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나이가 27살입니다. 늦둥이 막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자녀가 다섯이나 됩니다.
그분은 남만큼 배웠습니다. 주님도 사랑하십니다. 나이 차이 나는 다섯 자녀들이
서로 우의있게 자라라고 힘들어도 생일을 챙긴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항공기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 아파트 얻어 나가 있던 작은 아들도 왔습니다.
또 제 주변에 어떤 분은 그 반대입니다. 자신은 율법에서 벗어난 이후 생일을 챙겨 먹은 적이 없답니다. 늦게 결혼해서 얻은 외동딸 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분이 자기 것을 고집하면 충돌은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 지니라'고 말합니다(롬14:5).
아침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는 골2:8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물론 위 본문에서 바울은 그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거나 문맥상 특별히 의도하는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더 넓게 이 주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날 우리 중에 '철학'이 자기를 노략질 할까 주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사람은 '철학'한다고 하면 고상하게 생각합니다.
또 자기는 철학이 없다며 자격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철학'에 의해 '노략질'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철학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이 사람을 구원치 못합니다. 철학은 그리스도를 대치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사람을 속여 만족케 하여 그리스도께 나아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어느 만큼은 과거의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그 당시 골로새교회에 문제가 된 <영지주의적 가르침>을 가리킨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모든 철학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철학'에 이어 나열한 '헛된 속임수'는 또한 무엇일까요?
'무엇이 헛 된가? 무엇이 참 된가? 무엇이 우리를 속이는가? 어찌하면 우리가 속지 않을 수있을까? ' 이런 것은 이 본문을 심도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일 것입니다.
문맥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의 전통'이나 '세상의 스토이케이온 즉, 원리, 요소들, 체질'에 따라 파생된 것들은 다 '헛된 속임수'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 초상을 흑인의 모습으로 그리든, 갓 쓰고 한복 입은 모습으로 그리든 그런 것은 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발상이 아닙니다. 모두 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적인 기독교를 생각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속는 것입니다.
'사람의 전통'은 하나님의 눈엔 '하나님 말씀'에 견줄 수 없습니다(마15:3).
옛사람과 함께 옛창조에 대해 죽은 우리가 결국엔 '썩어질 것'을 두고 서로 다투고 나뉘는 것은 대적에게 속는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하지 않고 저것도 시큰둥한 것이라면 허무주의를 말하는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울의 사상을 따라 골로새서 2장을 쭈욱 읽어가면 바울이 중요
하게 여기는 큰 가닥이 추려집니다.
즉 바울의 관심은 골2:9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신 그리스도, 11절의 그리스도의 할례,
12절의 함께 죽고 부활함, 14-15절의 십자가 상의 놀라운 성취들, 17절의 모든 그림자의 실제이신 그리스도, 19절의 '하나님의 증가로 증가함' 등에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장난감'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귀한 세월 다 보내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1)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는 것, 2)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하나님의 증가)으로 자라는 것이 우리가 깨어서 견고하게 붙들어야 할 목표입니다. 이에서 떨어지게 하고, 빗나가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속이는 것
들입니다. '헛 되고' '썩어질 것들'에 연루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리스도를 좇음'(골2:8)이 아닙니다.
누구든 좋아 보이는 그 어떤 것(철학, 헛된 속임수, 사람의 전통, 세상의 요소들에 의해 지금 '노략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즉시 주께로 돌이킬 수 있기 원합니다.
아침에 이런 것들을 놓고 몇 지체들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