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6.17 00:15

찬양 457회

You shall love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new song



You shall love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You shall love the Lord with all your soul,

You shall love the Lord with all your min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Oh, Lord I love You for all the things You are!

Oh, Lord I love You for all the things You do!

Oh, Lord I love You. Help me love You more,

With all my heart, with all my soul, with all my mind.

(The two parts can be sung simultaneously)





지방교회 찬송가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15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영의 새로움으로 섬김 - 생명이만나 404번

롬7: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얽매여 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나서, 문자의 낡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움으로 섬깁니다.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거듭난 새사람은 이제 옛사람의 율법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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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9.06 05:00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2)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2.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 안에 계십니다.  

로마서 8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의 양면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롬8:34는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롬8:10은 동시에 또 다른 방면에서 주 예수님이 거듭 난 사람 안에 (생명으로) 계심을 증거 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믿는 이들 안에 살고계십니다(골1:18, 엡1:23). 그러나 로마서 8:10은 위 양 방면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되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 하심으로 인해 우리의 <거듭난 우리의 영>은 살았고, 심지어 생명(조에) (spirit is life) 이라고까지 롬8:10 후반부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한 고전6:17에서 더 선명하게 확증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 불신자였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엡 2 :1).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할 때 그분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 영이신 주님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시고 심지어 우리 영과 연합하여 한 영(one spirit)이 되셨다고 고전6:17은 말합니다. 이제 이분은 여기서 더 전진하여 우리의 영 뿐 아니라 마음(heart)에도 거처를 얻기 원하시며(엡3:17), 우리의 죽을 몸, 사망의 몸에게도 생명을 주시고자 하십니다(롬7:24, 8:11). 이것이 구속의 피로 인한 죄사함 이후에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생명에 의한 유기적인 구원의 과정입니다(롬5:10, 빌2:12). 이러한 지속적인 생명의 역사 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되고 마침내 영광 안으로 이끌려 질 것입니다(히2:10). 이것이 로마서 8장 전체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쟁점이 되는 것은 롬8:10이 말하는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 할 때의 영이 과연 사람의 영인가 아니면 성령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원래 신약원문 상의 영을 가리키는 '(푸)뉴마'는 대 소문자 구별이 없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는 전후 문맥을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캘빈을 포함한 소수의 신학자들은 이 영을 성령으로 보지만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롬8:10이 언급하는 이 영을 사람의 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장로교단 내에서 존경받는 주경 신학자인 이상근 박사의 아래 자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약 주해 로마서, 이상근, 성등사

'여기 영(롬8:10)을 성령으로 보는 학자가 있으나(Calvin, Dickinson), 신자의 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Meyer, Bengel, S&H, Vincent 등). 전구(몸)와 댓귀적 성격으로 보아 후설이 타당하다(고전2:11). 영이란 인격의 본질이며 영성의 최고의 부분으로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좌소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부분이다'(이상근, 신약 주해 로마서, 성등사, 205쪽). 

이외에도 롬8:10의 영을 사람의 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 의견임을 인정하는 자료로는 죤 머리의 로마서 주석(권혁봉 역, 생명의 말씀사) 33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문맥을 자세히 검토해 본다면 <위 롬8:10이 언급하는 영은 사람의 영이며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의하면 여기에 언급된 영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는 조건하에서만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생명이심에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앞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에서의 몸이 사람의 몸을 가리킴으로 뒤의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에서 영도 당연히 사람의 영을 가리켜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으니 우리 안에 성령만 계신다는 사상은 매우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삼위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신다는 것이 정통 삼위일체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빛 가운데 거하심으로 사람 안에 오면 타 죽고 성령님은 사람 안에 오실 수 있다는 주장은 성령님이 아버지와 다른 본성 또는 열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라야 말이 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둘째로,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는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성령만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 하나님 자신은 '구겨지지 않는 한' 사람 안에 계실 수 없다는 말(기독신문 게시판 안0식 목사님 주장)도 삼위를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말들은 참된 신자가 소유하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요일5:12)이 본인에게는 아직 없음으로 자신이 가라지라는 부끄러운 고백이 될 뿐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삼위일체론 뿐 아니라 기독론과 구원론에 있어서도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주장입니다.  

