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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06 무엇으로 물을 긷는가?
  2. 2018.05.06 벨사살 왕의 최후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4:20
무엇으로 물을 긷는가? 박 명 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결코 우리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진주가 가출을 했다. 우리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집이 싫다고 나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별명처럼 주어진 이름이 아니었던가? 나는 화가 났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엔 그랬다.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말하기가 싫어서 진주가 빨리 돌아오기를 빌었다.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온 것을 꾸중한 것이 집을 나가게 한 동기였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거울 좀 봐. 엄마 딸 맞니?” 버럭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그나마 웃으며 말했는데 진주는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미장원 아줌마는 예쁘다는데 뭘.” 아예 말대꾸를 하고 나섰다. 나는 다시 한번 화를 참아내며 “염색해 준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지. 교회 봉사를 하는 아빠를 한번만 생각했어도 머리를 그 꼴로 염색하진 않았겠지?” 다시 검정 머리로 바꾸고 오라고 말하자 “누구 아들, 누구 딸 그런 게 난 싫어요. 난 그냥 김진주라구요.” 진주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는 지금 12시가 넘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주님은 왜 이런 환경을 주시는 걸까?’ 나는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일까? 병원에서 진주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다고 연락이 왔다. “환경을 보지 말자고. 그랬다간 물에 빠지고 말아.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 바다를 걸었던 것처럼 우리는 주님만 봅시다.” 병원으로 가면서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그러나 걱정은 밀물이 들어오는 것보다도 더 빨리 내 생각을 파고들었다. 만일 진주가 죽는다면, 불구가 된다면? 끔찍한 상황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뭔지 알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거야.” 맞다. 염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믿으면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걱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역의 생각인 것을. 나는 놀라서 빠르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원 받고 싶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말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구원이 참으로 필요했다. 불 못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에서 나는 구원이 필요한 자인가. ‘주 예수님!’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오직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진주를 주님께 맡깁니다. ‘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 > 기도도 할 수 없다는 내게 남편은 느헤미야 8장 10절을 외었다. 남편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기뻐하라고? 딸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령 불복종이야. 살아 있기만 해도 기쁘겠다고 당신 그랬잖아.”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불구가 될까봐 나는 실의에 빠져 있다. 남편은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을 읽어 주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바울은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까지도 기뻐했어.” “그야. 그는 바울이니까. 난 바울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느헤미야 8장 10절을 외었다. 외우면서 기도했다. ‘기뻐하고 싶어요. 주님. 진주를 지켜 주세요. 당신의 자녀입니다. 지켜주셔야 합니다.’ 분명히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어쩌면 그토록 나와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인터넷을 통하여 위로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해 봤었다. 교회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나는 이름 모르는 한 자매의 글을 읽었다.   오늘 역대하 20장의 여호사밧 왕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저는 요즘 어려운 환경으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이 환경을 이겨야 할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를 했지만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역대하에서 여호사밧 왕을 만났습니다. 그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 왕의 탄식은 바로 저의 탄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할 때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저 탄식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놀라지 말아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이 얼마나 달콤한 대화입니까? 전쟁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싸울 것이 없고 서서 여화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는 이 말씀은. 그러나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언제든지 여호와를 찬양할 때 대적은 패하게 됩니다. 생활 가운데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승리, 즉 이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승리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 승리를 보면서 개가를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이기려고 할 때 우리는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기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그리스도께서 이긴 것을 기뻐합시다. 구원도 은혜로 거저 받은 것처럼 승리도 은혜로 거저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찬양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즐거움 속에서 우리의 승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물속에서 길러야 하듯이 승리는 즐거움 속에서 길러야 합니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우리가 물을 길으리라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 물을 긷는 도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이 물을 긷는 도구예요. 우리가 할 일은 크게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걸 다시 비로소 깨달은 자매가 기쁨을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썼답니다.   ‘물을 긷는 도구가 두레박이나 바가지가 아니라 기쁨이라고?’ 난 깜짝 놀랐다. 이사야의 이 말씀은 찬송으로도 있어서 즐겨 불렀었는데, 기쁨이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었다. 정말이지 나는 구원의 물을 길어 마셔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쁨이 없다면 물을 길 수가 없었다. ‘기쁘고 싶어요. 그러나 슬퍼하고 괴로워할 환경만 나를 둘러싸고 있어요.’ 진주는 퇴원했지만 다 나아서가 아니었다. 뇌를 다쳐서 아주 단순한 것 외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서서히 기억이 회복될 것입니다.”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서서히가 언제쯤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울어라 시원해지도록.”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조금은 후련해질 거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기뻐해라 그러면 기뻐질 것이라고 말하신다. 글 쓴 자매가 만났다는 여호사밧 왕을 만나야 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찬양을 했던 여호사밧왕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어떤 것도 주님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나는 내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빛이 강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이었다. 난 갑자기 기뻐해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참담한 상황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와 진주를, 우리 가정을 위해 참으로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교회 식구들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그 세상적인 컴퓨터를 통해 내 마음을 열어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뻤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 모든 환경이 고마운 것 투성이었다. 거짓말처럼 기쁨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그 애정 어린 음성을 들었다. “얘야, 이 모든 전쟁은 내가 하는 거란다. 네가 할 일은 찬송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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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4:15
