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08.27 05:00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서 언

이 책은 십 오 년 전에 위트니스 리가 쓴 두 소책자의 재판(再版)이다.

이 소책자는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일부 사람들이 비평한 것에 반응하여 출판되었었다.

첫번째 소책자인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1976년에 나왔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성경적 입장을 서술한 것이다.

그의 서술에서 위트니스 리는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 그리피스 토마스(Griffith Thomas),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를 포함한 여러 훌륭한 저자들을 인용하고 있다.

두번째 소책자인 '어떠한 이단인가 - 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 주는 영, 세 하나님'은 그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비난하는 사람들이 취했던 이단적인 입장에 도전했고, 그들이 성경을 왜곡했음을 폭로하렸다.

'신흥 이단들'의 저자들은 이 소책자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여 뒤이어 나온 출판물들에도 같은 비난의 내용을 실었다.

그들 출판물 중 다수가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와 그밖에 다른 경로를 통해 지금까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위트니스 리가 쓴 이러한 분명한 글들을 재출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연구소의 이름으로 쓰여진 저술이 저자의 명백한 말을 부인하려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 소책자들은 비평하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분명한 반박이 되며, 그 출판물들의 진리를 무분별하게 경시하는 것을 강력히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스스로 진리를 확인하려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 소책자에서 위트니스 리는 성경 자체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삼일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잡힌 성경적 정의를 제공했다.

그런 다음 그는 논쟁의 실지 요점, 즉 삼일 하나님의 셋 모두가 하나임을 인정했다.

윌터 마틴(Walter Marthin)이라는 비난자는 전통적인 이해로 막혀 이것을 '삼위일체 위격들의 혼동'이러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는 바를 스스로 알 수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유전(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하)'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두번째 소책자에서 위트니스 리 형제는 전통적인 이해로 성경을 짜맞추려다가 야기된 문제점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삼위일체의 셋의 성경적인 하나를 부인하는 것은 여러 이단들을 산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위트니스 리는 이사야 9장 6절,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성경의 핵심 구절들을 상세하게 검증했다.

그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들을 왜곡했음을 폭로했고, 그들의 이단적인 결과들에 대해 고소했다.

그는 담대하게 도전장을 내면서, '그들이 이 고소에 대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칼베이스너(Cal Beisner)라는 또 다른 비난자는 고린도후서 3장 17절 이후의 일곱 구절에서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한다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후서 3장 17절의 '주'는 예수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구절의 분명한 내용을 부인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비난자들 중에 위트니스 리의 이단 고소에 대해 그들 자신을 변명하기 위하여 설득력 잇는 반박을 제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소책자의 또 다른 강조점은, 하나님이 삼일이시지만, 그것은 단지 교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분을 체험할 수 있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는 데 있다.

위트니스 리 형제는, '우리의 제한된 사고력에 따른 교리적인 문제로는 삼일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을 위하여 계시는데, 즉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시도록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첫번째 소책자를 결론지었다.

이 진리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전통에 묶인 이해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주님께서 이 소책자를 모든 독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이 글을 사용하시기 바란다.


1994년 2월
캘리포니아 아나하임
Dan Towle


진리의 변호와 확증

워치만 니,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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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진리, 변호, 확증, 삼일하나님, 경륜, 교회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24 05:00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마태복음 1장 1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요 1:14)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많은 분들에게 성육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크리스마스일 것입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구주가 나신 날, 공휴일 그리고 선물 주고받는 날... 그러나 이것이 전부이면 곤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 이면에는 더 깊고 비밀스런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점점 더 알아 갈수록 성육신을 통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계획을 더 깊이 감상하며 그분을 경배하게 됩니다. 

그러면 처녀 마리아와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은 '하나님 사람(God-Man)'이십니다. 그분은 성령으로부터 '온전한 신성'을 처녀 마리아로부터 '완전한 인성'을 취하신 '온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complete God perfect Man)이십니다. 인류역사상 이런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비밀스런 성육신을 통해, 

신학교리도표-웨인하우스

1. 자신이 입으신 육신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모셔와 '신성과 인성의 기묘한 연합'을 이루셨습니다(웨인 하우스, 신학교리도표, 생명의 말씀사, 1995년, 59-62쪽 참조).  

2. '그분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의 장소인 속죄소(힐라스테리언) (롬 3:25 원문)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 사람'이시고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육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단 사상이 나타났습니다. 

1) 예수님은 '진짜육신'이 아니라는 이단(인성부인, 가현설). 

2) 예수님은 사람의 영은 없고 몸과 혼만 사람과 같다는 이단(완전한 인성부인) 

3)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라는 이단(신성부인, 여호와의 증인들) 

4) 아들 하나님(2격)만 육신을 입었음으로, 아버지는 지상 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안 계신다는 이단 (완전한 신성부인(삼신론) 특히 이러한 유형은 아버지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신 아들과 '분리'되어 하늘 저 멀리에만 계신다고 믿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안에 계신다'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이러한 이단사상은 구원론, 내세론에 가서도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상 많은 희생을 치르고 세워진 '정통 삼위일체론'은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의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하시고(coexisting), 서로 안에 계시며(coinherence), 구별되나 분리되지는 않으신다(distinguish not separated)는 것입니다. 

성경도 육신 입은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여러 차례 말씀(요 14:10-11, 20, 8:16,29)하심으로 이러한 신학을 뒷받침합니다. 즉 1/3하나님만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 즉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를 입으신 것입니다(골 2:9, 딤전 3:16, KJV). 성경은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안에 계시고, 아버지도 땅위의 아들 안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하늘 보좌에 계신다고 말합니다(요 1:18 동사시제를 주목, 요 14:10, 마 6:9). 우리는 심오한 진리인 삼위일체를 다룰 때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무리하게 체계화 할때 이단사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불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 늘 상호 내재하시는 아버지와 성령님과도 서로 안에 계시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의 영(요 11:33), 사람의 혼(마 26:38), 사람의 몸(요 19:34)을 가지신 '완전한 사람' 이십니다. 이것이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고, 성경이 계시하는 정통 기독론입니다. 그분은 택한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시려고 보좌로부터 이 땅까지 흘러오신 것입니다(요 10:10, 4:10, 14).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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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시며(골2:2), 삼위는 각 고유성을 가지고 구별되나 상호내재 하심으로 결코 분리되실 수 없으며, 신약 이전까지는 오직 '하나님'(God)(요4:24) 이셨지만, 성육신 후로는 하나님은 '하나님 사람'(God-man)이 되셨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주님의 '신성'의 면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전제하에, '맏아들'에 관련된 핵심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느 날 입으신 '육신'과 이 '인성'이 부활시점에서 어떤 상태에 있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 볼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에 의한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롬5:10). 또한 앞으로의 글들은 '하나님 사람'(God-man)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시점'에서의 '인성방면'을 중점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1) 사도행전 13장 33절의 '오늘'은 성육신이 아닌 '부활시점'입니다. 

행13:33은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Thou art my Son, this day have I begotten thee)라고 말합니다. 위 말씀은 시편 2:7의 인용이며 같은 내용이 히1:5에서도 인용되었습니다. 위 본문에서 '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제는 '오늘'(This day)이 '성육신' 시점인지 아니면 '부활'시점인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만일 위 날이 성육신의 때를 말한다면 새로울 것이 없지만, 부활의 날을 가리킨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 번의 출생이 있다는 말이 되며 나중의 출생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지가 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을 성육신의 때로 보시지만 전체문맥을 보면 이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박만수 외, 증거, 도서출판 안티오크, 1993, 170쪽). 오히려 '오늘'을 '부활 시점'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사도행전 13장 이후는 사도 바울 일행의 이방 땅의 사역을 다루는데, 사도 바울은 행13:13-43에서 성육신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33절의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켰다'(he had raised up Jesusagain)는 말씀은 '오늘'이 '부활시점'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조지 레드


저명한 신약학자인 조지 레드도 그가 쓴 '부활론'에서 다음과 같이 위의 해석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사건을 시편 2편의 성취로 보면서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의 이러한 선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에 모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부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50쪽).
 


(2) 부활 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로 출생하셨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또 하나의 출생'으로 말합니다. 즉 그분은 첫 출생인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사람의 아들(인자)이 되셨고 두 번째 출생인 부활 안에 나심으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이런 말은 '우리 주님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신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이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매우 많이 강조하며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약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독생자(삼위의 제2격)의 방면과 많은 형제들을 가지신 하나님의 맏아들의 방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생한'(only begotten)이란 말은 하나님이 유일한 한 아들만 가지셨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십니다(요1:18, 3:16). 신격의 두 번째이신 아들 하나님(신성)은 그분의 영원한 신분이며 사람은 누구도 이러한 신격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 방면에서만 본다면 하나님에게 둘째, 셋째, 또는 많은 아들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즉 독생자는 '신성만 가지신' 삼위의 제 2격이신 아들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도가 '맏아들'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롬8:29, 히1:6). 이것은 앞서 본 '독생자'의 방면이 아니라, '신성'과 부활시점에서 높이 올려진(uplifted)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롬1:4)를 가리키는 것-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지금 하늘에 있습니다(롬6:6, 엡2:5-6). 그러므로 주님은 히브리 서에서 거룩케 하는 자(맏아들)와 거룩케 함을 입은 자들(많은 아들들)이 다 하나(아버지 하나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안 한다고 말씀하십니다(히2:11). 

이러한 주님의 태도는 (지방)교회 성도들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한다며 비판하는 어떤 분들과는 크게 다르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분의 부활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이 되었습니다(요12:24, 벧전1:3). 또한 우리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격은 가지지 못하지만 주님의 몸으로서 맏아들이신 주님과 동일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지고 한 새사람을 이루고 있습니다(엡2:15). 

즉 맏아들이신 주님은 [경배 받는 '신격']과 '신성'과 '높여진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인 우리는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은 아니나- 이것은 독생자의 고유권한이심] '신성한 생명과 본성' 그리고 '변화되어 가고 있는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요1:12, 벧전1:4,.롬12:2, 빌3:21). 존귀한 주님의 몸의 지체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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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 요1:18)는 '신성'만 가지신 삼위의 제 2격 하나님이시라면, 많은 형제들이 있는 '맏아들'(the first-born, 롬8:29)은 '신성'과 '높이 올려진 (인정되신) 인성'(롬1:4)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한국교계에서는 이러한 깊은 성경 진리가 일반적으로 가르쳐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꼼꼼히 듣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부활 후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었다'면, 그 후에는 더 이상 '사람의 아들'(인자)는 아니라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이후 부활, 승천, 재림 심지어 영원토록 '인자'(사람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주님이 부활 후에도 뼈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눅24:39), 승천 후에도 스데반에게 인자로서 보이셨으며(행7:56), 재림 시에도 인자로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26:64). 이뿐 아니라 주님은 영원토록 인자 즉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이실 것입니다(요1:51).

주님이 입으신 인성은 비오면 걸치고 날이 개면 벗어버리는 레인코트가 아니라 그분의 존재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은 부활 후에는 더 이상 '사람의 아들(인자)은 아니라고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은 성육신 이후 영원토록 '하나님-사람'(God-Man)이십니다.

(2).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시 '높이 올려졌다 또는 인정되었다'면 예수님의 고유한 인성이 파괴되어 제 3의 어떤 것으로 바뀌었다는 말인가?

사실은 전 예장 통합측 이단사이비 상담소장 최삼경 목사님이 이렇게 저희들을 오해하였습니다. 즉 지방교회측이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나실 때부터 승천 시까지 참하나님이시요 참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트니스 리가 말한 '인성의 변화' 또는 '인성의 높이 올려지심'(uplifted)은 예수님의 '육의 몸'이 부활 후에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신 것을 말하는 것이지 제 3의 어떤 물질로 변질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고 한 비판입니다(고전15:42-44).

로마서에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결정

이 점은 쌍방의 공개 토론시 충분히 설명 또는 반박되었다고 믿습니다(누가이단인가, 118-121, 252쪽 참조). 롬1:4의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에 관해 더 자세히 알길 원하시는 분은 이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른 책자인 '로마서에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결정'(WL, 한국복음서원, 1996년, 245쪽 분량)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첫 열매로서 입으신 영광의 몸의 형체를 낮은 몸을 가진 우리도 장차 똑같이 입을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우리 참된 믿는 이들이 가지는 영광스런 소망 중 하나인 것입니다(빌3:21, 고전15:49, 히2:10). 장로교 신약학자 조지 래드도 다음과 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세상 끝 날의 성도들의 부활체와 동등한 서열에 있다. 예수님과 성도들은 한결같이 '영적인 몸', '영광의 몸'을 소유한다. 이 사실은 빌립보서 3장 21절에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진술되어 있다'(죠오지 래드, 부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155-156쪽).

사실 부활 전 후의 '예수님의 인성'에 어떤 비밀스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입니다. 이것은 부활 이후 40일 동안 이 땅에 더 계셨던 주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20:19, 26, 눅24: 31, 막16:12). 장로교 신학자인 조지 래드는 이러한 비밀스런 변화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증거에 따르면 부활의 순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 답은 예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이다'(위 책, 126쪽).

