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6. 14:15
벨사살 왕의 최후
박 명 희
누가 먼저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니, 저건......!”
“저게 뭐야? ”
하고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저 벽에......! 사람의 손가락 아닌가!”
한 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벽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분명해.’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환각증상이 온 건가?’
그러나 그것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내가 봐도 분명히 사람의 손가락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벽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폐하!”
신하들이 말을 하기 전에 벨사살 왕도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벨사살 왕 바로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으므로 왕이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왕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너무 놀랍고 두려워서 아예 입을 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즐거워하며 큰소리치던 왕이었는데. 왕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흥청망청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입을 다물고 두려워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째 벌이고 있는 왕의 대연회였습니다. 연회는 왕의 연회답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웠습니다.
바벨론 왕국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천명이나 이 잔치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등대마다 불이 타올라서 궁전 연회장은 대낮처럼 밝았습니다.
음악소리와 춤, 웃음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갑자기 벨사살 왕이 창고지기를 불렀습니다.
“자 오늘은 아주 큰 잔치다. 우리 모두 멋진 잔을 사용하자. 가서 예루살렘성소에서 가져온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오너라.”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던 그릇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금과 은그릇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 가져온 것들이었습니다.
“이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는 거다.”
“폐하, 그러나 이 그릇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던 그릇인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스라엘은 다 망해서 우리 식민지가 되어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 느부갓네살 대왕님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가져온 전리품이야.”
“하지만 느부갓네살 대왕님은 후손 모두에게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듣기 싫다.”
왕비들, 여러 귀인들, 빈궁들은 왕이 시키는 대로 금 은 그릇들에 술을 담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왕의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그 소란한 모습을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 신들에게 경배합시다”
궁전에는 금으로 만든 신상, 은으로 만든 신상, 동과 철 그리고 나무와 돌로 만든 신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자 모두 술잔을 높이 들고 이 신들을 찬양합시다.”
왕이 그렇게 외친 바로 그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손가락은 흰 벽에 글자를 쓰고는 사라졌습니다.
타오르는 등불이 벽에 씌어진 글자들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글자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제야 왕은 정신이 났는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라. ”
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벨론 박사들에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이 나라의 셋 째 자리에 앉힐 것이다. 왕가를 상징하는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 주겠다.“
왕의 그 말은, 글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을 바로 왕 다음의 지위를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박사도 벽에 씌어진 글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벨사살 왕은 더 불안한지 얼굴에 두려워하는 빛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사람들도 다 두려워했습니다.
마침 그 때 그 소식을 듣고 태후가 잔치하는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왕이여, 이 나라에는 거룩한 신을 믿는 탁월하고 명철한 능력이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를 부르세요. 이전에 느부갓네살 왕은 그를 박사들의 우두머리로 삼았었습니다.”
“다니엘?“
다니엘이 왕 앞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대가 바로 우리 조부 느부갓네살 왕께서 사로 잡아온 그 다니엘이냐? 그대는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고 하니 빨리 이 글을 읽고 해석해보아라. 아무도 이 글을 읽거나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 만일 네가 이글을 읽고 해석한다면 내가 너에게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 줄 것이다.”
왕의 말에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건 모두 왕이 가지십시오. 그러나 내가 이 것을 해석하겠습니다. 그전에 왕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다니엘의 그 당당한 태도에 깜짝 놀랐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분명히 일고 있을 텐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벨사살 왕을 책망했습니다.
“왕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났던 일을.”
“......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선조인 느부갓네살 왕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만하여져서 그것이 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건 나도 아니 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느부갓네살은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정치에도 능했고 또한 건축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바벨론의 모든 훌륭한 건물은 느부갓네살 왕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지은 건축물들을 보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다. 내 영광과 위엄이 얼마나 놀라우냐.”
하면서 교만하여졌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꿈으로 나타나셔서 교만해지면 반드시 그를 짐승같이 낮추리라고 경고했었는데도 말입니다.
경고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을 짐승처럼 되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어느 날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왕궁을 빠져 나가서 들나귀와 함께 돌아다니고,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아무리 궁 안으로 데려다 놓아도 밖으로 나가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잤습니다. 그런 일이 49일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의 뜻대로 사람을 높이시고 세우신다는 것을.
그렇게 깨닫고 회개하자 거짓말처럼 느부갓네살의 병은 나았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온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왕궁 안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쉬쉬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청년이었던 벨사살은 그 일을 직접 옆에서 보았습니다.
“벨사살 왕이여, 왕은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높여져서 하늘의 주인인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성전에서 사용하던 그릇들을 가지고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과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찬양하고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한 것입니다. ”
벨사살 왕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받는 아이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 글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그 뜻은 무엇이오?“
사람들이 모두 다니엘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뜻은 이제 이미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끝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 메데와 페르샤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
나는 그 두려운 말에 몸이 떨렸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벨사살 왕이 느부갓네살 왕처럼 회개를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런 두려운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한 약속을 잘 지키는 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지 싫다는 다니엘에게 자주색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행동이 그 시간에 왜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바로 그때, 메데 사람 다리오 왕의 군대는 메마른 강바닥을 이용하여 성안으로 침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다리오 왕은 벨사살 왕을 죽이고 바벨론을 정복했습니다.
BC 539년, 그렇게 신바벨론 제국은 페르샤왕에게 망했습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샤의 고레스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허락했습니다.
고레스 왕 또한 알았던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 나라를 세우는 것,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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