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9. 4. 5. 00:05

지방교회 동영상 생명이만나 105회

등 안의 기름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을 상징함


지방교회 동영상 채널 유투브 : https://youtu.be/wnjwRiyEdoE


지방교회 이만나 카카오TV : https://tv.kakao.com/v/397157967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8.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생명이만나 434번

엡4:29~30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도록 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혜는 우리의 누림과 공급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건축하는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예수께서 사셨던 것처럼 은혜와 실재로 충만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은혜는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시고 실재는 우리의 실재로서 계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재를 살며 말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실재로서 표현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이 누리기 위한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성령을 기쁘시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히 거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즉 세부적인 일상생활에서 은혜와 실재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을 때 그분은 근심하십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13.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새로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함 - 생명이만나 402

딛3:5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에 따라 새로 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의로운 행위’는 의의 요소와 범위 안에서 행한 의로운 행위로서, 의의 참된 행위를 가리킵니다. 

심지어 그러한 의의 참된 행위라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의 근거와 조건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10. 19. 10:26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D. 셋 모두 영원하심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소문과 비난이 있다.

나는 우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사상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해, 성경에 따라서 우리는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고 성령 또한 영원하심을 믿는다고 선포하기 원한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선포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1. 아버지가 영원하시다

이사야서 96절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 축어역에서 이 문구는 영원의 아버지또는 영원한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영원하시다.

2. 아들이 영원하시다

아들 또한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112절은 아들에 대하여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73절은 그는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분이 영원함을 의미한다.

영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상징은 직선이 아닌 원()이다.

그분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

3. 성령이 영원하시다

성령 또한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914절은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함을 선포한다.

E. 셋 모두 동시에 존재하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동시에 존재하신다.

요한복음 1416절과 17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한 것을 주목하라.

이 두 구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아들과 성령을 보내시는 아버지를 본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동시에 나타나 있다.

에베소서 314절부터 17절에서 바울은, 아버지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는 아버지와 성령과 아들 그리스도가 있다.

이 모두가 동시에 존재한다.

성경은 아버지가 어떤 특정 기간 동안 존재하신 다음에 아들이 왔고 또 그 아들이 특정한 기간 후에는 존재하시지 않고 성령으로 대치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

이 구절에서 성경은 아버지는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은 성도들을 강건케하며, 아들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도 분명하게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신다.

고린도후서 13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교제가 언급되었다.

셋 모두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고린도전서 124절세서 6절은 성령의 은사와 주님의 직임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주님과 하나님을 본다.

다시금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존재하며 역사하심을 본다.

성령은 은사를 주시며, 주님은 섬기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아버지께서 더 이상 존재하시지 않는다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하여 왔다거나, 또 얼마 후에 성령이 아들을 대신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셋 모두가 영원하며 동시에 존재하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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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삼일 하나님, 삼위일체, 아버지, 아들, 성령, 교회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10. 18. 00:49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B.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마태복음 2819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하여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 구절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그 셋이 오직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 구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름들이 아닌)으로 침례를 주고라고 말한다.

하나의 이름을 가진 셋이 있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요, 삼위일체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책에서 앤드류 머리는 아버지 안에는 만유의 창시자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계시되셨고, 표현되셨고, 가까워지셨으며, 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의 몸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를 위해 갖고 계신 것들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이다...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것과 아들이 이루신 것은 오직 성령의 계속적인 중재와 활발한 운행하심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적용될 수 있고 효능을 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C. 셋 모두 하나님이심

1.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의심할 바 없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신약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12절과 에베소서 117절을 보라.

2. 아들이 하나님이시다

아들 또한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18절에서는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은 하나님이라 불리운다.

요한복음 11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말씀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요 아들이시다.

말씀이 하나님이라면 아들 또한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로마서 95절은 그리스도...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3. 성령이 하나님이시다

사도행전 53절과 4절에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본다.

3절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 구절에서는 그가 하나님께 거짓말했다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는 몇 분의 하나님이 계시는가?

오직 한 분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오직 한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다만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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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6. 05:00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2)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2.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 안에 계십니다.  

로마서 8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의 양면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롬8:34는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롬8:10은 동시에 또 다른 방면에서 주 예수님이 거듭 난 사람 안에 (생명으로) 계심을 증거 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믿는 이들 안에 살고계십니다(골1:18, 엡1:23). 그러나 로마서 8:10은 위 양 방면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되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 하심으로 인해 우리의 <거듭난 우리의 영>은 살았고, 심지어 생명(조에) (spirit is life) 이라고까지 롬8:10 후반부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한 고전6:17에서 더 선명하게 확증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 불신자였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엡 2 :1).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할 때 그분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 영이신 주님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시고 심지어 우리 영과 연합하여 한 영(one spirit)이 되셨다고 고전6:17은 말합니다. 이제 이분은 여기서 더 전진하여 우리의 영 뿐 아니라 마음(heart)에도 거처를 얻기 원하시며(엡3:17), 우리의 죽을 몸, 사망의 몸에게도 생명을 주시고자 하십니다(롬7:24, 8:11). 이것이 구속의 피로 인한 죄사함 이후에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생명에 의한 유기적인 구원의 과정입니다(롬5:10, 빌2:12). 이러한 지속적인 생명의 역사 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되고 마침내 영광 안으로 이끌려 질 것입니다(히2:10). 이것이 로마서 8장 전체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쟁점이 되는 것은 롬8:10이 말하는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 할 때의 영이 과연 사람의 영인가 아니면 성령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원래 신약원문 상의 영을 가리키는 '(푸)뉴마'는 대 소문자 구별이 없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는 전후 문맥을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캘빈을 포함한 소수의 신학자들은 이 영을 성령으로 보지만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롬8:10이 언급하는 이 영을 사람의 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장로교단 내에서 존경받는 주경 신학자인 이상근 박사의 아래 자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약 주해 로마서, 이상근, 성등사

'여기 영(롬8:10)을 성령으로 보는 학자가 있으나(Calvin, Dickinson), 신자의 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Meyer, Bengel, S&H, Vincent 등). 전구(몸)와 댓귀적 성격으로 보아 후설이 타당하다(고전2:11). 영이란 인격의 본질이며 영성의 최고의 부분으로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좌소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부분이다'(이상근, 신약 주해 로마서, 성등사, 205쪽). 

