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55
성경말씀 

 (눅15:22下)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오늘의 만나

 
 아버지는 또한 노예들에게 아들의 손에 반지를 끼우라고 하십니다(눅15:22). 이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에 대한 그림입니다(엡1:13, 4:30). 반지는 성령을 가리키며, 우리가 아버지의 소유라는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들의 발에 신기운 신발은 에베소서 6장 15절에서 언급된 신발과는 다릅니다. 에베소서에서의 신발은 전쟁에서 견디고 버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5장에서의 신발은 행하기 위한 것, 이 땅과의 접촉으로부터 오는 먼지와 오물과 진흙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35
성경말씀 

 (마25:3~4)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8) 어리석은 처녀들이 현명한 처녀들에게 ‘우리의 등불이 꺼져 가니, 여러분의 기름을 좀 주십시오.’라고 하였지만 

 오늘의 만나

 
 등 안에만 기름이 있고, 거듭나게 하는 성령만 있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등 안에 있는 기름인 성령 외에 또 여분의 성령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분의 성령은 등 안의 기름이 아니라 그릇 안의 기름입니다. 당신은 거듭남으로 얻는 성령은 있지만 다른 방면 즉 성령의 충만은 없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당신 안에 있지만 당신의 존재는 성령으로 충만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당신의 상태는 생명 안에서 생기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성령의 충만이 부족하며 그릇 안에 기름을 준비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답답하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속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이러한 것은 ‘우리의 등불이 꺼져 가는’(마25:8) 상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될 때 우리는 뜨겁지 않을 수 없고 냉담해지려해도 냉담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되면 우리는 불타게 됩니다. 그리고 집회에 오면 영을 해방할 수 있으며, 입을 열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으며, 찬송할 수 있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속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주 예수님을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의 느낌을 만질 수 있으며 성령의 임재를 갖습니다. 그뿐 아니라 속에 기쁨과 평강이 가득하고 묶임과 눌림이 없이 자유롭습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25
성경말씀 

 (마25:3~4)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등 안에 있는 기름과 그릇 안에 있는 기름은 각각 무엇을 가리킵니까? 등 안의 기름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등 안의 기름은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 처녀는 현명하든 어리석든 그들의 등 안에 기름이 있었으며, 등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은 등 밖에 있는 그릇 안의 기름입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기름이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자마자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등 안에 있는 기름입니다. 등 안의 기름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입니다. 구원받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자마자 우리는 거듭나게 되고,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합니다. 그때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참된 처녀이며, 등 안에 기름이 있습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05
성경말씀 

 (마25:2~40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25장은 우리에게 그릇 안에 기름을 예비한 슬기로운 처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대가를 지불하여 자신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사서 자신을 예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 곧 하나님 자신을 표징합니다. 기름을 사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든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예비하려면 반드시 더 많이 성령을 얻어야 하며 하나님을 얻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결혼에 대한 일을 처리할 때, 대가를 지불하여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좀더 엄격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관점과 방법을 깨뜨려서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관점과 방법 안에 들어오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게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께 지위를 내어드리고 기회를 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충만되고 점유될 것입니다. 우리 안은 기름으로 가득할 것이며, 성령으로 가득할 것이며, 하나님 자신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으로 충만될 그때가 바로 당신과 내가 성숙할 때이며 하나님의 건축이 완성될 때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55
성경의 말씀 

(히12:6~7)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징계를 받을 때 여러분은 견디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들처럼 다루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의 만나

