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10. 19. 10:26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D. 셋 모두 영원하심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소문과 비난이 있다.

나는 우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사상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해, 성경에 따라서 우리는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고 성령 또한 영원하심을 믿는다고 선포하기 원한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선포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1. 아버지가 영원하시다

이사야서 96절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 축어역에서 이 문구는 영원의 아버지또는 영원한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영원하시다.

2. 아들이 영원하시다

아들 또한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112절은 아들에 대하여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73절은 그는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분이 영원함을 의미한다.

영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상징은 직선이 아닌 원()이다.

그분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

3. 성령이 영원하시다

성령 또한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914절은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함을 선포한다.

E. 셋 모두 동시에 존재하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동시에 존재하신다.

요한복음 1416절과 17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한 것을 주목하라.

이 두 구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아들과 성령을 보내시는 아버지를 본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동시에 나타나 있다.

에베소서 314절부터 17절에서 바울은, 아버지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는 아버지와 성령과 아들 그리스도가 있다.

이 모두가 동시에 존재한다.

성경은 아버지가 어떤 특정 기간 동안 존재하신 다음에 아들이 왔고 또 그 아들이 특정한 기간 후에는 존재하시지 않고 성령으로 대치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

이 구절에서 성경은 아버지는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은 성도들을 강건케하며, 아들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도 분명하게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신다.

고린도후서 13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교제가 언급되었다.

셋 모두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고린도전서 124절세서 6절은 성령의 은사와 주님의 직임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주님과 하나님을 본다.

다시금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존재하며 역사하심을 본다.

성령은 은사를 주시며, 주님은 섬기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아버지께서 더 이상 존재하시지 않는다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하여 왔다거나, 또 얼마 후에 성령이 아들을 대신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셋 모두가 영원하며 동시에 존재하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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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10. 18. 00:49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B.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마태복음 2819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하여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 구절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그 셋이 오직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 구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름들이 아닌)으로 침례를 주고라고 말한다.

하나의 이름을 가진 셋이 있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요, 삼위일체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책에서 앤드류 머리는 아버지 안에는 만유의 창시자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계시되셨고, 표현되셨고, 가까워지셨으며, 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의 몸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를 위해 갖고 계신 것들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이다...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것과 아들이 이루신 것은 오직 성령의 계속적인 중재와 활발한 운행하심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적용될 수 있고 효능을 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C. 셋 모두 하나님이심

1.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의심할 바 없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신약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12절과 에베소서 117절을 보라.

2. 아들이 하나님이시다

아들 또한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18절에서는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은 하나님이라 불리운다.

요한복음 11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말씀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요 아들이시다.

말씀이 하나님이라면 아들 또한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로마서 95절은 그리스도...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3. 성령이 하나님이시다

사도행전 53절과 4절에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본다.

3절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 구절에서는 그가 하나님께 거짓말했다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는 몇 분의 하나님이 계시는가?

오직 한 분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오직 한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다만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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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21. 05:00


한국교계에 닫힌 핵심진리 - 『맏아들』- (2)

2. 대부분의 장로교인 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교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정작 이러한 "예정"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도록" 예정하고,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 되도록(predestinate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로마서 8장 29절의 핵심내용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 롬8:29 본문자체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당 본문을 여러 번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들의 형상'은 무엇이며, '많은 형제들'은 누구의 형제들이라는 말인지, '맏아들'은 또 무엇인지, '독생자'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장래 운명과도 직결됨으로 소홀히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사실 '맏아들'은 '주님의 부활'과 관련이 깊은 단어이지만, 이것을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삼위(일체)와의 관계'와 '성육신의 단계'를 성경적으로 이해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먼저 '삼위일체관'에 대해 교제해 보겠습니다. 

(1) 한국교계 내엔 잘못된 삼위일체관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치고 '한 하나님에게 세 인격이 있으시다'로 요약되는 소위 정통 삼위일체관을 부인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위 (지방)교회 성도들도 물론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세 인격'이 '구별'만 되는가 아니면 '분리'되기도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면 '삼위일체'에 대한 그 사람의 참된 이해가 무엇인지가 적나라하게 폭로됩니다. 보수 정통을 자부하는 장로교 고신 교단의 신대원을 졸업한 손무덕 목사님은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유일신 삼위일체 하나님

그의 책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유일신 삼위일체 하나님'(중외출판사, 1998년) 서문에서 한국교계의 삼위일체교리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삼위일체 교리는 가르치는 사람도 찜찜하고 배우는 사람도 개운치 않은 실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속 시원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이단 정죄 위험성을 무릅쓰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을 세워보겠다며 쓰신 저자의 책 내용조차도 '비 성경적' 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성 삼위 하나님은 각각 계신 곳이 다르다'(위 책 22쪽). '성부와 성자는 몸과 생명을 따로 가지고 계신다'(27쪽), '육체를 따로 가지신 성부 하나님'(30쪽), '성 삼위 하나님을 다 합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37쪽), '한 분 하나님이란 예수님이 제외된 성부 하나님만을 지칭함'(35쪽) 등 삼신론 또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님은 아니고 '아버지만 하나님'이라는 끔직한 이론을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소위 정통교리를 수호한다는 이단연구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누가이단인가?