(3). 주님은 부활 이후에도 고유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되, 인성은 '비밀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일성수를 위해 몸만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에겐 이런 교제가 골치 아프실 것입니다. 그냥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믿으면 되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신앙 생활하려고 하느냐고 나무라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둑세계에도 다양한 급수가 있고, 영어를 배워도 초, 중, 고급반이 있듯이, 성경진리에 대한 인식 정도도 성도들의 생명의 분량에 따라 그 깊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제를 통해 빛 비춤 받고 영적인 눈이 열릴 수 있는 분은 주님을 깊이 있게 추구하는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고린도 전서 15장 전체인 58개 구절을 할애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는 말로 시작하여 부활 전후의 '인성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 '욕된 것과 영광스러운 것', '약한 것과 강한 것', '육의 몸과 신령한 몸', '흙에 속한 자의 형상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고전15:42-49, 52).

사도 바울이 열거한 위 내용들이 우리가 부활시 체험할 것 일뿐 아니라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본으로 먼저 체험하신 것임은 고린도 전서 15장 전체 문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고전15:23).

본질적으로 영이신 삼위 하나님(요4:24)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신 후, 그 육신조차도 부활시 영화롭게되어 조지 래드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세계]로 높여진 분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맏아들'(롬8:29)이십니다. 이 분이 생명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고, 지금은 몸된 교회생활 안에서 많은 형제들인 우리를 자신의 형상과 똑같이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고전15:45, 요일5:11-12, 갈4:19, 롬8:30). 오! 이 어떤 구원인지요(롬5:10, 히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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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의 요 7:39는 난해구절중 하나입니다 :

'이는 믿는 자의 받을 '그 영'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원문에는 없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But He said this concerning the Spirit, whom the ones believing into Him was about to receive ; for Holy Spirit was not yet, because that Jesus was not yet glorified). 위 영어본문은 핸드릭슨사에서 출판한 'A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 (1987년판)의 본문이며, 영어 KJV는 원문에 없는 'given'을 넣었음으로 인용치 않았습니다.

위 구절에서 '믿는 이가 받을 그 영'이 아직 없는 이유가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이라는 본문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중에 보겠지만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신 그 영'(The Spirit)이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영화롭게 된 시점인 예수님의 부활 이후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그 영'의 존재시기와 그 영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시기는 '부활시점'입니다.

원래 아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 안에 계셨고, 이 땅에 오실 때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오셨지만 이 영광은 입으신 육신 안에 가려져 있었습니다(요17:24, 1:18). 그러나 주님이 고난을 받고 부활하실 때 영광을 감싸고 있던 그분의 인성이 비로소 영광 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눅24:26, 요12:16). 주님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와 '한 알의 밀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함께 말씀하셨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요12:23-24).

이처럼 영광은 빛이신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인 것입니다(요일1:5, 계21:23). 이 주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신 결과'(WL, 한국복음서원, 1996, 118쪽 분량)라는 책자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삼위의 제 3격 성령님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 안에 이미 계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육신 하신 아들을 성령과 분리된 분으로 아시고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분리된 분으로 아십니다. 즉 성령을 먼저 등장하셨던 아버지와 아들은 저 하늘에 남겨둔 채 홀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 하나님을 각각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보는 잘못된 신관이며 성경적인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구별되시되 결코 분리됨 없이 언제나 서로 안에 계십니다. 이러한 삼위간의 상호내재는 영원 전부터, 성육신,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 아니 영원토록 분리된 적도 없고 분리시킬 자도 없습니다(요14:10, 20, 요일1:3, 2:22-24).

한 장로교 신학자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 안에 제3위 성령님이 이미 내재하셨음을 다음과 같이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성령론 평가

'성육신과 성령에서 주의할 점은 (예수님의) 육신 안에 성령께서 영원토록 거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육신 안에 충만히 거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이며... 여기서의 강조점은 날 때부터 성령으로 태어나셨음을 강조한다. 또 성령의 충만 정도가 아니라 성령자체를 소유한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과 성육신은 함께 생을 산다(이순태, 현대성령론 평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125쪽).

3. 신성(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과 인성 둘 다 소유하신 '그 영'은 부활 후에만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요7:39의 '그 영'은 고전 15:45의 '생명 주는 영' 또는 롬8:2의 '생명의 영'과 동의어로서 '맏아들' 즉 부활 후의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이런 말을 언뜻 들으면 삼위의 제2격과 제 3격이 동일하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가 분리할 수 없으나 엄격히 구별되듯이, '그 영'(아버지, 아들, 성령 + 높여진 인성) 안에서도 삼위는 분리할 수는 없으나 엄연히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엔듀류머레이

요7:39와 같은 심오한 진리는 한국교계에서는 낯설지 모르지만 국외의 일부 장로교 학자들 중에는 이 부분의 진리를 보신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화란 개혁신학 배경을 가진 경건한 목회자요 신학자인 앤드류 머레이는 그의 '그리스도의 영'이란 책자에서 요7:39의 '그 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은 인간을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심 뿐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하나님의 생명과의 교제로 돌이켜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안에 새로운 거룩한 인성(humanity)을 완성하심으로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생명을 (성도들이) 전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부활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받으셨고, 그의 인성을 하나님의 영의 처소이자 분배처로 삼으셨다. 그래서 [성령은 신인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으로서 (성도들 안에) 임하실 수 있었다'(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42-42쪽).

따라서 요7:39의 '그 영'은 삼위의 제3격만이 아니며, '신성'(아버지, 아들, 성령님)과 높여진 '인성'을 가지신 생명 주는 영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15:45). 이러한 놀라운 분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오셔서 우릴 거듭나게 하셨습니다(요3:6).또 다른 장로교 신학자인 루이스 B. 스미디즈도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신성화된 인성은, 인간들에게 예수님의 영화롭고도 완전한 인성을 공유하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도록 다른 인간의 생명 안에 부어질 수 있'는 기독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여수룬, 1991, 26-27쪽).

PS: 아들과 성령 하나님의 관계,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에 대해서는 고전15:45를 연구할 때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끝으로 The Spirit, The Holy Spirit, Spirit 등을 모두 삼위 제 3격만을 의미하는'성령'으로 번역하는 것은 혼돈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22:17은 제 3격 만을 의미하는 '[성령]과 신부'가 아니라 '구별되나 분리할 수 없는 아버지, 아들, 성령, 그리고 높여진 예수의 인성을 가지신 [그 영]과 신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도 the Holy Spirit이 아니라 The Spiri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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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6회에 걸쳐 '맏아들'(롬8:29)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지극히 성경적이지만, 한국교계 내에서는 생소한 부분이 있으며, 더구나 앞으로 '기독론'과 '성령론'이 겹쳐지면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 주님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다음은 풀러신학교의 루이스 스미디즈 교수가 쓰고 총신대학과 웨스터민스터에서 공부한 오광만 님이 번역한 'UNION WITH CHRIST'(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 여수룬, 1991년판) 내용 중 '기독론들'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에 해당되는 것들을 요약 한 것입니다.

1.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점에서 본 기독론(위 책 제1장)

첫째는 '성례주의적 기독론'입니다. 이 관점은 '십자가와 부활은 당연히 불순종과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속적인 일을 성취했지만, 이것은 지엽적인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신성화된 인성이 예수님의 영화롭고도 완전한 인성을 공유하도록 다른 인간의 생명 안에 부어 지는 것'에 강조 점을 둡니다.

즉 기독론의 중점을 예수님 생애의 역사적인'행위들'에 두지 않고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된 '존재'에 두는 관점입니다(위 책, 22-29쪽).

둘째는 계약적 기독론입니다. 이 관점은 성부와 성자간의 계약에 의해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사건)을 매우 강조합니다(위 책, 29-36쪽).

셋째는 상황적 기독론입니다. 이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강조하되, 그 강조 점을 이러한 죽음이 악의 세력들을 처리함(골2:15)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역사적 상황(situation)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데 두고 있습니다(위 책, 36-50쪽).

대략적으로 동방정교회는 '성례주의적 기독론'을 취한다면, 한국 교계 대다수 성도들은 '계약적 기독론'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장로교단의 사상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의 다음 글들은 그가 '계약적 기독론'을 취하되 '성례적 기독론'의 관점을 포함하며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인성 안으로 흘러들어 갔으며 그곳으로부터 우리의 인성 안으로 주입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밖에 남아 계신 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분이 받으신 모든 고난과 그분이 행하신 모든 사역들은 무익하며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Institutes II. xvii. 1)'(위 책, 29-30쪽).

2.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두 가지 관점(제 2장)

첫째는 '증발된(pneumatic?)그리스도로서의 성령론'입니다. 위 책 저자는 이 범주에서 빌헬름 부세트와 아돌프 다이스만의 관점을 소개했는데 핵심은 부활 전의 '예수'가 부활 후의 '주(영)'임으로, 그리스도 주와 영을 '동일'(고후3:17)하게 보는 관점입니다(위 책, 53-57쪽).

둘째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의 성령론'입니다. 칼빈은 그의 '에베소 주석'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적인 임재에 있어서 우리로부터 분리되셨지만, 그의 영의 능력으로 만물을 채우신다'고 말합니다. 즉 이 이론에 의하면 성령은 그리스도의 담지자(the bearer of Christ) 즉 예수님의 '대리인' 일뿐입니다(위 책 57-61쪽).

그런데 위 책 저자인 루이스 스미디즈는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사도 바울의 관점- 성경적 관점-을 자세히 고찰한 후, '성령(그 영)은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위 책 61-88쪽). 물론 저자는 이러한 총론에 해당되는 글에 이어서 그의 책의 후반부 전체인 약 180쪽을 할애하여 자신의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결론적인 몇 줄만 읽고 성급하게 '양태론자' 라고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이런 혼란은 앞서의 지적처럼 '그 영'을 아버지와 아들은 제외된 '제3격 하나님만'으로 볼 때 생깁니다).

스미디즈 박사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에 대해 C.H. Dodd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해 더 관심이 있는 분은 James Dunn의 'I Corinthians 15:45-last Adam, life giving Spirit'(B. Lindars & S.S. Smalley편집, Christ and the Spirit in the New Testament(Cambridge, 1973)과 'Jesus and the Spirit(philadel phia, 1975)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어 주셨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회 내의 성령의 임재는 주님의 임재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말하자면, 지상에서 그의 몸의 생활의 확장을 얻으신 셈이다'(The Apostolic Preaching (NewYork, 2nd ed., 1954), p62). (위 책, 86쪽).

지금까지 본 것처럼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민감한 요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혁신학이 주도해 온 한국교계는 위 이론들 중에서 '계약적 기독론'과 '그리스도의 대리로서의 성령론'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정통'이고 다른 것은 '이단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강조하고 사람 안에 들어오신 부활생명을 소홀히 하는 이론적 근거를 갖는 것이 같은 개혁신학자인 J.H. Bavinck가 지적한 '개혁교회의 영적 결핍'의 중요한 원인은 아닌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차영배, 성령론, 경향문화사, 1994, 61쪽).

왜냐하면 성도들 안에서 '영적 성숙'(서신서)과 '익은 열매'(계시록)를 산출하시는 분은 '구속'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부활생명'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즉 '생명 주는 영'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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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 책만 보게 하고, 다른 서적은 일체 못 보게 통제한다는 루머를 퍼뜨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저희들의 신학계간지 '확증과 비평'(http://www.affcrit.com/)의 글들을 쓰기 위해 인용한 '참고 목록들'을 훑어보시면 그 말이 거짓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오히려 지방교회가 개혁신학을 포함한 기독교계의 여타 신학들의 실상을 깊숙이 알고 있더라고 소문 내시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똑똑한 머리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평범한 비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1) 하나이며 셋이신 하나님(창1:1, 마28:19, 사45:15, 요14:11). 2)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요1:14, 갈4:4). 3) '예수님'이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고전15:45). 4) 승천 후 예수님이 하늘과 성도들 안에 동시에 계신 것(히7:25-26, 고후13:5, 롬8:10). 5) 예수님이 믿는 사람들과 결혼하시는 것(고후11:2, 계21:2, 9-10)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런 진리들을 참되게 아시려면 사도 바울 처럼 겸손히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나아가 이런 영적 실제들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엡1:16-18상, 3:14-15). 이러한 심정으로 이제 '경륜적인 방면의 하나님'과 '고전15:45'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한국교계에서는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이 너무 무시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변치 않고, 엄격하게 구별되며, 상호 내재하여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한 분이십니다(국내 일부 이단연구가들이 하나님의 위격이 '분리'된다고 하는 것은 개혁신학의 뿌리인 아우구스티누스나 터툴리안의 가르침과도 다른 무지한 '이단 가르침'입니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67, 269, 차영배, 삼위일체론, 208쪽을 참조)).

