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7:20
성경말씀  

(창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8:4~5)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오늘의 만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절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과 나무 그늘에 앉아 발을 씻는 것 중 어느 것이 하나님에게 더 즐겁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수준으로 인간의 형태로 그에게 오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오신 이후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경배나 두려움이 없고 다만 친근함이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평범한 방식으로 방문하십니다. 많은 자매들은 그들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할 때 주님이 친밀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오신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로서 주님과 함께 달콤한 교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형제들도 역시 이런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주님은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오시어 그들과 함께 달콤한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친밀한 친구처럼 교통하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으로 우리를 방문하신 것의 체험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7:05
성경말씀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또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12:22~23) 그럴 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덜 귀하게 여기는 몸의 지체들에게 더욱 귀한 것을 입혀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은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되지만, 

 오늘의 만나

 
 우리가 진정으로 몸의 생명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집에는 제한이 있으며 우리가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몸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끊임없이 교통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의미를 모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통하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들을 귀히 여기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을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몸의 생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는 다른 형제들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만지며 집회 가운데서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집회에 올 때 우리는 도움을 받게 되고 생명을 만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집회를 마치고 나올 때 어떤 형제가 와서 좋지 않은 집회였다고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상 좋지 않은 것은 집회가 아니라 그 형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의 입장 위에 있지 않았고 다른 이들과 교통하여 생명 공급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의 육체가 처리되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볼 것이고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교통할 것입니다. 그는 가장 약한 형제나 자매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7:00
성경말씀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만나

 
 “헤브론”은 원문에서 “교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생명의 문제이며 교통은 생활의 문제입니다. 벧엘을 거치지 않고서 헤브론에 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벧엘 다음에 헤브론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통이라는 것은 몇몇의 사람들로 조직화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없이 교통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통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처리되어야만 우리는 몸 안에서 살며 교통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사실이며 실제이며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과 교통합니다. 우리가 천연적인 생명을 처리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 안으로 들어가며 끊임없이 교통 안으로 이끌어 질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사람들은 개인주의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으며 그들이 아주 약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통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보는 시점까지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교통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헤브론의 의미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20:10
성경말씀  

(시69: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오늘의 만나

 
영국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던 주님의 종 스펄전 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아침 일찍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그는 “열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침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그들에게 한 가지 규율이 있는데, 곧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결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브즈 양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가 침대와 주님 사이에 어느 것을 택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침대를 사랑한다면 잠을 더 많이 잘 것이고 주님을 더욱 사랑한다면 더 일찍 일어날 것입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새벽 다섯 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7:55
성경말씀  

(창18: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오늘의 만나

 
 마므레는 ‘강함’을 뜻하고, 헤브론은 ‘교제, 친교, 우정’을 뜻합니다. 창세기 18장 1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러 오신 것은 그가 마므레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방문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그와 함께 머무셨으며 그와 함께 음식을 먹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통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갑자기 발생하는 일이어서는 안 되며 가끔 생기는 일이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아마 몇 년 전에 당신은 주님께 제단을 쌓았다고 말할지 모르나 오늘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이 생애의 대부분을, 주님과 지속적인 교통을 할 수 있었던 헤브론에서 보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과의 지속적인 교통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에서 제단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헤브론에 있는 세 번째 제단의 체험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5:50
성경말씀 

 (고전1:9)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천연적인 이해를 따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을 때 평강과 축복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신 우리는 많은 어려움들을 받았을 것이고 우리의 안전, 건강, 소유를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목적 안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어려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평강, 안전, 소유들이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심으로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신 그분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있어서 신실하십니다. 그분의 경륜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흡수하며, 그리스도를 마시며,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동화시키도록 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증가되어 그분의 경륜을 성취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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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7:00
성경말씀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카이 싸이린 자매는 6주 정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도 그녀와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무척 가슴 아파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이 싸이린 자매여, 당신은 계속해서 밖의 느낌  안에서 나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난 6주 동안 나는 오히려 당신 안에서 당신을 기다려왔답니다. 당신의 영 안의 내실로 돌이켜 마음 속에서 나를 찾아 보십시오, 내가 그곳에 있습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