전 예장 통합측 이단사이비 상담소장이며 현재 한기총 이단 전문위원인 최삼경 목사님은 (지방)교회측과의 토론에서 '분리된 세 영들', (아버지는 저 멀리 하늘보좌에 계시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신다'는 등 각각 떨어져 계신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계속 주장했습니다(누가 이단인가, 도서출판: 생명나무, 1999, 115-116쪽). '분리된 하나님'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 외에도 월간 교회와 이단 발행인과 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장인 이 대복 목사님(월간 교회와 이단, 98년 11월호, 57-59, 62쪽 참조), 예장합동 측 일부 이단연구가들이 포함되십니다(총회교육국 편, 기독교의 이단들, 1997년, 155쪽 참조)'.  

(2) 성경은 동시존재 하시며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삼위 하나님을 말합니다
천연적인 사람의 생각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들을 땅으로 보냈으면 두 분이 분리되었으니 땅에 오신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셔야 하고, 또 아들은 높은 저 하늘에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셨으니 하늘에는 안 계셔야 말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그 속성상 구별은 되시나 결코 분리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면서 동시에 땅에 오신 아들 안에 계시며, 아들도 땅에 계시면서 동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에 여전히 계십니다. 이 점은 우리 안의 성령도 마찬가지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 보좌에 계시되 동시에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 안에도 여전히 계십니다. 즉 요한 복음 1:18은 이 땅에 오신 아들이 땅에 계신 그 순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속에 계심을 말합니다(동사시제가 현재임). 요 3:14도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영어 KJV참조). 또한 요8:16, 29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에 보내심 받은 아들과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요14: 10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서로 안에 계신 분들이 어떻게 분리된다는 말입니까? 설사 분리된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둘 또는 세 하나님들이 되어 버리니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는 성경 내용과는 다른 이단사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고전8:4, 6, 롬3:30, 딤전2:5, 신4:35, 39, 사45:5). 

(3) 바른 삼위일체관은 삼위가 구별은 되나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

한 교계신문은 최삼경 목사님과 (지방)교회간의 진리토론을 지켜 본 뒤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걸핏하면 삼위일체론이 틀렸다며 남을 '이단'으로 공격하던 한 인사가 그 자신이 삼위일체론에 있어 이단성이 있음이 제기되어.... 과연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각기 분리되고 구별되는 '셋'이 정통인지 아니면 셋은 구별되지만 서로 안에 거하시면서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통인지 그 논쟁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교회연합신문, 1999. 4. 11일자). 그런데 성경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상호내주함으로 분리가 안됨)을 믿으라'(요14:11)고 명령함으로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삼위가 구별되실 뿐 아니라 심지어 분리되기도 하신다고 믿으면 뒤에 보게 될 '성육신' 단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이로 인해 '맏아들'에 대한 이해도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끝으로 장로교 신학자들 중에는 '삼위는... '디스팅크티오(구별)'이지만, '디비수스'(나누어짐)되거나 '세파라투스(분리)되지 않는다'고 성경적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분들도 있음으로 마치 한국 장로교단 전체의 삼위일체관이 틀렸다는 뜻으로 이 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총신대출판부, 1986, 208쪽).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9. 05:00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보낸 해명서는 다음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전용복 목사에게 보낸 항의서신입니다.
 

발신인: Daniel Towle 외 2 인,   1997. 9. 20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Tel : 714-996-8196, Fax : 714-996-8195   

수신인 : 경남 울산 갈릴리 교회 전용복 목사님
Tel : 0522-35-9354, Fax : 0522-35-1191   

제목 :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정죄 시정요구 및 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어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자료수집과정에서 확보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소책자와 원고들을 많은 고려 끝에 정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의했음을 통보드립니다('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1989, 진영문화사), '지방교회의 정체'(유사종교연구 합본 제3집, pp. 149-167), '지방교회의 정체'(1990, 교회교육연구원),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pp. 48-51).  

