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7.17 00:10

지방교회 자매집회

M3 그리스도를 우리의 계속적인 구원으로 체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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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7.30 05:00



‘성경으로 돌아가자’ 대형 복음집회 개최


로고스코리아 등 26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서

오는 26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컨퍼런스 2007, 성경으로 돌아가자”(Recovered to the Bible) 라는 주제하에 약 1만5천명(해외 성도500여명 포함)이 모여 대규모 복음전파 행사가 진행된다. 이 행사는 한국복음서원, 로고스코리아, 성경진리사역원(이하 ‘주최측’이라 표기함)이 주최하는 것이다. 주최측 관계자에 따르면, 실내 체육관 복음집회 후에 약 1만 여명이 가두행진을 할 예정이다. 행진코스는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약 2km이며, 한국전력 앞 광장에서 해산할 예정이다. 많은 경우에 가두행진은 불만이나 요구조건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주최측의 가두 행진은 아주 평화적이고 특별하다고 한다.

주최측에 따르면 가두행진을 하는 목적은 복음의 영을 회복 하는데 있다. 그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그 중간 중간에서 크고 작은 북을 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도덕을 사랑하자는 표어를 선포함으로 포괄적이고 합당한 복음전파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 행진기간 동안 이번 행사의 주제인“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도 반복해서 선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주제아래서 다음의 일곱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 된 선언문 내용을 보면 이번행사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2.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3.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靈)이 있음을 선언한다. 4.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5.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6.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사실‘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말은 이번에 처음 나온 구호는 아니다. 멀리는 종교개혁자들도‘오직성경’을 외치며‘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주최측이 말하는‘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의 설명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오(無誤)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런 가운데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근본 신앙을 손상시키는 심각한 요소들 중 하나임을 지적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따라서 성경을 참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정도까지 성경을 신뢰해야 한다.

둘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자는 제안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왜 이런 제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미국교회의 경우 성별된 근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성도들 중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5%미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고 또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같은 원칙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들어서 읽자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이다. 성경에서는“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마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성경 지식은 많은데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의 힘으로 사는 체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하고 소화하여 성경의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 소화하여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이 목표


 주최측은 대회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일년일독(一年一讀)하는 성경읽기표를 나눠주고, 포켓 성경(마태복음 요한복음)을 선물로 줄 모든 믿는 이들은 누구나 각지에서 적절한 숫자의 그룹을 형성하여 규칙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도록 도운다.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 의주된 초점은 그 모임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믿지 않는 가족들, 친구와 친지들, 직장 동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있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이번 행사 후반부에는 복음 대행진이 예정되어있다. 여러 사람이 큰 거리에서 행진한 번 한다고 해서 과연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복음화율은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교인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선교학적으로 '사회 복음화 비율이 20%를 넘게 되면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오이코스 코리아 대표 이상만 목사는 “현재는 완전한 하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전도의 효과가 없는 시대”라고 말한 다.

그렇다면 주최측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번 복음 행사를 기획했으며, 그들이 말하는 복음 전파는 과연 무엇인가. 주최측도 이런 행사를 통해 당장복음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런 행사를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의 영을 분발시킴으로 복음 전파에 대한 담대함을 갖고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통계상으로는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네 사람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생활 가운데서 불신자들에게 본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목표는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사복음서의 각 권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마쳐진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이었다(행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 전파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자 교회의 가장 큰 위임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주최측은 이번 행사의 주된 목표가 일부 성직자들이나 직분이 있는 사람들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또한 온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25%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75%의 이웃임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복음 전파를 강조하지만,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전파보다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끌어오는 ‘교회 바꾸기’ 또는 ‘수평이동’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는 건전하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복음서원은 미국 ECPA(복음주의기독교 출판연합회)의 정회원이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Stream Ministry(LSM)’의 출판물을 한글로 번역 소개하는 곳이다. 로고스코리아는 지난 20세기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성경 진리 중에서 엄선된 소중한 진리들을 담은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는 문서선교기관이며, 성경진리사역원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성격을 훈련하여 유용한 복음전파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지방 교회들 '성경으로 돌아가자' , 교회연합신문 702호 다운로드 - (하단클릭)
교회연합신문702호070819.pdf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7.06 05:00

갓멘에세이 89 -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 지방교회들 에세이

갓멘에세이 89 -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 지방교회들 에세이

함께 사역했던 바울과 바나바와는 쉽게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지만, 바울과 베드로는 그동안 전혀 별개의 사도들로만 알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아래 말씀을 여러 번 읽고 관련 구절들을 찾아본 결과, 두 사도 사이에 접촉점이 의외로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2장의 책망 사건>을 알고 있었기에, 베드로가 바울을 가리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쓴 부분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또한 자기가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무식하고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부분도 잘못 풀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벧후 3:15-16).

