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35
성경말씀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오늘의 만나 

 만일 우리가 창세기 2장만을 읽는다면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생명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말하, 요한복음 15장 5절은 주 예수님이 포도나무라고 말합니다. 이 두절을 함께 놓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생명나무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 있는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우주 안에는 이 근원 외에 다른 나무 즉 다른 근원인 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사망나무라고 불리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불렸습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뜻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망의 근원인 사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고 사탄은 사망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두 나무로 상징된 두 근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망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시작되어 불못으로 끝이 납니다. 생명은 생명나무에서 시작되어 새 예루살렘으로 끝이 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사망의 노선 안에 있었지만, 구원받은 후 우리는 생명의 노선 안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30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살전5:23下)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오늘의 만나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먼저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좋은 집과 최신형 자동차까지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육체적인 필요가 채워진 후 여러분은 음악이나 운동 등 즐길 것들을 찾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혼의 정신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모든 즐거움을 누릴지라도 밤에 혼자 있을 때, 깊은 곳에는 공허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말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자동차, 좋은 집, 착한 아내, 아이들, 모든 즐거움이 내게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존재의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아직도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존재 깊은 곳에서 요구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영입니다. 여러분 존재의 일부인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것입니다. 사람은 세 부분(살전5:23)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질적인 요구, 정신적인 요구, 영적인 요구의 세 부분의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의 요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세 번째 요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가장 좋은 물질들을 가지고 있고, 최고의 정신적인 만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무엇인가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누림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깊은 곳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이 만족된다면 자동차나 저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담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5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 담는 그릇인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접촉하는 기관 즉 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라디오 안에는 수신기가 있는데 이것이 파손되었을 때는 전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외적인 그릇이며, 우리 속에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수신기인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칠판은 손으로 만지고, 향기는 코로 맡고, 색깔은 눈으로 봅니다. 또한 소리는 귀로 듣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그분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기 중에는 많은 라디오 전파가 있지만 수신기가 없이는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업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수신기인 사람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기능을 잘 발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하나님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사람의 영(잠20:27)이라고 부르는 기관이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0
성경말씀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1:12)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마치 사람의 사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박형제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박형제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이 박형제이기 때문에 당신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실재의 박형제가 아니고 단지 사진 안에 있는 박형제입니다. 비록 그 사진이 박형제의 용모와 자태와 인물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박형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박형제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그를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그 사진이 박형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그의 생명을 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는 사진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하나님에 관한 여러 면들을 보여 줄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생명나무로 지시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에 있어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다시 그 생명에 이르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명을 얻는 길 외에 그분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서도 확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