이외에도 롬8:10의 영을 사람의 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 의견임을 인정하는 자료로는 죤 머리의 로마서 주석(권혁봉 역, 생명의 말씀사) 33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문맥을 자세히 검토해 본다면 <위 롬8:10이 언급하는 영은 사람의 영이며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의하면 여기에 언급된 영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는 조건하에서만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생명이심에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앞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에서의 몸이 사람의 몸을 가리킴으로 뒤의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에서 영도 당연히 사람의 영을 가리켜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으니 우리 안에 성령만 계신다는 사상은 매우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삼위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신다는 것이 정통 삼위일체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빛 가운데 거하심으로 사람 안에 오면 타 죽고 성령님은 사람 안에 오실 수 있다는 주장은 성령님이 아버지와 다른 본성 또는 열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라야 말이 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둘째로,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는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성령만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 하나님 자신은 '구겨지지 않는 한' 사람 안에 계실 수 없다는 말(기독신문 게시판 안0식 목사님 주장)도 삼위를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말들은 참된 신자가 소유하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요일5:12)이 본인에게는 아직 없음으로 자신이 가라지라는 부끄러운 고백이 될 뿐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삼위일체론 뿐 아니라 기독론과 구원론에 있어서도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주장입니다.  

PS: 누구든지 성경해석에 오해가 있어서 잠시 성경적인 가르침과 다른 주장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또 틀린 것은 고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임이 선명하게 밝혀졌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오히려 성경적인 가르침을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런 비 진리와 비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 1:3은 우리에게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우라'고 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1)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http://local-church.tistory.com/22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5. 05:00

창간특집 - (지방)교회를 전격 해부한다.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 존중 받을 가치 있다"

풀러 신학 대학 성명서 (2006. 1월 5일)

  풀러(Fuller) 신학 대학과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과 그 출판 기관인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LSM)는 최근에 지난 2 년 동안 해온 광범위한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 기간에 풀러 신학 대학은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저서들을 특히 강조하는 지방 교회들의 주요 가르침들과 실행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취한 이유는, 종종 이들 교회들에 관해 던져지는 여러 가지 많은 질문들과 비난들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의 빛 안에서 이 두 사람이나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이 대화에 참여한 분들은 총장이며 기독교 철학 교수인 Richard Mouw 박사와 신학부  학장이며 신학 및  윤리학 교수인 Howard Loewen 박사와 조직 신학 교수인 Veli-matti Karkkainen 박사입니다. 지방 교회들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Minoru Chen, Abraham Ho, Dan Towle 씨입니다. LSM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Ron Kangas, Benson Phillips, Chris Wilde, Andrew Yu 씨입니다. 

풀러 신학 대학이 내린 결론은,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풀러 신 학대학이 당면했던 첫 과제 중 하나는,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전형적으로 제시했던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모습이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가르침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를 판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관하여 어떤 단체들 안에 생성된 인식과 그 두 사람의 저서들에서 발견된 사실상의 가르침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은 엄청나게 잘못 대표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특히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들로 분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빈번하게 오해되어 왔습니다. 성경과 교회사의 빛 안에서 공정하게 점검해 볼 때, 문제시 되었던 가르침들은 사실상 성경과 역사의 의미심장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종일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을 따르는

인도자들이나 (지방)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거친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우리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 믿는 이들이 고수하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 위에서 이들 교회들이 서 있는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신앙의 기본 교리들에 관한 동의가 분명하게 확립될 수 있다면, 비본질적인 가르침들에 관한 차후의 대화와 토론은 믿는 이들의 교통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출판물들을 읽어 보고 또 풀러 신학 대학 측과 그 교회들과 사역의 대표자들과 다섯 번에 걸쳐 직접 만나는 모임을 갖고 나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삼일성(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 성경, 구원, 교회의 하나와 합일, 그리스도의 몸 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과 간증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이 논의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정통(正統)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비록 그들의 신앙 고백이 신조의 형태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신앙 고백은 주요 신조들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출판물로 대표된 가르침들을 고수하는 사역의 인도자들이나 지방 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들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믿는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 쉽고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 믿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기를 기탄없이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진지하고 열려 있고 투명하고 제약이 없는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몇 가지 주제들은 삼일성(삼위일체), 신성과 인성의 연합, 신화(神化), 양태론(樣態論), ‘지방’ 교회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실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들의 모임 밖에 있는 외부 믿는 이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야들 하나하나에 대해 탐색할 자유를 제한 없이 부여받았습니다. 매 경우에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가진 공공연한 인식이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믿는이들의 믿음과 실행뿐만 아니라 출판된 사실상의 가르침들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우리가 연관되었던 과정과 우리가 내린 전반적인 결론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제공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것입니다. 이 간단한 성명서에 이어서 몇 개월 후에는 위에서 언급한 신학적 주제들과 기타 중요한 주제들을 더 상세하게 다루는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대표자들은 그들에 관한 관심사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들을 요약된 형태로 진술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은 이미 상당한 연구와 대화를 거친 다음 그들을 이해하는 데 이르렀으므로  그들의 가르침들에 대한 논평을 제공할 것입니다.  

