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4:50
성경말씀  

(잠3:13-15)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오늘의 만나

 
 흑인 과학자인 카알 박사는 미국 남부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흑인들에게 면화만 심지 말고, 다른 농작물도 심으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면 흉작이 들더라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을 설득시켜서 땅콩을 심게 하였습니다. 땅콩 수확이 예상외로 좋아서, 식용으로 쓰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카알 박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카알 박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남은 땅콩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게 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로 하여금 땅콩으로 식용 기름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빵과 커피, 우유와 니스, 안료, 약품 등 백 가지 이상의 제품을 만드는 용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 주셨습니다. 후에 그는 미국 국회의 초청을 받아 특별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의장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카알 박사님,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한 권의 고서에서 배웠습니다." "어떤 책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 안에 땅콩에 관한 말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로 땅콩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고, 하나님은 제가 어떻게 땅콩을 사용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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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6 14:20
무엇으로 물을 긷는가? 박 명 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결코 우리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진주가 가출을 했다. 우리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집이 싫다고 나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별명처럼 주어진 이름이 아니었던가? 나는 화가 났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엔 그랬다.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말하기가 싫어서 진주가 빨리 돌아오기를 빌었다.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온 것을 꾸중한 것이 집을 나가게 한 동기였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거울 좀 봐. 엄마 딸 맞니?” 버럭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그나마 웃으며 말했는데 진주는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미장원 아줌마는 예쁘다는데 뭘.” 아예 말대꾸를 하고 나섰다. 나는 다시 한번 화를 참아내며 “염색해 준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지. 교회 봉사를 하는 아빠를 한번만 생각했어도 머리를 그 꼴로 염색하진 않았겠지?” 다시 검정 머리로 바꾸고 오라고 말하자 “누구 아들, 누구 딸 그런 게 난 싫어요. 난 그냥 김진주라구요.” 진주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는 지금 12시가 넘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주님은 왜 이런 환경을 주시는 걸까?’ 나는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일까? 병원에서 진주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다고 연락이 왔다. “환경을 보지 말자고. 그랬다간 물에 빠지고 말아.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 바다를 걸었던 것처럼 우리는 주님만 봅시다.” 병원으로 가면서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그러나 걱정은 밀물이 들어오는 것보다도 더 빨리 내 생각을 파고들었다. 만일 진주가 죽는다면, 불구가 된다면? 끔찍한 상황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뭔지 알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거야.” 맞다. 염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믿으면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걱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역의 생각인 것을. 나는 놀라서 빠르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원 받고 싶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말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구원이 참으로 필요했다. 불 못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에서 나는 구원이 필요한 자인가. ‘주 예수님!’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오직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진주를 주님께 맡깁니다. ‘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 > 기도도 할 수 없다는 내게 남편은 느헤미야 8장 10절을 외었다. 남편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기뻐하라고? 딸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령 불복종이야. 살아 있기만 해도 기쁘겠다고 당신 그랬잖아.”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불구가 될까봐 나는 실의에 빠져 있다. 남편은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을 읽어 주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바울은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까지도 기뻐했어.” “그야. 그는 바울이니까. 난 바울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느헤미야 8장 10절을 외었다. 외우면서 기도했다. ‘기뻐하고 싶어요. 주님. 진주를 지켜 주세요. 당신의 자녀입니다. 지켜주셔야 합니다.’ 분명히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어쩌면 그토록 나와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인터넷을 통하여 위로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해 봤었다. 교회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나는 이름 모르는 한 자매의 글을 읽었다.   오늘 역대하 20장의 여호사밧 왕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저는 요즘 어려운 환경으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이 환경을 이겨야 할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를 했지만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역대하에서 여호사밧 왕을 만났습니다. 그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 왕의 탄식은 바로 저의 탄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할 때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저 탄식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놀라지 말아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이 얼마나 달콤한 대화입니까? 전쟁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싸울 것이 없고 서서 여화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는 이 말씀은. 그러나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언제든지 여호와를 찬양할 때 대적은 패하게 됩니다. 생활 가운데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승리, 즉 이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승리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 승리를 보면서 개가를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이기려고 할 때 우리는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기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그리스도께서 이긴 것을 기뻐합시다. 구원도 은혜로 거저 받은 것처럼 승리도 은혜로 거저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찬양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즐거움 속에서 우리의 승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물속에서 길러야 하듯이 승리는 즐거움 속에서 길러야 합니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우리가 물을 길으리라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 물을 긷는 도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이 물을 긷는 도구예요. 우리가 할 일은 크게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걸 다시 비로소 깨달은 자매가 기쁨을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썼답니다.   ‘물을 긷는 도구가 두레박이나 바가지가 아니라 기쁨이라고?’ 난 깜짝 놀랐다. 이사야의 이 말씀은 찬송으로도 있어서 즐겨 불렀었는데, 기쁨이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었다. 정말이지 나는 구원의 물을 길어 마셔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쁨이 없다면 물을 길 수가 없었다. ‘기쁘고 싶어요. 그러나 슬퍼하고 괴로워할 환경만 나를 둘러싸고 있어요.’ 진주는 퇴원했지만 다 나아서가 아니었다. 뇌를 다쳐서 아주 단순한 것 외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서서히 기억이 회복될 것입니다.”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서서히가 언제쯤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울어라 시원해지도록.”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조금은 후련해질 거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기뻐해라 그러면 기뻐질 것이라고 말하신다. 글 쓴 자매가 만났다는 여호사밧 왕을 만나야 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찬양을 했던 여호사밧왕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어떤 것도 주님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나는 내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빛이 강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이었다. 난 갑자기 기뻐해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참담한 상황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와 진주를, 우리 가정을 위해 참으로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교회 식구들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그 세상적인 컴퓨터를 통해 내 마음을 열어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뻤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 모든 환경이 고마운 것 투성이었다. 거짓말처럼 기쁨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그 애정 어린 음성을 들었다. “얘야, 이 모든 전쟁은 내가 하는 거란다. 네가 할 일은 찬송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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