이러한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케 하고 나타난 모양도 같게 할 경륜(계획)을 수행하셔야 만 했습니다(엡3:2-11, 요10:10하, 벧후1:4, 요일3:2). 이것을 계획(아버지), 성취(아들), 적용(그 영)하시는 일을 위해 삼위 하나님이 거치신 긴 과정들을 가리켜 학자들은 '경륜적인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이종성, 위 책, 257, 261쪽).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지방교회측이 '하나님이 육신 입어 하나님-사람'이 되셨고(요1:14), 이 '하나님-사람이 부활 후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고전15:45)하는 것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전능성을 위배한 이단사상이라고 공격하십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안 되셨고',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안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적 사실조차 정면 부인하는 끔찍한 이단사상] 이면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사건중심'으로만 이해해 온 신학사조가 잠재의식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신 성육신이 한 번 해본 '사건'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하나님만"에서 "하나님과 사람"으로의 경륜 방면에서 엄청 난 '존재의 변화'입니까? 이 비밀을 영 안에서 참되게 본다면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성육신의 엄청난 경이'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것입니다.

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And without controversy,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딤전3:16)!!

2.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십니다. 

고전 15:45 하반 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지막 아담'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구별되나 '결코'(never) 분리될 수 없는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육신(인성)을 입으신 분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생명 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 자신인데,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시 '신령한 몸(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신 것뿐입니다(고전15:44, 빌3:21). 이러한 '되심'(became, was made)의 시점은 예수님의 부활시점입니다(눅24:26, 행3:13).

어떤 번역본은 원문(조오포이에오 #2227)를 '[살려주는]' 영이라고도 하나 다른 용례와 번역본들을 참고할 때 '[생명 주는] 영'이 더 무난합니다. 그러나 '살려주는'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요6:63, 5:21, 롬8:2, 11, 고후3:6).

즉 성육신 안에서 예수님은 구속(redemption)을 위해 육신이 되셨다면(요1:14, 29), 부활 안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주입(the imparting of life)을 위해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죄사함 뿐 아니라(고전15:3),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요10:10하, 5:40). 따라서 한국교회들이 설교나 복음전파 시 '죄사함' 만 강조하고 '생명' 방면을 소홀히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롬5:10 원문참조).

3. 개핀 교수님과 차영배 박사님의 토론이 말해주는 것

'성령론-구원론 부교재'(차영배, 도서출판: 경향문화사, 1994)에 소개된 고전15:45에 대한 위 두 분의 서면 토론내용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두 분 다 존경받는 개혁신학자이며, 차 박사님은 직접 국내신학교 교수로서, R. B. Gaffin 박사님은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자신에게 배우고 귀국하여 국내 신학교 교수가 된 제자들을 통해 한국 교계 내 신학이론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위 책에 소개 된 개핀 박사님의 고전15:45에 대한 입장은 '본문 내용이 삼위 상호간의 본질적이고 영원한 관계를 다룬 것이 아니라 경륜적, 기능적 관점이라는 전제아래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선물은 높아지신 그리스도 자신, 곧 교회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시는 생명을 주는 (성)영이며,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일치한다'고 합니다(위 책, 49쪽). 이에 대해 차 박사님은 '고전15:45의 살려주는 영'은 뼈와 살이 없는 성령을 가리킨 말이 아님으로 성령과 동일시 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충만케 하시는 성령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함은 위격을 혼동할 위험이 크고, 양태론적 색채가 농후하다'고 반박합니다(54쪽).

이에 대해 개핀 교수님은 '높아지신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은 '본체론적', 위격적 혼동 없이 '기능적'으로 단일이라는 것(functional oneness)이다'고 재차 반박했습니다(63-64쪽).

위 토론을 평가하자면,

첫째, '생명주는 영= 단순한 제3격만의 성령'은 물론 아닙니다. 고전15:45 본문 자체가 이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둘째, 개핀 박사님은 위 내용을 경륜적 관점에서 서술했다면, 차 박사님은 이것을 본질적 관점에서 '양태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차 교수님은 개핀 교수의 '본체론적 혼동 없이' 라는 단서를 고려했어야 했습니다. 성육신 안에서도 예수님 인성 안에서 위격 혼돈 없이 상호내재 했던 아들과 성령이 부활 후라고 해서 위격 혼동을 가져올 일이 없습니다.

셋째, 본문에서 '생명주는 영'이 단순한 3격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신격(아버지 아들, 성령)+ 높여진 인성'을 가지신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는 인식이 두 분에게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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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조연배우'와 '세트'도 있지만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맏아들(롬8:29)'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이 입으신 인성을 다룬 핵심진리입니다.

즉 삼위 하나님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가, 아니면 셋으로 분리되는가?, 또한 우리가 영접한 주님이 인성을 가지시는가, 벗어 버리셨는가 아니면 인성을 아예 입으신 적도 없는가? 하는 점들을 다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나님이 상호내재 하심으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할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 글에서 열거한 난해구절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와 터툴리안은 '분리된 세 하나님' 사상을 배척합니다.

성경본문(요14:10-11, 20)과 위 정통교부들은 국내 일부 이단연구가들이 주장하는 '분리된 하나님(들)' 이단사상을 배척합니다. 정통 삼위일체 이론의 최종주자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로 계신다. 위격의 하나가 아니라 실체의 하나이다. [하나님과 아들이 분할 할 수도 없고, 분리할 수도 없는 분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사람이 한 인류에게 속하면서 세 개인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셋으로 나눌 수 없다. 하나님의 세 위격을 삼중적(triplex)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각자가 유리(분리)되어 있는 실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격은 상호내재 한다던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한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67, 269쪽).

'삼위는 구별되나, 나누어지거나 분리되지 않는다'는 터툴리안의 견해는 이미 소개 드린 바 있습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208쪽).

삼위일체 신앙이 잘못되면 기독론, 성령론도 당연히 잘못되게 되어 있음으로 한국교계 내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의 '분리된 세 하나님 이단사상'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합니다.

2. 맏아들과 관련 된 난해 구절들에 대한 간략한 해설

거듭 말씀드리지만, '맏아들'은 구별되나 분리할 수 없는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육신이 부활시 신령한 몸으로 변형된 생명 주는 영이십니다(고전15:45). 이러한 분이 이 시간에도 대제사장으로서 하늘 보좌 위에서 계시며, 동시에 생명으로서 이 땅위의 참된 거듭난 성도들로 된 그리스도의 몸 안에 계십니다. 이런 성경적 관점을 갖는다면 다음 구절들은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요1:51]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창28:11-22의 야곱의 꿈의 성취입니다. 맏아들인 인자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인 벧엘을 건축하도록 하늘로 땅을 향해 열려있게 하고 땅을 하늘에 연결시키는 사닥다리이십니다. 실제로 주님은 머리로서 하늘의 모든 풍성을 교회에 전달하시고(엡1:22-23), 이 땅 위의 주님의 몸인 교회지체들을 아버지께 이끌고 계시는 사닥다리이십니다 (엡2:18, 요14:5).

[요7:39]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제3격 성령'이 아직 없다는 말이 아니며, 영화롭게 된 인성을 가진 아버지, 아들, 성령의 실제이신 '생명 주는 영'이 부활 전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행9:4]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합니다. 역사적으로 사울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결코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승천 후 맏아들은 생명으로 제자들 안에 들어와 하나로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몸인 제자들을 핍박한 것은 곧 주님자신을 핍박한 것입니다(골3:4, 고전6:17).

'예수님 사랑해요'를 외치면서 주님의 지체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이것은 마치 주님 얼굴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발로 그분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작은 지체'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임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마25:40).

[롬1:4]는 '이 아들로 말하면,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활시 예수님의 인성이 신령한 몸(고전15:44)으로 높여짐으로' 그분 안에 있던 신성이 영화롭게 된 인성을 통해 밖으로 충만히 표현되신 것을 말합니다. 고전15:45의 '생명주는 영'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롬8:10]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롬8:34]는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각기 다른 두 분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맏아들이신 주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 계시면서 동시에 '생명'으로 믿는 이 안에 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롬8:2).

[히2:11-12]는 거룩케 하는 자(맏아들)와 거룩케 함을 받는 자(많은 형제들)가 다 한 아버지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요12:24). 놀랍게도 예수님은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꺼려하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형제'라 부르지만(요20:17, 롬8:19, 벧후3:15),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또는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형제님' 하고 친근하게 부를 수 없다면 거기에 이미 계급적인 성직자 평신도 제도인 니골라당의 흔적이 있는 것입니다(계2:6,15). '형제'는 직분이 없는 평신도를 가리키는 저급한(?) 호칭이 결코 아닙니다.

[계5:6]은 하늘에 계신 '어린양의 일곱 눈'이 땅에 보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합니다. 위 말씀은 분리할 수 없는 삼위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인성을 입고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생명 주는 영으로 이 땅에 오심을 말합니다. 삼위는 상호내재하나 구별된 상태로 영원토록 계시기 때문에, 2격이 3격과 혼동을 일으킬 일이 없습니다. 단지 성경에서 '영(Spirit)'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무조건 '아버지', '아들'은 아니고 제3격인 성령하나님만'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선입관이 우리의 사고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을 뿐입니다.

오! 우리 안에 지금 계신 이는 비밀하고 신령한 몸(인성)을 가진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 즉 '하나님- 사람'이십니다. 이 분은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상호내재하시며 인성도 있으신 그 영 하나님(생명)으로 우리 안에 사십니다. 이 분이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에서는 아니나 우릴 맏아들인 자기의 형상과 똑같이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롬8:28-30).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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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신 부담(burden)을 글을 통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지를 묻고 순종하다보니 이제 글을 마무리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핵심사항을 재 강조함으로 '맏아들'(롬8:29)에 대한 교제를 마칠까 합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작은 지체들의 교제가 한국교계 내에서 '맏아들'에 대한 성경적 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어떤 표현은 분별을 위함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다른 분들을 정죄 하는 것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음 상한 분이 계셨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1. '맏아들'(롬8:29)은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포함합니다.

1) 한 분 하나님이신(사45:5, 고전8:4)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그 위격이 엄연히 구별되시지만, 상호 내재하심으로 영원토록 결코 분리되지는 않으십니다.

2) 그런데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God)은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고 '하나님 사람'(God-man)이 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1/3하나님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딤전3:16, 골2:9)이심으로, 아버지와(혹은) 성령은 육신을 입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성경적 입니다(요14:10-11, 마1:18).

3) 예수님은 삼위가 상호 내재하는 '온전한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죄만 없으시지 평범한 우리들과 똑같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요19:5, 행13: 38, 딤전2:5). 성육신과 부활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성 자체에는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4)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의 육신(인성)은 부활시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셨습니다(고전15:42-47). 이것은 인성을 벗어버리거나 인성이 제3의 물질로 변질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인성이 신령한 몸을 입은 것을 말합니다(고전15:44).

5) '하나님'이 성육신 후 '하나님 사람'으로(요1:14), 또한 부활 후에는 이 분이 신령한 몸을 입은 하나님-사람이신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15:45). 만일 누가 하나님의 불변성만을 주장하며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부인한다면 심각한 이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6) 성경에 의하면 주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요 생명이실 뿐 아니라 많은 형제들을 가진 맏아들이십니다(롬8:29). 이 분은 지금 하늘 보좌 위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시는 동시(롬8:34)에 이 땅에 믿는 이들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살고 계십니다(골3:4). 이러한 실체가 한 '새사람' 또는 '그리스도의 몸과 머리'입니다(엡2:15, 골1:18).

2. 거듭난 후의 신앙생활은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로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로 예정하셨습니다(엡1:4-5, 롬8:29).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복음으로 불러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요3:6), 혼을 변화시키고 계시며(롬12:2, 고후3;18), 결국 우리의 몸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며(빌3;21, 롬8:23),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경은 이 목적을 위해 합력하고 있습니다(롬8:28).

속히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고(엡4:13-16) 새 예루살렘이 완성되기를(엡5:25-27, 계21:2, 9-10) 하나님이 고대하시고, 이기는 자들이 고대할 뿐 아니라, 썩어짐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는 피조물들도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롬8:19,21).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소서! 세월을 아껴서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시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엡5:16-17, 벧후1:3-4)! 이 땅의 모든 주의 종들은 마땅히 당신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이 한가지를 위하여 수고하게 하소서(갈4:19).   아멘.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22 05:00

성경이 계시하는 성육신의 참된 의미를 아는 지금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사람 속에 제한 받으신 기묘한 기적' 앞에 놀라며 감사할 뿐입니다. 

(1) 성육신은 구약에서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사람'(God-man)이 되신 기묘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기 이전에도 아브라함(창18:2, 13, 33), 마노아의 아내(삿13:3, 10, 22) 등에게 사람으로 나타나셨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 때 사람으로 오셨던 하나님과 신약의 성육신은 어떻게 다릅니까? 

