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3:15
성경말씀 

 (롬8:2) 왜냐하면 생명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과 사탄은 모두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와 우리 안에 거하게 된 후에, 외적이고 객관적인 활동들로 역사하지 않고 내적이고 주관적인 법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생명의 영의 법의 역사는 우리 영 안에 계신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명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의 법으로서 우리 영 안에 내주하시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주요 기능은 우리를 사탄 곧 죄와 사망의 법으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 안에 거하고 있는 사탄에게서 완전히 해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방은 주관적인 칭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의 기질상의 성화를 위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00
성경말씀  

살전5:23~24 그리고 평안의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하셔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나무랄 데 없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말씀은 사람이 세 부분 즉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지적합니다. 우리의 가장 속부분인 영은 내적 기관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각이 있으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혼은 바로 우리의 자아 곧 우리의 영과 몸 사이에 있는 중간 부분으로서 자의식이 있으며 이로써 우리의 인격을 가집니다. 우리의 외적 부분인 몸은 밖의 기관으로서 세상에 대한 지각이 있으며 이로써 우리는 물질 세계를 접촉할 수 있습니다. 몸은 혼을 담고 있으며, 혼은 영을 담는 그릇입니다. 영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혼 안에는 우리의 자아가 있으며, 몸 안에는 물질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거듭남을 통해 우리의 영을 점유하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다음으로는 생명주는 영이신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영으로부터 혼 안으로까지 확산시켜 혼을 적시고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혼을 통해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시고 그분의 생명 능력으로 몸을 변형시킴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4:45
성경말씀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해 주시고 

 오늘의 만나

 
 에베소서 1장 17절은 믿는이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얻어 하나님을 알도록 그분께 드린 바울의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 안으로 이끄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사람이십니다. ‘아버지’란 명칭은 거듭남을 함축하고 있으며 ‘영광’은 표현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아버지는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통하여 표현되신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거듭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표현될 때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지혜’는 우리 영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베일을 여시어 우리에게 이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는 깨닫는 능력인 지혜가 있음으로써 그것이 우리로 영적인 일들을 알 수 있게 하고 다음에 하나님의 영께서 영적인 일들을 계시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4:35
성경말씀  

(엡5:18~21)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방탕하게 합니다. 다만 영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시를 읊으며, 항상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로 충만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몸이 술에 취하는 것은 우리를 방탕하게 하지만 그리스도로 충만되는 것 곧 하나님의 충만으로 우리 영 안에서 충만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 노래하고 찬송하고 감사할 때 그리스도를 흘러넘치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복종하게 합니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는 노래하고 찬송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노래하고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 복종하는 것은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되어 흘러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영 안에서 충만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6:10
성경말씀 

( 고전10:3~4) 모두 똑같은 영적인 음식을 먹었고, 모두 똑같은 영적인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영적인 반석에서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오늘의 만나

 
영적인 음식은 ‘만나’를 가리키며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위한 매일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 믿는이들은 모두 영에 속한 양식을 먹어야 하며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물은 갈라진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를 가리키며 이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온 만유를 포함한 음료이신 그영을 예표합니다. 우리가 경주하려면 우리 모두는 동일한 영적 음료를 마셔야 하며 만유를 포함한 영 외에 어떤 것도 마셔서는 안 됩니다. 쳐서 갈라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위해 생수를 흘러 보낸 반석은 물질적인 반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것을 영적인 반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치심을 받고 갈라져 생명의 물을 흘러 보내 그분의 믿는이들의 목마름을 만족시켜 준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영적인 반석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참된 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믿는이들을 따라다니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출처 : 내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5:45
성경말씀  

(롬7: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얽매여 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나서, 문자의 낡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움으로 섬깁니다. 

