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 05:00

생명이만나 319 - 그분의 눈으로 인도하심 - 지방교회들 이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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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 05:00

갓멘에세이 84 - 레슬링 시합 - 지방교회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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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 05:00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1) - 소개의 말

* [지방 교회](local Church) 이스라엘 탐방팀(한국35명, 미국9명)은 일반적인 성지순례자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오는 60여 군데의 지명을 선택하여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자 오랫동안 자료를 준비하였다. 탐방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들은 출국하기 전에 2박 3일동안 방문지에 대하여 미리 철저하게 스타디하였다.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성경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더 많이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15박 16일동안(2012/10/13-28) 이스라엘을 탐방하기 위하여 10월 13일(토) 대한항공 KE957 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국하였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동안 그곳에서 전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2) -세겜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 33:18-2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7:12-14)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수 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수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삿 9: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삿 21: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왕상 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메시지 3> 

아브라함은 세겜에 이르렀다.'세겜'은 원문에서 어깨라는 뜻이다. 어깨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힘있는 곳이다. 세겜 땅의 첫 번째 특징은 능력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적적인 능력일뿐 아니라 또한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생명의 능력임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생명을 얻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수 있다. 이는 그의 속이 이미 만족되었기 때문이다.속이 만족한 사람과 생명을 얻은 사람이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세겜에'모레상수리나무'가있다.'모레'는 원문에서 '교사'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지식의 방면이다.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세겜땅에 있다는것은 지식이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뜻이요 지식은 능력의 결과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해서 참된 영적인 지식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얻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참된 영적지식이 없을 것이다.그런 지식은 사람에게 영적인 어떤 것을 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그분의 간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그릇을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은 그 그릇에게 어떤 교리를 들려주시는 것이아니라 먼저 그를 만족하게 하고 생명의 능력을 준 다음 참된 지식을 갖게 하신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다. 하나는 교리이고 하나는 생명이다. 하나는 밖에서 들은 것이고 하나는 속에서 본 바이다. 하나는 잊어버릴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는 항상 속에서 기억한다. 모든 참된 지식은 생명의 능력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곧 우리의 능력이다.우리안에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남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내적인 능력이자 내적인 지식이다. 

<창세기 L/S 메시지 76> 

야곱은 라반의 손으로부터 구출되었다. 그는 또한 에서와의 문제로부터 구출되었으며 숙곳에 이르렀고 거기서 자신을 위한 집과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지었다. 나는 거기서 머문 야곱에게 평강이 없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세겜으로 올라왔으며 그의 열조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살기 위해 제단의 간증이 있는 합당한 장막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겜에서의 그의 생활은 하나님의 표준에 달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땅에서의 그분의 집인 벧엘을 갖는 것이다. 

 야곱과같이 오늘날 많은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세겜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은 만족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들이 자꾸 자꾸 그들에게 발생하여 그들의 마음으로하여금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고 제단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 시킨다. 나는 내가 야곱과같은 일을 해온 것을 간증할 수있다. 나는 단순하게 나의 맹세와 헌신을 잊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특히 어려움과 시련의 시간 동안에, 주님께 헌신했음을 믿는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맹세를 이행했는가? 아마 우리 중 아무도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볼 때 우리 모두가 야곱들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역사는 사실상 우리의 자서전이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우리의 맹세를 이행하고 우리의 헌신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명의 딸, 열 한명의 아들, 세겜, 하몰,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일들의 희생이 요구될지 모른다 주의 회복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세겜을 통과하여 벧엘로 가기를 원하시고 단체적인 교회생활로 올라가기 위하여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을 통과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겜에서 좋다할지라도 우리에게 만족할만한 평강과 안정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겜을 떠나 이땅에서 그분의 집안에서 합당한 교회생활을 갖도록 벧엘로 올라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취하게 한다.  

A.아브라함(Abraham)

세겜(Shechem)은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땅에 대한 약속을 받으면서 구약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세겜땅모레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가나안땅을 그의 후손들에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12:6-7).  

B.야곱(Jacob) 

1.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의 경계로 인해 밧단아람 땅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숙곳(Succoth)'과 '와디 파라(Wadi Parah)'를 통해 세겜에 도착하였다. 