           작성일: 2006년 1월 5일
    
                                              

출처: http://www.forthetruth.or.kr/booklets16.htm (영어원문 포함)
참고 :http://local-church.tistory.com/109 (지방교회 풀러신학대학 성명서)
http://local-church.tistory.com/134 (지방교회 - 지방교회란 무엇인가?)
http://local-church.tistory.com/111 (지방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http://local-church.tistory.com/137 (
지방교회 탐구 - 1 신앙고백 풀러신학교도 공식 지지)

지방교회의 신앙고백

1. ·우리는 성경을 완전하고 유일한 신성한 계시로 믿으며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한 분이시며 또한 영원히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고 이 셋은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분임을 확실히 믿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심을 믿습니다. 그 분은 또한 그 분의 신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처녀의 태 안에 잉태되시고, 땅위에서 참된 인생을 사셨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죽으셨으며, 사흘 만에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영광 안에 계신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3. 우리는 그 분께서 하나님의 왕국과 함께 속히 재림하시어 천년왕국과 영원 안에서 땅을 다스리실 것을 앙망합니다.

4. 우리는 삼위의 세 번째이신 성령께서 동일하게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존재와 소유하신 모든 것이 아들에 의해 표현되시며 아들의 존재와 소유하신 모든 것이 성령으로 실재화 됩니다.

5. 우리는 더 나아가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함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영광의 요구를 절대로 이룰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그 모든 요구들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그 분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삼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성령으로 구속된 이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그 분의 구원을 완결하시고 그들로 그 분의 자녀들이 되게 하십니다.

6. 이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함으로써 믿는 이들은 이 시대에서는 그 분의 몸 안에서 매일의 구원을, 오는 시대와 영원 안에서는 영원한 구원을 누릴 것입니다. 영원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그 분의 구원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지방)교회 신앙 항목들에 대한 요약 

(1) 성경에 관하여 
 우리의 신앙의 첫 번째 항목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 (딤후 3:16 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아래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우리는 또한 성경이 완성된 신성한 계시를 담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의 신앙의 모든 방면들은 성경에 근거를 두며, 성경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한 것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받아들이며, 성경이 말하는 것을 넘어선 사람의 생각을 다 거절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의 완전한 구원과, 사람을 위한 그분의 계획 혹은 경륜에 관한 그분의 계시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되고도 객관적인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정확성을 믿고, 그 무과실성을 견지한다. 

(2) 하나님에 관하여  
물론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저희의 신앙의 대상이다. 성경의 계시로부터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시면서 삼일(triune)이심을 믿는다. 비록 이것이 우리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기는 하나,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딤전 2:5)이시지만 동시에 셋(마 28:19)으로 구별되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 아들, 영이시다.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주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 38절에서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이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아들 또한 계신다. 똑같은 상호내재가 또한 아들과 그 영 사이, 그 영과 아버지 사이에도 존재한다. 삼일성의 셋 가운데서 아버지는 그분의 이름이 내포하는 바와 같이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표현이시며, 그 영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이 소유하신 모든 것의 실제화이다.
사도 바울은 삼일성의 셋을 믿는 이들의 체험과 관련지어 분명히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신약에 의하면 세 분 모두 - 아버지, 아들, 그 영-가 믿는 이들 안에 계신다(엡 4:6, 요 14:23, 골 1:27, 요 14:17).
참고로 항간에 우리가 양태론을 믿는다는 헛소문이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양태론은 이단이다. 양태론 자들은 신격의 셋,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히 동시 존재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그 셋은 다만 신성한 본질의 일시적인 나타남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서 신격 안의 영원한 구별과 세 위격의 동시 존재를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삼일성에 대한 우리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본성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 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에 분배받는 데 있다.

(3)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놀라운 분이시요,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호칭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이시다. 영원 과거에, 창세 전에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시고, 영원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어느 날 그분은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가 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다.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버리지 않고 처녀의 태속에 잉태되어, 아기로 나셔서, 이 땅에서 인생을 사셨고, 대속하는,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사망에 매여 있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흘 후에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고전 15:45)이 되셨다. 그분의 신성의 능력이 사망을 삼키시고, 그분의 인성은 부활 하여 영화롭게 되셨다. 오늘 그분은 우리의 구속자이시자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롬 8:10). 또한 그분은 승천하여 영광 안에 계시며 여전히 하나님이시면서 여전히 사람이시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의 구원의 주시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히 2:10, 12:2)이시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앉아 그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고 계신다(행 5:31, 히 8:1-2, 롬 8:34). 우리는 그분이 곧 다시오실 것, 즉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 오셔서 천년왕국에서 온 땅을 통치하실 것(계 1:7, 11:15, 20:6)을 기다린다. 

(4) 성령(The Spirit)에 관하여
 우리는 삼일성의 셋째이신 성령이 동등하게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아버지는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그 영은 신성한 삼일성의 완결이시다.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과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이 아들 안에 체현되었고,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 영으로 실제화 되었다. 이러므로 그분은 실제의 영(요 15:26, 16:13, 요일 5:7)이라 불린다.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실제, 심지어 삼일 하나님의 실제가 성령이시다. 