교리적인 오해와 왜곡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은 위 글들의 머리말에서 (지방)교회를 '오대양사건', '짐 존스의 인민사원사건'과 교묘히 연결시켜 마치 (지방)교회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집단살인극이나 벌이는 단체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동일한 머리말에서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그 이단성을 교묘히 위장하여 순진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인들에게 파고 들어오는' 악한 단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님은 진영문화사가 발행한 소책자의 결론( 27쪽)에서 '지방교회는 성경을 너무도 잘못 가르치고 파괴하는 이단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요 정식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된 말들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목사님이 책임지셔야할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정짓는 두려운 일을 하려면 당연히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기준은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글을 검토해 볼 때, 우리는 목사님이 충분한 사실파악이나 판단기준의 공정성도 없이 자신의 단편적인 지식과 목사님의 교단이 지지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함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추후 진리토론시 다루되 간략하게 문제점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현재 목사님이 다루신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통합측 최 삼경 목사님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해 공개토론 중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참고하시면서 우리가 지적한 것들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I. 하나님에 대한 교리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1) 삼위일체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양태설을 주장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양태설을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태설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위트니스 리의 '금등대'의 예에서도 분명히 아버지(금)와 아들(등대)과 그 영(일곱 등잔)의 '구분' 또는 '별개'의 위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 책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된,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상의 내용은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에 잘 나타나 있고 (지방)교회 성도들에게는 상식에 속한 내용들입니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편, 35-41 쪽, 281-311 쪽, 진리의 변호와 확증, 9-23 쪽, 49-83 쪽,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97년 3월호, 97년 7월호). 이러한 성경적이며 정통적인 가르침을 양태설이라고 한다면 이는 양태설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내용들은 결코 양태설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건대, 목사님이 사용하신 '삼위의 독립된 위격'이라는 말은 '분리된 삼위'의 의미로 쓰이면 삼신론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같은 난해한 주제에 

신약의 결론 - 하나님

대한 위트니스 리의 신앙을 판단함에 있어 위트니스 리의 책자에 흩어져있는 내용들을 일부씩 떼어내는 식의 연구로는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연구를 위해 적어도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요약한 책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을 여러번 정독하셨어야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것과(고전 8:6), 세 구분되는 위격이 계신 것(마 28:19)과, 세 분 모두 영원하시고(사 9:6, 히 1:12, 히 9:14), 상호내재하시며(요 14:10, 20), 동시존재하시는 것(고후 13:13)을 믿습니다. 

(2) 그리스도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하셨을 때 그는 그의 두가지 본성을 혼합해 사람도 하나님도 아닌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인 새로운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라고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말과 '새로운 본성'이라는 말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변호와 확증 - 위트니스 리

만일 이러한 문제가 위트니스 리가 그의 책에서 사용한 '밍글링'(mingling)이란 단어의 오해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측이 상세히 반박한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pp164-166)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는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결코 그리스도 안의 양성의 혼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분(그리스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다. 그 분은 완전한 인성 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 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96 쪽, 1996, 한국복음서원). 이러한 관점은 칼케돈 신조와 정확히 일치되는 정통적인 관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목사님은 '주님이 인성을 취하실 때 그 인성도 벌써 하나님의 아들의 한 속성이 된 것이며 거룩한 것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목사님 말씀대로 변화산에서 이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또한 '내가 오늘(예수님의 부활시)' 너를 낳았다'(행 13:33)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문맥상 이 말씀이 성육신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성령  

목사님은, '지방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만 강조할 뿐 회의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말하며 사도행전 15장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 28절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라고 말합니다. 즉, 외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회의는 인간의 시기와 다툼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회의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의는 성령의 임재가 가득하여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의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좋은 사람이 되려하거나 여러분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하지 말라' 는 말을 오해하셨습니다. 그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인간의 노력 또는 율법의 행위는 주님 앞에서 쓸모 없으며 오직 내적 기름부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내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페이지에서 위트니스 리는 주님의 역사로 자신이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골로새서의 말씀은, 주님이 만유가 되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생활을 개선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II. 인간에 대한 교리(신인연합, 삼분설, 죄)

(1) 신인의 혼합, 연합  

목사님이 '혼합'(mingling) '연합'(compounding)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지적하신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출애굽기 30장의 관유에 포함된 향품에 대해 강해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표론 상 이 구절들에서 '관유'와 '네가지 향품'의 연합을 신성과 인성의 연합(compounding)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밍글링(mingling, 혼합)은 레위기 2장 4절에서 양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소제'(기름과 고운가루)를 만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성경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성경에 연합의 사실은 있으나 혼합된다는 말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혼합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성도의 신격화를 가리키며 이러한 주장은 너무도 참람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목사님의 생각처럼 사람이 신격화 된다거나 하나님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영원히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일 뿐이며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60-162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고린도 전서 6장 17절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는 말씀 중에서 이 '한 영'이 '성령인지 사람의 영인지를 말하기 어렵다'고 한 말을 비판하며 이러한 표현이 너무도 참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이 말씀에서 '한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 밝혀주시고, 왜 이것이 성도의 신격화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 삼분설 

