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6.12 00:15

찬양 454회

목마른 사슴


내 마음의 노래 234장





지방교회 찬송가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2.29 00:00

지방교회 에세이 - 경배는 특별한 장소에서(예루살렘, 영 안에서) - 갓멘에세이 112

요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한 일을 두고 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아침 부흥 책자 진도에 따라 아침에 경배 장소를 말한 신명기 12장 5절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시니까 아무 곳에서나 그분께 경배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12장 전체 말씀을 읽어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반복해서 본인이 선택하신 특정 장소에 가서 그분을 경배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그분은 모세를 통하여 “여러분이 그대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 사는 모든 날 동안 지켜 준행해야 할 율례와 규례는 이러합니다.”(신 12:1)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계십니다.

오직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선택하실 곳인 그분의 처소를 찾아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신 12:5).

구약의 실행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자신들이 선택한 곳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거나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누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 그분의 이름을 두신 곳, 그분의 처소, 그분의 제단이 있는 곳에서 십일조와 제물과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경배해야 했습니다(신 12:5-6).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나중에 예루살렘으로 특정된 것처럼, 경배의 중심지가 유일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경배의 중심지가 유일해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가 지켜지고, 여로보함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람의 선호 때문에 일어나는 분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라고 노래하여, 여호와의 거처 혹은 그분의 이름을 두실 곳이 시온(Zion) 즉 오늘날의 예루살렘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남자)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1년에 세 차례(무교절, 칠칠절, 장막절)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대다수 견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실행의 흔적은 심지어 신약 성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발견됩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기를 정결하게 하려고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요 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요 2:13).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여러분은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요 4:20).

그렇다면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듯 특정 장소로 그분의 백성을 불러 모으셨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시편 133편 내용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달콤한 하나를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여로보함의 예에서 보듯이 하나를 깨고 분열을 조장하는 쪽에서는 이런 요구가 매우 거북스러웠을 것입니다. 분열의 책임이 예루살렘 외에 경배 장소를 만든 쪽에 있음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의 적용

경배 장소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즉 ‘물리적인 어떤 특정 장소’(예루살렘, 혹은 예배당)에 가는 것에서 영적인 어떤 조건을 충족하는 문제로 바뀐 것은, 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입니다(요 4:19-24). 즉 주 예수님은 그 대화 중에, “이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데”서 “여러분이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그렇다면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언제 성취되었고, 또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첫째, 그 답변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24절)라는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신약 성도들의 경배가 가능하게 된 시점은,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신 사건(요 3:6)인,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 땅에 출현하게 된 그 때부터 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돌아볼 때, 과거에 단지 예배당에 다니고, 머리로만 성경을 읽고(또 설교를 듣고), 내 안에 사람의 영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때, 즉 허물과 죄로 죽어 있던 내 영이 살아난 체험을 하기 전에는 위 말씀이 가리키는 참된 경배는 저와는 무관했습니다. 그러나 영이 거듭난 후인 지금은, 영 안에서 아버지를 경배하는 것, 즉 거듭난 영을 사용하여 그분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 혹은 예배 중에 영을 사용하여 말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을 알고 또 자주 체험합니다(물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음).

둘째, “왜냐하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마 18:20)라는 말씀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엄밀히 말하면 특정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임재와 하나 된 상태로 모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를 위해서는 십자가 혹은 제단 위에서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생명이 거절되는 전제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합니다.

셋째, 참된 신약교회의 모임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한 떡’이 상징하는 것처럼, 주님의 몸의 하나를 전람해야 합니다(고전 10:17). 이것은 주로 1인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이는 요즘과 달리, 한 떡과 한 잔이 놓인 주님의 상(Lord’s table) 집회가 신약 교회의 모임의 중심이 되었던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행 20:7, 2:42).

요약하면, 아버지께서 찾고 계시는 “참된 경배자들”(요 4:23)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정 지점을 차지하고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대신에 거듭난 영 안에서 가나안 땅의 실재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골 1:12, 2:6-7, 엡 3:8)를 삶 속에서 체험하고 누려서 얻은 그 실재를 가지고 와서 하나의 터 위에서 전람하는 사람들의 경배입니다. 이들은 초기 교회에서 그러했듯이, 꼭 단일 모임 장소(예배당)에 다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행 2:46).