(5) 인간에 관하여
인간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창1:26, 살전5: 23).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영이 죽고(엡2:1), 혼은 자아가 되고(마16:24), 몸은 육체가 되었음을 가리킨다(롬7:1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값없이 의롭게 되고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때 사람은 원래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롬3:24, 5:10). 그것은 사람의 죽었던 영이 거듭나고(요3:6), 혼이 변화를 받으며(롬12;2, 벧전1:9),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형되어(3;21) 영원토록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권위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6) 구원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온전하고 완전한 구원을 예비하셨다. 이 완전한 구원은 우리의 온 존재인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한다.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과, 영광의 무거운 요구를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요구를 이루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우리를 그분과 화목케 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구속된 자들을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영 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이 모든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할 때 거듭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 믿는 이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매일의 구원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사람의 영은 거듭났고 혼은 변화되고 있으며 몸은 변형될 것이다. 영원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로 인한 것이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과, 기도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사람이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는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견고함 모두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 

(7) 교회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의 모든 참된 믿는 이들로 구성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엡1:22-23, 골1:24) 우주적으로 하나이고(엡4:14),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인 지방교회는 지방적으로 하나이다. 즉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가 있다(계1:11).
여기서 말하는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즉 지방교회의 의미는 예루살렘 교회(행13:1), 안디옥 교회(행13:10), 고린도 교회(고전1:2) 처럼 특정 지방에 거주하는 참되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그 교회 구성원들로 하는 지역교회를 가리킨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천주교 안에, 교파들 안에, 독립된 단체들 안에,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참된 믿는 이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분들을 주님 안에 있는 형제 자매로 받는다. 비록 우리가 다른 기독교 교단들과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주님께 신실함으로 우리는 주의 간증을 위하여 교회의 유일한 입장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치를 좁고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영으로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받으셨듯이 모든 믿는 이들을 받는다. 

(8) 종말에 관하여
우리는 장차 이 세상 왕국에 종말이 오고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래할 것을 믿는다(계11:15). 우리는 마지막 때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얻으시며,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이기는 성도들이 천년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을 믿고,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복에 참여할 것을 믿는다.

창간특집 - 지방교회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 존중 받을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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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9. 05:00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보낸 해명서는 다음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전용복 목사에게 보낸 항의서신입니다.
 

발신인: Daniel Towle 외 2 인,   1997. 9. 20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Tel : 714-996-8196, Fax : 714-996-8195   

수신인 : 경남 울산 갈릴리 교회 전용복 목사님
Tel : 0522-35-9354, Fax : 0522-35-1191   

제목 :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정죄 시정요구 및 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어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자료수집과정에서 확보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소책자와 원고들을 많은 고려 끝에 정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의했음을 통보드립니다('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1989, 진영문화사), '지방교회의 정체'(유사종교연구 합본 제3집, pp. 149-167), '지방교회의 정체'(1990, 교회교육연구원),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pp. 48-51).  

교리적인 오해와 왜곡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은 위 글들의 머리말에서 (지방)교회를 '오대양사건', '짐 존스의 인민사원사건'과 교묘히 연결시켜 마치 (지방)교회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집단살인극이나 벌이는 단체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동일한 머리말에서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그 이단성을 교묘히 위장하여 순진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인들에게 파고 들어오는' 악한 단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님은 진영문화사가 발행한 소책자의 결론( 27쪽)에서 '지방교회는 성경을 너무도 잘못 가르치고 파괴하는 이단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요 정식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된 말들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목사님이 책임지셔야할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정짓는 두려운 일을 하려면 당연히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기준은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글을 검토해 볼 때, 우리는 목사님이 충분한 사실파악이나 판단기준의 공정성도 없이 자신의 단편적인 지식과 목사님의 교단이 지지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함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추후 진리토론시 다루되 간략하게 문제점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현재 목사님이 다루신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통합측 최 삼경 목사님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해 공개토론 중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참고하시면서 우리가 지적한 것들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I. 하나님에 대한 교리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1) 삼위일체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양태설을 주장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양태설을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태설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위트니스 리의 '금등대'의 예에서도 분명히 아버지(금)와 아들(등대)과 그 영(일곱 등잔)의 '구분' 또는 '별개'의 위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 책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된,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상의 내용은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에 잘 나타나 있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는 상식에 속한 내용들입니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편, 35-41 쪽, 281-311 쪽, 진리의 변호와 확증, 9-23 쪽, 49-83 쪽,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7년 3월호, 97년 7월호). 이러한 성경적이며 정통적인 가르침을 양태설이라고 한다면 이는 양태설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내용들은 결코 양태설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건대, 목사님이 사용하신 '삼위의 독립된 위격'이라는 말은 '분리된 삼위'의 의미로 쓰이면 삼신론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같은 난해한 주제에 

신약의 결론 - 하나님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신앙을 판단함에 있어 위트니스 리의 책자에 흩어져있는 내용들을 일부씩 떼어내는 식의 연구로는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연구를 위해 적어도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요약한 책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을 여러번 정독하셨어야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것과(고전 8:6), 세 구분되는 위격이 계신 것(마 28:19)과, 세 분 모두 영원하시고(사 9:6, 히 1:12, 히 9:14), 상호내재하시며(요 14:10, 20), 동시존재하시는 것(고후 13:13)을 믿습니다. 

(2) 그리스도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하셨을 때 그는 그의 두가지 본성을 혼합해 사람도 하나님도 아닌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인 새로운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라고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말과 '새로운 본성'이라는 말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변호와 확증 - 위트니스 리

만일 이러한 문제가 위트니스 리가 그의 책에서 사용한 '밍글링'(mingling)이란 단어의 오해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측이 상세히 반박한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pp164-166)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는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결코 그리스도 안의 양성의 혼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분(그리스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다. 그 분은 완전한 인성 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 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96 쪽, 1996, 한국복음서원). 이러한 관점은 칼케돈 신조와 정확히 일치되는 정통적인 관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목사님은 '주님이 인성을 취하실 때 그 인성도 벌써 하나님의 아들의 한 속성이 된 것이며 거룩한 것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목사님 말씀대로 변화산에서 이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또한 '내가 오늘(예수님의 부활시)' 너를 낳았다'(행 13:33)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문맥상 이 말씀이 성육신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성령  

