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케 키워야 아이들 기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가면 예전처럼 선생님들이 별로 무섭지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선생님 하기도 힘들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립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공연히 매를 들었다가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 있어 소위 사랑의 매(체벌) 조차도 예전처럼 대기가 망설여지나 봅니다.
그렇게 커서 군대를 가고 또 사회 생활에 나서게 되니 그들을 상대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기는 쉽지 않아 전반적으로 도덕성의 해이를 가져오는 것같습니다.
이런 사회현상이 직접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도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공의보다는 사랑의 하나님을 많이 강조합니다. 또한 일단 예수님 영접했으면 훗날 언젠가는 천국가서 잘 살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속에 자기 식의 믿음 생활을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빌2:12)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부분. 그런데 사실은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치고 저 본인 안에서도 구원과 두렵고 떨림이 어떤 관계인지가 감이 잘 안 잡혀서...묵상 중에 몇 가지 빛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만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현재도 공의를 포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자백하면 용서하시지만 불의한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심판도 있습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벧전4:17)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을..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이 체류자로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벧전1:17)
자세한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어떤 육체에 가해 오는 통증에 대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구나..라고 뼈저리게 깨닫게 되던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반복해서 행할 때 그런 것이 왔습니다.
솔로몬의 죄로 인하여 그 후대인 르호보암 때에 분열의 아픔이 온 것은 부모의 허물과 죄로 인한 어떤 것이 그 자녀들에게 미칠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본인이 아픈 것보다 아픈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더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환경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긍휼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온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대(천년왕국)가 도래했을 때 받을 징계의 내용을 바로 깨달아도 ...지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