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6:05
성경말씀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롬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창세기 4장 26절은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제 삼대인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과 깨지기 쉽다는 것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분의 길 안에서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가 부서지기 쉽고 죽어야 할 운명이며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깊은 속으로부터 기도할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르는 것은 기도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도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는 것은 단지 기도만이 아닙니다. '부르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외치다 또는 호소하다 즉 부르짖다'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사람을 불러 일으키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를 뜻합니다. 바꾸어 말해서 부르는 것은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속으로 할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들리게 합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6:00
성경말씀 

 (창4:2上)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오늘의 만나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두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공허함을 뜻하는 '아벨'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결과, 인생은 공허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 안에는 무언가 비어있고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들 속 깊은 곳에 허무함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아무리 재산이 많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밤이나 아침 일찍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당신 안에는 무언가 비어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허무감이 지금 제가 말하는 공허함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왕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과 소유한 모든 것과 행하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공허하고 허무한 사람일 뿐 입니다. 의미있는 특별한 두 번째 이름은 부서지기 쉬운, 죽어야 마땅한 사람을 뜻하는 '에노스'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인생은 공허해졌을 뿐 아니라 부서지기 쉽고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부서지기 쉽고 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요! 또한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일주일을 더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내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과 사람이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5:30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살전5:23下)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오늘의 만나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먼저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좋은 집과 최신형 자동차까지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육체적인 필요가 채워진 후 여러분은 음악이나 운동 등 즐길 것들을 찾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혼의 정신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모든 즐거움을 누릴지라도 밤에 혼자 있을 때, 깊은 곳에는 공허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말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자동차, 좋은 집, 착한 아내, 아이들, 모든 즐거움이 내게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존재의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아직도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존재 깊은 곳에서 요구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영입니다. 여러분 존재의 일부인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것입니다. 사람은 세 부분(살전5:23)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질적인 요구, 정신적인 요구, 영적인 요구의 세 부분의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의 요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세 번째 요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가장 좋은 물질들을 가지고 있고, 최고의 정신적인 만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무엇인가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누림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깊은 곳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이 만족된다면 자동차나 저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담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7:45
성경말씀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오늘의 만나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특별히 의미 깊은 두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허함’을 뜻하는 아벨입니다. 타락한 결과 인생은 공허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속 깊은 곳에는 허무한 느낌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당신이 밤이나 일찍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당신 안에 공백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특별히 의미 깊은 두 번째 이름은 ‘부서지기 쉬운, 죽어야 할 사람’을 뜻하는 에노스입니다. 타락한 후에 인생은 공허해졌을 뿐 아니라 부서지기 쉽고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요!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자신이 부서지기 쉬움을 볼 때 우리는 자연히 주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인류의 제삼 대인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과 깨지기 쉬움과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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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6:20
성경말씀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오늘의 만나

 
 우리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기억해 봅시다. 우리는 황폐했고 공허할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무의미했으며 우리는 흑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우리 속에는 심연(深淵)과 무저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심연 속에는 귀신들이 들끓고 있었고, 우리가 성질을 내도록 하였으며, 노름을 하게 하고, 영화 구경을 일삼게 하고, 그밖에 많은 악한 일들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황폐하고 공허했으며, 흑암과 사망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나 할렐루야!! 어느 날 생명을 가지신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마음 안에 운행하시고 우리 속에 있는 사망과 깊음 위에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원문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알을) 품고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도, 도덕적인 것도 아닙니다. 이분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살아 계신 분이며, 둥우리에서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알을 품고 생명을 낳는 그분의 일인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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