제 기억으로는 자기가 쓴 서신에서 다른 사도의 서신을 거론한 것은 위 경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뒤에 사역을 시작했고, 심지어 책망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던 바울을 베드로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른 것과 바울이 쓴 어떤 내용은 자기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 것은 같은 사도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관련 각주도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각주2) 베드로가 이렇게 추천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신약의 믿음에 대해서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갈 2:11-21). 

이것은 베드로가, 요한과 바울과 자기 자신과 같은 초기의 사도들이 비록 일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용어와 말하는 방식과 어떤 일에 대한 관점과 가르침을 제시하는 법은 서로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동일하고 유일한 사역, 곧 신약의 사역에 참여했다는 것을 담대하게 인정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참고로 베드로는 총 여덟 장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창세 전 영원 과거부터(벧전 1:2, 20) 영원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까지(벧후 3:13)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각각 계시와 지혜를 받았지만, ‘새 하늘들과 새 땅’ 만 제외하면 바울 역시 베드로와 같은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위에서 바울을 거론한 것은 특별히 그가 모든 믿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적인 징계와 심판을 언급한 대목에서였습니다. 

바울도 그 점을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문득 그렇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사역하는 동안에 언제 어떤 식의 만남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즉 바울이 회심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온 후 삼 년 뒤에 내가 게바(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 동안 머물렀으나(갈 1:18)(여기서 <방문하다> (‘히스토레오’)는 “헬라어로 ‘친분을 맺기 위하여 방문하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관련 각주). ”혈육과 의논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도 그릇된 것이다. 계시를 받은 후 합당한 시간에, 우리는 앞서 주님을 안 주의 몸의 다른 지체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교통은 필요한 것이다”.

-(십사 년 후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기둥같이 여겨지는 야보고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나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교통의 악수를 하였습니다(갈 2:9).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나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갈 2:11). (“신약에서 최소한 두 번 베드로가 소극적인 길로 앞장을 섰고 다른 이들이 그를 따랐던 것을 본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고기잡이하러 가는 데 앞장을 섰다. 여기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 베드로는 위선을 행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LS, #6)).

-여러분이 각각 나는 바울에게, … 나는 게바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1:1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십니다(고전 3:22-23).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게바처럼, 아내인 자매를 동반하고 다닐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단 말입니까(고전 9:5)? 성경대로 제삼 일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 마지막으로는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4-8).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 그때 사도들과 장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그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선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는 것을 좋게 여겼다(행 15:6-7, 22).

이런 추구를 통해, 베드로와 바울은 서로가 가르친 진리 내용은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서로를 알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갈라 선’(행 15:39) 예에서 보듯이, 아무리 사도이고 분량 있는 사역자라고 해도 다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나름대로 업적이 생기고 지위를 얻게 되고, 심지어 따르는 사람들이 생긴 후에는(고전 1:12)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일이 초신자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 베드로후서를 쓸 때의 베드로는 바울 앞에서 위선 된 모습을 보였던 때보다는 더 변화되고 넓어진 사람이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와 바울’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 직분”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분”을 받아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유일한 신약의 사역을 가르쳤고, 한 몸 안에서 한 교통을 추구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렘브란
트 반 레인이 그린 ‘논쟁하는 두 노인’이라는 그림 속에서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은 모두 네로 황제 시절, 비슷한 시기에 순교했습니다. 전언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방식으로 처형되었고, 바울 사도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논쟁 두 노인'

