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saac yim 2018.04.30 00:13

 

신약성경에서 결혼생활을 말하면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다루는 몇군데의 구절들에서 몇가지 공통된 원칙들을 발견했는데...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먼저 언급되고있다는 것과, 사용된 단어가 "순복" 또는 "복종"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아내들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것은, 아내가 남편보다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쉽게 악한자의 유혹에 요동하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종 또는 순복"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subject to"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엡6:1과,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다루는 엡6:5에서 언급된 "순종"(obey, be obedient to)이라는 단어와 분명한 구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순복"과 "순종"...이 두개의 비슷한 단어에 대한 합당한 인식이 성공적인 결혼생활 안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느껴져서, 제가 가지고 있던 영영사전(Macmillan 2002년판으로써 비교적 인정받는 사전임)을 뒤져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각 단어들을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Subject : Under the authority and control of a government, country
*Submission : the action of accepting that someone has defeated you or has power over you
*Obey : to do what a law or person says you must do

다시 쉽게 우리말로 얘기해보자면....
순복(Submission)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이며, 순종(Obey)은 외적인 행위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에게 자기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요구하셨지, "순종" 하라고 한것이 아님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지않는 남편이 세상적인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할 때 아내된 자매들은 남편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순복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지않는 남편을 가진 한 자매가 있었는데,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지않는 남편을 구원하기에 합당한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주의종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시는 영화를 제가 함께 보는 것은 제 안에 계신 주님이 매우 불편해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영화관까지 모셔다 드린후 당신이 다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을 순종하지는 않았지만 순복의 영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자매의 남편이 이형제님의 이러한 교통에 도움을 받아 머지않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디도서 2:5과 벧전 3:1에서 우리는 분명한 또하나의 원칙을 볼수 있는데, 자매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지 못한다면, 그 지방교회에서 합당하게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들이 악한자들에게 훼방을 받게 되며, 믿지않은 남편을 결코 얻을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아내된 자매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지식과 언변으로는 남편을 얻을수 없으나, 그 아내의 행위, 즉 남편을 순복하는 태도, 경외하는 태도를 가진 생활방식(The manner of life)에 의하여 얻어질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얻을수 있다가 아니라 얻어질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기가족을 얻는 것이 쉽지않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남편을 순복하는 것은 무거운 머리가 몸위에 붙어 있고 많은 것들을 지시하지만 몸은 자연스럽게 그 요구에 순종하며 머리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남편된 자들은 아내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요구하거나 이용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머리삼지 않는 남편을 머리삼고 순복한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며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의 중량이 나에게 느껴진다면 하루라도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볼때 상당기간동안 저도 이러한 잘못된 머리였음을 요즘들어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팔순이 훨씬 넘으신 시아버지과 함께 살고 있는 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사역안에서 공급되는 건강한 말씀에 의하여 조금씩 제자신이 합당한 남편으로 조정되어가고 있음을 인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끝.

posted by Isaac yim 2018.04.29 23:49

마태 복음 24-25장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태는 다음과 같이 양측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최소한 세 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1) 두 남자 (두 여자)의 사례(마 24:32-44), 2) 두 종류의 노예 사례(마 24:45-51), 3) 열 처녀의 비유 사례 (마25:1-13) 가 그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은 이 사례들을 <믿는 이들과  불신자 구도>로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모든 유형은 모두 다 거듭난 믿는 이들을 가리키며, 불신자와는 무관합니다. 굳이 유형을 분류하자면 <깨어 있는 성도들과 그렇지 못한 성도들> 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신약성경 회복역과 그 각주들은 이 세 가지 사례들 중 소위 ‘깨어있지 못한 성도들’도 여전히 거듭난 믿는 이들임을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1) 땅에 남겨진 두 명도 구원받은 성도임

40 그 때에 두 남자가 밭을 갈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둡니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둡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주님께서 어느 날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2절 각주1, 깨어 있도록 > ‘그러므로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와 ‘여러분의 주님’은 24장 40절과 41절에 있는 두 남자와 두 여자가 구원받은 믿는 이들이라는 것을 증명 한다. 주님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주인도 아니시다.

 

2) 악한 노예도 구원받은 성도임

48 그러나 그 악한 노예가 마음 속으로 ‘나의 주인이 더디 오실 것이다’ 라고 하며, 49 동료 노예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면, 50 예기치 않은 날, 알아채지 못하는 시각에 그 노예 주인이 와서, 51 그를 엄하게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48절 각주1, 악한 노예> 이 악한 노예는 구원받은 믿는 이인데, 이것은 (1) 그가 주님께 임명되었고(마24:45), (2) 그가 주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불렀으며, (3) 그가 주님께서 오고 계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51절 각주 3, 벌을 내릴 것이니> 이것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징계를 받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8절 각주 1참조.

 

3) 어리석은 다섯 처녀도 구원받은 성도임

마25:8 어리석은 처녀들이 현명한 처녀들에게 ‘우리의 등불이 꺼져 가니, 여러분의 기름을 좀 주십시오.’라고 하였지만…11 그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열어 주십시오!’라고 하였지만, 12 신랑이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여러분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3 그러므로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8절 각주 1, 꺼져가니> ‘꺼져가니’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등이 켜져 있고 그 안에 기름이 조금 있었지만, 충분한 공급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지만, 온 존재가 적셔질 만큼 그분으로 충만되지 않았던 믿는 이들을 대표한다.

 

<12절 각주 1,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알지 못합니다’는 누가복음 13장 25절에서 처럼 ‘인정하지 않습니다’, ‘승인하지 않습니다’의 의미를 지닌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을 켜고 주님을 만나러 갔으며, 죽고 부활하여 휴거되었지만 성령 충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데는 늦었다. 이 때문에 주님은 그들이 그분의 결혼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하거나 승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이 시대적인 보상을 잃어버리지만, 영원한 구원은 잃지 않는다.

 

마태복음 25:1은 천국은 ..와 같으니 라고 말문을 열면서 열 처녀 비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 본문에 의하면 비록 거듭났다고 해도 천년 왕국(혼인잔치)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을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나에게 주님, 주님하는 사람이라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갑니다'(마7:21)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으로도 재차 확증됩니다. 

 

(한국복음서원 발행 회복역신약성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