PS: 누구든지 성경해석에 오해가 있어서 잠시 성경적인 가르침과 다른 주장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또 틀린 것은 고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임이 선명하게 밝혀졌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오히려 성경적인 가르침을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런 비 진리와 비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 1:3은 우리에게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우라'고 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1)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http://local-church.tistory.com/222)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3:55
성경말씀  

(마3:16)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시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셨다. 보아라, 하늘이 그분께 열렸고, 그분은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오늘의 만나

 
한 방면에서 하나님의 영은 능력의 영이고, 다른 방면에서 그분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의 이 두 방면을 말하기 위해서 두 가지 상징을 사용합니다. 성경은 능력의 영에 관해 말할 때 독수리를 그영의 상징으로 사용하며, 생명의 영에 관해 말할 때는 비둘기를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속박의 땅에서 그들을 자기의 날개에 업어 옮기는 큰 독수리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19:4).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의 방면을 언급합니다. 신약에서 주 예수님께서 침례 받고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왔습니다(마3:16).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생명 방면을 언급합니다. 그러한 분으로서 하나님의 영은 매우 섬세하고 온유하고 평온하십니다. 그분은 큰소리를 내거나 소란스럽게 하거나 울부짖거나 고함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매우 섬세하고 온유하고 평온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경우 그분의 임재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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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7:10
성경말씀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을 믿은 지 2년 정도 된 어느 형제가 로렌스가 쓴 '주님과 함께 함'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바로 다른 형제와 한 시간에 한 번씩 기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매번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의 임재를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력을 다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주일에는 하루종일 기도했고, 토요일에는 반나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2, 3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에게로 돌이켰을 때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한번 외출하면 곧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기억력을 의지해 주님의 임재를 유지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잊어버리면 임재도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억력을 사용하여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는 영 안에 있는 것이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으로써 영을 대할 때 주님의 임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외적인 사물에 대해 반응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임재를 놓치고, 주님의 임재를 누릴 수 없는 것은 그의 겉사람이 외적인 사물에 대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일을 제거할 방법이 없지만, 겉사람을 깨뜨릴 수는 있습니다. 겉사람을 파쇄하면 외적인 일은 단지 겉사람에게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속사람은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의 임재 안에 살 수 있게 됩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7:00
성경말씀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카이 싸이린 자매는 6주 정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도 그녀와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무척 가슴 아파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이 싸이린 자매여, 당신은 계속해서 밖의 느낌  안에서 나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난 6주 동안 나는 오히려 당신 안에서 당신을 기다려왔답니다. 당신의 영 안의 내실로 돌이켜 마음 속에서 나를 찾아 보십시오, 내가 그곳에 있습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5:35
사12:3-4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하나님의 선민인 우리에게 언약과 빛이 되시는 여호와의 종이신 그리스도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받고 누리는 길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리스도 자신께서 함께 계시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고, 우리의 영을 따라 살며, 우리의 영 안에 머무는 것이다. 이사야서 42장6절에서 백성을 위한 언약과 민족들을 위한 빛이신 그리스도을 주시는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게게 영을 주셨다고 선포하셨다. 먼저 그분은 우리 안에 "위(영)"을 마련해 두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무엇이 "식료품(언약과 빛이신 그리스도)"인지를 말씀하셨다. 우리의 영적인 위는 우리의 영이고,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적인 위 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음식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길은 그리스도 자신께서 함께하시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고, 우리의 영을 따라 살며, 우리의 영 안에 머무는 것이다. 디모데후서4장 22절은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에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이고 누리기 위하여 우리의 영을 사용하고, 우리의 영을 따라 살며, 우리의 영 안에 머물러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영은 우리의 삼층천이고, 지성소이며,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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