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27 00:50

지방교회 이만나 - 은혜의 확대를 위한 고난 - 생명이만나 412번

고후12:9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의 능력은 사람이 약할 때에 온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장막으로 드리워지도록 오히려 나의 약한 것을 더더욱 기쁘게 자랑하겠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부활 안에 살 수 있도록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부활 안에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가져오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 되신 삼일 하나님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인 다소의 사울이 가장 앞선 사도가 되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은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은 그의 사역과 생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간증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확대되게 하려면 우리의 고난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온전한 능력을 보여 주려면 우리의 약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님의 능력이 자기 위에 장막을 치도록 자기의 약함을 가장 기쁘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은혜는 공급이고, 능력은 은혜의 힘 곧 재능입니다. 

둘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주는 영이십니다. 

아멘


posted by 샬롬1 2018.10.02 06:35
우리가 말씀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공급하는 목적은 단지 어떤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거나 그 어려움을 통과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전일한 목적은 바로 그로 주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공급하는 최종 목적이 사람으로 주님을 알도록 이끄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환경 가운데 두사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당하게 하실 때 우리는 주님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매우 큰 필요를 갖게 된다

우리는 모든 성령의 통제가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필요가 없을 때 사람은 결코 주님을 알 수 없다
바울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주님의 은혜를 알 수 없었다
시련받는 것은 단지 시련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련 가운데서 더욱 주님을 알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항상 성령의 통제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어떤 필요를 느끼게 하신다
그리고 주님 외에는 그런 필요를 채울 사람이 없다
주님 아니면 그런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런 필요들은 우리로 주님의 어떤 부분과 어떤 방면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 12장은 바울이 주님의 능력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약함에 의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울은 고난을 당함으로 은혜를 알게 되었다
가시는 그로 하여금 약함을 알게 했고 또한 은혜를 알게 했다
주님이 그를 약함 가운데 두심은 그로 그분의 능력은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님이 그를 고통 가운데 두심은 그로 은혜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필요가 있는가에 따라 어떤 인식이 생긴다

어떤 종류의 필요가 있는가에 따라 어떤 종류의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갖기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겪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 내게 새로운 처리와 통제가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더해지고 내가 아는 그리스도로 교회를 공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8:30
성경말씀  

(고후4:17) 우리가 받는 환난은 일시적이고도 가벼운 것인데,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도 중대한 영광을 이루어 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하나님의 소모시키심과 벗기심을 체험할 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의 겉 사람은 소모되고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어 낸다고 말했습니다(고후4:16~17). 바울은 매일 소모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는데, 이는 그가 새로워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모시킴을 통하여 우리가 분배받는 영광은 영원한 무게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을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소유할 영광의 무게가 얼마나 될 것인가는 주님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얼마나 많이 당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얼마나 많이 고난당하는가를 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고난당하면 당할수록 영원 안에서 더 큰 영광의 무게를 분배받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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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20:20
성경말씀  

벧전4: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인’의 헬라어는 라틴어로부터 형성된 단어로서 크리스티아노스(Chistianos)입니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어미 ‘이아노스(ianos)'는 로마 제국에서 고위 가족들에게 속해 있는 노예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카이사(Kaisar)황제를 숭배하는 자들은 카이사리아노스(Kaisarianns)라 불리웠으며, 이는 카이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카이사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추종자들이 되자 제국 내의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카이사의 적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안디옥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크리스티아노스(그리스도인)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는 비난하는 말 즉 별명으로서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4장 16절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워 말고‘라고 말합니다. 즉 어떤 믿는이들이든 그가 핍박자들로부터 경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며 고난을 당할 때 그는 그것을 부끄럽게 느껴서는 안 되며 오직 그 이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람, 그분께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그분과의 유기적인 연합 안에서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며, 그의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며 더 나아가 그분을 사는 그리스도와 하나인 사람으로서, 우리가 그러한 사람인 것으로 인해 고난당할 때 우리는 부끄럽게 느껴서는 안 되며, 오직 그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리의 거룩하고 뛰어난 행실로 말미암아, 우리의 고백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확대시키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20:05
성경말씀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도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십자가의 목표는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된 후에 믿는이들은 십자가 위에 머물면서 옛사람을 계속적으로 십자가의 끝냄 아래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십자가를 지셨고 그다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은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다음 그들의 옛사람이 끝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십자가를 집니다. 믿는이들은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체험하고 누립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7 17:05
성경말씀  

(고후12:9)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의 능력은 사람이 약할 때에 온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장막으로 드리워지도록 오히려 나의 약한 것을 더더욱 기쁘게 자랑하겠습니다. 

 오늘의 만나

 
 ‘은혜’는 우리가 부활 안에 살 수 있도록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부활 안에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가져오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 되신 삼일 하나님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인 다소의 사울이 가장 앞선 사도가 되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은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은 그의 사역과 생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간증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확대되게 하려면 우리의 고난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온전한 능력을 보여 주려면 우리의 약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님의 능력이 자기 위에 장막을 치도록 자기의 약함을 가장 기쁘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은혜는 공급이고, 능력은 은혜의 힘 곧 재능입니다. 둘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주는 영이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7 14:15
성경말씀  

(골1:24~26)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웁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청지기 직분을 따라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비밀은 영원부터 모든 세대에 걸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속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이 완성하신 고난과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도들과 믿는이들이 채워야 할 고난입니다. 바울이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 ‘이루다’는 헬라어로 ‘완성하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성한 계시로서 신약이 쓰여지기 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신약에서 사도들 특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했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완전한 계시를 줍니다. 헬라어 문법에 따르면 골로새서 1장 26절의 ‘비밀’은 25절의 ‘하나님의 말씀’과 동격 관계에 있으며 이것은 이 비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 곧 머리와 몸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 비밀이 밝혀진 것은 신성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6 20:15
성경말씀  

(골3:9~10)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감상하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되시는 분은 우리가 그분을 감상함으로써 우리 안으로 주입된 그리스도 바로 그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 위하여 자신의 의의 상태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께로서 나온 의의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하게 되는 것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10절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 즉 그분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서 그분을 체험하는 것으로 말미암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그런 다음 그리스도의 체험 즉 체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