 오늘의 만나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거듭난 새사람은 이제 옛사람의 율법에서 벗어납니다. 율법은 아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옛사람인 옛남편에게 주어졌고 옛사람인 옛남편은 십자가 위에서 죽었으므로 아내인 새사람도 옛사람의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영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의 거듭난 영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새롭고 우리 영에서 나오는 모든 것도 새롭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은 새로움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께서 거듭난 영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내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3:30
성경말씀  

(요3: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5~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오늘의 만나

 
 ‘거듭남’이란 다시 난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나는 것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여기 첫 번째로 언급된 영은 신성한 영, 곧 하나님의 성령이고, 두 번째로 언급된 영은 사람의 영, 곧 사람의 거듭난 영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람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 곧 영원하고 피조되지 않은 생명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거듭나는 것은(사람의 천연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새 인격의 새 근원과 새 요소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7:45

성경말씀

(마5:3)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성도는 영 안에서 가난하며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마5:3,8, 사66:2). 그리스도인은 항상 영 안에서 가난해야 합니다. 영 안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당신이 겸손하여 당신이 아무것도 갖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 없이, 생명주는영이 없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마음이 순수한 것과도 짝을 이뤄야 합니다.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겸손할 뿐 아니라 또한 영 안에서, 당신의 존재의 깊은 곳에서 비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것은 동기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목적이 단일한 것,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 목표를 갖는 것입니다(고전10:31).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3. 22:36

고린도 후서 3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그 영께 속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 영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한 의문 문자는 기록된 구약이다. 그러나 구약은 비록 성경이지만 당신이 그것을 대할 때 영 안에 있지 않다면, 이 성경의 말씀은 의문 문자에 불과하다. 의문 문자의 의미는 전에 한번 성령이 역사한 적이 있는 것을 후에 다시 한번 사용하지만 성령은 만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문 문자이다.

어떠 사람은 일년 삼백육십 오 일 동안 로마서를 읽고서 객관적인 방면의 교리는 다 이해할 수 있지만 성령의 말씀하심과 감동이 하루도 없었다면 그에게 있어서 로마서는 의문 문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침 일찍 성경을 읽고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는데 단지 관례대로 하는 것이라면 의문 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비록 외적으로 영적인 껍질은 있지만 속의 영은 조금도 만지지 못하기 때문에 의문인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자신 안에서 먼저 영적인 느낌을 만져야 한다.

어떤 형제에게 말씀과 영이 있었다면 내가 그 형제의 말을 들을 때도 틀림없이 말씀과 영을 얻어야 한다. 오직 영적인 기관만이 영적인 것들을 실제화할 수 있다.그 형제가 읽은 객관적인 문자에다 영을 더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주관적으로 나는 반드시 생각으로 그의 말을 깨달아야 할 뿐 아니라 영으로 이 형제가 말한 말씀 배후에 있는 영을 만져야 한다.

어떤 형제가 말씀을 전할 때, 나는 먼저 그의 성경 해석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또 비유를 어떻게 말하는지를 주의하지 않고 다만 나의 영을 사용하여 그의 영을 만진다. 영이 흘러 나왔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한편의 말씀이 사람을 공급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말하는 사람의 영이 흘러 나오는가의 여부에 있으며, 사람의 영을 만졌는가의 여부에 있다. 설령 그의 목소리가 크고 조리가 있으며 생각이 좋다고 하더라도 영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문자에 불과할 뿐이다.

교회 중의 일은 반드시 영이 그 안에 있어야 하며, 단지 일만 잘하고 절차만 옳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설령 홍콩교회가 대북의 봉사하는 방법을 전부 모방하여 그대로 한다 하더라도 영이 없으면 의문일 따름이다. 내가 교회 안에서 수년 간 염려한 것은 주로 죄의 문제가 아니라(물론 죄를 가벼이 보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의문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많은 영적인 일이 외적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영적인 실제가 결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테복음 7장에서 주님은 심판대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주 열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고 이적을 행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를 위하여 열심으로 일하고 심지어 권위를 사용하여 귀신을 쫓으며 이적을 행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많이 하고 적게 하고가 아니라 바로 과연 그 일들이 육체에서 난 것인가 아니면 영에서 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직 영적인 지각을 알고 만진 사람이 한 것만이 영에서 난 것이며 주님께 열납될 수 있다.

(Watchman N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