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레위기 LS 메시지 10번,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번제물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번제물로 소유하기 위해 그분의 체험 안에서 체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외적인 본과 모양으로 취하며 그분을 따르고 배우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그릇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외적인 본과 모양으로 취하는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가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완전히 외적으로 그분을 모방할 것을 가르친다. 15세기 토마스 아 캠피스가 지은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라는 책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외적인 삶을 모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의 신학도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모방하고, 그분께 배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약의 어떤 구절들은 이것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음서들 안에서 주 예수님은 종종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분을 따르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그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권고했다(고전 11:1). 그러한 구절들은 외견상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그분을 외적으로 모방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지지해준다.
그러나 소수의 성경 교사들이 믿고 있는 사상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외적으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분의 체험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그분을 외적인 본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다(갈 2:20).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본으로 취하여 그분을 따른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고 말한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바울은 계속하여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단지 그리스도를 그의 본으로 취하여 그분을 외적으로 모방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살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가르침 받았다. 이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결심했어도, 그들은 결국 성질을 내고야 만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실패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몇몇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강한 의지로 성공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인 가르침의 실행일 뿐이다.
그런데 사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서신서들은 우리에게 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권하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을 말한다. 위에 언급한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라고 고백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도 그는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라고 간증했다.
우리가 결혼 생활에서 주의할 것은 다투려는 유혹이 오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있을 때는 부부싸움을 하려는 유혹이 온다 해도 다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다투지 않을 것이다. 배우자와 다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대신,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살아야 한다.
새 신자들이 외적인 방식으로만 그리스도를 모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사람흉내를 내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방하려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단지 그리스도를 사는 것만을 알 뿐이라고 간증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는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과 대화하기 시작하며, 그분과 교통하기 시작하며 그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를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을 먹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을 살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산다면, 마귀의 어떠한 유혹을 받는다 할지라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마귀와 모든 귀신들을 패배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활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으로 사는 생활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은 외적으로 모방하는 종교와 다르며 공자의 가르침들을 따르는 것과도 다르다.
내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학교에 다니는 나의 누님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어느 날 누님은 나에게 어떤 성경 교사에 대해 알려 주었는데 그는 매우 인내가 있었고, 항상 손에 성경을 가지고 천천히 걸으며, 종종 멈추어 하늘을 보거나 성경을 보곤 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에 대해 들었을 때 그렇게 해 보려고 맘을 먹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의 흉내를 내는 「원숭이」와 같았다. 나는 빠른 사람으로서 느리고 인내하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결국에 나는 포기했다. 그러다가 나는 속 생명 무리들과 접촉했고, 그들의 어떤 가르침을 통하여 빛 비춤을 받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된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밖으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대신 우리는 그분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살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이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누릴 필요가 있다. 이것이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또 한 번 승리하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