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5.15 00:15

찬양 434회

이전에 주를 멀리 떠나

한국어 801장



801-이 전에 주를 멀리 떠나



1- 이전에 주를 멀리 떠나 흑암에 있었네

지금은 그 말씀 빛 가운데 주 안에 있네


2- 햇빛이 땅에 쏟아지듯 꽃이 만발하듯

주 예수로부터 퍼져 나온 생명과 사랑


3- 은혜와 진리 충만하신 육신 되신 주님

지금은 내 안에 들어 오셔 내 충만 되네


4- 하나님 영광 나타내려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떨어져 죽은 주님 다시 사셨네


5- 내 소망 이제 주의 형상 닮는 것 뿐일세

나 항상 죽음에 넘기우며 주 나타내리

(후렴)

주 내 맘 속에 살아 계시네

오 어떤 구원인가 주 내 안에 사네





지방교회 찬송가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4.23 00:05

지방교회  동영상 진리이만나 25회

성숙의 정도에 따라 그리스도를 앎


성경말씀

(빌3:8) 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지방교회 이만나 유투브 : https://youtu.be/qI_sE_IxDFA


지방교회 이만나 카카오TV : https://tv.kakao.com/v/397732919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7.21 05:00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형제 

지방교회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는 말은 비판자들이 만든 말


워치만 니는 신앙적 교만을 가장 경계

풀러신학교 공개적으로 지방교회 인정

<지방교회 신앙과 생활>이라는 신앙고백서에서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태도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 안에, 교파들 안에, 독립된 단체들 안에,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참된 믿는 이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분들을 주님 안에 있는 형제 자매로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교회들이 지방교회에 대하여 생소하게 느끼고 심지어 어느 정도 교제의 벽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문제가 있는가?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는 ‘자기네만 교회라고 한다’ ‘지방교회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라고 한다는 식의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자들이 유포시킨, 사실과 다른 말들이 걸림돌이 되었을 수 있다. 이 점은 기성교회들이 사실에 근거한 바른 인식을 가짐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지방교회 내부적인 요인들도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에 익숙지 않은 진리항목과 실행들 그리고 그들의 기성교회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지방교회측은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1. 진리와 실행상의 차이점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한 노선, 즉 ‘존 넬슨 다아비로 대표되는 소위 형제회’와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특징들 중 일부를 공유한 것이 있다. 그 외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강조했던 진리항목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것들은 개혁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교계 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 강조이다. 
워치만 니는 자신의 영적 유모와도 같은 마가렛 바버 선교사를 통해 앤드류 머레이, 제시펜 루이스, 이반 로버츠, 오스틴 스팍스 등을 통해 이어져 온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에 대한 진리를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 위트니스 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러한 노선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위 신비주의로 분류되는 마담 기용, 페네롱 신부, 윌리암 로우 등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 한국교계는 이런 방면 전체를 ‘신비주의’로 보고 이것을 경계하는 시각이 강하다. 따라서 일반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이 방면의 서적을 읽거나 공개적으로 동조하기에는 주저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성경을 벗어난 그릇된 영성이나 잘못된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저 하늘 보좌와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골 1:27),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사실’(롬 6:6),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심’(갈 2:20),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름’(마 16:24) 등의 말씀을 어떻게 삶 속에서 체험하고 실제화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과제이다. 

 둘째, 교회생활 관련 진리와 실행이다. 
교회 역사를 볼 때, 존 넬슨 다아비로 대표되는 형제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러한 형제회의 유산이 지방교회를 대표하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교계에서는 다아비의 신학이 세대주의를 기초로 하고 평신도-성직자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엡 4:12)는 주님의 위임과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 제사장 제도’를 어떻게 실행하고 또 완성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더 깊은 관심과 추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셋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강조한 진리 항목들이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경륜’ ‘그리스도의 몸’ ‘새 예루살렘’ ‘신화’(神化, deification)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 항목들은 하나님의 주권, 선택, 예정 등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교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딤전1:4, 엡 1:9, 3:2)은 사도 바울의 사역 안에서 거듭 강조되었고 ‘그리스도의 몸’ 역시 그러하다(마 16:18, 엡 1:23). ‘새 예루살렘’(계 3:12)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을 가리키며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자 핵심주제이다. 신화 진리 또한 정통 초대 교부인 아타나시우스가 그의 ‘성육신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에서 강조한 진리로서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다(He was made man that we might be made God)’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러한 사상은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로 현재도 가르쳐지고 있다. 따라서 지방교회와 기성교회는 이러한 진리들에 대해서 서로 배우는 자세로 교제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2. 지방교회 성도들의 기성교회를 향한 태도 
지방교회는 본의야 어떻든 기성교회를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그것이 상호 교류에 장애가 된 면이 없지 않다. 어찌되었건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할 대목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신다(벧전 5:5). 사실 워치만 니도 다음과 같이 신앙적 교만을 경고하고 있다. “주님께서 정하신 교회의 노정은 빌라델피아이다. 빌라델피아의 노정을 가는 사람의 가장 큰 시험은 바로 교만이다. 즉 “우리가 당신들보다 낫다! 우리의 진리가 당신들의 진리보다 분명하고,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많이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교만이 없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토해내신다. 우리는 결코 교만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이것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워치만 니, 50 필수과정(V), 한