총신대학과 합동 신학원을 졸업한 어떤 장로교신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구약시대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사자'로서 나타나서 사람처럼 행동하셨지만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육신을 가지고 나타나신 것은 아니다. 즉 구약에서는 '육체를 가진 사람처럼' 나타나셨을 뿐이지만, (신약의) 성육신을 통해서는 '실제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의 나타나심은 사람의 구속을 위한 것이 아니나 인간의 구속을 위한 주님의 성육신 때는 육체를 입으셔야만 했다"(이남종, 모세 오경에 나타난 그리스도, 새순출판사, 1992, 80-81쪽). 


(2) 성육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참사람의 육신(인성)을 입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14에 의하면 말씀이신 하나님은 어느 날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창 3:15에서 예언되고 갈 4:4에서 성취된 사실로서, '하나님'(God)이 사람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시어 '하나님-사람'(God-man)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 할 것은 하나님이 입으신 이 육신은 죄만 없으시되 평범한 사람들의 육신과 똑같은 육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진짜 육신이 아니라 '환영'(phantasm)을 입은 것이라거나 사람이긴 하지만 '사람의 영' 부분은 '로고스'로 비밀스럽게 대치되었다고 이단적으로 말했습니다(요1:14, 요일4: 2-3, 회복역 각주 참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된 채로 있다고 하거나, 정반대로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융합되어 제3의 물질이 되었다고 잘못 가르쳤습니다. 

진지의 변호와 확증 - 위트니스 리

그러나 그리스도는 위의 이단적인 가르침들과는 달리 완전한 참 사람이십니다(요19:5, 행13: 39, 딤전2:5). 또한 신성한 생명과 본성에 더하여 사람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시되, 두 본성은 혼돈 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제3의 본성을 산출하지도 않습니다. 즉 성육신 하신 우리 주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complete God, perfect Man)이시고, 두 본성을 가진 한 인격이시고, 분리됨이나 혼잡 됨이 없는 비밀들 중에 비밀(골2:2)이시고,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WL, 진리의 변호와 확증, 한국복음서원, 1996, 91-97쪽). 

(3) '삼위(일체)하나님 전체'가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신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많은 분들이 삼위 중 아버지는 아니고 아들 하나님(1/3)만 사람이 되셨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내려보내고 저 하늘 어디엔 신비하게 남아 계신다고 알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은 승천하신 아들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두고 계신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어쨌든 그분들 신학으로는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 가까이 또는 사람 안에 오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요일2:23, 4:15, 요14:10,-11, 20, 23). 이렇게되면 그분들이 영접한 영생도 아버지하나님은 빠진 불완전한 하나님의 생명이 되고 맙니다. 더구나 그분들은 성도들이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살전1:1, 요일2:24). 

그런데 이것은 삼위 하나님을 칼로 '무우 토막 자르듯' 잘라내고 분리시킨 잘못된 삼위일체관의 심각한 후유증일 뿐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은 아닙니다. 

  성경이 밝히고 있는 성육신은 구별되나 분리할 수 없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포함한 온전한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골2:9, 딤전3:16). 이점은 성육신 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거처인 장막의 실제라고 말한 성경말씀들에서도 증명됩니다(요1;14원문, 2:19 -21, 이 남종 위책, 134-135쪽 참조). 따라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물질적인 성막에 나아갔지만 신약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포함한 온전한 하나님을 만나려면 움직이는 성막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예수님이 성막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바로 그 장소인 '속죄소'라고 말합니다. 즉 구약의 출25:17의 속죄소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kapporeth인데 70인 역은 이것을 '힐라스테리언'으로 번역했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롬3:25의 화해장소(개역성경은 화목 제물로 오역함) 역시 출25:17의 속죄소와 똑같은 '힐라스테리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람이신 주 예수님 자신이 구약의 성막의 실제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 '속죄소'의 실제임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주님이 지금은 믿는 이들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단지 1/3 하나님만이 아니라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 전체가 아들 안에서 사람이 되신 것임(골2:9, 딤전3:16)을 아는 것은 '맏아들'을 바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21 05:00


한국교계에 닫힌 핵심진리 - 『맏아들』- (2)

2. 대부분의 장로교인 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교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정작 이러한 "예정"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도록" 예정하고,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 되도록(predestinate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로마서 8장 29절의 핵심내용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 롬8:29 본문자체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당 본문을 여러 번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들의 형상'은 무엇이며, '많은 형제들'은 누구의 형제들이라는 말인지, '맏아들'은 또 무엇인지, '독생자'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장래 운명과도 직결됨으로 소홀히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사실 '맏아들'은 '주님의 부활'과 관련이 깊은 단어이지만, 이것을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삼위(일체)와의 관계'와 '성육신의 단계'를 성경적으로 이해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먼저 '삼위일체관'에 대해 교제해 보겠습니다. 

(1) 한국교계 내엔 잘못된 삼위일체관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치고 '한 하나님에게 세 인격이 있으시다'로 요약되는 소위 정통 삼위일체관을 부인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위 (지방)교회 성도들도 물론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세 인격'이 '구별'만 되는가 아니면 '분리'되기도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면 '삼위일체'에 대한 그 사람의 참된 이해가 무엇인지가 적나라하게 폭로됩니다. 보수 정통을 자부하는 장로교 고신 교단의 신대원을 졸업한 손무덕 목사님은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유일신 삼위일체 하나님

그의 책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유일신 삼위일체 하나님'(중외출판사, 1998년) 서문에서 한국교계의 삼위일체교리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삼위일체 교리는 가르치는 사람도 찜찜하고 배우는 사람도 개운치 않은 실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속 시원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이단 정죄 위험성을 무릅쓰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을 세워보겠다며 쓰신 저자의 책 내용조차도 '비 성경적' 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성 삼위 하나님은 각각 계신 곳이 다르다'(위 책 22쪽). '성부와 성자는 몸과 생명을 따로 가지고 계신다'(27쪽), '육체를 따로 가지신 성부 하나님'(30쪽), '성 삼위 하나님을 다 합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37쪽), '한 분 하나님이란 예수님이 제외된 성부 하나님만을 지칭함'(35쪽) 등 삼신론 또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님은 아니고 '아버지만 하나님'이라는 끔직한 이론을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소위 정통교리를 수호한다는 이단연구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누가이단인가?

전 예장 통합측 이단사이비 상담소장이며 현재 한기총 이단 전문위원인 최삼경 목사님은 (지방)교회측과의 토론에서 '분리된 세 영들', (아버지는 저 멀리 하늘보좌에 계시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신다'는 등 각각 떨어져 계신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계속 주장했습니다(누가 이단인가, 도서출판: 생명나무, 1999, 115-116쪽). '분리된 하나님'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 외에도 월간 교회와 이단 발행인과 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장인 이 대복 목사님(월간 교회와 이단, 98년 11월호, 57-59, 62쪽 참조), 예장합동 측 일부 이단연구가들이 포함되십니다(총회교육국 편, 기독교의 이단들, 1997년, 155쪽 참조)'.  

(2) 성경은 동시존재 하시며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삼위 하나님을 말합니다
천연적인 사람의 생각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들을 땅으로 보냈으면 두 분이 분리되었으니 땅에 오신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셔야 하고, 또 아들은 높은 저 하늘에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셨으니 하늘에는 안 계셔야 말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그 속성상 구별은 되시나 결코 분리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면서 동시에 땅에 오신 아들 안에 계시며, 아들도 땅에 계시면서 동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에 여전히 계십니다. 이 점은 우리 안의 성령도 마찬가지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 보좌에 계시되 동시에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 안에도 여전히 계십니다. 즉 요한 복음 1:18은 이 땅에 오신 아들이 땅에 계신 그 순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속에 계심을 말합니다(동사시제가 현재임). 요 3:14도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영어 KJV참조). 또한 요8:16, 29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에 보내심 받은 아들과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요14: 10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서로 안에 계신 분들이 어떻게 분리된다는 말입니까? 설사 분리된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둘 또는 세 하나님들이 되어 버리니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는 성경 내용과는 다른 이단사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고전8:4, 6, 롬3:30, 딤전2:5, 신4:35, 39, 사45:5). 

(3) 바른 삼위일체관은 삼위가 구별은 되나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

한 교계신문은 최삼경 목사님과 (지방)교회간의 진리토론을 지켜 본 뒤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걸핏하면 삼위일체론이 틀렸다며 남을 '이단'으로 공격하던 한 인사가 그 자신이 삼위일체론에 있어 이단성이 있음이 제기되어.... 과연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각기 분리되고 구별되는 '셋'이 정통인지 아니면 셋은 구별되지만 서로 안에 거하시면서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통인지 그 논쟁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교회연합신문, 1999. 4. 11일자). 그런데 성경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상호내주함으로 분리가 안됨)을 믿으라'(요14:11)고 명령함으로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삼위가 구별되실 뿐 아니라 심지어 분리되기도 하신다고 믿으면 뒤에 보게 될 '성육신' 단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이로 인해 '맏아들'에 대한 이해도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끝으로 장로교 신학자들 중에는 '삼위는... '디스팅크티오(구별)'이지만, '디비수스'(나누어짐)되거나 '세파라투스(분리)되지 않는다'고 성경적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분들도 있음으로 마치 한국 장로교단 전체의 삼위일체관이 틀렸다는 뜻으로 이 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총신대출판부, 1986, 208쪽).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16 05:00

"삼위일체론은 신학 전반의 초석이 되는 신학의 본질적 원리(principium essendi)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이는 어떠한 신학도 세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초석이 잘못 놓여졌을 때, 신학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위 내용은 삼위일체 신학에 있어 한국교계 권위자중 한 분인 차영배 박사의 개혁교의학-삼위일체론(총신대 출판부, 1986년) 서문 중 일부입니다. 삼위일체 신학은 비밀이요, 복잡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이단적인 가르침들을 분별할 수 있고 또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정통 삼위일체론 :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구별은 되지만, 분리됨 없이, 영원토록 서로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더 분배해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해 가시는 것입니다. 위에 나온 정통 삼위일체론과 다르게 아래 사항은 이단적인 가르침입니다.  

1. 양자론: 혹은 단일신론(Monarchianism) 이단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인정하고 아들과 성령의 신성을 한 단계 낮게 평가하거나 아예 부인함으로 '하나님이 한분 뿐'이라는 말씀을 지키려는 무리들입니다. 아들 하나님의 여호와 되심을 부인하고, 성령 하나님을 하나의 power로 생각하는 여호와의 증인들(Arianism)이 이 범주에 속한 이단입니다. 

2. 양태론: 혹은 사벨리안주의(Sabelianism, 혹은 Modalistic Monarchianism) 이단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구별된 위격을 부인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일본질의 세형태, 세 에네르기가 한 단자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완전히 한 격위(Person), 삼위는 동질일 뿐 아니라 동격이다 등으로 주장했던 이단입니다.  

3. 삼신론: 잠재의식 속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될 뿐 아니라, 심지어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믿는 이단입니다. 아버지, 성령은 아니고 아들만 성육신 했다, 지상사역시의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셨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각각 한 영으로서 도합 '세 영들'이다라고 주장하는 전 예장 통합측 사이비이단 상담소장 최삼경 목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개혁교의학-삼위일체론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하나님을 포함한 완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하셨으며(골2:9), 지상 사역시의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시며(요14:10, 20), 하나님을 영으로 표현했지만 세 영들로 말한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요4:24). 심지어 최삼경 목사와같은 장로교도인 존 캘빈도 성부는 성자와 함께 동시에 한 성령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서 본질적으로 성부및 성자와 다른 신일 수 없다.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전적으로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전적으로 계시기 때문에 옛 교부들은 삼위의 본질이 서로 분리되는 것을 용납지 아니했다"(차영배, 전게서, 229쪽)고 성경적으로 말함으로 정통 장로교인들과도 다른 최삼경 목사의 이단성을 선명히 드러내어 주고 있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14 16:57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복음의 전파"와 함께 "복음의 변명과 확정"(the defense and confirmation of the gospel)도 말했습니다(빌 1:7).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으로서, 그분의 인격과 역사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에는 항상 대적의 훼방과 공격이 있음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마 16:18). 이제 한국 땅에서도 진리 위에 서서 온유한 영으로 바른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한 사도 바울의 영을 만진 한 무리의 외침이 필요한 때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하여 여호와의 증인처럼 아들과 성령의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거나, 양태론 자들같이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구별을 부인하는 이단들은 쉽게 분별됩니다. 그러나 분리된 셋을 주장하는 삼신론자들은 한국교계에서 폭로되지 않은 채 은밀하게 '하나님의 경륜'을 대적하고 좌절시켜 왔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구별된다는 정통 가르침에서 더 지나쳐서 '분리되기도 하는 분'으로 가르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듯이 정통 신학자들은 "셋"이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일관되게 말합니다. 만일 "분리된 셋"이라면 그것은 "세 하나님들"이지 더 이상 성경이 말하는 한분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위하나님은 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고, 서로 구별은 되나 분리는 될 수 없다"(H.Bavinck, G. D. II 2, p288 "Ze Zijn unus Deus, ze Zijn niet te scheiden" - 터툴리안).  

