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6:25
성경말씀 

(빌2:12下~13)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안에서 운행하시어, 여러분이 뜻을 세우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행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15)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서 

오늘의 만나 

빌립보서 2장 12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고 비추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원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 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뿐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자기를 구원할 방주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원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멸망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악한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 안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 악한 세대에서 자신을 구출하기 위한 어떤 수고도 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를 구원했을 뿐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로부터 그를 분별하여 새 시대 안으로 인도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언급된 구원은 멸망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로부터의 구원입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3:45
성경말씀 

 (히11:8)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부름을 받고서 장차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였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오늘의 만나

 
 한 척의 해군 함대가 항로를 잃어 며칠 동안 다른 배나 해안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장은 흔들림 없이 밤낮으로 항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그의 군함이 다행히도 목적지인 부두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육지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다만 나침반의 방향을 의지해 항해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노정도 이와 같습니다. 눈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속의  성령의 느낌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순종을 포함해야 하며 믿음과 순종은 축복을 가져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6:45
성경말씀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창세기에 있던 생명나무가 왜 성경을 종결하는 책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그분의 의도가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의 불순종은 일시적인 방해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갈망은 그분의 피조물이 그분을 음식으로 받아들여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상은 사람이 점잖게 행동하거나 그분을 창조자로 공경하여 그에 맞는 경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 나무는 거기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을 너희 안에 취하여 들여 이 생명으로 인하여 살라”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계셨습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요6:57). 우리는 자신을 열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생명나무에 참예합니다. 그분은 심지어 새예루살렘에서도 우리의 양식과 음료이십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5:05
성경말씀 

 (빌1: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항상 순종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오늘의 만나

 
 매일 아침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주님께로 돌이켜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여, 당신을 누릴 수 있도록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일토록 나를 일깨워 나 자신을 거절하며,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나 자신에 의해 살지 않게 하소서. 당신에 의해 살도록 나를 강화시키소서. 이 한 날, 당신을 나의 모든 것으로 취하고, 포도나무 안의 가지로서 당신 안에 거함으로 당신을 살아내게 하소서.” 종일토록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직업이나 자녀를 위해 또는 교통사고에서 지켜지도록 너무 많이 기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다만 주 안에서 행하는 이 한 가지 문제를 관심하십시오. 그리스도에게서 미끄러져 나가 원래대로 우리 자신 안에서 살거나, 우리 자신에 의해 일 하거나, 우리 자신 안에서 말하거나, 우리 자신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바울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심지어 매시간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 밖에서 말하거나, 그분을 떠나서 질문에 답하거나, 그분 안에서가 아닌 우리의 느낌 안에서 반응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즉각적인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1 14:25
성경말씀 

 (빌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항상 순종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오늘의 만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는데, 그 구원의 절정은 주 예수와 같이 우리 존재가 하나님에 의해서 높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떨며 계속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이 구원을 완성해야 합니다. 즉 구원이 그 궁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순종하여 이 구원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 순종에는 우리의 혼 안에서 참되게 하나되는 것도 포함됩니다. 믿음으로 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영단번의 일이지만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평생의 일입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바울이 말한 구원은 하나님의 정죄와 불못으로부터의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 매일의 구원 곧 살아있는 인격을 가리킵니다. 이 매일의 구원은 우리가 살고 체험하고 누리는 바로 그 그리스도를, 우리의 외적인 본으로뿐만 아니라 내적인 본으로 취하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 구원의 주요한 요소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높여지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본이 믿는이들의 내적인 생명이 될 때 그 본은 그들의 구원이 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14:35
성경말씀  

(엡5:18~21)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방탕하게 합니다. 다만 영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시를 읊으며, 항상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로 충만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몸이 술에 취하는 것은 우리를 방탕하게 하지만 그리스도로 충만되는 것 곧 하나님의 충만으로 우리 영 안에서 충만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 노래하고 찬송하고 감사할 때 그리스도를 흘러넘치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복종하게 합니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는 노래하고 찬송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노래하고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 복종하는 것은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되어 흘러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영 안에서 충만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Isaac yim 2018.04.30 00:13

 

신약성경에서 결혼생활을 말하면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다루는 몇군데의 구절들에서 몇가지 공통된 원칙들을 발견했는데...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먼저 언급되고있다는 것과, 사용된 단어가 "순복" 또는 "복종"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아내들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것은, 아내가 남편보다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쉽게 악한자의 유혹에 요동하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종 또는 순복"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subject to"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엡6:1과,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다루는 엡6:5에서 언급된 "순종"(obey, be obedient to)이라는 단어와 분명한 구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순복"과 "순종"...이 두개의 비슷한 단어에 대한 합당한 인식이 성공적인 결혼생활 안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느껴져서, 제가 가지고 있던 영영사전(Macmillan 2002년판으로써 비교적 인정받는 사전임)을 뒤져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각 단어들을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Subject : Under the authority and control of a government, country
*Submission : the action of accepting that someone has defeated you or has power over you
*Obey : to do what a law or person says you must do

다시 쉽게 우리말로 얘기해보자면....
순복(Submission)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이며, 순종(Obey)은 외적인 행위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에게 자기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요구하셨지, "순종" 하라고 한것이 아님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지않는 남편이 세상적인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할 때 아내된 자매들은 남편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순복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지않는 남편을 가진 한 자매가 있었는데,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지않는 남편을 구원하기에 합당한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주의종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시는 영화를 제가 함께 보는 것은 제 안에 계신 주님이 매우 불편해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영화관까지 모셔다 드린후 당신이 다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을 순종하지는 않았지만 순복의 영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자매의 남편이 이형제님의 이러한 교통에 도움을 받아 머지않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디도서 2:5과 벧전 3:1에서 우리는 분명한 또하나의 원칙을 볼수 있는데, 자매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지 못한다면, 그 지방교회에서 합당하게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들이 악한자들에게 훼방을 받게 되며, 믿지않은 남편을 결코 얻을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아내된 자매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지식과 언변으로는 남편을 얻을수 없으나, 그 아내의 행위, 즉 남편을 순복하는 태도, 경외하는 태도를 가진 생활방식(The manner of life)에 의하여 얻어질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얻을수 있다가 아니라 얻어질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기가족을 얻는 것이 쉽지않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남편을 순복하는 것은 무거운 머리가 몸위에 붙어 있고 많은 것들을 지시하지만 몸은 자연스럽게 그 요구에 순종하며 머리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남편된 자들은 아내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요구하거나 이용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머리삼지 않는 남편을 머리삼고 순복한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며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의 중량이 나에게 느껴진다면 하루라도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볼때 상당기간동안 저도 이러한 잘못된 머리였음을 요즘들어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팔순이 훨씬 넘으신 시아버지과 함께 살고 있는 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사역안에서 공급되는 건강한 말씀에 의하여 조금씩 제자신이 합당한 남편으로 조정되어가고 있음을 인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