틀리고,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가 옳다는 것입니까? 

  답변과 반론 :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와 동일합니다. 저는 이점을 서두에 밝혔고, 정통교부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밝혔습니다.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가 맞고 님의 변형된 삼신론이 틀렸습니다. 님은 지금 각론은 완전히 빗나갔으면서 자신의 총론이 맞다고만 주장하고 계십니다. 함부로 정통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님은 정통교회란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관이 마치 정통교회의 신론과 일치하는 것럼 보여 사람들을 호도하려고 하나 님의 신관은 신학자들의 글을 자신의 천연적인 관점으로 잘못 이해함으로 말미암은 변형된 삼신론에 불과합니다. 

  두번째 인용 :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신, 혹은 여호와의 영"이라 불리는 하나님 자신이, 껍질인 육신을 입고 성자 예수님으로(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육신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이며, 부활 후에는 삼일하나님(죽음과 부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영이 되어 짐으로 총체적인 합으로 완성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양태론 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저는 "변형된 양태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마는 결국 양태론 입니다'. 

  답변과 반론 : 님은 아버지와 성령님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상태로 아들 안에 상호내재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은 것을 부인하십니까? 그렇다면 님의 성육신관은 참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님은 또한 우리가 마치 아버지가 성자 예수님으로서 육신을 입은 것처럼 가르치는 것으로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님의 틀에 함부로 꿰어 맞추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인용 : 3.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지방교회의 주장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과연 누구입니까? 초대교회 양태론 자는 성부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주장함으로 그 주장은 "성부수난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면 지방교회의 주장은 무엇일까요? 

  답변과 반론 :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위에서 성육신 하신 분을 소개 드린 대로 바로 그분이십니다. 우리는 아들 하나님이 주체가 된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데 님은 엉뚱하게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성부고난설을 억지로 끌어다가 이단을 만들려고 애를 쓰시는군요. 차영배 박사 삼위일체론(총신대학 출판부) 74-76쪽 잘 읽어보시고 '성부고난설' 제대로 인용하세요. 

 님께서 읽으셨는지 모르지만 전편의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3) 위트니스 리는 양태론자들과는 달리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각각 영원하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며, 영이 영원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원한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이것을 믿으며 선포한다"( 신약의 결론-하나님, 303쪽). 

"우리는 또한 셋(아버지, 아들, 성령)모두 영원하심을 믿는다.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아버지가 영원하시다고 말하고, 히브리서 1장 12절과 7장 3절에서는 아들이 영원함을 지적하며,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는 영원한 성령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하시다"(같은 책, 307쪽). (지방)교회측은 세 위격의 영원성과 동시 존재하심을 믿는다고 성경과 위트니스 리의 저서를 근거로 여러 번 변증했었다(96년 10월호 p.164, 97년 7월호 p.160). 

세 위격 모두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양태론자가 될 수 있는가!  

  (4) 위트니스 리는 양태론자들과는 달리 세 위격 간의 '구별된 고유성'을 믿는다.   

만일 위트니스 리가 '아들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고 선택하셨다거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다는 등 세 위격의 고유성을 혼돈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최 목사는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최 목사는 그렇게 못했다. 왜냐하면 위트니스 리는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가장 성경적인 말을 하고 있다.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를 위하여 아버지는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뿐 아니라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엡 1:4)...그 다음 그분은 우리를 예정하셨고, 우리에 대한 운명을 정하셨다(5절)"(같은책, 352쪽). "아버지의 선택과 예정하심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들의 구속에 이르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아들은 그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구속을 성취하셨다(엡 1:7-9)"(같은 책 354-355쪽). 