 초대 교회 교부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각 교단은 좀더 현실적인 사안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목사님은, '삼분설이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이분설도 헬라철학에서 나온 것이며 이분설이 '인간구조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라고 했으나 사실은 '장로교 신학의 견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분설은 루이스 벌콥의 견해요 그의 저서를 대부분 번역하여 자신의 가르침으로 사용하는 박 형룡 박사의 견해입니다. 목사님은 장로교단 외에 수많은 교단에서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삼분설을 지지하는 수 많은 교부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언급할 수 있으나 지면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영과 혼과 마음의 각 부분들에 대한 가르침도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 보이는 '영혼'은 원문에 의거해서 '혼' 또는 '영'으로 번역되어야 맞습니다. 헬라어나 영어는 '영'과 '혼'이 각각 다른 단어이며 또한 '영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나 영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강해 - 위트니스 리

우리는 목사님이 영지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시는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물질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이고,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처음에는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 후 부패되었다'고 주장함에도 목사님은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인간의 전인적 타락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몸은 육체가 되었고 혼은 부패되었으며 영은 죽었다고 함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선명하게 가르칩니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 보급판, 한국복음서원, pp. 257-271, 사람의 영, p.47,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참조).  

(3) 죄 

목사님은, "죄는 사람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타락의 원인측면에서만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Sin) 또는 악이 인격의 형태로 사람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사람들)에 들어왔다(롬 5:12상)'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다만 죄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롬 5:10)요 '마귀의 자녀'(요일 3:9)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생명과 본성이 마귀의 자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 밖의 공중에서 역사하는 인격으로서의 사단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시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 사단을 처리하셨습니다(히 2:14). 이러한 말씀이 목사님 표현처럼 '참으로 괴상한 망언'이라면 목사님은 히브리서 2장 14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이 입으신 육신은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매달은 놋뱀으로 예표되었습니다(요 3:14-15). 이 예표에서 장대는 십자가를, 뱀은 사단을, 놋뱀은 육신을 가졌으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즉 그분은 죄가 없으셨으며 다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 만을 입으신 것입니다(롬 8:3). 이러한 진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곧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는 말씀으로도 확증됩니다.  

III. 구원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혼합(연합)되지 않았다...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따라 어떻게 '주와 합(연합)하는 자가 되며(고전 6:17), 신(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벧후 1:4),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습니까(갈 4:19)?  

IV. 성경에 관한 교리 

 목사님은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경시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인용하신 저서의 문맥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가 언급한 '낡은 성경적 지식을 따르지 말라... 오직 예수뿐이다' 등의 의미는 '율법의 마침' 또는 '구약의 모든 예표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의미이지 결코 성경을 경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구약의 예표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실물인 자가 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의 사진만 붙잡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사진 자체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가나안 땅을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각종 원수들은 무엇입니까? 천국에도 믿는 이들의 원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풍성한 산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을 예표하며 각종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리의 육신과 세상을 상징합니다.  

V. 교회에 대한 교리

(1) 지방교회만 유일한 참 교회라고 주장한다. 

 목사님은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말을 오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교회(사람들)'라는 단어와 '집회소(건물)'이라는 단어를 혼돈했기 때문에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는데 과연 한 집회소에서만 모였을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라는 단어는 '부르심 받아 나온 무리들(사람)'이라는 뜻이며, 집회소(건물)는 교회가 모이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소는 여러 개일 수 있으나 그 지방에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저런 교파가 일체 없고 오직 그 지방의 명칭을 따른 교회만 있습니다. 거듭난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므로 다만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행 8:1). 그 외에도 많은 성경구절들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진리를 증명합니다(행 13:1, 롬 1:7, 고전 1:2, 엡 1:1, 빌 1:1, 골 1:2). 거듭난 무리들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지 하나님에겐 그들 모두가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교파를 만드는 것은 분열이며 그리스도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고전 1:11-13). 바울은 분열을 강하게 책망했으며 이 일에 있어서 어떤 합리화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목사님과 같은 장로교 학자이신 이종성 박사와 '한국장로교회사'를 쓰신 김진복 교수님도 교회의 분열을 개탄스러워 하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합니다.  

(2) 모든 조직, 제도, 직분, 규율, 사업을 부인한다. 

(지방)교회는 성경에 있는 모든 직분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을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적인 계급질서를 가져오는 소위 '성직자-평신도 제도'는 주님이 미워하시므로(계 2:6) 우리도 미워합니다.

목사님은 현재 일반 기독교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신학교, 목사고시제도, 교회매매, 권위주의적 목사제도, 총회선거시의 정치 정략 등에 대한 분명한 성경근거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3) 예배의 모든 형식, 규범을 무시한다.

목사님은, '인도자가 없이 아무나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배를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목사님 표현처럼 '제멋대로 말하는' 예배는 성경에 없으나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말할 수 있고(고전 14:31, 23) 화평의 하나님을 따라 찬송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예언하는 예배는 있습니다. 목사님이 지지하시는 주보 순서에 따른 예배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성경근거는 무엇입니까?

(4) 성례를 규모 없이 함부로 행한다.