목사님은, '지방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만 강조할 뿐 회의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말하며 사도행전 15장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 28절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라고 말합니다. 즉, 외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회의는 인간의 시기와 다툼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회의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의는 성령의 임재가 가득하여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의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좋은 사람이 되려하거나 여러분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하지 말라' 는 말을 오해하셨습니다. 그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인간의 노력 또는 율법의 행위는 주님 앞에서 쓸모 없으며 오직 내적 기름부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내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페이지에서 위트니스 리는 주님의 역사로 자신이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골로새서의 말씀은, 주님이 만유가 되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생활을 개선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II. 인간에 대한 교리(신인연합, 삼분설, 죄)

(1) 신인의 혼합, 연합  

목사님이 '혼합'(mingling) '연합'(compounding)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지적하신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출애굽기 30장의 관유에 포함된 향품에 대해 강해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표론 상 이 구절들에서 '관유'와 '네가지 향품'의 연합을 신성과 인성의 연합(compounding)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밍글링(mingling, 혼합)은 레위기 2장 4절에서 양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소제'(기름과 고운가루)를 만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성경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성경에 연합의 사실은 있으나 혼합된다는 말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혼합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도의 신격화를 가리키며 이러한 주장은 너무도 참람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목사님의 생각처럼 사람이 신격화 된다거나 하나님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영원히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일 뿐이며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0-162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고린도 전서 6장 17절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는 말씀 중에서 이 '한 영'이 '성령인지 사람의 영인지를 말하기 어렵다'고 한 말을 비판하며 이러한 표현이 너무도 참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이 말씀에서 '한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 밝혀주시고, 왜 이것이 성도의 신격화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 삼분설 

 초대 교회 교부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각 교단은 좀더 현실적인 사안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목사님은, '삼분설이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이분설도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며 이분설이 '인간구조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라고 했으나 사실은 '장로교 신학의 견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분설은 루이스 벌콥의 견해요 그의 저서를 대부분 번역하여 자신의 가르침으로 사용하는 박 형룡 박사의 견해입니다. 목사님은 장로교단 외에 수많은 교단에서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삼분설을 지지하는 수 많은 교부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언급할 수 있으나 지면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영과 혼과 마음의 각 부분들에 대한 가르침도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 보이는 '영혼'은 원문에 의거해서 '혼' 또는 '영'으로 번역되어야 맞습니다. 헬라어나 영어는 '영'과 '혼'이 각각 다른 단어이며 또한 '영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나 영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강해 - 위트니스 리

우리는 목사님이 영지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시는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물질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이고,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처음에는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 후 부패되었다'고 주장함에도 목사님은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인간의 전인적 타락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몸은 육체가 되었고 혼은 부패되었으며 영은 죽었다고 함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선명하게 가르칩니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 보급판, 한국복음서원, pp. 257-271, 사람의 영, p.47,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참조).  

(3) 죄 

목사님은, "죄는 사람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타락의 원인측면에서만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Sin) 또는 악이 인격의 형태로 사람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사람들)에 들어왔다(롬 5:12상)'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다만 죄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롬 5:10)요 '마귀의 자녀'(요일 3:9)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생명과 본성이 마귀의 자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 밖의 공중에서 역사하는 인격으로서의 사단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시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 사단을 처리하셨습니다(히 2:14). 이러한 말씀이 목사님 표현처럼 '참으로 괴상한 망언'이라면 목사님은 히브리서 2장 14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이 입으신 육신은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매달은 놋뱀으로 예표되었습니다(요 3:14-15). 이 예표에서 장대는 십자가를, 뱀은 사단을, 놋뱀은 육신을 가졌으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즉 그분은 죄가 없으셨으며 다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 만을 입으신 것입니다(롬 8:3). 이러한 진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곧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는 말씀으로도 확증됩니다.  

III. 구원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혼합(연합)되지 않았다...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따라 어떻게 '주와 합(연합)하는 자가 되며(고전 6:17), 신(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벧후 1:4),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습니까(갈 4:19)?  

IV. 성경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경시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저서의 문맥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가 언급한 '낡은 성경적 지식을 따르지 말라... 오직 예수뿐이다' 등의 의미는 '율법의 마침' 또는 '구약의 모든 예표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의미이지 결코 성경을 경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구약의 예표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실물인 자가 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의 사진만 붙잡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사진 자체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가나안 땅을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각종 원수들은 무엇입니까? 천국에도 믿는 이들의 원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풍성한 산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을 예표하며 각종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리의 육신과 세상을 상징합니다.  

V. 교회에 대한 교리

(1) 지방교회만 유일한 참 교회라고 주장한다. 

 목사님은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말을 오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교회(사람들)'라는 단어와 '집회소(건물)'이라는 단어를 혼돈했기 때문에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는데 과연 한 집회소에서만 모였을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라는 단어는 '부르심 받아 나온 무리들(사람)'이라는 뜻이며, 집회소(건물)는 교회가 모이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소는 여러 개일 수 있으나 그 지방에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저런 교파가 일체 없고 오직 그 지방의 명칭을 따른 교회만 있습니다. 거듭난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므로 다만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행 8:1). 그 외에도 많은 성경구절들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진리를 증명합니다(행 13:1, 롬 1:7, 고전 1:2, 엡 1:1, 빌 1:1, 골 1:2). 거듭난 무리들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지 하나님에겐 그들 모두가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교파를 만드는 것은 분열이며 그리스도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고전 1:11-13). 바울은 분열을 강하게 책망했으며 이 일에 있어서 어떤 합리화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목사님과 같은 장로교 학자이신 이종성 박사와 '한국장로교회사'를 쓰신 김진복 교수님도 교회의 분열을 개탄스러워 하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합니다.  

(2) 모든 조직, 제도, 직분, 규율, 사업을 부인한다. 

(지방)교회는 성경에 있는 모든 직분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을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적인 계급질서를 가져오는 소위 '성직자-평신도 제도'는 주님이 미워하시므로(계 2:6) 우리도 미워합니다.