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모두 긍휼을 입어 당신이 찾고 계시는 “참된 경배자들”로 발견되게 하옵소서! 자기 소견대로 경배하는 헛된 경배에서 구원받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7.18 05:00

지체들의누림글 96 - 표준에 부합하는 경배 - 지방교회들 누림글

지체들의누림글 96 - 표준에 부합하는 경배 - 지방교회들 누림글

하나님의 표준에 부합하는 경배는 주로 두 가지 항목, 즉 경배의 장소와 경배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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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7:20
성경말씀  

(창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8:4~5)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오늘의 만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절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과 나무 그늘에 앉아 발을 씻는 것 중 어느 것이 하나님에게 더 즐겁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수준으로 인간의 형태로 그에게 오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오신 이후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경배나 두려움이 없고 다만 친근함이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평범한 방식으로 방문하십니다. 많은 자매들은 그들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할 때 주님이 친밀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오신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로서 주님과 함께 달콤한 교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형제들도 역시 이런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주님은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오시어 그들과 함께 달콤한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친밀한 친구처럼 교통하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으로 우리를 방문하신 것의 체험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5:55
성경말씀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히11:4)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이 드린 것보다 더 뛰어난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사람이라는 증거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을 통하여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아벨은 그의 관념과 사상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에 따라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했던 것입니다. 가인과는 달리 아벨은 자신의 양 떼 중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그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제물은 죽었을 것이고 피를 흘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이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기름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자신에게 피를 흘릴 수 있는 제물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타락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자신이 악하며 죄가 있고 더렵혀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구속을 위한 피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기름이 있는 첫새끼를 드렸습니다. 의심할 것 없이 아벨은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이렇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에 따른 것이었으며 자기의 관년에 따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민수기 18장 17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예표인 소나 양의 첫 새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표론에서 볼 때, 아벨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결케 하는 그리스도의 피와 우리를 덮는 그리스도 자신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5:25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 담는 그릇인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접촉하는 기관 즉 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라디오 안에는 수신기가 있는데 이것이 파손되었을 때는 전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외적인 그릇이며, 우리 속에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수신기인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칠판은 손으로 만지고, 향기는 코로 맡고, 색깔은 눈으로 봅니다. 또한 소리는 귀로 듣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그분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기 중에는 많은 라디오 전파가 있지만 수신기가 없이는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업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수신기인 사람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기능을 잘 발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하나님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사람의 영(잠20:27)이라고 부르는 기관이 있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7:10
성경말씀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을 믿은 지 2년 정도 된 어느 형제가 로렌스가 쓴 '주님과 함께 함'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바로 다른 형제와 한 시간에 한 번씩 기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매번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의 임재를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력을 다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주일에는 하루종일 기도했고, 토요일에는 반나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2, 3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에게로 돌이켰을 때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한번 외출하면 곧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기억력을 의지해 주님의 임재를 유지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잊어버리면 임재도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억력을 사용하여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는 영 안에 있는 것이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으로써 영을 대할 때 주님의 임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외적인 사물에 대해 반응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임재를 놓치고, 주님의 임재를 누릴 수 없는 것은 그의 겉사람이 외적인 사물에 대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일을 제거할 방법이 없지만, 겉사람을 깨뜨릴 수는 있습니다. 겉사람을 파쇄하면 외적인 일은 단지 겉사람에게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속사람은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의 임재 안에 살 수 있게 됩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6:15
성경말씀 

 (딤후3:15~17) ...이 성경은 그대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오늘의 만나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이외의 어떤 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단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 외에 여러분에게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한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는 없습니다. 성경을 경배하는 것은 미신적인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한 구절을 짚어서 그 구절을 여러분의 길잡이로 삼는 것은 미신적인 것입니다. 말씀에 나아올 때 여러분의 영과 여러분의 진지한 생각을 사용해야 하며 손가락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형제가 성경을 편 다음 임의로 한 구절을 짚어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말씀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떤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으로 생각지 마십시오. 그러나 성경은 세속의 책 이상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대할 때의 느낌은 잡지를 대할 때의 느낌과는 다를 것입니다. 나는 아내와 불화가 있은 후에 성경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즉시 내가 성경을 읽거나 주님 앞에 나와서는 안 되고, 먼저 아내와의 문제들을 바로잡은 후 그렇게 하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체험이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설령 성경을 펴서 말씀을 읽을지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