성찬을 매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역자만 말씀과 성례집행을 할 수 있다는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VI. 종말에 관한 교리

(1) 이기는 자들의 환난 전 휴거

계시록을 합당하게 해석하려면 우선 본문을 100 번 이상 정독한 후 계시록 전체의 조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그 특성상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사건의 시점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어 볼 때, 개인의 주장은 있으나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은 12장의 '사내아이'는 예수님을, '올려간다'는 말은 '부활과 승천'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사내아이'는 이기는 자를,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를, '올려간다'는 말은 '휴거'를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해와 달과 별을 가진, 광야로 도망간 여자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며 둘째, 사내아이가 올려간 직후 하늘에서 사단이 내어 쫒겼으며 셋째, 본문의 말씀은 대 환란이 임박한 시점이므로 주님의 부활과 승천과는 시점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기는 자들로서 환난 전에 휴거되어 사단을 쫓아낼 자들입니다.

목사님은, 14장의 14만 4천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4절에서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모든 성도들이,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거나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거나 입에 거짓말이 없거나 흠이 없는 자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이들의 징계

목사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잘못해도 결코 징계를 받지 않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죽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징계를 말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성도 중에서도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며, 구원을 얻기는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으리라고 말하는 고린도 전서 3장 15절을 목사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또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하라고 경고하는 로마서 14장 10-13절과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고린도 후서 5장 10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 불태워질 공력만 쌓고, 형제들을 함부로 판단하며, 악을 행한 믿는 이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문맥에 의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구원받은 성도이며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만일 목사님 말씀대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구원받은 사람도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영벌과 멸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VII. 결론

이상에서 간단히 본 바와 같이 목사님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자세히 연구하지도 않으신 채 함부로 이단으로 단정지어 인쇄 배포하심으로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셨습니다. 문서는 그 특성상 일단 인쇄되어 배포되면 내용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그 효과가 반영구적입니다. 또한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계속 재인용되어 거짓을 확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 책자들과 관련된 이러한 구체적인 피해사례들을 이미 수집하여 보관 중입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저술한 내용으로 인한 피해는 너무 지속적이고 심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주님 안에서 평강 가운데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합니다;

첫째, 충분한 연구 없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정죄 하는 일을 삼가 해 주십시오.

둘째, 이 편지에서 저희측이 개괄적으로 언급한 항목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셋째, 목사님의 글들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피해에 대한 목사님의 해명서를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 앞으로 보내 주십시오.

넷째, 이미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제의합니다. 주제선정과 토론방법 등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참고로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종말론을 주제로 쌍방 각 6회씩의 원고를 한국 내 기독교 잡지 또는 교계신문에 연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을 발신일로부터 14일 내에 팩스로 보내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진리를 사랑하시고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상호간 오해와 갈등을 씻어내고 무엇이 밝은 진리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저희의 건설적인 제안에 대한 목사님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8. 05:00

장로교 고신측(전용복 목사) 책자에 대한 항의서신 1

장로교 고신 교단은 1991년 전용복 목사의 거짓된 연구결과를 근거로 (지방)교회측을 이단시했습니다. 이에 (지방)교회측은 그것이 너무 근거 없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인내하며 수 년간 대응을 미루어 오다가 그것이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인용되는 것을 보고 '97년 6월에 고신측 총회장에게, 그리고 9월에 전 용복 목사에게 각각 항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98년 3월에 전 목사에게 답변을 촉구하는 서한을 재차 발송했습니다. 즉,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공개토론에 응하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문을 쓰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고신측의 총회장인 정 순행 목사는 유감을 표명하며 고신 교단 소속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고 (지방)교회에 도전할 의도가 없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보내왔습니다.(다음 글 참조) 그리고 전 용복 목사는 총회장의 해명서로 마무리 짓고 싶고, 만일 토론을 하려면 1년간의 연구기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은 그러한 서신교환을 모은 것들입니다.이제 주님의 사랑과 빛 앞에서 더 이상 진실이 왜곡되지 않기를 원하고 왜곡되었던 진리를 바로 잡음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발신인 : Daniel Towle 외 2인, 1997. 6. 18
1330 North Placentia Avenue, Fullerton, CA 92831 U.S.A. 
Tel : 714-996-8190, Fax : 714-996-8195    

수신인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참조 : 고신측 유사종교연구위원회 위원장, 간사 김 길배 목사님, 연구위원 전 용복 목사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8-10
전화 : 02-592-0433-4, 팩스: 02-592-5468 

