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5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 담는 그릇인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접촉하는 기관 즉 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라디오 안에는 수신기가 있는데 이것이 파손되었을 때는 전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외적인 그릇이며, 우리 속에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수신기인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칠판은 손으로 만지고, 향기는 코로 맡고, 색깔은 눈으로 봅니다. 또한 소리는 귀로 듣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그분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기 중에는 많은 라디오 전파가 있지만 수신기가 없이는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업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수신기인 사람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기능을 잘 발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하나님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사람의 영(잠20:27)이라고 부르는 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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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0
성경말씀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1:12)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마치 사람의 사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박형제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박형제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이 박형제이기 때문에 당신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실재의 박형제가 아니고 단지 사진 안에 있는 박형제입니다. 비록 그 사진이 박형제의 용모와 자태와 인물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박형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박형제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그를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그 사진이 박형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그의 생명을 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는 사진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하나님에 관한 여러 면들을 보여 줄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생명나무로 지시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에 있어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다시 그 생명에 이르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명을 얻는 길 외에 그분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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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15
성경말씀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롬16:20) 화평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여러분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의 다스린다는 말과 형상이라는 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상은 곧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표현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왕국과 권위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 하나님을 대표해 다스리기 위하여 다스리는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원초의 창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갖고 계셨으나, 사탄의 배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제 또 다른 목적 즉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는 목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이런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그분의 다스리는 권위를 부여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사탄을 처리해야 합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들은 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편도 또한 많은 때 뱀을 나타냅니다. 나는 이것을 경험에 의해 알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나는 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도하러 들어갑니다. "오 주 예수님,  나를 용서하소서. 뱀을 묶으소서!" 당신의 아내를 다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뒤에 있는 뱀을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논쟁할수록 사탄이 지위를 얻게 됩니다. 사탄을 처리하는 한가지 길은 무릎 꿇고 주께 나아가며,기도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이 뱀을 묶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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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10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후4:7上)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최고의 생각과 최고의 의지와 최고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손과 장갑의 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손에는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으며, 장갑에도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장갑의 엄지손가락도 엄지손가락이지만 진짜 손가락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장갑의 빈 엄지손가락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은 사람의 진짜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 역시 빈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실재의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실재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엄지손가락 안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때 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즉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 즉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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