개혁교의학 - 삼위일체론

삼위는 우눔(unum, 하나)이고 '우누스(unus, 한분)가 아니며, 서로 "디스팅크티오(distinctio, 구별)이지만, "디비수스"(divisus, 나누어짐)되거나, "세파라투스"(separatus, 분리)되지 않는다(차영배, 개혁교의학 - 삼위일체론, 총신대출판부, 1986, 208쪽).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전적으로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전적으로 계시기 때문에(요 14:10), 옛 교부들은 삼위의 본질이 서로 분리되는 것을 용납지 아니했다" "...삼위가 분리됨으로 삼중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차영배, 앞의 책, 229, 231쪽 - 존 칼빈). 

이제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공개적으로 반복해서 부정하고, 오히려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다고 성경대로 말한 사람들을 양태론자라고 공격하는 이단적인 무리들을 한국교계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할 것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09 05:00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보낸 해명서는 다음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전용복 목사에게 보낸 항의서신입니다.
 

발신인: Daniel Towle 외 2 인,   1997. 9. 20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Tel : 714-996-8196, Fax : 714-996-8195   

수신인 : 경남 울산 갈릴리 교회 전용복 목사님
Tel : 0522-35-9354, Fax : 0522-35-1191   

제목 :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정죄 시정요구 및 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어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자료수집과정에서 확보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소책자와 원고들을 많은 고려 끝에 정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의했음을 통보드립니다('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1989, 진영문화사), '지방교회의 정체'(유사종교연구 합본 제3집, pp. 149-167), '지방교회의 정체'(1990, 교회교육연구원),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pp. 48-51).  

교리적인 오해와 왜곡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은 위 글들의 머리말에서 (지방)교회를 '오대양사건', '짐 존스의 인민사원사건'과 교묘히 연결시켜 마치 (지방)교회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집단살인극이나 벌이는 단체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동일한 머리말에서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그 이단성을 교묘히 위장하여 순진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인들에게 파고 들어오는' 악한 단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님은 진영문화사가 발행한 소책자의 결론( 27쪽)에서 '지방교회는 성경을 너무도 잘못 가르치고 파괴하는 이단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요 정식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된 말들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목사님이 책임지셔야할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정짓는 두려운 일을 하려면 당연히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기준은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글을 검토해 볼 때, 우리는 목사님이 충분한 사실파악이나 판단기준의 공정성도 없이 자신의 단편적인 지식과 목사님의 교단이 지지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함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추후 진리토론시 다루되 간략하게 문제점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현재 목사님이 다루신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통합측 최 삼경 목사님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해 공개토론 중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참고하시면서 우리가 지적한 것들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I. 하나님에 대한 교리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1) 삼위일체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양태설을 주장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양태설을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태설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위트니스 리의 '금등대'의 예에서도 분명히 아버지(금)와 아들(등대)과 그 영(일곱 등잔)의 '구분' 또는 '별개'의 위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 책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된,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상의 내용은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에 잘 나타나 있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는 상식에 속한 내용들입니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편, 35-41 쪽, 281-311 쪽, 진리의 변호와 확증, 9-23 쪽, 49-83 쪽,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7년 3월호, 97년 7월호). 이러한 성경적이며 정통적인 가르침을 양태설이라고 한다면 이는 양태설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내용들은 결코 양태설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건대, 목사님이 사용하신 '삼위의 독립된 위격'이라는 말은 '분리된 삼위'의 의미로 쓰이면 삼신론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같은 난해한 주제에 

신약의 결론 - 하나님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신앙을 판단함에 있어 위트니스 리의 책자에 흩어져있는 내용들을 일부씩 떼어내는 식의 연구로는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연구를 위해 적어도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요약한 책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을 여러번 정독하셨어야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것과(고전 8:6), 세 구분되는 위격이 계신 것(마 28:19)과, 세 분 모두 영원하시고(사 9:6, 히 1:12, 히 9:14), 상호내재하시며(요 14:10, 20), 동시존재하시는 것(고후 13:13)을 믿습니다. 

(2) 그리스도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하셨을 때 그는 그의 두가지 본성을 혼합해 사람도 하나님도 아닌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인 새로운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라고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말과 '새로운 본성'이라는 말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변호와 확증 - 위트니스 리

만일 이러한 문제가 위트니스 리가 그의 책에서 사용한 '밍글링'(mingling)이란 단어의 오해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측이 상세히 반박한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pp164-166)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는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결코 그리스도 안의 양성의 혼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분(그리스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다. 그 분은 완전한 인성 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 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96 쪽, 1996, 한국복음서원). 이러한 관점은 칼케돈 신조와 정확히 일치되는 정통적인 관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목사님은 '주님이 인성을 취하실 때 그 인성도 벌써 하나님의 아들의 한 속성이 된 것이며 거룩한 것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목사님 말씀대로 변화산에서 이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또한 '내가 오늘(예수님의 부활시)' 너를 낳았다'(행 13:33)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문맥상 이 말씀이 성육신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성령  

목사님은, '지방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만 강조할 뿐 회의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말하며 사도행전 15장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 28절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라고 말합니다. 즉, 외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회의는 인간의 시기와 다툼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회의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의는 성령의 임재가 가득하여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의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좋은 사람이 되려하거나 여러분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하지 말라' 는 말을 오해하셨습니다. 그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인간의 노력 또는 율법의 행위는 주님 앞에서 쓸모 없으며 오직 내적 기름부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내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페이지에서 위트니스 리는 주님의 역사로 자신이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골로새서의 말씀은, 주님이 만유가 되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생활을 개선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II. 인간에 대한 교리(신인연합, 삼분설, 죄)

(1) 신인의 혼합, 연합  

목사님이 '혼합'(mingling) '연합'(compounding)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지적하신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출애굽기 30장의 관유에 포함된 향품에 대해 강해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표론 상 이 구절들에서 '관유'와 '네가지 향품'의 연합을 신성과 인성의 연합(compounding)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밍글링(mingling, 혼합)은 레위기 2장 4절에서 양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소제'(기름과 고운가루)를 만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성경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성경에 연합의 사실은 있으나 혼합된다는 말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혼합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도의 신격화를 가리키며 이러한 주장은 너무도 참람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목사님의 생각처럼 사람이 신격화 된다거나 하나님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영원히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일 뿐이며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0-162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고린도 전서 6장 17절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는 말씀 중에서 이 '한 영'이 '성령인지 사람의 영인지를 말하기 어렵다'고 한 말을 비판하며 이러한 표현이 너무도 참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이 말씀에서 '한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 밝혀주시고, 왜 이것이 성도의 신격화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 삼분설 

 초대 교회 교부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각 교단은 좀더 현실적인 사안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목사님은, '삼분설이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이분설도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며 이분설이 '인간구조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라고 했으나 사실은 '장로교 신학의 견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분설은 루이스 벌콥의 견해요 그의 저서를 대부분 번역하여 자신의 가르침으로 사용하는 박 형룡 박사의 견해입니다. 목사님은 장로교단 외에 수많은 교단에서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삼분설을 지지하는 수 많은 교부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언급할 수 있으나 지면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영과 혼과 마음의 각 부분들에 대한 가르침도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 보이는 '영혼'은 원문에 의거해서 '혼' 또는 '영'으로 번역되어야 맞습니다. 헬라어나 영어는 '영'과 '혼'이 각각 다른 단어이며 또한 '영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나 영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강해 - 위트니스 리

우리는 목사님이 영지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시는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물질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이고,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처음에는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 후 부패되었다'고 주장함에도 목사님은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인간의 전인적 타락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몸은 육체가 되었고 혼은 부패되었으며 영은 죽었다고 함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선명하게 가르칩니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 보급판, 한국복음서원, pp. 257-271, 사람의 영, p.47,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참조).  

(3) 죄 

목사님은, "죄는 사람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타락의 원인측면에서만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Sin) 또는 악이 인격의 형태로 사람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사람들)에 들어왔다(롬 5:12상)'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다만 죄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롬 5:10)요 '마귀의 자녀'(요일 3:9)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생명과 본성이 마귀의 자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 밖의 공중에서 역사하는 인격으로서의 사단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시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 사단을 처리하셨습니다(히 2:14). 이러한 말씀이 목사님 표현처럼 '참으로 괴상한 망언'이라면 목사님은 히브리서 2장 14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이 입으신 육신은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매달은 놋뱀으로 예표되었습니다(요 3:14-15). 이 예표에서 장대는 십자가를, 뱀은 사단을, 놋뱀은 육신을 가졌으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즉 그분은 죄가 없으셨으며 다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 만을 입으신 것입니다(롬 8:3). 이러한 진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곧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는 말씀으로도 확증됩니다.  

III. 구원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혼합(연합)되지 않았다...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따라 어떻게 '주와 합(연합)하는 자가 되며(고전 6:17), 신(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벧후 1:4),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습니까(갈 4:19)?  

IV. 성경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경시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저서의 문맥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가 언급한 '낡은 성경적 지식을 따르지 말라... 오직 예수뿐이다' 등의 의미는 '율법의 마침' 또는 '구약의 모든 예표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의미이지 결코 성경을 경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구약의 예표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실물인 자가 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의 사진만 붙잡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사진 자체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가나안 땅을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각종 원수들은 무엇입니까? 천국에도 믿는 이들의 원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풍성한 산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을 예표하며 각종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리의 육신과 세상을 상징합니다.  

V. 교회에 대한 교리

(1) 지방교회만 유일한 참 교회라고 주장한다. 

 목사님은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말을 오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교회(사람들)'라는 단어와 '집회소(건물)'이라는 단어를 혼돈했기 때문에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는데 과연 한 집회소에서만 모였을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라는 단어는 '부르심 받아 나온 무리들(사람)'이라는 뜻이며, 집회소(건물)는 교회가 모이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소는 여러 개일 수 있으나 그 지방에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저런 교파가 일체 없고 오직 그 지방의 명칭을 따른 교회만 있습니다. 거듭난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므로 다만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행 8:1). 그 외에도 많은 성경구절들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진리를 증명합니다(행 13:1, 롬 1:7, 고전 1:2, 엡 1:1, 빌 1:1, 골 1:2). 거듭난 무리들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지 하나님에겐 그들 모두가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교파를 만드는 것은 분열이며 그리스도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고전 1:11-13). 바울은 분열을 강하게 책망했으며 이 일에 있어서 어떤 합리화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목사님과 같은 장로교 학자이신 이종성 박사와 '한국장로교회사'를 쓰신 김진복 교수님도 교회의 분열을 개탄스러워 하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합니다.  

(2) 모든 조직, 제도, 직분, 규율, 사업을 부인한다. 

(지방)교회는 성경에 있는 모든 직분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을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적인 계급질서를 가져오는 소위 '성직자-평신도 제도'는 주님이 미워하시므로(계 2:6) 우리도 미워합니다.

목사님은 현재 일반 기독교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신학교, 목사고시제도, 교회매매, 권위주의적 목사제도, 총회선거시의 정치 정략 등에 대한 분명한 성경근거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3) 예배의 모든 형식, 규범을 무시한다.

목사님은, '인도자가 없이 아무나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배를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목사님 표현처럼 '제멋대로 말하는' 예배는 성경에 없으나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말할 수 있고(고전 14:31, 23) 화평의 하나님을 따라 찬송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예언하는 예배는 있습니다. 목사님이 지지하시는 주보 순서에 따른 예배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성경근거는 무엇입니까?

(4) 성례를 규모 없이 함부로 행한다.

성찬을 매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역자만 말씀과 성례집행을 할 수 있다는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VI. 종말에 관한 교리

(1) 이기는 자들의 환난 전 휴거

계시록을 합당하게 해석하려면 우선 본문을 100 번 이상 정독한 후 계시록 전체의 조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그 특성상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사건의 시점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어 볼 때, 개인의 주장은 있으나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은 12장의 '사내아이'는 예수님을, '올려간다'는 말은 '부활과 승천'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사내아이'는 이기는 자를,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를, '올려간다'는 말은 '휴거'를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해와 달과 별을 가진, 광야로 도망간 여자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며 둘째, 사내아이가 올려간 직후 하늘에서 사단이 내어 쫒겼으며 셋째, 본문의 말씀은 대 환란이 임박한 시점이므로 주님의 부활과 승천과는 시점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기는 자들로서 환난 전에 휴거되어 사단을 쫓아낼 자들입니다.