"그 영의 분배하심은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여 그분의 영광의 찬미에 이르도록 하시는 그분의 인치심이다(엡1 :13-14). 성령의 인치심은 살아있는 것이며..."(같은 책, 357쪽). 위 인용들을 통해 독자들은 위트니스 리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을 결코 혼돈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은 참된 믿는 이들에겐 상식에 속한 진리가 아닌가! 최 목사가 비판하기 전에 우리측이 변증의 근거로 삼는 위트니스 리의 책, '하나님'(한국복음서원, 1991년)을 한 번만 차분히 읽어 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최 목사는 97년 11월호 글에서 마치 위트니스 리가 세 위격의 구별을 무시하기나 한 것처럼 장황한 말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연구가 부실했었음을 스스로 폭로시킬 뿐이다. -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위트니스 리는 세 위격인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의 동시존재, 상호내재, 영원한 구별과 분리되지 않으심을 믿는데 반해, 사벨리루우스는 세 위격의 동시존재를 믿지 않고 승계적인 셋을 가르치는 것이 다릅니다. 둘은 전혀 별개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여러 언급이 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와 같이 설명해 드렸으니 이제 더 이상 저희에 대해서 『삼위가 구별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부고난설처럼 보인다.』등의 양태론으로 몰고 가려하는 말씀은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번째 인용 : 즉 세 글을 정리하자면... 1)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신성한 부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그 분의 온 존재"가 달리셨다. 2) 신성만 살고 인간의 부분은 죽었다. 그 인간의 한 부분만이 사람, 다윗의 씨다 3) 예수는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정되었다. 

  답변과 반론 : 님은 그리스도의 신성부분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는 주장입니까? 그렇다면 님은 그리스도의 양성 중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하나님 사람이신 그분의 온존재가 달리신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까? 그렇다며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을 부인하는 이단입니다. 3)은 로마서 1:4의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는 성경본문을 설명한 것뿐입니다. 님은 성경본문을 보고도 양자설 이단이라고 정죄 합니까? 

  다섯 번째 인용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네스토리아니즘 이며, 예수가... 양자설... 예수의 신성이 하나님 자신이었다는 것은 성부수난설이라고 하는 일종의 양태론이고 다른 것이란 오직 "단일 하나님"인가 "복합적인 하나님"인가 하는 것뿐입니다. 즉 예수는 인간의 부분과 함께 하나님 자신(신성)도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인간의 부분은 죽고 신성은 살았다는 것입니다. 즉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부활이라는 과정을 거치시는 분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답변과 반론 : 위 말씀에서 님이 사용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표현은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바로 여기서 님의 상호내재 개념의 이단적인 이해―인격 안에 인격이 안 계신다―의 치명적인 독소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되긴 하지만 엄연히 아들 안에 상호 내재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나(여기에서 그러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 않다고 하는 주장아니냐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미 위의 글과 1편의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인규님은 『아버지 하나님은 분리되고 제외된 1/3 하나님 또는 성령을 포함시킨다면 2/3하나님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셨다고 이단적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님의 이단 사상은 추후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누구인지를 다루게 될 경우 집중적으로 폭로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 인용 : 성육신 되신 후에 하나님은 성육신 되기 이전과는 달라지셨다. 성육신 이전에 그 분은 다만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성육신 되신 후에 그 분은 사람의 껍질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다.(세부분의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하나님 54쪽) 즉 예수는 "사람의 껍질 + 성부 하나님 자신"이라는 이야기이며, 

  답변과 반론 : 님은 통상 하나님이라고 할 때 성부하나님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위 문맥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을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문맥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는 님의 착각과 오해처럼 「사람의 껍질 + 성부 하나님 자신」 이 아니시고 「(영과 혼과 몸을 가지신) 사람 + '아버지와 성령님이 영원토록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으면서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님의 상상을 따라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째 인용 : 4. 중보자이신 한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하나님이 아니신 다른 인격의 한 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곧 예수와 동일한 인격이라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는 구별된 인격이 언급되지 못합니다. 

  답변과 반론 : 누가 언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동일한 인격이라고 합니까? (지방)교회 성도들도 딤전 2:5에 대해 님처럼 이해합니다. 님의 좁은 틀안에서 함부로 적용하지 마십시오. 

  여덟 번째 인용 : 5. 상호내재와 인격적인 거함 본인은 하나님 안에 예수께서 계시며 예수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즉 1학년 1반의 학생들은 인격체가 다르지만(독립된 인격), 모두 1학년 1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란 용어는 1학년1반이 아닌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일 뿐입니다. 용어설명을 하면 위험한 삼신론이 되는지요? 지방교회는 독립된 세 인격에 대해서 언급하면 삼신론자라고 합니까? 