 2. 야곱은 잠시 세겜 근처에 머무르면서 그 지방의 하위 방백인 하몰의 아들(세겜)로부터 은 일백 개로 땅을 사서 '엘-엘로-헤이스라엘(El-Elohe-Israel,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명하고 단을 쌓았다(창 33:18-20)

3. 야곱 일가가 세겜에 머무르는 동안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창 34:2), 야곱의 두 아들(시므온과 레위)은 하몰과 세겜을 포함한 모든 남자를 살육하고 그 성을 약탈하였다(창 34:25). 이후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은 세겜을 떠나 헤브론 땅의 마므레(Mamre)에 머물렀다. 

4. 야곱의 가족들이 이곳에 묻혔으며(행 7:14-16),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해 요셉의 뼈도 이곳에 묻혔다(수 24:32).  

C.여호수아(Joshua)

1. 여호수아는 모세가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장소로 선택한 세겜으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소집하여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세우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수 8:30-35). 

 2.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경계에 인접한 세겜은(수 17:7)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지만, 고핫 자손에게 재분배되었고, 도피성이 세워졌다(수 20:7, 21:21)(사진2. 레위 지파의 도시와 도피성 참조). 

3.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4).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후 세겜은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열두 지파 동맹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D.사사시대

기드온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세겜에서 왕으로 등극했다(삿9:1-6).아비멜렉은 세겜에서 3년간 통치하였으나 세겜백성들이 반기를 들자 이 성읍을 파괴해 버렸다(수9:45). 

E.분열왕국시대

40년 동안의 솔로몬의 치세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은 왕권 확인식을 하려고 세겜으로 향했다(왕상12:1,대하10:1). 그러나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처신으로 인해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북쪽지파들은르호보암으로부터 돌아섰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세겜을 북이스라엘왕국의 첫번째 수도로 정하였다(왕상12:2025).그러나 세겜은 낮은 분지라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없었고, 북이스라엘왕국은 수도를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디르사(타루자)로 옮겼다. 디르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바아사왕(왕상15:21), 엘라왕(왕상16:8), 시므리왕(왕상16:11)을 거쳐 오므리왕 6년까지 수도였다. 오므리왕은 전쟁시 방어하기에 유리했던 사마리아 성으로 천도하였다(왕상16:23-24) 

F.이스라엘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B.C.722년 앗수르왕 사르곤2세는 북이스라엘왕국을 점령하였고, 이스라엘민족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붙잡혀 가면서 앗수르인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도록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스라엘민족과 가나안족, 그리고 앗수르족의 혼혈이 생기게되었다. 이 혼혈들은 사마리아의 지명을 따라 사마리아인(Samarit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 세겜은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기때문에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의 잔류민들은 앗수르의 민족 혼합정책, 피하여 세겜으로 모여들었고, 그리심산(Mt.Gerizim)에 성소를 세우고북이스라엘사람만의 전통을 지켜왔다. 이후 남유다왕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Nebuchadnezzar)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갔다. 

 G.포로 해방과 귀환

그러나 바사(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고, 고레스왕에 의해 해방된이스라엘민족은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은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을 도와주려 하였으나, 이스라엘민족으로부터 거절 당하자 성전재건을 방해했다(스4장). 이들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혼합된 혈통과 종교 활동으로 끝내 정통 유대인들과는 분리되었다. 

H.신약시대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던수가(Sychar)성이 구약시대의 세겜이다(요4:3-42). 

I. 위치 및 지형 Geography

이스라엘_현대 세겜(나불루스)의 전경

A.지명-고대의 세겜(텔발라타,TelBalata)은 현재'나블루스(Nablus)'라 불리는 곳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나블루스는 새로운 도시, 즉 헬라어 네아폴리스(Neapolis)에서 기인한 이름으로 AD72년에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을 때 건설한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은 세겜이 하몰의 아들 세겜(창33:18-19)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깨'라는 뜻을 지닌 세겜이란 이름은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인 에발산 기슭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B.위치-세겜은 중앙산악지대, 구체적으로 에브라임산지(사마리아지역)에 위치하고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7km 떨어진 지점에 있다.세겜은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남북과 동서로 뻗은 주요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세겜은 물공급이 용이하고 동쪽으로 쭉 뻗은 비옥한 평야, 그리고 여러 곳으로 연결된 주요도로가 통과하는 등의 여러 요건들이 합쳐진 지리적 요충지이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인식되어 왔다. 단과 브엘세바사이의 직선 거리는 대략 230km 정도인데 그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세겜이다. 

