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25
성경말씀  

골1:15~16 이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만물, 곧 하늘들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이나 지배 권위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자들이 다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또한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그분의 본질의 형상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분의 어떠하심을 표현하십니다. 여기서 형상은 물질적인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모든 속성과 미덕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피조된 혈과 육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분은 피조물의 일부이십니다.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신 것을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 의하면 만물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능력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내재적인 능력의 특징을 지닙니다. 바울은 또한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통하여’는 그리스도께서 능동적인 도구이시라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창조가 순서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의 귀결이 되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물은 그리스도께 돌아가 그분의 소유가 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안에서’와 ‘통하여’ 그리고 ‘위하여’는 피조물이 주관적으로 그리스도께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20
성경말씀  

벧전4: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인’의 헬라어는 라틴어로부터 형성된 단어로서 크리스티아노스(Chistianos)입니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어미 ‘이아노스(ianos)'는 로마 제국에서 고위 가족들에게 속해 있는 노예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카이사(Kaisar)황제를 숭배하는 자들은 카이사리아노스(Kaisarianns)라 불리웠으며, 이는 카이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카이사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추종자들이 되자 제국 내의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카이사의 적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안디옥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크리스티아노스(그리스도인)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는 비난하는 말 즉 별명으로서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4장 16절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워 말고‘라고 말합니다. 즉 어떤 믿는이들이든 그가 핍박자들로부터 경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며 고난을 당할 때 그는 그것을 부끄럽게 느껴서는 안 되며 오직 그 이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람, 그분께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그분과의 유기적인 연합 안에서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며, 그의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며 더 나아가 그분을 사는 그리스도와 하나인 사람으로서, 우리가 그러한 사람인 것으로 인해 고난당할 때 우리는 부끄럽게 느껴서는 안 되며, 오직 그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리의 거룩하고 뛰어난 행실로 말미암아, 우리의 고백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확대시키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15
성경말씀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파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팔레스타인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모두 요단강의 범람으로 생겨난 바다입니다. 그중 갈릴리해는 해안을 따라 야생초가 피고 포도가 무성합니다. 바닷 속에는 비단 물고기가 헤엄치고, 수면은 오색으로 빛나며, 아름다운 경치는 마치 가나안 같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네 명의 사도 역시 그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바다를 의지해 부족함 없이 생활해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해는 바닷물이 짜서 어류들이 생식하기 어렵습니다. 해안에는 식물들도 자라지 못합니다. 갈릴리의 바닷물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물이 맑고 많은 생물이 자라지만, 사해 바닷물은 흘러 들어오기만 하고 빠져나갈 곳이 없으므로 정체되어 죽은 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과의 교통을 통해 한면으로는 받아들이고, 또다른 한면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지 않는다면 점차 사해가 될 것입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10
성경말씀  

(요이 9)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그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며, 그 가르침 안에 거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넘어서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빗나가는’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앞으로 나아가 즉 옳은 것보다 더 지나쳐 나아가 그리스도에 관한 정통적인 가르침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거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세린티안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앞서 있다고 자랑하며 이렇게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성하게 잉태되셨다는 가르침을 넘어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구속하시는 아들과 생명이신 아버지를 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속받고 거듭나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는데 이것은 구원 안에서 또 생명 안에서 하나님께 참여하고 그분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이 신성한 누림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 안에서 또 신성한 생명 안에서 우리의 분깃되신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로 모시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