제목: 고신측의 이단결정에 대한 항의 및 공개토론 제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한국 기독교계 내에서 저희의 신앙과 실행이 왜곡되게 전달 또는 유포되는 것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이 1991년 10월 4일,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선언한 사실에 대해 정식 대응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우선, 우리는 귀 교단에서 일방적으로 조사하고, 결정하고, 발표한 '지방교회에 대한 부당한 이단결정'을 결코 인정하지 않음을 통보합니다. 둘째, 우리는 귀 교단이 이런 거짓된 결정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셋째, 우리는 쟁점이 되는 진리의 각 항목에 대한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의 (지방)교회에 대한 연구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구 내용은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거짓되고 명예훼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 판단과 결론 도출 과정에서 많은 왜곡과 오해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귀 교단에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임하는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귀측이 인지하시도록 1980년도 초에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있었던 소송사건을 참고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1970년 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경출판사인 토마스 넬슨사와 미국이단연구협회(SCP)는 사실이 아닌 내용들에 근거하여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글들을 출판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2-3 년에 걸쳐 그들과 대화하고 자료를 제공하며 시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시정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 그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에 걸친 재판 결과 캘리포니아 고등법윈은, 그들의 글이 거짓이며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명예훼손임을 판결했습니다. 그러므로 법정은 1985년 6월 26일, SCP와 저자가 119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캘리포니아 고등법원 판결문 번호 540 585-9 참조). 또한 토마스 넬슨사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책(Mindbenders, 마인밴더스)을 미전국의 서점에서 회수하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1983 년 4월 10일자).  ( 원본 - 영문 클릭 / 한글번역 클릭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문제를 세상법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귀 교단과 대화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무시되고 방치된다면, 우리는 부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방안을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 교단이 (지방)교회에 대해 언급한 모든 주제들인 '하나님, 인간, 구원, 성경, 교회' 등에 대해 한국내의 공개된 지면을 통한 진리토론을 제안합니다(예를 들면, 귀 측의 월간지인 '월간 고신', '현대종교' 또는 '교회와 신앙' 등). 참고로, 우리는 현재 장로교 통합 측과 월간 '교회와 신앙'을 통하여 이러한 공개 토론을 진행 중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방)교회측은 귀 교단과의 토론에 Daniel Towle과 조 동욱 목회자가 응할 것이며, 귀 측은 고신 계통의 목회자 또는 신학자 가운데 어느 분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1991년도 이단 판정자료 연구자인 전 용복 목사님을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또한 토론시 다음의 자료들에서 (지방)교회에 관해 언급된 모든 항목들이 포함되고 검증되기를 희망합니다.  

 1. 유사종교연구집 제3집 149-167쪽(지방교회의 정체), 전 용복 목사
 2 '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닌가?', 도서출판 : 진영문화사, 1989년, 총27 쪽, 전 용복 목사
 3. '지방교회의 정체', 교회교육연구원, 1990년, 총34쪽, 전 용복 목사(1-3은 동일 내용임) 
 4. 월간 고신, 1988년 5월호, 48-51쪽(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전 용복 목사
 5. '이단사상연구(지방교회)' 김 요섭외 4인의 연구논문 (지도교수 : 이 환봉), 고신대학 신학과
 6.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Watchman Nee의 사상 비판(지방교회를 중심으로)' 1-156쪽(연구논문), 황 건철 목사 

한 그리스도인 단체가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를 함부로 이단으로 매도하고 비판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일이며,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또한 이단판정의 기준과 내용도 마땅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쌍방의 진리 중 어느 편이 성경적인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밝힐 수 있는 기회인 이러한 토론제의를 귀 교단이 적극 수락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한 귀 교단의 답신을 본 서신의 발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팩스로 넣어 주시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 안에서, Daniel Towle 외 2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복음의 확증 (4)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


우리의 사역의 중요한 초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며, 우리는 그러한 체험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나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오시며,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을 수행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분명한 동일시를 발견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의 세 위격의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운행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이 부활 안에서 동일시되시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아래의 발췌문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령이시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는 누구이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영은 누구이신가? 물론 성령이시다.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이시고, 그 영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을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The Spirit of Christ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는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 이라는 자신의 책 25장에서 “주 예수님은 높여지시어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주 영’이 되셨다.”라고 말했다. <삼일성에 관한 진리 > ,영문판 14-15쪽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거룩한 숨으로 내쉬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숨이시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영이신 그리스도, 즉 숨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약의결론 - 성령

모든 과정을 완성하신 후에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 이 생명 주시는 영은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분,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영이신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의 영적인 생명과 존재의 신성한 본질이 되셨다. <신약의 결론 성령>, 194-195쪽

위의 예문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는 영의 관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오해한다면 이러한 글이야말로 그가 명백한 양태론자라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성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시도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우리가 받는 오해와 유사한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면 이레니우스 (Irenaeus), 터툴리안 (Tertullian), 어거스틴 (Augustine) 그리고 정통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다른 교사들의 글도 정도에서 빗나간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나, 그들의 글의 다른 부분에는 그들의 정통성을 확증해 주는 균형잡힌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 역시 이와 같은 균형잡힌 언급들을 하였으나, 근거 없이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 위해 소위 ‘증거’로 출판한 책자들에서는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균형잡힌 언급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그의 온전한 관점을 보여주는 두 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강해 3편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주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주님으로서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통치권과 머리의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고 계신다… 그분이 주님으로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은 그 영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 >, 95-96쪽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숨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인 내적이고 주관적인 면에서 볼 때 두 번째 보혜사이신 그 영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숨이시다. 따라서 내적인 방면을 조망할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은 하나이시다. <요한복음 강해 속편 3권>, 273쪽