 C.기후-세겜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당하고, 물이 많은 곳이어서 고대로부터 농사짓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보리나 밀, 채소가 재배되었으며, 평지를 둘러싼 산비탈에는 포도,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가 경작되었고,목축에 좋은 풀밭도 많이 있었다(창37:12-13).헤브론에 살던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세겜 근처로 보내 양을 치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세겜이 목축에 좋은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창37:12-15).


이스라엘_성지순례_세겜의_위치

D.교통-세겜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통과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마리아 지방의 교통의 중심지였다. 남쪽으로는 산악지방으로 관통하는남북간도로(족장의길),곧 성경에 언급된 '큰길(삿21:19)'이 나 있어 실로, 벧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었다. 세겜은 동쪽으로는 동부 고원지대(트랜스요르단)를 지나는 왕의대로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사마리아를 지나 도단에이르는 길과 이스라엘 해안지대(샤론평야)로 내려가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연결하는 해안길(ViaMaris)에 닿는 길이 있다. 특히 서에서 동으로 연결된 길(지중해해안에서요단동편)은 세겜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는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으며 강력한도시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모임의 장소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였다. 

 E.역사-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겜이 알렉산더시대(B.C.322년경)에사마리아인들의 중요한 도시였고, B.C.107년 하스모니안 왕가의 군주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요한 히르카누스(JohnHyrcanus)에 의해 파괴되었다. B.C.63년에 로마장군 폼페이우스는 사마리아를 주(州)로 독립시켜 세겜을 그 주도(州都)로 삼았다. 제1차 유대반란시기(A.D. 67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 정상에 군사적 보루를 쌓았다. A.D.72년경 티투스(Titus)장군은 세겜땅에 신설도시를 세워 네아폴리스라고 불렀다. A.D.16세기경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4대도시(예루살렘,가자,제파트,나블루스)가운데 하나였다. 1948년부터 요르단에 속했던 나블루스는 1967년(제3차중동전쟁)부터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Historic and Tourist Sites

이스라엘_성지순례_텔 발라타(고대 세겜) 전경

A.텔발라타(Tel Balata) 

1. 고대 세겜(텔 발라타) - 성경에 등장하는 세겜은 현재의 텔 발라타이다. 텔 발라타는 현대 도시인 나블루스(세겜)의 동쪽에 인접해 있으며, 남서쪽으로 그리심산을 북쪽으로 에발산을 올려다 보는 계곡인 와디 파라(Wadi Farah)에 솟아 있는 낮은 언덕이다. 아브라함이 동쪽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 세겜에 왔을 때, 이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것으로 생각되는 성문이 텔 발라타의 북쪽 부분과 동쪽 부분에 조금씩 남아 있다. 

2. 텔 발라타에서 발견된 신전- 고대의 세겜(텔발라타, 나블루스 인근)은 1913년과 1934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발굴팀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다. 요새화된 신전은 1926년 독일 학자 셀린(Ernst Sellin)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발굴팀은 그 당시의 최신의 방법을 활용하여 적어도 네 개의 정착층(가나안 시대, 이스라엘 시대, 유대/사마리아 시대, 헬라 시대)을 확인하였다. 또한 1956년과 1973년에 라이트(G. Ernest Wright)의 지휘 하에 미국 드루 대학과 맥코믹 신학교의 공동작업으로 대대적인 발굴이 이뤄졌다. 그들은 단단한 기반 위에 진흙 벽돌과 목재로 지은 다층식 신전이 지어졌음을 추정하였다. 이 신전은 사사기 9장에 언급되는 신당인 것으로 추측된다. 입구 좌우로 두 개의 높은 탑이 설치되었으며, 신전 위층 복도는 탑의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사진5. 세겜 신전 상상도 참조). 입구 전방으로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제단 앞으로는 석비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명기 27장 2절에 나타난 석회가 발라진 큰 돌이 이 석비인 것으로 추측된다(사진6. 여호수아의 석비 참조). 아비멜렉은 세겜 땅을 차지한 이후 이 신전을 곡식 창고로 사용하였다 


