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메시지에서 우리는 희년의 장으로 잘 알려진 레위기 25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장은 희년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년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안식일은 잘 알고 있으나, 안식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Ⅰ. 안식년
레위기 25장 2절부터 7절까지와 18절부터 22절까지는 안식년에 대해 말한다. 이 안식은 하루만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동안 안식하는 것이었다. 안식년은 사람을 위한 안식이었을 뿐 아니라 땅을 위한 안식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일하셨으나, 일하신 후에는 안식하셨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혼자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안식하셨다. 일하신 후,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을 누리셨다. 그러므로 제 칠일에는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안식하였다. 희년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년을 준수하는 실행을 해야만 했다. 매 칠년은 안식년이어야 했으며 그 해는 사람도 땅도 안식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 땅을 위한 안식의 해였다.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뜻하며, 안식년 또한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안식년은 완전한 우리의 안식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안식일로서뿐 아니라 우리 안식년으로, 즉 부분적인 우리의 안식으로서뿐 아니라 완전한 우리의 안식으로 누릴 필요가 있다. 안식년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한 우리의 안식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하는 법과 세 배의 소출을 누림
레위기 25장 2절-4절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매주의 하루인 사람을 위한 안식일과 매 칠년마다 있는 땅을 위한 안식년은 우리의 안식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절과 5절은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라고 했다. 이것은 안식이 단지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므로 사람의 모든 노력은 절대적으로 멈추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땅이 쉴 때, 일하는 이들, 땅을 경작하는 농부들 또한 안식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법과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6절-7절은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뜻한다.
제 칠 년의 땅의 소출은 공동의 소유가 되었다. 비록 그 땅이 여전히 소유주에게 속해 있다 할지라도, 땅에서 산출된 것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속했으며, 심지어 육축들과 짐승들에게 속했다. 이것은 땅의 소출이 공동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공산주의, 즉 사람들에게서 강요하여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람의 공산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공산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땅의 소출에 대한 이러한 공동 누림에는 참된 자유가 있다.
20절-22절은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 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 팔 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 년 즉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충족한 은혜가 우리의 필요를 세 배나 능가함을 의미한다.
강요된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누리는 합당한 누림을 가져야 한다. 땅은 여전히 각 소유주에게 속하므로 땅의 소유는 공동이 아니다. 공동 소유는 제 칠년의 땅의 소출이다. 이 해에 땅에서 산출된 모든 것은 누림을 위한 공동 소유가 된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세 배의 음식을 산출하도록 땅을 축복하신다. 이러한 안식년을 지키는 실행은 우리를 희년으로 인도한다.
Ⅱ. 희년-오십 번째의 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땅은 그들 가운데 인수에 따라서 나누어졌다. 이 토지는 어느 것도 영원히 팔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년에는, 팔렸던 모든 토지들이 원래의 소유주들에게로 되돌아왔다.
희년이 되기 전의 여러 해 동안에, 어떤 백성들은 그들의 토지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이나 혹은 질병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토지를 전부 혹은 일부를 팔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희년의 때에 그 땅은 소유주에게로 되돌려졌다. 땅이 되돌려지는 이것은 백성들 간에 땅의 소유권을 균형잡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땅 주인도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로 신성한 규정, 신성한 규례가 자연 자원을 균형잡았기 때문이다. 이 규례는 오십 년마다 효능이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삼십 오 세기 전, 막스(Marx)가 공산주의를 창안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말씀 안에서 땅을 균형잡기 위한 준비를 하셨음을 본다. 매번의 오십 번째 해에는 원래의 소유주들이 그 땅을 되돌려받기 위해 어떤 것을 하거나 어떤 기도를 하지 않아도 땅은 그들에게로 되돌아와서 다시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예표에서, 희년은 가련한 죄인들인 우리의 상황을 묘사한다.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살아나갈수록 우리에게 배당된 신성한 분깃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우리는 이 권리를 점점 더 잃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출생으로 받았던 모든 것을 팔아버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도 잃어버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합당한 구매자에게 판 것이 아니라 사탄과 죄에게 팔았다. 바울이,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下)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처럼 우리도 죄에게 팔린 노예들이었다. 즉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사탄에게 팔았었다. 우리는 사탄과 죄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둘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죄에게 팔았을 때 우리는 사탄에게 우리 자신을 판 것이 되었고, 그러므로 우리는 죄 아래 있는 사탄의 손에 빠졌다. 아담의 자손들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를 팔았으며, 심지어 우리 자신을 죄와 사탄에게 팔았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찾아(구속할) 올 수있는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소망이 없었다. 그런 어느날 희년이 왔다.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에서 주 예수님은 은혜의 말씀들로 희년을 선포하셨다.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과 함께 희년이 왔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이루셨다.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신약의 희년을 선포한다.
희년은 오십 번째의 날이 아니라 오십 번째의 해이다. 여기서의 원칙은 안식년과 마찬가지이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갖지만, 레위기 25장에서는 안식년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오순절은 하루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오순절의 해를 갖는다.
여덟 번의 안식년으로 이루어지고, 여덟 배의 안식이 되는 안식 위에 안식을 더한 희년을 완성하는 오십 년(8절 참조)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하나님의 안식의 충만함이 지극히 풍성함을 의미한다.
이 오십 년 기간의 첫 번째 해와 마지막 해는 여덟 번째 해이며, 숫자 8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것은 희년이 전적으로 부활에서 온 것이며, 부활로 온 것이며, 부활 안에서 온 것이며, 부활과 함께 온 것임을 가리킨다.
희년은 안식에 안식을 더한 문제, 즉 부활 위에 부활을 더한 것을 의미하는 여덟 배의 안식이다. 이 여덟 배의 안식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하나님의 안식의 충만함이 지극히 풍성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안식이 아니라 만족을 주는 안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