많은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에는 역행하는 것 같지만, 신약의 서신서들과 같이, 자신의 사역의 커다란 강조점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종종 생명 주시는 영과 동일시되신다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중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을 추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위트니스 리 외에도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임스 던 (James D. G. Dunn) 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신학자 중 한 분으로서 위트니스 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성경 구절들 중 일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적인 존재의 모형이라면,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의 모형이다…요약하자면 45절 하반절은 이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바울은 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이면서도 몸이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로 새로운 인성의 본과 선구자이시라는 것을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기때문이다.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그들 모두가 체험한 생명 주시는 영은 다시 사신 예수, 마지막 아담이시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를 영적인 존재…또는 영적인 범위나 영역이 아니라 그 영, 곧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바울에게 있어 내재적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이며, 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The Christ and the Spirit, vol. 1, Christology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8], 164-165쪽)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에 관해 자주 인용한,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저명한 신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 (W. H. Griffith Thomas) 역시 이러한 신성한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뛰어난 요약을 했습니다.

The Holy Spirit

이러한 진리의 양면 모두를 주의하며 보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위격의 특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의 임재는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Kregel, 1986; reprint of The Holy Spirit of God, 4th edition,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3] 144쪽)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인용문을 읽는다면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영역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스웨트 (H. B. Swete) 도 동일한 사상을 아래와 같이 확증했습니다.

H. B. Swete

그 영은 그분의 일에 있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신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영이신 주 (the Lord the Spirit) 즉 그분의 영화롭게 된 생명의 능력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
The Holy Spirit in the New Testament, [London, New York: Macmillan, 1912] 306쪽)

 이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를 추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각주는 위트니스 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를 동일하게 인정한 저명한 주석가들인 마빈 빈센트 (Marvin Vincent),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윌리스톤 워커 (Williston Walker) 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 이 부분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의 ‘주님’은 틀림없이 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2:12, 14-15, 17, 3:3-4, 14, 16, 4:5). 이것은 성경에 있는 분명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널리 퍼지게 하시고 활력 있게 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고 (고후 3:6) 새 언약의 사역에는 영광이 있다 (고후 3:8).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 요한복음 14장 16절, 18절과 비교해보라” (빈센트).

“3장 16절의 주님은 3장 6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의미상, 여기서 언급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은 바로 성령과 동일하시다…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알포드). “변화시키시고 내주하시는 영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주님은 그 영이시다’” (윌리스톤 워커). <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후서 3장 17절 각주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0.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3편 교리를 성경보다 중시하는 삼신론자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 토론 장도 우리 모두는 옛사람의 행위를 떠나 다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께 받은 부담과 빛을 믿음으로 말해내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 토론의 글들을 통해 우리의 공통 대적인 사탄과 그로부터 나온 비 진리들은 폭로, 분별, 공개적으로 거절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바로 알기를 사모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 대한 투명한 이해가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본질적인 토론 내용과 무관한 오해들로 인해 이 토론이 방해받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본 토론은, 이인규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심을 믿는 지방교회 입장과, 독립된 인격으로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것은 믿지만 지상 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계시지 않으며 만일 그렇게 주장하면 양태론이다 라는 최삼경 목사, 이00 감리교 권사와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어느 것이 이단적인 주장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 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잘못된 내용이라며 퍼다 올리고 임의로 판단한 이런 저런 내용들도 이 근본적인 한가지 차이점에 대해 어느 쪽이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장하는지를 분별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들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이나 토론 당사자들은 본 토론의 쟁점을 흩트릴 수 있는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일들로 인해 혼잡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다만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말하기만을 간절히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또 한가지는 제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위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들에 대해 이미 행해졌던 각종 토론 내용들을 제가 쓰는 글에 계속 참고할 것이며 또 때로는 그 자료들을 제 본인의 주장으로 가져다가 사용할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둡니다. 물론 그 자료들 안에는 월간 교회와 신앙의 지난 게시판, 지방교회 관찰 방에 올려진 내용들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박00님은 제 오랜 동역자임을 밝힙니다. 이 점에서도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론적인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와 이인규님은 서로 판단기준이 다릅니다. 한 쪽이 제대로 된 30센티 자를 가지고 30센티 간격마다 표시해 놓은 것을 '잘못된 눈금을 가진 30센티'자를 가진 다른 사람이 재어 보더니 표시된 눈금들이 틀린다며 목소리 높여 외치는 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가져온 본문들을 일일이 반박하는 일도 독자들을 위하여 필요하겠지만 사실은 "누구 자(기준)가 과연 표준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이 신론 토론의 근본핵심이며 시급한 과제입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토론에서 쌍방이 이 일에 집중하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이인규님은 1) '그리스도는 사람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시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지극히 균형 있고 성경적인 말을 가져와서는 지방교회측이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양자론을 주장하며, 네스토리안니즘을 주장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이 분은 순진한 독자들이 정말 그렇게 믿도록 자신 스스로 내린 결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반복하여 말하는 순발력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이고 오해요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또한 제가 역사상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알려진 아우그스티누스의 '상호내재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면 왜 보편적인 신학자가 아니고 특수한 사람의 이론을 내 세우느냐고 하시고, 한국교계에서 정통신학자의 범주로 분류되는 학자들의 책(박사학위 논문 포함)을 인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책은 없느냐고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인규님이 말하는 소위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가 매우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님의 정통교회 기준대로라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고 세 분이라고 해야 한다'는 소위 정통교회 교단 소속인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이단입니다. 이00 님은 '니케아 신조=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 점이 자신의 어려움인 것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니케아 신조의 장점인 '삼위의 독립된 구별'을 취하되 '독립된 삼위가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될 수 있나'를 밝히지는 못한 니케아 신조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삼위의 독립된 위격'을 지나치게 붙잡음으로 '상호내재' 개념이 비 성경적이며 이단적인 사상이 된 경우입니다. 위 두 가지를 다 취해야 정통 삼위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간혹 위트니스 리 책에 언뜻 보면 삼위의 독립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이 보이는 것은 성경본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이 성경 그대로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삼위의 독립을 인정치 않는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결국 요14:10-11을 말씀한 예수님 자신도 양태론 자로 정죄한 최삼경 목사처럼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학과 교리를 성경본문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들인 것입니다. 