여호수아의 비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27)_지방교회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7).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_성지순례 여호수아의 증거 돌 앞
이스라엘_성지순례
여호수아의 증거 돌 앞에서 찰칵!(2012.10.15)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1. 05:00

자매집회 - 국제장로  M-5 사랑과 빛 안에서 행함 - 지방교회들 집회

자매집회 - 국제장로  M-5 사랑과 빛 안에서 행함 - 지방교회들 집회
1. 

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1. 05:00

찬송가 517 - 달려갈 길 다 마치고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17 - 달려갈 길 다 마치고 - 지방교회들 찬송가

1- 달려갈 길 다 마치고 선한 싸움 싸운 때 들림 받고 주 영광에 들어가
믿음의 도 지켜 순교 무서워하지 않아 거룩한 성 얻으리

(후렴:1-3절)
들림 받아 영광 안에 주와 함께 들어가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이긴 자들 모두 함께 기뻐하며 노래해 새 예루살렘에서

2- 지금 이방땅에 나그네 돼 표류하여도 좋은 본향 바라보며 즐거워
친구들은 세상 축복 제일 귀히 여겨도 나는 거룩한 성 봐

3- 거친 길을 행할 때에 나의 다리 저리고 나의 손에 힘이 빠질지라도
그 성 생각할 때 힘이 솟네 낙심치 않네 그 성 나의 참 보상

4- 오늘 나의 싸움 허공 치는 것이 아닐세 향방 없이 달리는 것 아닐세
뒤의 것은 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푯대 향해 달리네

(후렴) 주의 사랑 주의 은혜 나로 들어가게 해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모든 성도 기뻐 뛰며 소리 합해 찬양해 새 예루살렘에서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1. 05:00

생명이만나 318 -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음 - 지방교회들 이만나

생명이만나 318 -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음 - 지방교회들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1. 05:00

포이멘칼럼 186 - 레위기 라이프스터디 요약 8 - 지방교회들 칼럼

포이멘칼럼 186 - 레위기 라이프스터디 요약 8 - 지방교회들 칼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1. 05:00


왜 나는 지방교회들에 대한 비판을 그쳤나


더 이상 위협이 없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임

최근 지방 교회 운동에 대해 최초로 비판을 가해 이단 논쟁을 촉발했던 미국의 CRI가 지방 교회를 재평가해 ‘정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기관의 소장이 한기총 대표회장에게 지방 교회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지방 교회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방 교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CRI가 발행한 지방 교회에 대한 연구 자료를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 연재한다. 이 내용에 대한 건전하고 발전적인 반론이 제기될 경우 그 또한 가감없이 게재할 방침이다. -편집자 주

-그레첸 파산티노(Gretchen Passantino)

나와 작고한 나의 남편인 밥 파산티노(Bob Passantino)는 1975년에 미국에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을 출판물을 통하여 처음으로 비판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 (CARIS, 1975)은 1962년부터 미국에 존재해 왔고 공개적으로 악평을 받아 온 운동에 대해 우리(그리고 우리의 조직인 CARIS) 와 CRI 설립자인 월터 마틴(Walter Martin)이 분석이 필요하다고 믿어서 조사한 것이다. 5년에 걸쳐서 다른 출판물들이 이어졌다. 즉 내 동생인 칼 바이즈너(E. Calvin(Cal) Beisner)와 나의 남편 밥(Bob) 그리고 내가 공동 저술한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CRI, 1978), 월터 마틴의 오디오 강연, 칼 바이즈너와 내가 써서 월터 마틴의 책인 <신흥 이단들>(비젼 하우스, 1980)부록에 첨부한 것이 그것들이다. CRI 연구원인 엘리옷 밀러(Elliot Miller) 역시 조사, 편집, CRI 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을 돕는 토론에 참여했다. 그후 1980년까지 CRI는 단지 짤막한 요약 정보와 몇 번의 최근 뉴스 정도를 출판했다. CARIS나 밥과 내가 나중에 만든 단체인 ‘행동하는 답변들’(AIA)은 그 주제에 대하여 그 외에 어떤 것도 출판한 적이 없다.