워치만 니, 50 필수과정(V)

국복음서원, 2002년, 135쪽). 미국 교계는 지방교회를 일체 이단시하지 않는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만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 Stream Ministry(LSM)가 ‘미국 복음주의 출판협의회’(ECPA) 의 투표권 있는 정회원 중 하나로서 교계 지도자들과 이미 활발한 교류를 갖고 있고, 신학잡지인 ‘확증과 비평’을 수년 째 발간해 옴으로 교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지방교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 풀러신학교측은 지방교회측이 성경적인 정통 그리스도인들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미국교회의 선례는 한국교회에서도 참고가 될 만하다. 따라서 지방교회측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성교회측에 다가감으로 교제의 폭을 넓히고, 기성교회측은 대국적 관점에서 “나와 다소 다르나 주 안에 참된 형제들을 받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롬 15:7).  

지방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3 , 교회연합신문 657호 다운로드 - 첨부파일 (하단클릭)
교회연합신문657호060723_편집.pdf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6.22 05:00

양태론 (삼위양식론) 삼신론

양태론 (삼위양식론) 삼신론

성경은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분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어떻게 이 한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실 수 있는가? 각 세대를 통하여 신학자, 성경 해석자, 설교자 등을 포함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질문을 상당히 연구하고 토론했지만 2천년간의 연구조사와 토론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가 한 하나님이고, 아들이 또 다른 하나님이고, 그 영이 여전히 또 다른 하나님으로서 이 세 분 하나님들이 함께 모여 한 단체적인 하나님을 구성한다고 믿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도인 바티칸(Vatican)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거기에 있는 회랑(回廊)을 알 것이다.

양태론 (삼위양식론) 삼신론


이 회랑에는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고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는 두 종류의 커다란 유화(油畵)가 있다. 한 그림에는 백발의 나이든 아버지가 잘 생긴 아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비둘기도 함께 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서 사람들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그들이 세 실체(實體)-아버지, 아들, 비둘기-를 경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그림은 그 셋에 한 숙녀가 더해진 것이다. 그들은 "성모"를 신격(神格) 속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전통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실제를 놓쳤다. 우리의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삼일(三一)-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지만 여전히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왜 우리의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도 셋(one and three)이신가? 언젠가 어떤 사람들이 이 질문을 마틴 루터에게 하자 그는 "나는 모릅니다. 만약 내가 안다고 말한다면 내가 하나님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므로 알지 못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삼일 하나님의 위격들(位格 : persons)은 매우 비밀스럽다. 우리는 우리의 제한적인 지성으로써 그분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성경의 분명한 말씀을 따라 이 비밀스러운 계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6)고 진술한다. 더욱이 성경에서 하나님은 거듭하여 "나[단수(單數)]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8, 45:5-6, 21-22)고 말씀하신다. 또한 시편 86편 10절은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고 말한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세분의 하나님들이 계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많은 때 그분 자신을 가리켜 "우리"와 "우리의"라고 칭하신 것을 언급한다(창 1:26, 3:22, 11:6-7). 

 이사야 6장 8절에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가리켜 한편으로는 "내"라고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매우 비밀스럽고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드러난 말씀에 따라 성경의 계시를 받는 것이다.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므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내"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 한 분의 유일한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를"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면이 있지만 그 셋은 나뉘어지지 않고 여전히 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분리된 세 위격(位格)들로 분리시켜서 설명하는 신학은 큰 이단이다.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그분 안에 계시고(14:10-11, 10:38, 17:21)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10:30)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또 그분은 우리에게 그 영이 아버지께로서 오신다고 말한다(요 15:26). 헬리어에서 요한복음 15장 26절의 [...께로서(from)]는 문자적으로는 [...로부터 함께(from with)]를 의미하는 전치사(前置詞)이다. 이것은 실제의 영이 아버지로부터 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오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영이 오실 때 아버지와 아들이 그 영과 함께 오신다. 이것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동시존재(同時存在)하시고 상호내재(相互內在)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아들이 오셨을 때 아버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삼위는 한 하나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삼위양식설(三位樣式說)이라 불리는 그릇된 신학의 가르침이다. 삼위양식론자들은 아버지는 구약에 계셨지만 신약, 곧 아들이 오신 복음서에서는 아버지는 존재하기를 그치셨고, 그 다음 복음서 후에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은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단이다.  