목사님은 현재 일반 기독교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신학교, 목사고시제도, 교회매매, 권위주의적 목사제도, 총회선거시의 정치 정략 등에 대한 분명한 성경근거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3) 예배의 모든 형식, 규범을 무시한다.

목사님은, '인도자가 없이 아무나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배를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목사님 표현처럼 '제멋대로 말하는' 예배는 성경에 없으나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말할 수 있고(고전 14:31, 23) 화평의 하나님을 따라 찬송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예언하는 예배는 있습니다. 목사님이 지지하시는 주보 순서에 따른 예배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성경근거는 무엇입니까?

(4) 성례를 규모 없이 함부로 행한다.

성찬을 매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역자만 말씀과 성례집행을 할 수 있다는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VI. 종말에 관한 교리

(1) 이기는 자들의 환난 전 휴거

계시록을 합당하게 해석하려면 우선 본문을 100 번 이상 정독한 후 계시록 전체의 조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그 특성상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사건의 시점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어 볼 때, 개인의 주장은 있으나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은 12장의 '사내아이'는 예수님을, '올려간다'는 말은 '부활과 승천'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사내아이'는 이기는 자를,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를, '올려간다'는 말은 '휴거'를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해와 달과 별을 가진, 광야로 도망간 여자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며 둘째, 사내아이가 올려간 직후 하늘에서 사단이 내어 쫒겼으며 셋째, 본문의 말씀은 대 환란이 임박한 시점이므로 주님의 부활과 승천과는 시점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기는 자들로서 환난 전에 휴거되어 사단을 쫓아낼 자들입니다.

목사님은, 14장의 14만 4천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4절에서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모든 성도들이,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거나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거나 입에 거짓말이 없거나 흠이 없는 자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이들의 징계

목사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잘못해도 결코 징계를 받지 않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죽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징계를 말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성도 중에서도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며, 구원을 얻기는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으리라고 말하는 고린도 전서 3장 15절을 목사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또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하라고 경고하는 로마서 14장 10-13절과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고린도 후서 5장 10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 불태워질 공력만 쌓고, 형제들을 함부로 판단하며, 악을 행한 믿는 이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문맥에 의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구원받은 성도이며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만일 목사님 말씀대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구원받은 사람도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영벌과 멸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VII. 결론

이상에서 간단히 본 바와 같이 목사님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자세히 연구하지도 않으신 채 함부로 이단으로 단정지어 인쇄 배포하심으로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셨습니다. 문서는 그 특성상 일단 인쇄되어 배포되면 내용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그 효과가 반영구적입니다. 또한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계속 재인용되어 거짓을 확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 책자들과 관련된 이러한 구체적인 피해사례들을 이미 수집하여 보관 중입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저술한 내용으로 인한 피해는 너무 지속적이고 심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주님 안에서 평강 가운데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합니다;

첫째, 충분한 연구 없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정죄 하는 일을 삼가 해 주십시오.

둘째, 이 편지에서 저희측이 개괄적으로 언급한 항목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셋째, 목사님의 글들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피해에 대한 목사님의 해명서를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 앞으로 보내 주십시오.

넷째, 이미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제의합니다. 주제선정과 토론방법 등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참고로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종말론을 주제로 쌍방 각 6회씩의 원고를 한국 내 기독교 잡지 또는 교계신문에 연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을 발신일로부터 14일 내에 팩스로 보내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진리를 사랑하시고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상호간 오해와 갈등을 씻어내고 무엇이 밝은 진리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저희의 건설적인 제안에 대한 목사님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8. 05:00

장로교 고신측(전용복 목사) 책자에 대한 항의서신 1

장로교 고신 교단은 1991년 전용복 목사의 거짓된 연구결과를 근거로 (지방)교회측을 이단시했습니다. 이에 (지방)교회측은 그것이 너무 근거 없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인내하며 수 년간 대응을 미루어 오다가 그것이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인용되는 것을 보고 '97년 6월에 고신측 총회장에게, 그리고 9월에 전 용복 목사에게 각각 항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98년 3월에 전 목사에게 답변을 촉구하는 서한을 재차 발송했습니다. 즉,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공개토론에 응하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문을 쓰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고신측의 총회장인 정 순행 목사는 유감을 표명하며 고신 교단 소속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고 (지방)교회에 도전할 의도가 없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보내왔습니다.(다음 글 참조) 그리고 전 용복 목사는 총회장의 해명서로 마무리 짓고 싶고, 만일 토론을 하려면 1년간의 연구기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은 그러한 서신교환을 모은 것들입니다.이제 주님의 사랑과 빛 앞에서 더 이상 진실이 왜곡되지 않기를 원하고 왜곡되었던 진리를 바로 잡음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발신인 : Daniel Towle 외 2인, 1997. 6. 18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U.S.A. 
Tel : 714-996-8190, Fax : 714-996-8195    

수신인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참조 : 고신측 유사종교연구위원회 위원장, 간사 김 길배 목사님, 연구위원 전 용복 목사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8-10
전화 : 02-592-0433-4, 팩스: 02-592-5468 