비록 여러 단체들이 전에 그리고 그 이래로 비평글들을 출판했지만, CARIS와 CRI가 부정적이고 공개적인 폭로를 위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일부 출판물들은 신학적인 평가에만 제한되지 않았고, 일부는 선동적이고 인격을 손상시켰음으로 지방교회들(LC)이 법적으로 자신들을 방어하도록 만들었다.

지방교회들이 두 번의 법적인 소송에서 우세한 이후, 1999년에 존 앵커버그(John Ankerberg)와 존 웰던(John Weldon)이 <이단과 신흥종교 백과사전(ECNR)>을 출판하기 전까지는 비평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무렵 쯤, 월터 마틴과 밥 파산티노가 작고했고(1989년과 2003년), 칼빈 바이즈너는 이단 비평계 현장을 떠나 공부를 더 한 후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1992-2007), 행크 해나그래프(Hank Hanegraaff)는 CRI의 대표에 취임했고(1989), 엘리옷 밀러는 CRI에 CRI 저널의 편집장으로 머물렀고, 나는 계속 AIA 의 대표로 있었다. ECNR의 출판은 행크와 엘리옷과 나를 논쟁에 복귀하도록 이끌었다. 왜냐하면 ECNR의 사실에 대한 그릇된 진술과 명예훼손적인 모습(nature)은 지방교회들, 특별히 종교의 자유와 투옥을 포함한 그 외의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중국 본토 내에 있는 구성원들에게 가혹하고 부당한 해악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엘리옷과 나의 초기 경력 가운데 과거 신학적인 조사가 해 왔던 것과 CRI대표인 행크를 위한 역사적 문서는 이제 그러한 초기 작업들을 재평가하고 우리의 성경적인 위치가 지방교회들을 변호하고자 한 것인지, 또는 단지 우리의 질투심 있고 무책임한 동료들 (앵커버그와 웰던)을 조용히 바로잡으려 한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급박하게 재촉했다. 지방교회들이 ECNR을 중재해 달라고 우리에게 접근해 왔을 때, 우리는 어떤 필요한 구속이나 화해 또는 정정을 이끌어 내는데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했었다. 우리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상호 접촉, 긍휼어린 사랑 그리고 문맥을 감안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함을 배웠다. 밥(Bob)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면, 미국에서 이 운동에 대하여 처음으로 출판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이 문제를 다시 돌아보고 과연 분석이 옳았었는지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그는 확고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이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죽었지만, 나는 그가 지금 행크와 엘리옷과 내가 지방교회들이 본질적인 교리에 있어서 정통이고, ECNR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하고, 비판을 받게 했고 특히 중국에서 지방교회들의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자유를 박탈당하도록 우리가 해악을 끼친 것을 확증하는 일에 기꺼이 함께 했을 것을 안다.

엘리옷의 책임은 본질적인 지방교회 신학을 재검토하고 혐의를 벗겨주는 것이다. 나의 책임은 왜 우리가 처음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요약하는 것과 나의 동료 이단 변증가들에게 우리가 했던 것처럼 재조사와 보다 많은 증거들을 포함하거나 적어도 원래의 잘못된 조사에 근거하여 지방교회들을 정죄하는 일을 삼가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첫째, 우리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LC 가르침을 접했을 때, 우리는 문제가 우리 쪽의 오해보다는 그들 쪽의 이단성 또는 혼동에서 생겨났다고 가정했었다. 우리와 월터 마틴은 늘 지방교회들을 이단이라고 부르기를 삼가했다. 우리는 “정도를 벗어난”(aberrant)이라는 용어를 선호했고, 비록 우리가 본질적인 교리들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 중 일부가 좋게 말하면 모순되고 나쁘게 말하면 이단적(heretical) 이라는 신념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과 자매들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우리는 리의 단호하게 표현하는 자극적인 습관, 즉 언뜻 보면 모순적인 문장인데 그후 그의 다른 본문 속에서 그것들을 설명하여 이단과는 구별짓고, 또한 가끔씩은 자극적인 문장들에서 멀리 벗어나는 습관을 오해했었다. 리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의 학생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추정하지 말도록 경고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서 이것은 혼동 그리고/ 또는 이단이라는 징후였다.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직접적인 상호 접촉과 연계된 보다 방대한 양의 자료들에 대한 우리의 최근 조사는 그러한 가르침들이 모순되지도 않고 이단적이지도 않지만,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 특히 외부인들에게 혼동스러울 수 있음을 확신한다. 