목사님은, 14장의 14만 4천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4절에서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모든 성도들이,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거나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거나 입에 거짓말이 없거나 흠이 없는 자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이들의 징계

목사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잘못해도 결코 징계를 받지 않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죽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징계를 말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성도 중에서도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며, 구원을 얻기는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으리라고 말하는 고린도 전서 3장 15절을 목사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또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하라고 경고하는 로마서 14장 10-13절과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고린도 후서 5장 10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 불태워질 공력만 쌓고, 형제들을 함부로 판단하며, 악을 행한 믿는 이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문맥에 의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구원받은 성도이며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만일 목사님 말씀대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구원받은 사람도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영벌과 멸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VII. 결론

이상에서 간단히 본 바와 같이 목사님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자세히 연구하지도 않으신 채 함부로 이단으로 단정지어 인쇄 배포하심으로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셨습니다. 문서는 그 특성상 일단 인쇄되어 배포되면 내용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그 효과가 반영구적입니다. 또한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계속 재인용되어 거짓을 확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 책자들과 관련된 이러한 구체적인 피해사례들을 이미 수집하여 보관 중입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저술한 내용으로 인한 피해는 너무 지속적이고 심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주님 안에서 평강 가운데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합니다;

첫째, 충분한 연구 없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정죄 하는 일을 삼가 해 주십시오.

둘째, 이 편지에서 저희측이 개괄적으로 언급한 항목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셋째, 목사님의 글들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피해에 대한 목사님의 해명서를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 앞으로 보내 주십시오.

넷째, 이미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제의합니다. 주제선정과 토론방법 등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참고로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종말론을 주제로 쌍방 각 6회씩의 원고를 한국 내 기독교 잡지 또는 교계신문에 연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을 발신일로부터 14일 내에 팩스로 보내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진리를 사랑하시고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상호간 오해와 갈등을 씻어내고 무엇이 밝은 진리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저희의 건설적인 제안에 대한 목사님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08 05:00

장로교 고신측(전용복 목사) 책자에 대한 항의서신 1

장로교 고신 교단은 1991년 전용복 목사의 거짓된 연구결과를 근거로 (지방)교회측을 이단시했습니다. 이에 (지방)교회측은 그것이 너무 근거 없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인내하며 수 년간 대응을 미루어 오다가 그것이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인용되는 것을 보고 '97년 6월에 고신측 총회장에게, 그리고 9월에 전 용복 목사에게 각각 항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98년 3월에 전 목사에게 답변을 촉구하는 서한을 재차 발송했습니다. 즉,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공개토론에 응하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문을 쓰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고신측의 총회장인 정 순행 목사는 유감을 표명하며 고신 교단 소속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고 (지방)교회에 도전할 의도가 없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보내왔습니다.(다음 글 참조) 그리고 전 용복 목사는 총회장의 해명서로 마무리 짓고 싶고, 만일 토론을 하려면 1년간의 연구기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은 그러한 서신교환을 모은 것들입니다.이제 주님의 사랑과 빛 앞에서 더 이상 진실이 왜곡되지 않기를 원하고 왜곡되었던 진리를 바로 잡음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발신인 : Daniel Towle 외 2인, 1997. 6. 18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U.S.A. 
Tel : 714-996-8190, Fax : 714-996-8195    

수신인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참조 : 고신측 유사종교연구위원회 위원장, 간사 김 길배 목사님, 연구위원 전 용복 목사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8-10
전화 : 02-592-0433-4, 팩스: 02-592-5468 

제목: 고신측의 이단결정에 대한 항의 및 공개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한국 기독교계 내에서 저희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게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이 1991년 10월 4일,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선언한 사실에 대해 정식 대응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우선, 우리는 귀 교단에서 일방적으로 조사하고, 결정하고, 발표한 '지방교회에 대한 부당한 이단결정'을 결코 인정하지 않음을 통보합니다. 둘째, 우리는 귀 교단이 이런 거짓된 결정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셋째, 우리는 쟁점이 되는 진리의 각 항목에 대한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의 (지방)교회에 대한 연구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구 내용은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거짓되고 명예훼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 판단과 결론 도출 과정에서 많은 왜곡과 오해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귀 교단에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임하는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귀측이 인지하시도록 1980년도 초에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있었던 소송사건을 참고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1970년 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경출판사인 토마스 넬슨사와 미국이단연구협회(SCP)는 사실이 아닌 내용들에 근거하여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글들을 출판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2-3 년에 걸쳐 그들과 대화하고 자료를 제공하며 시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시정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 그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에 걸친 재판 결과 캘리포니아 고등법윈은, 그들의 글이 거짓이며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명예훼손임을 판결했습니다. 그러므로 법정은 1985년 6월 26일, SCP와 저자가 119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캘리포니아 고등법원 판결문 번호 540 585-9 참조). 또한 토마스 넬슨사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책(Mindbenders, 마인밴더스)을 미전국의 서점에서 회수하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1983 년 4월 10일자).  ( 원본 - 영문 클릭 / 한글번역 클릭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문제를 세상법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귀 교단과 대화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무시되고 방치된다면, 우리는 부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방안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 교단이 (지방)교회에 대해 언급한 모든 주제들인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등에 대해 한국내의 공개된 지면을 통한 진리토론을 제안합니다(예를 들면, 귀 측의 월간지인 '월간 고신', '현대종교' 또는 '교회와 신앙' 등). 참고로, 우리는 현재 장로교 통합 측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하여 이러한 공개 토론을 진행 중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방)교회측은 귀 교단과의 토론에 Daniel Towle과 조 동욱 목회자가 응할 것이며, 귀 측은 고신 계통의 목회자 또는 신학자 가운데 어느 분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1991년도 이단 판정자료 연구자인 전 용복 목사님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또한 토론시 다음의 자료들에서 (지방)교회에 관해 언급된 모든 항목들이 포함되고 검증되기를 희망합니다.  

 1. 유사종교연구집 제3집 149-167쪽(지방교회의 정체), 전 용복 목사
 2 '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도서출판 : 진영문화사, 1989년, 총27 쪽, 전 용복 목사
 3. '지방교회의 정체', 교회교육연구원, 1990년, 총34쪽, 전 용복 목사(1-3은 동일 내용임) 
 4. 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48-51쪽(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전 용복 목사
 5. '이단사상연구(지방교회)' 김 요섭외 4인의 연구논문 (지도교수 : 이 환봉), 고신대학 신학과
 6.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Watchman Nee의 사상 비판(지방교회를 중심으로)' 1-156쪽(연구논문), 황 건철 목사 

한 그리스도인 단체가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를 함부로 이단으로 매도하고 비판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일이며,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또한 이단판정의 기준과 내용도 마땅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쌍방의 진리 중 어느 편이 성경적인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밝힐 수 있는 기회인 이러한 토론제의를 귀 교단이 적극 수락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한 귀 교단의 답신을 본 서신의 발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팩스로 넣어 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 안에서,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06 05:00

아래의 글은 장로교 합동측 교육국 주관으로 펴 낸 <기독교의 이단들>이란 책자에서 (지방)교회들을 거짓되게 소개하고 비판한 것을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한 서신입니다.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이곳에 소개합니다. 독자들이 성경과 신앙 양심 가운데 공정하게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발신인 : 000 외 1인 - 1998. 4. 30.(미국시간)
The Church in Fullerton 1330 N. Placentia Ave Fullerton, CA 92831
전화 : 714-996-8190, 팩스 : 714-996-8195 

수신인 : 심 창섭 교수님 외 3인 서울 강남구 대치3동 1007-3 총회회관 4층 교육국
 전화 : 서울 564-0783, 팩스 : 539-0203
 참조 :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제목 :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 중 (지방)교회를 언급한 부분에 대한 항의 및 시정요청  

저희들은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본 서신은 귀 측이 저술하여 시판하신 '기독교의 이단들'이라는 책자에서 저희가 믿는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을 근거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이단시하는 것'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단'이라는 용어가 단순한 교리해석상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위험한 사교집단'처럼 여겨지는 한국교계의 풍토를 감안할 때 저희 측은 귀하들의 인쇄된 문서를 통한 이단정죄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단들

같은 믿는 이들을 이단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롬 14:10-13). 또한 이단정죄를 받는 측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영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가하는 행위임으로 지극히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 내에 한국 장로교단 내에서 너무도 경솔하고 무책임하게 남을 이단시하는 경향들이 관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근에 장로교 통합측 소속 어느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삼분설을 믿으니까 이단'이라는 참으로 상식 이하의 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목사의 엉터리 이단기준에 의하면 이분설을 지지하는 장로교인들만 정통이고 삼분설을 지지하는 전세계 침례교인들, 하나님의 성회 성도들도 다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된 내용들을 반복해서 문서로 유포하는 무책임하고 불법한 행위는 이방인들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참되게 믿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한 자기 말에 대해 책임을 추궁 당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출 20:16, 마 12:36-37). 

 저희들은 귀하들이 저술하신 위 책자를 심도 있게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위 책자에서 귀 측이 취했던 연구관점과 접근방법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의 신앙을 진실 되게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시각으로 본 사물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롯한 (지방)교회 성도들은 성경 적이고 근본주의 적인 신앙유산에 따른 지극히 건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지 귀 측의 단정처럼 이단 사교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귀하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근거로 책자를 통해 저희들을 정죄하신 것을 공개적으로 바로잡는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우선, 저희들은 오해에 근거한 귀 측의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자 합니다. 

I. 귀하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근본주의의 뿌리인 존 넬슨 다비의 신앙유산을 이어 받은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한 채 그분들을 체계적인 신학수업도 못 받았고 소위 '정통신앙'에서 빗나간 사람들로 취급하신 것(위 책자, 163쪽)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관을 참되게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신앙배경과 그 사람이 쓴 책자들 전반에 나타나는 내용들을 파악한 후 유일한 기준인 성경말씀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귀측은 문서를 통해 남을 공개적으로 이단시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면서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앙배경을 전혀 고려치 않으셨고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시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자들은 읽어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판사가 재판기록을 보지도 않고 사형을 선고한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인 것입니다. 

 1. 귀하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판함에 있어서 두 분의 신앙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 채 기본적인 신앙조차도 없는 사람들처럼 단정하신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교회역사를 볼 때,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신실한 믿는 이들이 계속 있어 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한 분들과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신앙형태를 형성하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귀하들이 장로교인들로서 칼빈의 영향을 받으셨듯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근본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넬슨 다비의 신앙유산을 이어받은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미국종교백과사전'을 쓴 고오든 맬튼 박사가 최근에 5판까지 수정 보완된 자신의 백과사전에서 일관되게 (지방)교회존 넬슨 다비의 형제회와 함께 정통기독교의 범주인 '근본주의'(Fundamentalists)계열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http://local-church.tistory.com/283)

대부분의 개신 교단들이 성경적 진리에서 멀리 빗나간 천주교의 오류로부터 점진적인 개혁을 꾀하는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반면에, (지방)교회 성도들을 포함한 근본주의 노선은 천주교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성경자체에서 믿음생활의 본을 찾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교도인들이나 웨슬리 파가 했던 것과는 달리 존 넬슨 다비를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자들은 사도시대 교회(초대교회)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성경에 집중함, 성경적인 생활양식, 성경적인 신학, 성경적인 교회론'의 채택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흐름이 워치만 니를 비롯한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곳 미국에서 정통 근본신앙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신학교들 - 예를 들면, 달라스 신학교, 무디 성경학교, 바욜라 신학교 - 과 D. L. 무디, 피어슨, 무어 해드, 부룩스 등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의 신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다섯 가지 근본신앙'으로 지칭되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격(그분의 동정녀 탄생을 포함),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리적 속죄,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로부터의 실제적 부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재림'을 굳게 믿음으로써 1920년대 현대주의 이단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정통신앙을 수호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롯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도 기본신앙을 구성하는 이러한 다섯 가지 항목들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를 믿지 않으므로 이단이다'라는 식의 귀 측의 정죄는 너무나 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비판인 것입니다. 

2. 워치만 니는 한국복음서원에서 전집형태로 발간한 62권에 해당하는 저서가 있고 위트니스 리는 약 20년에 걸쳐 완성한 신구약 전체 주석을 포함, 약 400권 분량의 저서가 있으나 귀하들은 이러한 책자들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치 못한 채 성급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신약의 결론

특히 한국복음서원이 1991년에 출판한 '신약의 결론' 8권 -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1,2),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 은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관찰에 의하면 귀하들이 워치만 니를 비판하고 위트니스 리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공개적으로 책자화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면서도 그의 조직신학인 '신약의 결론' 책자들을 단 한 번도 참고하지 않으신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역사를 경륜적인 관점에서 쓴 몇 권의 책자(예를 들면, 하나님의 경륜, 그 영과 몸)를 그것도 처음부터 (지방)교회를 정죄할 의도로 왜곡되게 쓰여진 책(번역서)에서 거짓된 결론을 인용해서 비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귀하들도 언급(위 책자, 146쪽)하셨듯이, 위 내용들이 악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거짓된 자료들임이 이 곳 일간신문에 수개월 동안 게재된 저희 측의 반박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된 바 있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모든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짓정죄가 반복되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귀 측이 이러한 <사실도 아닌 내용>을 근거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을 함부로 이단시하여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할 치외법권적인 권한을 가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귀 측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없이 경솔하게 추론하여 정죄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첫째, '지방교회의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 변화, 또는 그 과정으로만 설명한다'(위 책자 154쪽) '성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가 곧 아버지라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지방교회는 생각할 수 없다'(위 책자 155쪽). '지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적인 죽음으로 보지 않고 계략적인 죽음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결과로 죽으신 것이 아니고...(위 책자, 160쪽)  

-반박 : 귀하들의 경솔한 비판과 달리, 위트니스 리는 칼케돈 신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정통기독론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믿습니다(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pp163-166, 98년 5월호 참조). 또한 위트니스 리는 자신이 쓴 '그리스도론' 611-612쪽에서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마태복음 20장 28절을 근거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지방)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죄의 결과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귀 측의 말도 안 되는 정죄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저희들은 심창섭 교수님외 3인의 신앙양심을 향해 질문드립니다. 귀하들은 위와 같이 심히 거짓되고 엉뚱한 내용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을 이단시하는 책자를 제작 배포하는 심각한 일을 하시기 전에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를 장장 709쪽에 걸쳐 집대성한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 책자 '그리스도'(1991년, 한국복음서원)를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습니까? 

