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기 진도를 따라 아침에 아래와 같은 요한계시록 2장 1절 말씀을 읽고 또 먹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전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여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으시고 일곱 금등잔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임으로, 성경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내쉬신 호흡을 우리 존재 안으로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먼저 해당 본문을 천천히 여러 번 읽습니다.
그리고 그 본문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으로 이렇게 주님께 기도합니다.
‘오 주 예수님, 여전히 말씀하심을 감사합니다. 저로 들을 귀가 있게 하소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일곱별을 붙잡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오 주님, 일곱별이 무엇인지 제게 더 계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 실재를 경험하고 또 누리게 하소서’.
위와 같이 기도할 때, 갑자기 빛이 임하여 말씀이 깨달아지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예를 들어 ‘일곱 별’이라는 키 워드가 마음 안에 계속 남아 있어서 온종일 그 말씀으로 기도를 이어가기도 하고, 영적 서적 등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으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번 주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 안에 일곱별에 관해 남게 된 한 가지는, 지금은 영적으로 밤이고, 개 교회마다 존재 자체가 신성한 빛으로 적셔진 사람이 필요하며, 그들이 교회의 실질적인 인도자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열쇠
일반적으로 말해서 요한계시록은 쉽게 이해되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읽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거나, 읽더라도 자기 방식으로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결과 본문에서의 원래 의미와는 동떨어진 해석과 설교들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이 기회에 지금까지 제가 도움받은, 계시록을 바로 이해하는 두 가지 원칙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첫째,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계 1:1). 따라서 이 책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하심이 핵심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러한 내용을 ‘표징들’ 즉 ‘영적인 해석이 필요한 상징들’을 통해 서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읽을 때 666이나 대환란 이런 자극적인 단어들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묘사된 부분에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사도 요한은 계시록 끝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이것들”(계시록 내용)을 증언하게 한 것은 바로 “교회들을 위한 것”임을 밝힙니다.
여기서 교회들은 그분의 몸이 각지에 나타난 ‘금등잔대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사도 요한이 영 안에서 보았던 네 가지 이상들인 교회들(1-3장), 세상의 운명(4-16장), 큰 바빌론(17-20장), 새 예루살렘(21-22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계 1:10). 즉 세상은 큰 바빌론으로 발전하다가 훗날 한순간에 멸망할 것이나, 주님의 몸의 실제적인 표현인 교회들은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되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계시록의 핵심 내용입니다.
일곱별
그렇다면 계시록에서 네 번 언급된 일곱별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선 성경은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전달자’(사자)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계시록이 말하는 ‘전달자’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가 해석되어야 합니다. 항간에는 일곱별인 ‘교회의 전달자’가 첫째) 개 교회 수호천사들이다, 둘째) 요한에게 편지를 받아오도록 파송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 급사(急使)들이다, 셋째) 지역 교회 감독들 혹은 장로회이다, 넷째)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도록 자기 귀를 열어 놓은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덧붙여 아래 해석은 ‘일곱별’이 개 교회의 공식적인 인도자인 장로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달자(사자)들은 교회들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증거를 짊어질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별들과 같이 하늘에 속한 본성을 지녀야 하며, 또 하늘에 속한 위치가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 장로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관리하는 인도자들이었다.
장로 직분은 다소 공식적인 것인데, 이 책이 기록되었을 때에는 교회의 타락 때문에 교회들 안에 그러한 직분이 변질되었다.
이 책에서 주님은 영적인 실재에다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신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장로들보다도 교회들의 전달자를 강조한다.
일곱 별이 되는 길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계시록에서 언급된 “등잔대와 별은 모두 밤에 빛을 내기 위한 것이다.
한 지방에 있는 교회를 나타내는 등잔대는 집합적인 단위이지만,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의 전달자를 상징하는 별은 개별적인 실체이다. 교회 타락의 어두운 밤에는 집합적인 단위들인 교회들과 개별적인 실체인 전달자들이 모두 빛을 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지상 교회들의 교회답지 못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본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이며 어디서부터 해결점을 찾을 것인가?
위 ‘(일곱) 별’과 ‘(일곱) 금등잔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은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들”에게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후에는 세상의 빛으로서 “죽음의 땅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신약 사도였던 바울도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 돌아가게”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영접한 후에, 비로소 빛의 자녀요 심지어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빛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빛 안에서 행하며, 빛의 실재를 더 얻고,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일곱별이 되는 길이라고 묵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