둘째, 우리가 1970년대에 연구했던 자료는 다음 세 가지 주된 이유들로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부족했었다. (1) 그 당시는 미국에서 (영문) 출판물이 많지 않았었다. (2) 상당 부분은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는데, 특별히 지방교회 성도들이 우리가 단지 비판하기 위하여 인쇄된 어떤 자료를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꺼려 하게 되었을 때 그러했다. (3) 인쇄물로서 사용가능했던 것의 대부분은 방어용도 아니고 변증 글도 아니었다. 대신에 혼동을 명확히 하고, 이단적이라는 오해를 방지하려는 경험있는 형제들의 인도아래 성도들을 위한 가르침의 보조 도구 수단이었다. 더욱 깊은 결함은 자료들 자체보다도 오히려 우리의 경력들 중에 그 초기 당시 우리의 학문적인 깊이와 넓이에 있었다. 리의 유산은 동방이며 서방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합리적이고 교훈적이며 아리스토텔레스학파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단지 문화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오류라고 의심하게 했다. 역설 그리고/또는 의미가 있는 명확히 함의 뒤로 미룸-부조리, 앞뒤가 맞지 않음, 또는 단지 상대적임 때문에 혼동될 수 없는-은 동양적인 사고와 초기 시대의 서구의 저술 속에서는 흔한 것인데, 현대 미국 저술에서는 실질적으로 잊어져 왔다.

셋째, 니와 리의 신학적인 접근은 서구 기독교계, 특히 개신교주의, 보다 특별하게는 복음주의 진영들, 각별하게는 이단 변증분야의 조직신학과는 달랐다. 지방교회 신학은 보다 실제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신학적이고 이성적인 페러다임을 묘사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날마다 특히 핍박과 반대아래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에서 지방교회 신학은 지방교회 교사들은 그들이 동방교회로부터 배웠거나 그들의 신학을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y)와 유사하다. 이 패러다임이 단지 다른 것만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나타났었다. 

넷째, 우리는 지방교회들의 가르침들을 그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뿌리들과 분리시킴으로 몇 가지 그들의 독특한 경험들을 이단성의 확증들이라고 잘못 이해했다. 지방교회들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미국처럼 서구 유럽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동양적인 사고방식, 아시안의 문화적인 관습들, 그리고 오랜 뿌리들은 지방교회들 안에서 발전된 그리스도인의 삶(Christianity)에 독특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한 번도 노예가 되거나 침략을 받은 적이 없는 미국 복음주의자들, 더 구체적으로 “유럽계통” 기독교계는 사실상 분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예됨과 침략을 경험해 온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아편전쟁과, 철도 노동자로 부려먹고, 미국에게 “속여서 싫은 일을 하게 시킴” (“Shanghaied”)을 당하게 한 것과 연관된 유럽계통 기독교계는 최선으로는 호소력이 없고 최악으로는 위협적이다. 중국인 그리스도인이 믿는 이들의 모임에 있어서 그 지방(“로마에 있는 교화”) 이외에 다른 아름이나 구별이 없는 신약의 실행을 볼 때 이러한 관점은 침략자들인 로마 카톨릭교 또는 shanghaiers 의 개신교주의에 대한 교정책 이상인 것이다. 우리가 적절히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그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관계 안으로 둘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교회이다 “ 라는 배타주의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대신에 “모든 참된 믿는자들과 같이 우리는 단지 참된 교회이다”라는 비배타주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방교회들과 대다수 미국교회들의 차이들은 유대교 그리스도인들과 신약의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차이들과 아주 유사하다. 양쪽 집단들은 참된 믿는 자들이다; 그것은 2 세기의 지식을 가진 이단자들과 같은 시대의 정통의 참된 믿는 이들 간의 차이들과는 다르다. (이것은 대부분이 단지 지방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인이나 유럽인 LC 믿는자들에게는 동일하게 여겨진다.)