 둘째, '지방교회가 삼위일체가 아닌 일위일체를 믿기 때문이다' (위 책자, 156쪽) 

-반박 : 뒤에서 항목을 달리하여 반박할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의 조직신학 책자 '하나님'(총 510쪽)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위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기초로 남을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셋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신학지식의 빈곤과... 체계적인 신학지식을 갖고 있지 못함이 그들의 주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워치만 니는 그의 간증에서 1926년에 '십자가의 의미'를 1927년에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1934년에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초급과정에서나 다루는 그야말로 기초적인 내용을 그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과대평가 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위 책자 163-164쪽). 

-반박 : 한국교계 내에서 비록 (지방)교회 생활을 하진 않지만, 워치만 니 책자를 통해 은혜를 받은 분들이 일반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들 중에도 많이 있다는 점은 귀하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곳 미국에는 위트니스 리의 신구약 주석서(오디오 메시지)를 매일 또는 주 1회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이 미 전역에 걸쳐 50개(스페인어, 중국어 133개는 별도)가 넘습니다. 귀하들은 체계적인 신학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20년에 걸쳐 신구약 전체 주석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위 두 분의 저술들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경솔한 비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워치만 니가 '십자가'나 '교회의 하나'나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실행이 없는 공허한 신학지식을 알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귀하들의 지적처럼 신학교 초급과정에서 위와 같은 진리를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신학생들이 '십자가'를 배웠으나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이 없고, '교회의 하나'를 배우고 나와서 오히려 끊임없이 교회를 분열시키거나 분열을 방관한다면, 또는 그리스도 이외의 것에 마음이 분산된다면 그 배운 지식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나 귀하들이 비난하는 워치만 니는 핍박과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본 진리의 빛대로 살았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그처럼 문제가 많은 것은 신학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댓가를 지불하고 절대적으로 자기가 본 이상을 따라 사는 사람(행 26:19)이 부족해서가 아닙니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공정합니다.  

II.'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성경 안에 묻혀있고 사람들에게 감취어져 있다. 그 진리는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새롭게 발견된다"는 워치만 니의 말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성경을 지나치게 영해 했고 이것이 오늘날 지방교회의 이단적 주장의 요소가 되었다는 비판(위 책자, 148-149쪽)은 사실이 아닙니다. 

귀하들은 위 워치만 니 주장에 대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 들어 반박하셨습니다. 이 말은 완전한 계시를 담고 있는 성경 자체를 말할 때는 맞지만 역사적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면죄부가 사람을 구원시킬 수 있다는 부끄러운 실행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으나 말틴 루터에 의해 '이신칭의'의 진리가 회복됨으로 구원관이 바로 잡아졌습니다. 하나님은 말틴 루터 이후로도 그분의 비밀한 말씀들을 주님을 사랑하는 무리들에게 계속 열어주고 계십니다(고전 2:9-10).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상실치 않는다는 진리(성도의 견인) 는 비록 알미니안주의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주의 종이었던 캘빈을 통해 주님이 보여주신 귀한 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의 모든 진리가 장로교인들에게만 열려졌다거나 장로교인들이 지지하는 진리는 항상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캘빈이 유일하게 주석서를 쓰지 못한 요한계시록은 여전 히 많은 장로교인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을 대부분의 장로교인들은 실제의 광물질인 금과 보석들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박형룡, 교의신학-내세론, 361쪽 1988).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계시록 21장 9-10절에 의하면 참으로 불경스럽고 이단적인 것이 됩니다.(해당 본문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곧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지 박형룡 박사의 해석처럼 새 예루살렘을 신부가 그 안에 거주하는 물질적인 성이라고 하지 않았다). 즉 성경은 일관되게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지 '광물질'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고후 11:2, 계 19:7-8, 22:17, 호 2:19-20). 물론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집의 건축재료로 언급된 금과 은과 보석이 실제 광물질이 아니듯이 새 예루살렘을 구성하는 요소인 금과 각종 보석들도 영적 해석이 필요한 표징이지 실제 광물질이 아닌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신약성경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엡 1:23)(에클레시아)가 건물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인 예가 전혀 없는데도(이종성, 교회론,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95, 36-42쪽). 장로교인 중에는 심지어 예배당 건물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 간다' '나가시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식의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들이 살아 계신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광물질(새 예루살렘)을 신부로 취한다고 믿고 있고 콘크리트(또는 나무)로 만들어진 예배당 건물도 주님의 몸(교회)의 일부라고 믿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이단사상이라고 비판받는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교회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진리는 주님의 긍휼로 오늘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 성경 전체의 조망가운데 투명하게 열려졌습니다. 신약의 결론-교회론, 새예루살렘 책자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의 성경해석 방식은 원어의 의미와 문법과 역대의 신실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감안한 균형잡힌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성경해석에 관해 자신이 쓴 책자(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한국복음서원, 1991년)에서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59쪽)을 최우선 원칙으로 제시한 것은 위트니스 리가 성경을 지나치게 영해한다는 귀하들의 정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III. 귀하들은 "워치만 니 사상이나 가르침만 가지고는 그 이단성을 규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148쪽)라고 했고,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에 담긴 주요 교리들을 상세히 소개(149-151쪽)한 후,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지방교회의 교리가) 정통교회의 신조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시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이 (지방)교회에 이단성이 있다고 지적한 모든 내용들은 위트니스 리의 책자들(하나님의 경륜, 그 영과 몸)에 대한 귀하들의 오해와 잘못된 시각에서 온 것이지 (지방)교회가 다르게 가르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희들은 (지방)교회의 신앙을 오해한 귀 측의 비판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자 합니다. 

  1.신론에 대한 반박 

 삼위일체의 교리는 비밀하여 사람의 제한된 머리로 체계화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진리를 다룰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겸손한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또한 역대로 신실한 주의 종들을 통해 밝혀진 진리의 빛들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귀 측이 제시하신 니케아 신조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하여 성자는 성부와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에 그 강조점이 있었습니다(이장식, 기독교신조사 1집, 11쪽). 동일 본질을 가지시면서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실질적인 위격을 가진다는 삼위일체관(실질적 삼위일체론)은 근본주의 노선 안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도 변개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와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도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8년 5월호 참조).  

'한 하나님 세 위격'이라는 말은 사람(인성)과 연관되지 않을 때는 그리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이 되시고(요 1:14, 골 2:9, 딤전 3:16),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마지막 아담(예수님)이 생명 주는 영이 되시는(고전 15:45, 골 9:39, 요 20:22) 경륜적인 방면을 언급하는 성경말씀들은 '하나님의 인성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말함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거룩한 하나님이 실제로 육신을 입으신 것(새로운 존재방식)을 부인한다면 즉시 이단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레니우스, 힙폴리누스, 터툴리안 같은 초대교부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구별하여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라고 불렀습니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56-262쪽). 

 만일 누구든지 '내재적 삼위일체론'만을 고집한다면, '삼신론'에 빠질 위험이 있고, '경륜적인 삼위일체론'만 고집한다면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이 되는 것을 교회 역사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역사가인 필립 샤프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Many passages of the Nicene fathers have unquestionably a tritheistic sound, but are neutralized by others which by themselves may bear a Sabellian construction ; so that their position must be regarded as midway between these two extremes"(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I, p 674,”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5-166쪽). 

위와 같은 진리인식이 분명한 위트니스 리도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집대성한 교부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이종성, 262, 261쪽) 및 다른 정통교부들과 동일하게 이 두 방면-내재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모두를 취함으로 삼위일체론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삼위일체론은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할 진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의 균형 잡힌 삼위일체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저희 측이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믿는 것처럼 오해하심으로 다음과 같이 거짓되게 정죄하셨습니다(위 책자, 153쪽). 

 귀측의 비판1 : "지방교회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이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동등하게 존재하는 분임을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책에서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소유하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하나님의 세 단계인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겉다르고 속다른 것이다"(위 책자, 151쪽) 

 -반박 : 귀하들이 비판을 위해 인용한 위 내용들은 오히려 위트니스 리가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일체론 모두를 지지하는 균형 잡힌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은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하나님의 경륜'은 책제목이 말해주듯이 경륜적 삼위일체론의 방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지방)교회의 가르침이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귀하들이 오해하는 '한 하나님의 세 단계'라는 표현도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분리할 수 없는 한 하나님(삼일 하나님)으로서 거치신 단계를 말하는 것이지, 양태론자들처럼 한 위격이신 아버지가 아들이 되시고(고유한 아버지는 없어짐), 아들이 성령이 되심(고유한 아버지, 아들은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판2 : "지방교회는 일신 삼위가 아니고 일신 삼역이라는 것이다'(위 책자, 152쪽), '하나님이 잠시 예수 그리스도로 변하여 나타났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따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고 이미 계신 하나님이... 모양만 달리하여 나타났다고 주장한다"(152-153쪽). '하나님 혼자서 자신의 경륜 을 이루실 목적으로 세 가지 역할을 하셨다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신관이 바로 이 양태론을 따르고 있다... (지방교회는) 한 위격의 하나님이 단지 삼역을 해낸다는 삼중적 의미로만 이해한다(153쪽)'. '그러나 지방교회는 삼위를 믿지 않는다..."(154쪽) 

 -반박 : 위 비판은 (지방)교회는 '삼위'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므로 귀하들이 비난의 근거로 삼은 동일한 책자인 '하나님의 경륜'에서 위트니스 리가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귀 측의 주장이 근거 없는 거짓말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트니스 리가 귀 측의 주장처럼 정말로 '한 위격'의 하나님만 믿는다면 '삼위'를 언급하는 부분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는 위 책자 도처에서 세 위격의 하나님(삼일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 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우리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엡 4:6), 그리스도가 계시고(고후 13:5), 성령이 계신다(롬 8:11)는 사실이다. 삼일 하나님(삼위일체)의 세 인격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31쪽). "주님을 찬양하라. 이 놀라운 분, 삼일하나님이 오늘 우리 영 안에 계신다'(38쪽). "오늘날 삼일 하나님이... 죽음에 들어 가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셨다. 그 놀라운 삼일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이 모든 실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 안에 있다"(43쪽).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이다. 부활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삼일 하나님 자신이 있고, 우리의 생명과 본성이신 그분이 있다(169쪽). "우리가 구원받을 때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셨다"(201쪽).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인격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은 이제 우리 영 안에 계신다"(247쪽).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가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는 양태론자라는 귀하들의 정죄는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일체론을 함께 믿는 위트니스 리의 정통적 삼위일체관을 바로 파악치 못하고 경솔하게 단언한 잘못된 정죄임이 밝혀졌습니다. 저희들은 결코 '한 위격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세 위격이 서로 안에 거하시는(상호내주)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은 귀하들의 글을 검토하면서, 귀하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고유하신 구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는 분리된 세 분 하나님(삼신론)을 믿는 것은 아닌가-세 위격 간의 서로 안에 거하심(상호내주)을 부정함-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 점은 추후 규명될 날이 올 것입니다.  

2. 기독론에 대한 반박 

귀 측의 (지방)교회의 신론에 대한 오해는 당연히 기독론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을 '성자가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뜻'(위 책자, 155쪽)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신 것입니다. 또한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가 쓴 '분리되어 있지 않다'라는 말을 잘못 해석한 나머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지방교회는 생각할 수도 없다'라고 말함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믿음도 없는 사람들처럼 매도하셨습니다. 

-반박 : 위와 같은 오해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구별되나(distincto)' '분리(separatio)'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전통적인 개념(이종성, 그리스도론, 1994년판, 294쪽)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위트니스 리의 '분리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귀하들이 '세 위격 간에 구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의 위 말은 하나님은 분리된 두 하나님 또는 세 하나님이 아니고 한 분이시지만(고전 8:4,6), 그렇다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고유성이 혼잡 되지도 않으신다('구별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물론 위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고유하고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고 확실히 믿습니다(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지방)교회측 원고 참조). 

