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05
골1:9  그러므로 우리도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구하고 잇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기를 바라며, 엡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의 구속에 의해, 영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성도들에게 할당된 몫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잇는 자격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광대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몫이 되는 것이다. 골로새서1장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듯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듯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로 적셔지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인격이 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광대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함하고 사는 것과 관련된 하나님의 듯은 너무나 심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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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7:00
성경말씀  

(히12:5下~7)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서 책망하실 때 낙심하지 마라,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징계를 받을 때 여러분은 견디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들처럼 다루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의 만나

 
 벌새 한 마리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렀습니다. 깃털도 많이 자라고, 그들에게 나르는 법을 가르칠 때가 되었습니다. 어미새가 그중 한 마리를 훈련시켜서 즉시 날개를 펴고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는 둥지 옆에서 당황하고 놀란 모습으로 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미새가 주위를 맴돌며 재촉했지만, 겁많은 새끼는 바깥 세상은 너무 넓고 자신은 미약하고 작다는 것을 알고는 감히 날개를 펼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미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의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작고 마음 약한 새는 둥지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잠시 후 땅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왔습니다. 새끼는 적의 공격으로 생각하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날 용기도 없어서 고개를 돌래 벌을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땅벌은 더 가까이 왔고 그 소리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새끼는 너무 무서워서 몸을 굽혀 급히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비로소 날개를 펴서 날면서 땅에 내려왔습니다. 물론 잠깐 긴장되었지만 무사히 땅에 내려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는 새끼를 들어 다시 둥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벌새는 둥지에 있기 싫은지 즉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때 환경을 일으켜 각종 시험과 환난을 임하게 하시는데, 그 목적은 믿는이들로 믿음을 사용하여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55
골3:10-11  새샤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랆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골로새서 3장3절과 4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의 초점이시며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심을 본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새사람의 조성 성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새사람의 유일한 조성 성분이시기 때문에, 새사람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미국인과 중국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노예와 자유인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 새사람 안에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나는 이 이상을 봄으로써 우리 속에서 깊은 열망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께 점유되고 사로잡히며 당신의 소유가 되기 원합니다. 저는 제 속의 모든 공간과 여지를 완전히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체험하는 일에서 제한 받거나 좌절되기를 원하신 않습니다. 저는 어떠한 제한이나 재약이나 얽매임없이 당신을 누리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문화가 아닌 오직 당신만을 얻기 원합니다. 저는 어떤 종류의 문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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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6:50
성경말씀  

(고후3:3) 왜냐하면 우리가 사역하여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그 영께 속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 영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로 충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은 자연히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며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산 편지들이 되게 했습니다. 편지들이 사도들의 마음과 믿는이들의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은 합당한 새언약의 사역이 항상 그 사역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사역하는 사람들 마음에 무엇인가를 항상 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사역은 생명의 길에 있으며 쓰는 것의 본질인 생명주는 영으로 수행됩니다.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진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지는 판(板)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 안으로 쓰여져 우리를 그분의 산 편지가 되게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사도가 사용한 ‘영’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이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이들 안으로 공급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되게 했습니다. 신약을 위한 사도들의 사역은 구약을 위한 모세의 사역과는 달리, 죽은 문자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영에 속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