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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와서 주님 섬기는 것을 배울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새 예루살렘 수업에서 새 예루살렘의 특징을 말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형제가 일어나더니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어바인 시에도 여전히 쓰레기통이 있지만, 새 예루살렘에는 쓰레기통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앉았습니다. 모두 와~ 하고 웃었지만,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또 한 형제는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진 설명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 21:2)에서 ‘거룩’은 하나님만 거룩하시고, ‘새’(New)도 하나님만 새로우시며, ‘예루’는 기초를, ‘살렘’은 평화를 의미하는데, 오직 하나님만 평화의 기초가 되실 수 있으니,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저만 좀 나이가 있었지 대부분이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이들이라 생각과 말이 기발하고 참신했습니다.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골 3:10-11).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해 아래 새로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무엇을 두고 “보아라, 이것이 새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전 1:9-10). 참으로 그러합니다. 새 차도 계약서에 사인하고 운전하고 나오는 순간 이미 중고차라고 합니다. 아파트 투기라는 것도 저는 요즘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이미 로마 시대에 주상 복합 아파트(Insula) 투기가 있어서, 네로 황제가 이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읽다가 새자가 들어간 단어가 나오면, 관심이 더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누린 위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사람을 입었음: 성경에서 새사람은 위 본문을 포함 총 세 번 나옵니다(엡 2:15, 4:24, 골 3:10). 이러한 성경에 따르면, 새사람은 둘, 즉 유대인 믿는 이들과 이방인 믿는 이들로 구성되고, 주님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거듭나고 침례 받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새사람을 입었습니다.
새사람은 … 새로워지고 있음: 예전부터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미 새로워졌는데 왜 또 새로워질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늘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위 본문을 추구하면서 아래 각주를 통해 이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열쇠는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에 있었습니다.
“새사람은 옛 창조물(엡 2:15)에 속한 우리를 그 구성원으로 삼아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새로워져야 한다. 이렇게 새로워진다는 것은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이라는 구절이 가리키듯이, 주로 우리의 생각 안에서 이루어진다. 새사람은 우리의 영 안에서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우리의 생각 안에서 새로워지고 있다”(각주 5).
거기에는 오직 그리스도가 모든 것임: 성경은 이 새사람 안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야만인, 스구디아인, 노예, 자유인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대신에 새사람에는 오직 그리스도만 충만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 적지 않은 간격이 있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비록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는 새사람의 실재이신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우리의 평소 생각 혹은 관심사 속에 과연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딸이 하나 있습니다. 8살 때 미국 왔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아이가 삼십 중반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함께 한국에 갔을 때 책방에 간 김에 만화로 된 한국사 이야기 한 권을 사 주었습니다. 미국에 살지만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최근에도 한 외국인 교수가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소개한 유튜브가 있길래 보내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러한 모습에서 어떤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제 깊은 속에는 이것은 너의 새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내적인 음성 혹은 빛 비췸이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제게는 여전히 옛사람과 새사람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옛사람인 저의 한국인으로서의 생각과 행동은 제 안의 기름바름의 가르침에 나날이 씻겨질 것이고, 제 안에 새사람의 새로운 인격, 새로운 요소가 점점 제 안에 증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고후 4:16). 그 결과는 “쓰레기통”도 없고 하나님으로만 충만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계 3:12, 엡 3:19).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 주님, 우리의 운명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한 새사람,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란한 소망을 갖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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