제목: 고신측의 이단결정에 대한 항의 및 공개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한국 기독교계 내에서 저희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게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이 1991년 10월 4일,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선언한 사실에 대해 정식 대응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우선, 우리는 귀 교단에서 일방적으로 조사하고, 결정하고, 발표한 '지방교회에 대한 부당한 이단결정'을 결코 인정하지 않음을 통보합니다. 둘째, 우리는 귀 교단이 이런 거짓된 결정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셋째, 우리는 쟁점이 되는 진리의 각 항목에 대한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의 (지방)교회에 대한 연구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구 내용은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거짓되고 명예훼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 판단과 결론 도출 과정에서 많은 왜곡과 오해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귀 교단에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임하는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귀측이 인지하시도록 1980년도 초에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있었던 소송사건을 참고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1970년 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경출판사인 토마스 넬슨사와 미국이단연구협회(SCP)는 사실이 아닌 내용들에 근거하여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글들을 출판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2-3 년에 걸쳐 그들과 대화하고 자료를 제공하며 시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시정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 그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에 걸친 재판 결과 캘리포니아 고등법윈은, 그들의 글이 거짓이며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명예훼손임을 판결했습니다. 그러므로 법정은 1985년 6월 26일, SCP와 저자가 119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캘리포니아 고등법원 판결문 번호 540 585-9 참조). 또한 토마스 넬슨사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책(Mindbenders, 마인밴더스)을 미전국의 서점에서 회수하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1983 년 4월 10일자).  ( 원본 - 영문 클릭 / 한글번역 클릭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문제를 세상법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귀 교단과 대화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무시되고 방치된다면, 우리는 부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방안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 교단이 (지방)교회에 대해 언급한 모든 주제들인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등에 대해 한국내의 공개된 지면을 통한 진리토론을 제안합니다(예를 들면, 귀 측의 월간지인 '월간 고신', '현대종교' 또는 '교회와 신앙' 등). 참고로, 우리는 현재 장로교 통합 측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하여 이러한 공개 토론을 진행 중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방)교회측은 귀 교단과의 토론에 Daniel Towle과 조 동욱 목회자가 응할 것이며, 귀 측은 고신 계통의 목회자 또는 신학자 가운데 어느 분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1991년도 이단 판정자료 연구자인 전 용복 목사님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또한 토론시 다음의 자료들에서 (지방)교회에 관해 언급된 모든 항목들이 포함되고 검증되기를 희망합니다.  

 1. 유사종교연구집 제3집 149-167쪽(지방교회의 정체), 전 용복 목사
 2 '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도서출판 : 진영문화사, 1989년, 총27 쪽, 전 용복 목사
 3. '지방교회의 정체', 교회교육연구원, 1990년, 총34쪽, 전 용복 목사(1-3은 동일 내용임) 
 4. 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48-51쪽(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전 용복 목사
 5. '이단사상연구(지방교회)' 김 요섭외 4인의 연구논문 (지도교수 : 이 환봉), 고신대학 신학과
 6.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Watchman Nee의 사상 비판(지방교회를 중심으로)' 1-156쪽(연구논문), 황 건철 목사 

한 그리스도인 단체가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를 함부로 이단으로 매도하고 비판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일이며,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또한 이단판정의 기준과 내용도 마땅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쌍방의 진리 중 어느 편이 성경적인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밝힐 수 있는 기회인 이러한 토론제의를 귀 교단이 적극 수락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한 귀 교단의 답신을 본 서신의 발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팩스로 넣어 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 안에서,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6.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복음의 확증 (5)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있는 구별되는 두 본성


우리의 가르침 중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또 다른 항목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연합 (mingling)’ 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를 모함하는 이들은 우리가 실제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주의하지 않은 채, 단지 이단적인 사상을 전달한다고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이 단어를 우리가 사용한다 해서 문제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연합 안에서 훼손되지 않고 구별되는 상태로 남아 있다고 믿으며, 우리의 이러한 믿음을 늘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 글에서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으며 아래의 내용은 그 중 하나를 발췌한 것입니다. 

그분 [그리스도]은 성령을 통해 그리고 동정녀를 통해 이 두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셨다. …성령을 통해 그분은 신성한 본질을 받으셨고 사람인 처녀를 통해 그분은 사람의 본질을 받으셨다. 연합이란 두 요소가 결합되어 함께 연합되지만 그 두 요소가 그들의 특별한 본성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두 본성은 그 특징을 유지하며, 함께 결합되어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분이 태어나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이신 하나님-사람이 되셨으며, 두 본성과 두 생명, 곧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생명 그리고 사람의 본성과 사람의 생명을 소유하셨는데, 이 둘은 하나로 연합되었지만 조금의 혼동도 없고 그 특징적인 본성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으며 제 삼의 본성이나 제 삼의 요소가 되는 어떤 것도 산출하지 않았다. <장로 훈련 2권: 주의 회복의 이상>, 13쪽 

연합’이라는 용어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정의가 타당한 것인가를 검토하는 작업은 잠시 보류하고, 여기서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관한 진리를 말할 때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기독교 교리사에 밝은 분들은 위 예문에 칼케돈 신학과 칼케돈 신조 (주후 451년) 자체가 극명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두 본성은 그 특징을 유지하며”라고 말하면서 정통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두 본성이 연합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유티커스 주의 (Eutychianism) 를 가르친다고 정죄했지만, 그는 분명히 두 본성이 “함께 결합되어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유티커스 주의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트니스 리는 두 본성에 관한 우리의 관점을 확증하기 위하여 칼케돈 신조의 표현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두 본성이 “조금도 혼동되지 않고, 그 특징적인 본성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으며, 제 삼의 본성이나 제 삼의 요소를 산출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이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단락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연합’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위트니스 리는, 연합이란 두 요소가 그 특별한 본성을 잃지 않고 결합되는 것, 즉 두 본성이 그 특징을 유지하며 결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것이 연합’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연합이란 여러 요소와 본성의 혼잡을 가리키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가 합당하게 믿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연합의 의미가 그러할지 모르나 표준 영어 사전들은 연합의 의미를 결코 그렇게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웹스터  국제 대사전 제3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은 연합을 “어떤 것을 함께 두거나 결합시켜, 그 결합 안에서 구성 요소들이 서로 구별된 채로 남아 있는 것” (Springfield, MA: Merriam-Webster, 1993)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해리티지 영어사전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Fourth Edition) 의 인터넷 판 역시 연합을 “통상 각

