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35
성경말씀 

 (빌1:21)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롬8:2) 왜냐하면 생명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며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업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의 법으로써 자연발생적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만일 그것이 법이 아니라면 아마도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인 이상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손에 물건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손을 놓으면 그 물건은 자동적으로 땅에 떨어집니다. 만유인력은 하나의 법이기 때문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히 일어나는 일종의 현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우리가 노력해서 붙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법임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그 법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두셨고 기업으로서 그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만 이삭과 같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30
성경말씀 

 (롬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11:5)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을 받은 남은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의 선택에 관계된 긍휼과 은혜를 이해하기는 약간 어렵습니다. 비록 영원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미리 아셨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가련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대적 사탄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이 자를 보십시오. 얼마나 가련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사탄아, 너는 이 상황이 내가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줄 모르느냐! 이런 가련한 사람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나의 긍휼을 베풀 수 있겠느냐? 만일 모든 사람이 완전하여 너의 기준에 도달한다면, 내가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탄아, 선택된 이 사람이 바로 나의 긍휼을 입을 사람이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는 우리 존재 안으로 역사해 들어오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은혜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안에 있고 그분의 은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장 가련하고 비참한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가 회개했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신성한 것-하나님의 은혜-이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아래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은혜 즉 그 영이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인격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25
성경말씀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골2:11)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곧 육체의 몸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빌3:3)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만나 

 위 신약의 두 구절은 우리에게 할례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할례는 육체를 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받은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육체에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할례의 의미는 다름이 아닌 사람 원래의 힘과 천연적인 능력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육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육체는 죄의 문제에 관련된 것입니다. 육체가 사람으로 범죄하게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육체가 사람으로 다만 범죄하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8절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경우 육체의 목적은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육체가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육체가 할례 받은 이후로 우리는 더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않게 되며 우리의 의견을 쉽게 내놓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약하고 무능하며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20
성경말씀  

(창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8:4~5)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오늘의 만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절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과 나무 그늘에 앉아 발을 씻는 것 중 어느 것이 하나님에게 더 즐겁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수준으로 인간의 형태로 그에게 오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오신 이후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경배나 두려움이 없고 다만 친근함이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평범한 방식으로 방문하십니다. 많은 자매들은 그들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할 때 주님이 친밀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오신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로서 주님과 함께 달콤한 교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형제들도 역시 이런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주님은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오시어 그들과 함께 달콤한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친밀한 친구처럼 교통하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으로 우리를 방문하신 것의 체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