다섯째, 우리와 지방교회들 모두가 성숙되지 못했고, 경험이 부족했고, 때로는 냉담했기 때문에 지방교회들은 잘못 판단해 왔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단지 복음적인 미국 개신교주의 만을 경험했고; 우리는 주로 조직신학을 공부했고; 우리는 추론적, 논리적, 증거상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변증론법을 전개해 왔다; 우리는 좀 더 주의 깊게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상대론인지 주관론인지 혼동되지는 않는) 종종 흑백 논리,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로 판단해 왔다. 예를 들어 그들의 자료들을 읽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게 개별적 대화를 무시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서들에서 지방교회들이 오직 하나뿐인 참된 교회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그것들을 배타적인 글로 이해했고, 그들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미를 볼 때, “장로교” 와 같은 구별되는 이름에 의해 서술되지 않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이 모호하게 여겨졌다. 만약 우리가 모호하게 추정하지 않고 개별적인 대화에 참여 했었더라면, 우리는 지방교회들의 행동이 지난 5년 동안에 걸쳐 발견했듯이 배타적이지 않고, 포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의 초기에 양쪽이 모두 쉽게 노여워했고, 화해하는데 더디었고, 더 빨리 기만으로 결론을 내었고, 공개하는 것을 격려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의 신학적인 검토에서 엘리옷에 의해 제기된 이러한 것들과 다른 이유들은 우리가 지방교회들은 어떻게 잘못 판단해 왔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나의 동료들에게 호소하는 결정에 이르렀고, 특별히 나의 동생 칼빈 바이즈너, 월터 마틴과 밥 파산티노는 작고했다. 행크 해나그래프는 나의 초기 연구 후에 CRI로 돌아왔다. 공개서한에서 “증거”의 대부분은 우리가 1981년 전에 우리의 잘못된 판단을 가져오는데 처음으로 사용한 증거와 같다. 엘리옷과 나는 그 증거를 재조사 해 왔다. 더욱 중요하게 우리는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상호 접촉을 가졌고, 지금은 그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내용 면에서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에서, 우리는 아주 많은 량의 자료들을 검토했고 상당히 많은 지방교회 성도들과 인터뷰해 왔다. 칼(Cal)은 원래 자료들을 재조사 해왔다. 그는 지방교회 일원들 그리고 인도자들과 직접적인 상호 접촉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칼은 인도그룹이 그들과 엘리옷과 내가 이단이 아니라고 믿고 부인할 필요가 없는 글을 번복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자료들을 조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재조사를 해낼 수 있는 3명의 현존하는 변증자들 중에 두 사람은 그렇게 해왔고, 우리가 틀렸고 지방교회들의 가르침들은 이단이 아니며, 그들은 유사종교 또는 신흥종교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째는 우리의 노력부족으로 해 내지 못해 왔고, 칼은 여전히 지방교회들의 가르침은 이단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진실성을 보여주는 결론은 어떤 것인가? 엘리옷과 나는 칼이 자신의 원래 입장을 고수하는 것보다 우리의 번복이 더 타당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초기에 이러한 주제를 재조사하는 것을 꺼려했었다. 첫째, 나는 다른 필요들에 몰두해 왔었다. 둘째, 나는 나의 변증법적 연구에 거의 틀린 적이 없었고, 재조사를 위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거의 정당화할 수 없었다. 세째, 그것은 참된 정통성이라기보다는 지방교회의 정통신앙으로 보이도록 속이는 것으로 간주하기가 쉬웠다. 네째 지방교회들이 일반적인 복음적 미국 개신교 주의와 구별되게 나타났다는 것과 그 가르침이 이단이라는 암시(확실성은 아니지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다섯째, 나는 한 이단 단체 (the Worldwide Church of God, 전세계적 하나님의 교회)를 보아 왔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단교리를 부인하고, 정통교리를 받아들였으며, 잘못한 형제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죄인을 구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여섯째, 내가 틀렸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끄러웠다. 일곱째, 이단은 적어도 잘못 이름 지워진 정통 단체와 마찬가지로 그것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편이다.

