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성직자 제도에 기초한 질서는 하나님의 자녀 간의 참된 관계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예전에는 연세드신 분들 앞에서 나이 어린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했습니다.
어른을 당연히 공경했고 또 어려워 한 것입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 아래에서는 할아버지(시아버지)가 밖에 나가셨다가 들어오면서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 일순간 집 안에 긴장감이 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자들이나 나이 어린 식구들이 집안 어른에게 말대꾸하고 대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엄으로 권위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처신은
가족 구성원간의 친밀한 관계와는 거리가 멉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도 묘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적으로야 업무 감독권이 있는 상사가 칼자루를 쥐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직원들을 통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입니다.
때로는 친근하게 그러나 너무 친근해서는 안 되는(?)
이런 사이가 사람으로 하여금 처신을 어렵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잘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미국 생활이 그리 익숙치않던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하루는 한국으로 치면 기숙사 사감에 해당되는 분이 우리가 공동생활하는
집을 방문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갓 대학을 졸업한 다른 청년들과 달리 그래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갔던 터라 필기할 노트와 볼펜을 준비하고 그 분을 기다렸습니다.
머리가 허연 분이 소파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초점은 불편한 것이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그 필요를 채워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장학사가 일선 학교를 순시하거나, 사단장이 일선 부대를 방문하는 그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만 필기준비를 했을 뿐 다른 형제들은 필기는커녕 쇼파에서 그 분 옆에 앉아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얹고 아버지에게 아니면 큰 형님에게 대하듯 하는 식으로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본인도 청년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전혀 기분나빠 하지 않고....그렇다고 해서 그 영적 생명의 분량이나 연륜의 차이에서 오는 어른과 아이들의 차이가
무시되는 것도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밖의 타이틀과 지위와 계급의 차이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던 한국 문화와의 차이를 깊이 느꼈습니다.
사실 이 우주가운데 참된 권위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연합되는 삶의 실재를 유지하며 늘 자신을 꺽고 사랑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참된 필요를 관심하고 채워줄 때, 바람직한 인간관계도 유지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발락으로부터 온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온 발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대해서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처음엔 따라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두 번째 찾아 왔을 때는 그러면 가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 가지 말라고 했으면 알아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야단을 쳤을 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원함을 따라 행하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못난 발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또 그들을 통해서 뭔가를 추진하려 합니다.
이러한 선호와 원칙 고수가 가져오는 인간관계의 긴장감이 불화의 원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야말로 통이 큰 분이셨습니다.
즉 자신은 야곱을 택하셨지만 에서에게도 살 땅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택한 자이지만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냉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는 가롯 유다에 대해서도 그분 스스로는 어떠한 보복도 활동의 제한도 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신약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몸)을 마음에
품으시고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처신의 원칙을 아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 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해 큰 해답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베풀며 내게 돌아오는 온갖 불이익을 묵묵히 감당하며 다만 상대방이 주 안에서 서 가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사람의 인격을 사는 것만이 존경과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친근하게 주위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합니다.
설사 목욕탕을 함께 갔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