각의 특성들을 유지한 채 결합하거나 섞는 것.” (http://www.bartleby.com/61/31/M0313100.html, 2006년 6월 19일 접속)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섞다 (mix)’ 라는 말을 찾아 그 유의어들을 살펴보면, 연합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아래와 같은 미묘한 의미상의 차이를 유의어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연합은 개별적인 특성들을 상실하지 않는 결합을 가리킨다. “존경과 놀람이 함께했다 (mingled).”—월터 스코트 경 (Sir Walter Scott). “그의 동료들은 자유롭고 즐겁게 토박이들과 어울렸다 (mingled).”—워싱턴 어빙 (Washington Irving). (http://www.bartleby.com/61/25/M0352500.html, 2006년 6월 19일 접속)

연합’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들이 이와같이 ‘심원한’ 정의를 제공하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이 단어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연합’이라는 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사실상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논쟁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많은 이들 중에서 월터 스코드 경과 워싱턴 어빙은 지나치게 문학적이었다고 치부하여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인터넷 상에서 쉽게 발견되는 다음과 같은 실생활 속에서의 용례들을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양복과 넥타이를 차려입은 어른들과 티셔츠를 입은 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루즈벨트의 연설문에서 인용한 글들을 읽으며 함께 어울렸다 (mingled). (Doug Struck, “Clinton Dedicates Memorial, Urges Americans to Emulate FDR,” Washington Post, 1997년 5월 3일자, http://www.washingtonpost.com/wp-srv/local/longterm/tours/fdr/history.htm, 2006년 6월 19일 접속) 종종 남부의 파리라고 불리는 애쉬빌은 건축양식과 문화가 독특한 조화 (mingling) 를 이루어 애팔라치아 지방의 정취와 함께 국제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Community Tour”, Coldwell Banker Kasey and Associates [Web site], http://www.coldwellbankerkasey.com/community_tour.htm, 2006년 6월 19일 접속)

이러한 예에서 ‘양복과 넥타이를 차려입은 어른들’과 ‘티셔츠를 입은 학생 또래의 아이들’을 구별하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각 계층의 뚜렷이 구별되는 속성들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어울림 (mingling)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남부의 파리인 애쉬빌이라는 도시에 있는 국제적인 분위기는 분명히 애팔라치아 지방의 정취와는 구별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말을 쓴 부동산 중개인은 어떻게 두 문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 둘이 다르다는 것을 맛보고 감별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유사한 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전과 일반적인 용례는 다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있는 두 본성에 관련하여 우리가 채택한 연합 (mingling)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우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해 우리를 줄기차게 의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를 결코 거두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해 부지런히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두 본성에 대한 역대의 논점들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본성의 결합을 묘사하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기만 하면 그들의 생각 속에서 적신호가 켜지게 됩니다. 그들이 ‘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그 단어가 두 본성을 구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반대편 극단으로 치우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연합’이라는 단어가 위격의 혼잡과 변질을 의미한다며 우리를 반대하는 경고를 외치지만, 정작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은 “나뉨도 없고 분리도 없으시다.” (칼케돈 신조) 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신호로 인식되는, 그리하여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연합’ (mingling) 이라는 단어를 왜 포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트니스 리 자신도 이 용어에 관련된 역대의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연합’이라는 단어야말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있는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설명하는 최적의 용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단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결합을 묘사하는 성경적인 방식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는 레위기2장에 있는 소제가 신성하면서도 인간적인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비유적으로 해석하면서 ‘섞인’ (mingled)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이 단락에서 성경적인 예표에 대한 그의 이해를 엿볼 수 있는데, 그는 거듭해서 두 본성에 대한 합당한 이해가 무엇이며 합당하지 못한 이해는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2장에서 섞인 (mingled)’ 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는데, 성령은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갖고 계신 갈망을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 5절은 소제를 준비할 때 기름이 고운 가루와 함께 섞여야 한다고 말한다. 기름은 성령이신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며 (눅4:18, 히1:9), 고운 가루는 주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기름이 고운 가루와 섞인 것은 하나님께서 인성과 연합되신 것을 상징한다. 기름과 고운 가루는 두 가지 다른 본성인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함께 연합된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본성은 그러한 결합 안에서 여전히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체험함>, 영문판 32쪽

어떤 사람들은 위트니스 리가 두 본성을 묘사하는 적절한 용어를 찾기 위하여 비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거절하지만, 그러나 위트니스 리가 비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고유 권한이며, 그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한다 해서 그를 (또는 우리를)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합이라는 용어가 레위기 2장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성경적이라고 거리낌 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위에서 보아 온 것처럼 이 단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관계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것을 사용하는 데 확신이 있습니다. 연합이라는 말이 우리가 가진 가장 완벽한 표현이자 두 본성이 갖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비밀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 귀한 진리에 대한 더 탁월한 이해와 표현을 제공하는 이 단어를 쉬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회피하기보다는 기꺼이 진리와 함께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현대 신학계에서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리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위트니스 리만이 유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신학자인 윌리암 밀리간 (William Milligan)도 정확히 동일한 맥락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는데, 신성한 영께서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신 이후의 둘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이 영 안에 거처를 만들 때, 즉 그리스도의 영께서 사람의 영 안에 오실 때, 그 둘은 필연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보석을 금테에 물릴 때에는 금은 금으로, 보석은 보석으

로 남아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께서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실 때에는 이와 같지 않다. 대신에 그들은 마치 두 가지 다른 기체가 서로 안으로 확산되어 전체적으로 섞이는 것처럼 연합되며, 그 결과 두 기체는 함께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매 입자 속에서 발견된다…그분 (그 영)은 그들의 존재에 스며드시며, 그분은 그들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신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The Ascension and Heavenly Priesthood of our Lord, [London; New York: Macmillan, 1984], 183-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