  답변과 반론 : 님은 지금 두 가지 말을 하고 계십니다. 님은 「본인은 하나님 안에 예수께서 계시며 예수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을 굳게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실 때는 아버지 하나님은 그 안에 안 계신다고 하며 만일 그렇게 주장하면 성부고난설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측은 아버지가 성육신 한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님의 상반된 두 가지 주장 중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거짓말을 토대로 하여 본인이 알고 있는 이단들은 다 끌어다가 억지로 (지방)교회측과 연결 지으려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아홉 번째 인용 : 6. 상호내재라는 용어, 상호내재란 "존재론적 양식에 관한 표현"이며 "독립된 세 인격"이란 "상호 관계적인 표현"입니다 즉 상호관계적인 면에서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습니다..... 그 인격은 서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려면 먼저 신학적인 상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존재적 양식이라 는 면에서 보면 삼위는 서로 내재합니다.... 다시 말하여 아버지께 기도하는 예수님은 상호 관계적인 점에서 "독립된 세 인격"입니다.

 답변과 반론 : 님의 이 부분은 새로운 주장이시군요. 「상호내재란 존재론적 양식에 관한 표현이며 독립된 세 인격이란 상호관계적 표현이다. 상호관계적인 면에서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그런 주장의 근거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많은 주장이지만 비판하기 전에 님에게 충분한 설명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열 번째 인용 : 7.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지방교회는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 한 이름을 주장합니다.... 단 일반적인 양태론과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의 복합적인 삼위의 구성요소가 세 형태의 양태적인 과정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답변과 반론 :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영원토록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으시면서 상호 내재하신 온전하신 하나님이 1) 성육신 하셨고 2) 인생을 사시고, 3) 죽으시고, 4) 부활 승천하시고 5)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이 (지방)교회측의 주장입니다. 만일 님이 이것을 부인한다면 성경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니 주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지방)교회측이 위와 같은 온전하신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계심을 믿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늘 보좌 위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성경구절들, 예수님의 침례시의 자연들이 묘사하는 성경구절들을 가감 없이 믿는다는 점입니다. 』 이점이 결정적으로 양태론자들과 다른 점이며 양태론이나 변형된 양태론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님은 지금 성경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억지로 양태론 공식에 꿰어 맞추려하니 관계도 없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열 한 번째 인용 : 아래 다음 글은 예수님과 성령님을 동일 인격으로 설명하는 지방교회의 책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시는 다른 보혜사(파라클레토스)가 곧 예수님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요한복 음14:16-17에 대해서는 모든 정통 신학책과 주석, 사전들에는 보혜사이신 예수님과 다른 보 혜사이신 성령님과 인격적인 구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답변과 반론 : 님은 여기서도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다. 모든 정통 신학책들이 예수님과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구별하고 있다고 하나 지난 게시판에 올려졌던 루이스 스미디즈가 쓰고 정통신학자인 오광만 교수가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한 「바울의 연합사상」(여수룬)은 고후3:17 등 사도 바울의 관련부분에 대한 언급들에 대해 「예수 =성령」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처럼 성경 본문자체에서 위격 구별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들이 있는 것이 삼위를 각각 독립된 세 사람들처럼만 알고 있는 님과 같은 삼신론자들에게 가장 곤란한 대목이며 여기서 심각한 성경사실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열 두 번째 인용 : 김성일님이 인용한 신학적 증거: 님은 김명용교수의 글을 단어 하나로서 단편적으로만 인용하고 있습니다.… 

답변과 반론 : 김명용교수의 논문에 대해서는 지난 번 질문을 재차 드립니다. 님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가 정통교회 삼위일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말은 성부 하나님을 지칭할 때는 맞지만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분명히 둘은 다른 주장이며 님이 맞으면 김 명용 교수는 이단이고 김명용 교수가 맞으면 님은 틀린 것입니다. 지난 번 저의 질문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해 주시지요. 