 
 우리는 때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에 찔림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관점과 방법으로 일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녀의 결혼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 대하심으로 손을 펴서 환경으로 그를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심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방법이 없는 그를 가르치시며 다루십니다. 사업이 잘 안 되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집안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에 의해 찔림을 받고 자녀의 결혼에 대한 일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지위를 내어드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관여하시지 못하도록 완전히 자신의 관점과 방법과 기호와 주장만으로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고통스런 깨달음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분의 징계는 우리의 생각과 편견과 선호와 주장을 깨뜨립니다. 파쇄될 때 하나님은 들어오셔서 지위를 갖게 되시고, 그 사람의 관점과 사상 안에 하나님의 성분이 있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시고 그 사람의 안에 더 나은 건축의 일을 하십니다. 동시에 그는 더욱 자라고 성숙됩니다. 만약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계속 하나님께서 건축하시도록 지위를 내어드린다면, 그는 완전히 성숙하는 길에 이를 것이며 새예루살렘이 되는 과정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25
요20:22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14:19-20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인데 , 이것은 내가 살므로 여러분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그 영은 요한복음3장에서 "바람"이지만, 20장에서는 "숨"으로 언급된다. 주님은 부활하신 날 저녁에 성령을 거룩한 숨으로 제자들 속에 불어 놓으셨다. 이것은 기독교가 놓치고 있는 너무나 비밀스런 항목이다. 기독교는 성령을 분명한 한 인격으로 보기보다는, 객관적이며 다소 모호한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바람"과 '숨'처럼 그 영께서 명확하며 실체를 지닌 분이심을 우리에게 계시한다. 이 영은 비밀하신 하나님 이시다. 비밀하신 이 하나님은 그 영으로 완결되셨고, 이 영은 바로 그분의 "정수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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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45
성경말씀 

(요13:3~5)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어 놓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직접 허리에 동여매셨다.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부으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동여매신 수건으로 닦아 주시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만나

 
 고대에 유대인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길에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발이 쉽게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잔치에 왔을 때 상에 앉아 발을 뻗으면 먼지와 냄새가 틀림없이 교통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잔치가 유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당신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이시고 이와같이 그들도 서로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러워서 우리 성도들은 쉽게 오염됩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즐거운 교통과 서로 간의 즐거운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또한 우리들 서로가 사랑 안에서 씻는 성령과 씻는 말씀과 씻는 생명으로 영적인 발 씻음을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3:30
성경말씀  

(엡4:29~30)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도록 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혜는 우리의 누림과 공급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건축하는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예수께서 사셨던 것처럼 은혜와 실재로 충만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은혜는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시고 실재는 우리의 실재로서 계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재를 살며 말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실재로서 표현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이 누리기 위한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성령을 기쁘시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히 거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즉 세부적인 일상생활에서 은혜와 실재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을 때 그분은 근심하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9:10
성경말씀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합니다. (63)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오늘의 만나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합니다”는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부활하셔야 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신이 되신 주 예수님은 부활 후에 또한 부활을 통하여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분명히 언급된 것과 같이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로 영접할 때 생명 주시는 영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영원한 생명을 분배하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영접하지만 우리가 얻는 분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영’은 살아있고 실재하지만 매우 비밀스럽고 만질 수도 없으며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구체적입니다. 먼저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분께서 ‘영’이 되실 것임을 언급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의 영의 체현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주님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며 이 영은 그분의 말씀 안에 체현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생명이신 성령을 얻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5:25
성경말씀  

(딛3:5)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에 따라 새로 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만나

 
 ‘의로운 행위’는 의의 요소와 범위 안에서 행한 의로운 행위로서, 의의 참된 행위를 가리킵니다. 심지어 그러한 의의 참된 행위라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의 근거와 조건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만 우리는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 남의 씻음은 우리의 거듭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새창조의 과정 곧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인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계속됩니다. 그것은 생명을 사용하여 진행하는 일종의 고치는 것, 새사람을 입는 것 그리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은 모두 이 놀라운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 남의 씻음으로 우리 옛사람의 옛본성에 속한 모든 것이 씻어지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사람의 신성한 요소인 새로운 어떤 것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됩니다. 이 안에서 우리의 옛상태는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나아갔고 옛창조에서 새창조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모두 새창조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 온 일생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출처 : 내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