말씀의 순수한 계시는 구약에 아버지가 계셨고, 아들과 그 영도 계셨다고 말한다. 즉, 그 세 분이 모두 계셨다고 말한다. 신약의 사복음서에서 아들이 오셨고, 아버지와 그 영도 오셨다. 세 분이 동시에 계셨다. 서신서에서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버지와 아들도 그 영과 함께 오셨다. 그들은 서로를 대치하는 방식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동시존재(同時存在)의 방식으로 오셨다. 더욱이 그들은 다만 동시에 존재하신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호내재(相互內在)의 방식으로 동시에 존재하셨다. 이 한 분의 완전한 삼일 하나님과 그분이 성취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의 영 안의 풍성한 공급이 되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되신다. 그러나 삼위양식설을 반대하고 근본주의적이기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아들이 홀로 오셨고, 하늘에는 아버지가 그대로 계시고, 또한 서신서에서 그 영이 오셨을 때 역시 하늘에 아버지와 아들이 그대로 계신다고 믿는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인 삼신론(三神論)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사실상으로는 큰 이단이다.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의 탁월성, "그리스도의 풍성은 그 모든 성취를 이루신 삼일 하나님임, p.81-85", 한국복음서원]

양태론 (삼위양식론) 삼신론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3:35
성경말씀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오늘의 만나

 
 백성들은 바벨론 사람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제멋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능하고 모세의 율법에 능한 서기관이며 학자인 에스라가 필요했습니다(스7:6,11). 그는 하늘에 속한 신성한 조성과 문화의 총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소집하여 그 자신의 죄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렸습니다. 더 많은 에스라들이 필요합니다. 장로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서 성도들이 그것을 따르기는 기대하지만, 정작 장로들이 진리를 가지고 성도를 심방하지 않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참된 장로 직분은 성도들을 심방하여 그들을 목양하고 먹이며, 진리에 관하여 말함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에스라처럼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며, 하늘에 속한 진리들로 그들을 조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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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6:00
성경말씀 

 (딤후1: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내는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맑은 생각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딤후2:1) 그러므로 나의 아들이여,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지십시오. 

 오늘의 만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의 의지에 능력을 주고, 우리의 사랑을 강화시키며, 우리의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파리가 될 만한 어떠한 구실도 없습니다! 디모데 전,후서의 결론을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딤후4:22)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에 함께 계신다는 것은 은혜가 당신과 함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당신은 능력을 얻습니다.(딤후2:1) 이 능력을 주는 은혜가 우리를 살아 있고 강건하게 함으로 진리를 지지하게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가 손상을 받고 공개적으로 공격당하는 시기를 통과해 왔습니다. 악한 가르침들이 두루 퍼지도록 허락되어 왔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진리를 위해 있으므로 교회가 바로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강한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3:15
성경말씀 

 (요일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어느 자매는 구원받은 초기에 항상 자신은 선한 사람이며, 죄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가 씻어져야 한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명의 실재가 되지 못하고 단지 도덕적으로 숭배 받을 만한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한번은 자매가 집회에서 한 전도자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은행 지점장으로 지위가 높고 돈도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저는 이런 가정의 아들로서 금전상 매우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종종 도둑질을 하리라고 ...” ‘은행 지점장의 아들이 도둑질하다’라는 이 한마디가 그녀의 양심을 만졌고, 눈이 열리고 내면에서 그녀를 책망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전에 교직원으로 있을 때 너는 학교의 서적과 조그만 상자를 가져가지 않았느냐?” 이때 그녀는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며 내면의 소리에 응답하여 자신이 몰래 가져온 물건들을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이렇게 물건을 돌려주는 일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차라리 그 물건들의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동료 직원에게 대신 돌려주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이것이 용납되지 않자 할 수 없이 자신이 가서 돌려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내면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건들을 가지고 학교로 가서 교장 선생님을 찾아 뵙고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물건을 돌려 드렸습니다. 이러한 순종의 체험을 통해 그녀는 자신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18:40
20141022_153748 요 17: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20:21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구할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구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나의 둘째 단계는 모든 믿는 이들이 아버지의 거룩하게 하는 말씀의 실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과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결코 우리에게 이 세상을 떠나도록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똫게 생활해야 하는가? 이것으로 인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셨다. .....실재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실재를 만질 수 없다. .....실재이신 하나님 자신은 특별한 기능을 갖고 계시는데,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는 사람들은 이러한 체험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읽고 하루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묵상할때 우리는 거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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