이처럼 다른 듯하면서 같은 베드로와 바울의 삶이, 한 몸 안에 있는 우리 많은 지체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각자의 타고난 기질은 다르지만, 신약의 사역에 신실하고, 한 몸을 존중하며, 자신을 비우고, 형제 사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 주 예수님,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서 또 말씀하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이 아침에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여러분 각 사람은 그 지체들입니다.”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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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췌
1. EL GRECO 베드로와 바울(1587-9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at St. Petersburg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www.andong-ch.org/webgallery/42833
2. 1628|패널에 유채물감|72×60㎝|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https://www.jejudomin.co.kr/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20:05
성경말씀  

(고후3:3) 왜냐하면 우리가 사역하여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그리스도로 조성되었고 그리스도의 산 편지였습니다. 바울의 글들은 그의 어떠함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그것들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읽게 됩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그가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갈2:20)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성된 바로 그 그리스도를 전달해 줍니다. 바울은 많은 것들을 행하고 살았으나 그것은 더 이상 그가 아니라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 우리는 그를 읽고 있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바울 자신이 아닌 그의 조성체인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로 조성되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의 이름의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읽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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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8:25
성경말씀  

(고전15:45)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 

 오늘의 만나

 
 이 비밀에 관한 계시를 받은 사도 바울은 육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45). 창조된 아담은 첫 번째 아담이었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동일한 책에서 그는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한 영”(고전6:17)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딤후4:22)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들로부터 주님이 그 영이시며, 우리 또한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과 한 영이 될 수 있고 그분이 우리의 영과 함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골1:27)는 바울의 또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을지 신비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등으로 빛을 내도록 하는 전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빛을 내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유익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생명메시지3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1 14:15
성경말씀  

(살전4:3~4 하나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하고, 각자 거룩하게 됨과 존귀하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의 그릇을 지킬 줄 알아야 하며 

 오늘의 만나  

바울 시대에는 고린도와 데살로니가에서 호색과 부도덕이 이방 종교 안에 성행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이교적인 예배로 조장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이 목적에 관하여 볼 때 어떤 것도 음행보다 사람을 파괴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 즉 하나님께로 분별되는 것을 막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을 극도로 오염시킵니다. 따라서 사도는 새롭게 회심한 이방인 믿는이들이 하나님께로 성별되며,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엄중한 죄인 음행을 삼가도록 명령하였는데, 이것은 그들로 그 죄의 손상시킴과 오염시킴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상태를 강조하여 가리키며 ‘존귀함’은 사람 앞에서의 존경받을 위치를 가리킵니다. 사람은 높은 위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결혼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번성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결혼은 존귀함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음행을 삼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된 상태에 남아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 앞에서 존귀한 위치를 유지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20:10
성경말씀  

(요이 9)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그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며, 그 가르침 안에 거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넘어서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빗나가는’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앞으로 나아가 즉 옳은 것보다 더 지나쳐 나아가 그리스도에 관한 정통적인 가르침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거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세린티안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앞서 있다고 자랑하며 이렇게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성하게 잉태되셨다는 가르침을 넘어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구속하시는 아들과 생명이신 아버지를 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속받고 거듭나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는데 이것은 구원 안에서 또 생명 안에서 하나님께 참여하고 그분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이 신성한 누림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 안에서 또 신성한 생명 안에서 우리의 분깃되신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로 모시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17:25
성경말씀  

(빌4:12~13) 나는 비천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고 풍부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각각의 일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후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이끌려졌습니다. 그런후 어떻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는지, 어떻게 그리스도를 얻는지,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하는지 그 비결을 배웠는데 이 모든 것들은 초보적인 원칙들입니다. 이제 그는 그분 즉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에 대한 포괄적이고 결론적인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우리와 주님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반대로 말한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의 헬라어 단어는 ‘내적으로 역동적이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밖에서부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역동적으로 만드십니다. 그렇게 내적으로 능력을 얻음으로써 안에서 주시는 능력을 얻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13:35
성경말씀  

빌2:5~6 여러분 안에 이 생각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늘의 만나

 바울이 말한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빌립보서 2장 3절에 있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고 4절에 있는 자기만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그분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 부분들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려면 우리는 이 정도까지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즉 그분의 부드러운 내적 느낌과 생각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비록 하나님과 동등하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붙잡고 보유할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하나님의 형체(하나님의 본성이 아님)를 내려놓으셨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