성경은 아들 하나님(성자)이 성육신 하셨음을 말하지만 이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과 분리된 성자가 아니라 아버지, 아들, 성령이 상호내주하시는 아들이십니다.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보내는 쪽과 보냄을 받는 쪽이 분리될 수밖에 없지만 영적이고 비밀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즉 성경은 보내신 분이신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실 뿐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아들과 지상 사역시 서로 안에 계신다(상호내주)고 말합니다(요 8:16, 29, 14:8-11, 17:21,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162-163쪽). 

정통 신학자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상호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즉 어거스틴은 상호내재를 "both( 아버지, 아들, 성령님)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로 정의했고, George Bull 주교는 "상호내주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재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로 정의했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투스 스트롱도 상호내주를 "거룩한 삼위일체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지방)교회측 원고 참조). 

이처럼 위트니스 리는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기독론을 가지고 있음(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그리스도,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163-169쪽)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이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신 것은 사신 하나님 앞에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3. 인간관에 대한 반박 

 (지방)교회의 인간관에 대한 귀하들의 비판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는 달리 성경은 사람 안에 사탄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요, 위트니스 리가 로마서 6:6과 7:24를 해석하면서 죄와 사망을 사탄과 동일시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다음과 같이 차례로 반박하고자 합니다. 

 비판1 : 성경은 사람 안에 사탄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박 : 이러한 주제는 대단히 복잡한 신학적 논쟁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서신 안에서 자세히 다루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추후에 있을 진리 토론시 충분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원칙적인 면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선 위트니스 리는 사탄을 인격적 존재를 가진 타락한 천사장으로 보며 주관적으로는 타락시 사람 안에 죄(Sin,롬 5;12)로 들어와서 사람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역사하고 있고(롬 7장, 엡 2:2, 마 16:23, 베드로=사탄), 객관적으로는 공중에서 역사 하다가 결박당한 후 무저갱에 갇힐 존재(계 12:9-10, 20:1-3)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의 '사탄이 사람 안에 있다'라는 말의 의미는 한 면으로는 사탄이 여전히 사람 밖에서 존재하며 역사 하지만 타락한 사람 안에서도 죄성을 통해 역사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 독사의 자식-라고 말합니다(요일 3:10, 8, 12, 요 8:44, 마 3:7, 23:33). 이러한 말씀들은 사탄이 사람 밖에 있을 뿐 아니라 사탄(마귀)의 자녀 안에서도 유기적인 관계(자녀관계)를 통해 역사 하는 자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 8장 44절에서 보듯이 사탄의 자녀들은 아비인 사탄에게서 전수받은 어떠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내주하는 죄(Sin)를 악(the evil)과 동일시했는데(롬7:0-21), 이 '악'은 또한 사탄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악한 자는 사탄 자신인 것입니다(요일 5:18-19, 2:13-14, 3:12, 마 6:13, 요 17:15 원문참조) 

 그러나 박형룡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타락한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은 강조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마귀의 자녀(요일 3:10)'가 되었는지 그리고 주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요 3:14, 12:31, 히 2:14)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학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적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저희들이 귀하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마귀의 자녀가 되었으며 마귀의 자녀들은 그 아비인 마귀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것도 다만 비유일 뿐이고 실제가 아니라고 하시겠습니까?

비판2 : 위트니스 리가 사탄과 죄와 사망을 동일시했다는 비판에 대하여

-반박 : 우선 귀하들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인용했다는 원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book of Romans uses two terms, "the body of sin(6:6) and "the body of death" (7:24). The body is called "the body of sin" because Sin is in the body. The body simply became the residence of Sin, which is the embodiment of Satan. What, then is "the body of death"? The source and power of death is Satan. Sin is the embodiment of Satan and death is the issue or effect of Satan"(Witness Lee, The Economy of God, P109)

위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위트니스 리는 '사탄의 체현'(the embodiment of Satan)이 죄'(단수인 Sin)라고 했고, '사탄에게서 나온 결과'(the issue or effect of Satan)가 '사망'이라고 했지 귀하들의 비판처럼 죄=사망=사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이지만 죄와 사망은 결코 인격적 존재가 아니므로 죄와 사망과 사탄을 동일시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귀하들의 비판은 위트니스 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비판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12절이 말하는 사람 안에 들어온 '죄'가 다만 '불순종한 행위'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죄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 속에 들어와서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타락한 사람들 속에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인지는 추후 토론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162-164쪽 참조). 또한 사망이 사탄에게서 나온 결과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경이 말하는 바(히 2:14)임으로 별도의 입증이 필요없다고 봅니다.

4. 구원에 관한 반박

성경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과거시제)고도 말하고(엡 2:8), 더욱 구원을 이루라거나(빌 2:12), 더욱 구원을 얻을 것(미래시제)(롬 5:10)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구원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만도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박상걸, 성경적 구원론, 1995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들은 위트니스 리의 구원관에 대한 진지한 연구도 없이 함부로 (지방)교회의 구원관이 성경적인 구원관이 아니라고 단정하셨습니다. 저희는 '(지방)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사탄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지 않는다'라는 등 귀 측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단언에 대해 경악할 뿐입니다. 귀 측은 주님 앞에서 충분한 기도 후에 이러한 책자를 발간하셨습니까?

귀 측이 참되게 (지방)교회 성도들의 구원관을 알고자 하신다면 위트니스 리가 장장 천 페이지가 넘게(1084쪽) 믿는 이들의 구원에 관해 밝혀 놓은 책자들인 '신약의 결론-믿는 이들 I, II'(한국복음서원, 1991년)를 정독하여 보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그러나 귀하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저희의 구원관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삼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요 1;14, 29, 19:30, 행 20:28). 부활하신 후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 15:45, 요 6:63, 10:10 원문). 그 후 그 영은 믿는 사람들 안에 영원한 생명(요 3:16, 요일 5:11-12)으로 들어오셔서 믿는 이들의 영을 거듭나게(구원)하시고(요 3:6), 점차적으로 혼을 구원하고 계시며(벧전 1:9 원문, 고후 3;18), 결국엔 몸을 구속하심(롬 8:23, 빌 3:21)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롬 5:10 원문참조, 히 2:10).

이러한 (지방)교회의 구원관은 귀하들의 거짓된 정죄(위 책자, 158-161쪽)와 달리 지극히 성경적인 구원관이라고 저희들은 확신합니다.

5. 교회관에 대한 반박

교회관에 대한 귀하들의 비판 요지는 지방교회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졌고,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교회관을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난1 (지방)교회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지고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 저희들은 '배타적인 교회관'이 아니라 정상적인 모든 믿는 이들이 동일하게 인정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저희가 보고 믿는 진리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실하게 실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1) 교회관 : 성경은 교회(그리스도의 몸)가 주님이 갈망하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마 16:18, 엡 3:9-10). 그리고 목회자들을 포함한 모든 은사자들은 이러한 교회건축을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엡 4:11-12). 그러므로 무엇을 교회로 볼 것인가는 신앙생활의 목표와 연관지어 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그리스도)의 충만'(엡 1:23)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주님과 하나된 유기체(행 9:4, 요 15:5)만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성교회는 건물이나 사람이 만든 조직(또는 기관)도 교회라는 잘못된 인식(이종성, 교회론, 153쪽 참조)을 가지고 '거듭난 사람들인 유기체만'이 교회라고 성경적으로 말하는 (지방)교회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명도 없는 조직이나 건물이 주님의 몸을 구성한다는 발상은 신앙생활의 핵심을 빗나가게 할 뿐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2) 교회직분 : (지방)교회는 장로와 집사라는 성경상의 직분(딤전 3:1-13)을 인정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다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는 진리도 믿고 실행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주일 날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소위 목회자만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성직자는 물론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으로써 직접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14:4 원문참조, 14:1, 31, 벧전 4:10-11, 엡 4:15). 특별히 고린도 전서 14장 4절의 원문에 따르면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하는 자가 교회(그리스도의 몸)를 건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31절은 '너희는 다...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몸의 분열 : 저희들은 주님의 몸은 하나이며 믿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엡 4:4, 고전 1:10-13, 3:3)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교회를 건축하고 계시는 주님의 사역을 정면으로 훼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성교회의 태도는 믿는 이들 간의 분열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처럼 보입니다(예를 들면, 통합 측의 최삼경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교파의 분열도 있다고 하고, 고신 측의 전용복 목사님은 분열의 유익성을 말하기까지 함). 그러나 개신교 측의 한 양심적인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분열'을 '죄악'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개신 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다. 종교개혁자들 자신이 분열 상태에서 개혁운동을 전개하여 각기 자신들의 교파교회를 세웠다. ... 1517년부터 개신 교회는 분열, 따라서 예수의 몸을 찢는 일에 대한 반성도 없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칼빈은 보이는 교회는 분열되어 있으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하지만 그것은 성서적 교훈이 아니다"(이종성, 교회론, 152쪽).

비판2 :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교회관은 터무니없고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 많은 분들이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한 지방에 한 교회'를 ' 한 지방에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무리로 구성된 교회'로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배타적인 교회관을 가졌다는 비판도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귀하들도 인용하셨듯이, (지방)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기성교회 교인들까지)을 그 지방에 있는 한 교회의 지체로 인정(위 책자, 161쪽)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장로교인, 침례교인, (지방)교회 교인의 구분이 따로 없고 거듭난 사람들은 다 '그 지방에 있는 교회(단수)의 구성원'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교회관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귀 측의 교회관은 무엇입니까?

또한 지방의 범위의 문제는 믿는 이들 사이의 분열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한 지방, 한 교회' 원칙은 대부분의 서신서의 명칭(제목)과 각 서신서의 수신인의 범위(고후 8:1, 갈 1:2, 계 1:11, 롬 1:7, 빌 1:1, 골 1:2)를 볼 때 초대교회에서 일관되게 실행된 진리였습니다('도'(province)를 언급할 때는 '교회들'(복수)로, 한 도시(city)를 지칭할 때는 '단수의 교회(행 8:1)'로 구분함).

이처럼 우주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인데 공간과 시간의 제한이 있음으로 편의상의 주거지역인 지방을 기준으로 00교회라고 부를 때(행 8:1, 13:1, 14:23, 딛 1:5) 모든 분열은 즉각 폭로될 것입니다. 주거지역을 기준으로 교회를 구분하는 원칙이 분열을 방지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개신교 신학자의 글을 통해서도 확증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큰 문제중 하나를... 개교회주의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이에 대한 해결책은) 한 교회가 한 지역을 책임지는 형태이다. 이 제도가 정말로 정착되면 교회나 교단 사이의 대립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같은 교단 소속 교인들을 주거지역의 교회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불필요하리 만치 갈갈이 찢어져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재결합과 연합이 우리의 최대과제라 생각한다"(정훈택, 총신대교수, 교회와 신앙 96년 12월호, 99-101쪽)

지금까지 본 것처럼 귀하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시한 내용들은 오해(양태론, 일신삼역)였거나 성경진리(사탄의 소재, 교회의 범위)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귀 측의 문서를 통한 이단정죄는 한 무리의 신실한 믿는이들에게 반영구적인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 생명의 능력을 공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서 너무도 쉽게 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현실에 대해 깊은 아픔을 느낍니다. 더구나 비교적 균형있는 관점을 가지고 계신 합동측 목회자(신학자)들이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을 오해함으로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을 문서로 이단시 한 것은 피차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서에 의한 상처는 반영구적인 것이며 반드시 문서로 치유되어야 합니다. 저희들은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다음 사항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1. <기독교의 이단들>에서의 (지방)교회에 대한 입장은 귀하들 개인의견인지 아니면 합동측 교단의 공식의견인지를 밝혀 주십시오.

2. 앞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지방)교회를 이단시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해 주십시오.

3. <기독교의 이단들>책자는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허위사실>을 담고 있음으로 서점재고를 즉각 회수하여 주시고, 재판 발행의 중단을 문서로 약속하여 주십시오.

4. <기독교의 이단들> 책자로 인해 (지방)교회가 입은 심각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귀 교단 소속 신문을 포함한 2개 기독교 신문에 저희들의 본 항의서한 전문과 귀 측의 해명서를 게재하여 주십시오.

5. 만일 귀 측의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고 느끼신다면 우리는 제 3자가 진실을 판단 할 수 있도록 귀 측이 선정하는 기독교신문 또는 월간지를 통한 지상토론을 제안합니다.

위와 같은 저희 측의 요청에 대한 귀 측의 원칙적인 입장을 1998. 5. 30.(발송 일로부터 30일)까지 팩스로 보내 주시고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귀 측이 이러한 제안을 무시하고 방치함으로써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귀 측에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양 측 모두를 중재하사 좋은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귀 교단 소속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첨부 :

1. '다락방 류광수 왜 이단이라 하는가'(박진규 목사 저)에 대한 항의 서한 사본 2부

2. 위트니스 리의 라디오 방송국 리스트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