내가 새로운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 요인은 나의 동생 칼과 공유하는 한 가지 점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비판이 우리 자신의 연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것에 기초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만 한다. 공개서한의 서명자들은 많은 변증자들이며 밥과 월터와 엘리옷과 칼과 내가 1970년대에 한 연구보다 더 광범위한 연구를 하지는 못했다. 우리 중에 3명은 현존하고, 그 중 2명은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 당시에 잘못했다고 했었더라면 적어도 몇몇 서명자들은 그들이 우리가 지금 한 것 만큼의 좋은 연구나 우리가 예전에 했던 보다 나은 연구를 수행할 시간과 역량이 없었을지라도, 지방교회들을 계속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꺼려했었음에 분명하다.

이전의 나의 연구(밥과 월터와 엘리옷과 칼에 의해 공동연구하고 발전된)는 나의 결론이 틀렸었다고 평가하기엔 불충분 했다. 나의 현재 연구(행크와 엘리옷에 의해 공동 연구되고 발전된)는 예전 것보다 꽤 깊고 광범위하며, 예전의 나의 결론을 번복할 정도로 충분하다. 공개서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명했는지, 얼마나 여러 번 동일한 부적절한 출처가 인용되었는 지와 상관없이, 저널의 논쟁에서 지지된 결론이 진실의 장에서 더 지배적이다. 지방교회들은 정통 기독교 신학의 본질을 믿고 있고, 이단 안에서 믿는 자들로서 대립하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자매들로서 그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다른 변증자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같은 깊이의 문제에 재차 참여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비판을 철회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형제를 비난하는 죄의식이나 이단이라고 받아들이는 잘못된 위험에 놓여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다시 다루지 않아야만 하는 영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레첸 파산티노 코번은

‘행동하는 답변들’(AIA)( http:// www.answers.org)의 설립자 겸 이사이고, 다작하는 저술가이며, 신학교 조교수이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어바인) 비교문학 학사와 믿음 복음주의 루터교단 신학교(Faith Evangelical Lutheran Seminary) (Tacoma, WA) 신학 석사를 가지고 있다.



류재광 기자 입력 : 2010.06.28 06:00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09355

posted by 샬롬1 2018. 5. 30. 08:26

새 하늘과 새 땅 안에서 우주적이고도 영원한 축복들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최종적인 누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 안에서 우주적이고도 영원한 축복들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최종적인 누림을 포함한다[계 21;1-7,22-1-5]

할렐루야 !
이 소망이여!
우리는 모두 새 예루살렘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려면 익어야 되고 성숙해야 한다
만일 이 세대에서 성숙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성숙되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을 누리는 모든 이들은 성숙할 것이다

주님이 우리 모두를 어떻게 성숙시키는가를 나에게 묻지마라

그분은 이 세대건 다음 세대건 간에 성숙시키는 길을 아시며 성취하는 길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 널리 퍼져 있는 신학이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한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다음 세대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되기 위해서 여전히 처리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에게 소망이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은 ``우리는 그분의 약속대로 의 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모른다면 우리는 미혹하는 것들을 기꺼이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과 우리의 들림받음과 변형과 영화롭게 됨과 천년 왕국에서 주님의 누림에 참여할 수 있는 누림을 보았다면 자연히 다른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장래에 다가올 것을 보지 못하면 현재 있는 것들의 속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의 각 방면을 봄으로써 구출되어야 한다

이런 까닭의 사도바울은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도록 기도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선택 예정 구속 인치심 보증하심 뿐 아니라 영광스러운 장래도 포함하고 있다

그분의 부르심은 과거뿐 아니라 장래에도 관계된다

아 !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장래를 갖고 있는지 !


에베소서 라이프 스타디
15장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29. 05:00

찬송가 516 - Pick Up Your Spirit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16 - Pick Up Your Spirit - 지방교회들 찬송가
앨범 : Unto Christ the Lord Always (2007,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