벨사살 왕의 최후 박 명 희   누가 먼저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니, 저건......!” “저게 뭐야? ” 하고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저 벽에......! 사람의 손가락 아닌가!” 한 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벽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분명해.’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환각증상이 온 건가?’ 그러나 그것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내가 봐도 분명히 사람의 손가락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벽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폐하!” 신하들이 말을 하기 전에 벨사살 왕도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벨사살 왕 바로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으므로 왕이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왕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너무 놀랍고 두려워서 아예 입을 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즐거워하며 큰소리치던 왕이었는데. 왕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흥청망청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입을 다물고 두려워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째 벌이고 있는 왕의 대연회였습니다. 연회는 왕의 연회답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웠습니다. 바벨론 왕국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천명이나 이 잔치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등대마다 불이 타올라서 궁전 연회장은 대낮처럼 밝았습니다. 음악소리와 춤, 웃음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갑자기 벨사살 왕이 창고지기를 불렀습니다. “자 오늘은 아주 큰 잔치다. 우리 모두 멋진 잔을 사용하자. 가서 예루살렘성소에서 가져온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오너라.”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던 그릇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금과 은그릇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 가져온 것들이었습니다. “이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는 거다.” “폐하, 그러나 이 그릇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던 그릇인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스라엘은 다 망해서 우리 식민지가 되어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 느부갓네살 대왕님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가져온 전리품이야.” “하지만 느부갓네살 대왕님은 후손 모두에게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듣기 싫다.” 왕비들, 여러 귀인들, 빈궁들은 왕이 시키는 대로 금 은 그릇들에 술을 담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왕의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그 소란한 모습을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 신들에게 경배합시다” 궁전에는 금으로 만든 신상, 은으로 만든 신상,  동과 철 그리고 나무와 돌로 만든 신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자 모두 술잔을 높이 들고 이 신들을 찬양합시다.” 왕이 그렇게 외친 바로 그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손가락은 흰 벽에 글자를 쓰고는 사라졌습니다. 타오르는 등불이 벽에 씌어진 글자들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글자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제야 왕은 정신이 났는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라. ” 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벨론 박사들에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이 나라의 셋 째 자리에 앉힐 것이다. 왕가를 상징하는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 주겠다.“ 왕의 그 말은, 글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을 바로 왕 다음의 지위를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박사도 벽에 씌어진 글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벨사살 왕은 더 불안한지 얼굴에 두려워하는 빛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사람들도 다 두려워했습니다. 마침 그 때 그 소식을 듣고 태후가 잔치하는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왕이여, 이 나라에는 거룩한 신을 믿는 탁월하고 명철한 능력이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를 부르세요. 이전에 느부갓네살 왕은 그를 박사들의 우두머리로 삼았었습니다.” “다니엘?“ 다니엘이 왕 앞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대가 바로 우리 조부 느부갓네살 왕께서 사로 잡아온 그 다니엘이냐? 그대는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고 하니 빨리 이 글을 읽고 해석해보아라. 아무도 이 글을 읽거나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 만일 네가 이글을 읽고 해석한다면 내가 너에게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 줄 것이다.” 왕의 말에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건 모두 왕이 가지십시오. 그러나 내가 이 것을 해석하겠습니다. 그전에 왕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다니엘의 그 당당한 태도에 깜짝 놀랐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분명히 일고 있을 텐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벨사살 왕을 책망했습니다. “왕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났던 일을.” “......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선조인 느부갓네살 왕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만하여져서 그것이 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건 나도 아니 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느부갓네살은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정치에도 능했고 또한 건축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바벨론의 모든 훌륭한 건물은 느부갓네살 왕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지은 건축물들을 보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다. 내 영광과 위엄이 얼마나 놀라우냐.” 하면서 교만하여졌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꿈으로 나타나셔서 교만해지면 반드시 그를 짐승같이 낮추리라고 경고했었는데도 말입니다. 경고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을 짐승처럼 되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어느 날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왕궁을 빠져 나가서 들나귀와 함께 돌아다니고,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아무리 궁 안으로 데려다 놓아도 밖으로 나가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잤습니다. 그런 일이 49일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의 뜻대로 사람을 높이시고 세우신다는 것을. 그렇게 깨닫고 회개하자 거짓말처럼 느부갓네살의 병은 나았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온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왕궁 안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쉬쉬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청년이었던 벨사살은 그 일을 직접 옆에서 보았습니다. “벨사살 왕이여, 왕은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높여져서 하늘의 주인인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성전에서 사용하던 그릇들을 가지고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과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찬양하고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한 것입니다. ” 벨사살 왕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받는 아이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 글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그 뜻은 무엇이오?“ 사람들이 모두 다니엘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뜻은 이제 이미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끝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 메데와 페르샤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 나는 그 두려운 말에 몸이 떨렸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벨사살 왕이 느부갓네살 왕처럼 회개를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런 두려운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한 약속을 잘 지키는 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지 싫다는 다니엘에게 자주색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행동이 그 시간에 왜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바로 그때, 메데 사람 다리오 왕의 군대는 메마른 강바닥을 이용하여 성안으로 침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다리오 왕은 벨사살 왕을 죽이고 바벨론을 정복했습니다. BC 539년, 그렇게 신바벨론 제국은 페르샤왕에게 망했습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샤의 고레스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허락했습니다. 고레스 왕 또한 알았던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 나라를 세우는 것,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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