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40
성경말씀 

 (고후12:14) ...왜냐하면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한번은 대집회에서 해외 복음 사역에 대한 메시지가 해방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헌금하여 해외 복음 사역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집사들이 헌금 쟁반을 가져와 헌금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다 거둔 후에 집사들은 청중 뒤쪽으로 물러났습니다. 알렉산더 더프라는 십대 소년은 집회 가운데 깊은 감동을 받고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떠나서 헌금 쟁반을 정리하던 집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헌금 쟁반을 땅에 놓아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집사들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따라서 헌금 쟁반을 바닥에 놓았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쟁반 위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는 그날 이후로 후퇴하지 않고 변함없이 주님을 섬겼습니다. 후에 그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35
성경말씀 

 (행8:4)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전하였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행1:8)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르기까지 여전히 ‘예루살렘’에 불과했지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땅 끝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도와 제자들이 나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울을 통하여 ‘제자들을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각처로 흩으셨으며’ 그분의 사명을 받고 나갈 수 있는 사도인 바울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러한 핍박이 오자 비로소 ‘각처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한 면에서 그들은 피난한 것이지만 다른 한 면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기보다는 마땅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며 우리의 공급과 보호가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완전하게 하나님을 앙망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은 주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30
성경말씀  

(삿2: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오늘의 만나 

 한 그리스도인이 길을 걷는 도중에 여자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까이 가 보니 한 여자 노예가 그녀의 아들이 노예로 팔려가는데 주인에게 부르짖으며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 아들과 함께 사 주십시오. 저희가 함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들 노예만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그 그리스도인은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털어 그 두 모자 노예를 샀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풀밭에서 일을 하던 그 그리스도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이를 듣고 달려 나온 여자 노예는 실신한 그의 뒷발에 독사의 이빨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즉시 입으로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이 지나 정신이 든 그 그리스도인이 일어나 보니 발치에 여자 노예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자유를 준 이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영원한 형벌과 저주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해도 과연 그것이 허비이겠습니까?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25
성경말씀  

(요1:12)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 선생님, 나는 정말 하나님의 아들을 내 생명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분에게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올 때에는 속에 뜨거운 감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내 마음은 돌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생명으로 내 안에 영접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때 뜨거운 느낌이 있다든가 아니면 계속 차갑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다만 믿으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느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느낌에 의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느낌과는 아무 관계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20
성경말씀 

 (마16: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오늘의 만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얻은 적은 빛 비춤으로 무엇이 그리스도의 몸인지를 알았을 때, 우리는 개인이 단독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가련함과 어떤 모임이 단독적으로 행하는 것의 두려움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본 것이 틀리지 않다면 오늘날 믿는 이들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몸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충성되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다른 변절된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믿는 이들의 개인주의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과 부활 생명과 성령의 능력은 거의 개인의 성결과 개인의 영성과 개인의 승리를 위한 것같이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도 중요하지만, 만약 개인만 있고 어떻게 형제들 가운데서 형제가 되고 자매들 가운데서 자매가 되는지를 모른다면, 이러한 개인주의는 단지 가장 가증한 ‘자아’의 변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형제들의 종과 노예가 되는 것을 배우기 바랍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15
성경말씀  

(고후5:13) 우리가 미쳤다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다면 여러분을 위하여 온전한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미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정신이 온전함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한 면은 개인적인 것이고, 또 다른 면은 단체적인 것입니다. 미쳤음은 개인적인 것이고, 정신이 온전함은 단체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른 아침에 당신 혼자 성경을 읽을 때 주님께서 비추심으로 인하여 탁자를 몇 번 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오늘 여기서 어떤 성경 구절이 생각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심하게 친다면 여러분은 나를 미쳤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미쳤고 사람 앞에서는 정신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불탈수록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매우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쳐서 뛰거나 계속 할렐루야를 외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옆 자리에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집회 가운데서는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고 외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사람 앞에서 정신이 온전하여야 합니다. 내가 말한 것이 너무 강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성경의 교훈입니다. 바울은 미쳤어도 단지 하나님 앞에서였고, 사람을 위해서는 정신이 온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10
성경말씀 

 (욥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오늘의 만나

 
욥기 16장 20절은 욥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세 친구가 그를 조롱한 후에 말한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사람의 조롱과 압박을 받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많은 때, 사람 앞에서 면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이러한 일들을 만날 때 욥처럼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그 사람이 연약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우는 것은 합당한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나 자신은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제껏 하나님 앞에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교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친근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으며, 무거운 짐을 여호와께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치고 충성된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만일 이미 당신의 어려움과 기쁨을 하나님께 아뢰었다면, 당신은 또한 동시에 당신의 눈물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권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05
 

성경말씀  

(요일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언젠가 그림 전시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이 먼 곳에서 보아야 아름다운데 그중의 한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아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을 암시한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의 주위에는 그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의 눈길은 장난감을 주목하지 않고 앞에 있는 창문을 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두 손도 창문가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볼 때에는 그것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창문가에 한 마리의 아름다운 비둘기가 있었습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이러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아름다운 비둘기를 얻으려고 모든 장난감을 땅에 버렸다.” 그 그림은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덜 귀한 것들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버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얻는다면 자연히 그 많은 것들을 다 버릴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00
성경말씀 

 (호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오늘의 만나

 
 이스라엘은 호세아서 전체에 걸쳐 여호와의 아내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다룰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데(출 4:22~23), 이는 이스라엘이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양자가 아닌 참 아들만이 자기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합니다. 호세아 11장 1절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위해 이스라엘과 연합하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분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을 지적합니다(마2:13~15).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과 같은 애정 어린 사랑이 아니라,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생명에 속한 사랑입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애정 어린 사랑이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은 생명에 속한 사랑입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남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아내로서 사랑하시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20:25
성경말씀  

(빌4:5~6) 여러분의 관용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염려할 만한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염려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어떤 염려에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문제나 가정의 일이나 개인의 어려움 등을 염려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이 합법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떤 염려든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도 염려해야 하고 저것도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염려하는 것을 그의 본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은 염려하지 않더라도 그 한 가지 일만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한 가지 염려도 있어서는 안 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한 가지 염려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주님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는데도 당신이 염려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