마지막으로 

님의 질문들은 이 단락 서두에 언급한 그러한 오해와 무지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님께서 열린 마음으로 아무런 편견없이 글을 대하신다면 위의 설명가운데 답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지면 관계상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 기회로 기약하겠습니다. 저의 바램은 이인규님이 무엇가를 임의로 판단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님의 변형된 삼신론 이단사상을 재고해 보시고 정확한 삼위일체관을 갖게되심으로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주님께서 역사하시기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3 15:15

지방교회 탐구 - 4

예장통합 교단 신앙고백 적극 동의 

폐쇄적인 과거벗고 연합운동 지향 

미국 CRI "삼위일체 문제없어" 


*지방교회 성도들이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역원 전경

1. 삼분설과 신비주의
일각에서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인간 삼분설'을 주장하고 가르침에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성경을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이분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본다면 삼분설(살전 5:23, 히 4:12)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 주제는 이단성을 가릴 만한 핵심 진리는 아니다. 칼빈 신학교에서 오래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안토니 후크마의 경우 장로교인이지만 '삼분설 뿐 아니라 이분설도 거절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개혁주의 인간론, 347쪽). 따라서 이 문제는 좀 더 깊은 포용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해당 진리 자체가 다소 신비스러운, 십자가를 짊(마16:24), 그리스도를 삶(갈 2:20), 그리스도의 몸(엡 4:12) 등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형제회 배경을 가졌고 성경본문 주석서를 펴내기도 했는바 신비적인 체험만을 추구하는 소위 신비주의자들은 아니다. 또한 "성경을 영해한다"라고 보일만 한 곳이 혹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 터무니없고 부적절 할 때만 그것들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위트니스 리,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60-61쪽)라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성경 해석에 임함으로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2. 양태론 시비
최근 10 여 년 동안 "(지방)교회는 양태론을 믿으니 이단이다"라는 말이 있어 왔다. 그러나 과거에 (지방)교회 측과 통합교단 토론자가 가졌던 토론 과정 등을 진지하게 지켜 본 이들은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지방)교회는 양태론을 믿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일까? 우선 통합교단 헌법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신 6:4, 고전 8:4,6)" 라고 고백하나 통합측 토론자는 "세 영들" 또는 "세 사람들"식의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세 인격, 한분'으로 믿는 (지방)교회 측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트니스 리가 이사야 9장 6절,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고린도 후서3장 17절을 본문 그대로 가르침으로 인해 오해가 생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구원의 경륜 과정에서 삼위일체의 두 위격 사이의 '기능적인 동일시' 일뿐 결코 '본체론적 위격의 혼동'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R. B. 개핀 교수와 합동신학대학원 박형용 박사도 장로교인이지만 이점을 잘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차영배, 성령론(구원론부교재), 59-60쪽, 신학지남, 1978년 봄호, 28-39쪽). 수년 동안 (지방)교회를 양태론 자로 오해했던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단체인 CRI 대표 행크해나그라프와 Answers In Action 대표 그레첸 패산티노가 이들과 진지한 대화 후 최근에 태도를 바꾸었다. 즉 "(지방)교회에서 말하는 삼위일체가 진리상 아무 문제없다." 라고 미국교계 앞에 공개선언을 한 바 있다. 

3. 교회론 관련 논란
지방교회는 "교회가 시대와 지역과 종족과 인간의 계급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명시한 통합교단 헌법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교회론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쌍방 간에 전혀 이견이 없다. 소위 "지방 입장을 말함으로 다른 단체들은 교회도 아니고 그 안에는 구원도 없다. 라고 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든 교회의 일원이며 구원은 각 개인이 믿음으로 받기 때문이다. 목사 제도를 부인한다는 소문이 기성 교회 목회자들을 언짢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교회 내에도 전국에 200여명의 인도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들 중에는 신학을 한 경우와 세속 직업 없이 전 시간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 지방의 모든 성도는 다 한 장소에 모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말도 오해인 것으로 강조한다. '서울 교회'만 해도 현재 23 개 장소에서 모이고 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2절까지의 바울의 권면에 따라 '성도들 온전케 하는 일'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에 대해 많은 영적 자료들을 남겼다. 그들이 주께 받은 이러한 빛과 체험들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성도의 견인을 강조하는 개혁신학과 상호 보완 된다면 한국 교계에 큰 유익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교회 측은 그동안 교단과의 관계에서 다소 폐쇄적이었던 과거의 자세를 반성하고 건강한 복음안에서 에큐메니칼 정신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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