 3) 게다가 니케아 신조와 관련해서 '인격이라는 단어는 성경용어가 아니고 신학자들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가지고도 지방교회는 니케아 신조 자체를 부인한다느니 지방교회측이 이중성이 있느니 없느니 라는 인신 공격적인 말까지 함부로 하고 계십니다. 니케아 신조는 이단들에 대항해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실체'이심을 명문화하고 '또 우리는 성령을 믿사옵나이다'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한 아버지, 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존재를 선포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지방교회측도 이것을 믿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인규님은 '지방교회측을 교회역사에 무식한 양태론자들' 이라는 자신의 거짓되고 부당한 착각의 틀에 밀어 넣기 위해 계속 무리를 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인격이란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 내용이 맞고 우리도 인정하지만 그 한 신조가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의 모든 방면을 전부 포함하지 못하며 니케아 신조는 진지한 삼위일체 논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뿐이고 사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립된 삼위가 분리되지 않으신 한 하나님이심을 설명하는 상호내재 개념(페리코레시스)은 니케아 신조 이후에 캅바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비로소 정립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대화조차 공감할 수 없는 토론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위와 같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저는 다음 세 가지 항목들에 있어서 저와 이00 님 의 입장을 독자들의 입회 하에 집중 검증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 항목들에 대한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누가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말하며 누가 자신의 교리에 빠져서 결국 성경과 정통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단사상을 가진 자인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 신론 토론은 조기에 종결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삼위일체 진리에 있어서 다른 부분들은 쌍방이 서로 일치하나 다음 세 가지에 있어서 이견이 있습니다. 

  1. 경륜적인 방면에 있어서 삼위의 상호내재에 대한 관점의 차이  

반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신다고 토론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00님은 존재에 있어서는 상호내재를 인정하지만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금방 간파했지만 독자들은 이인규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파악이 안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쌍방의 입장을 들어보고 비교해 보면 누가 성경대로 말하고 누가 이단사상을 고집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관찰방의 질문을 제 것으로 옮겨와서 이인규님께 재차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인규 님은 "십자가에서 달리신 분은", 

1) '성부하나님만'이시다(성부고난설 이단사상) 

2) 아버지와 성령님이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은 채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시다. 이 때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심과 동시에 하늘보좌에도 계신다(저와 지방교회측의 주장). 

3) 아버지는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은 제외된 '아들 하나님만' 이시다(이인규님 주장)

라는 1) 2) 3) 중 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만일 님의 주장이 위 셋과 다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은 지금 자신의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함부로 '성부고난설'을 믿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고,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등 삼신론적인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참고로 위 2)항이 지방교회측 주장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신격의 삼일성이 분리된 세 위격들로 나뉘어 질 수 있다는 관념을 붙잡지 말라. 이것은 누룩이다. ...그 셋(아버지, 아들, 성령)은 항상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 한다. 한 분이 이곳(지상)에 있을 때 셋 모두가 이곳(지상)에 있다. 한 분이 하늘에 계실 때 모두가 하늘에 계신다. 그 셋은 항상 하나이다. 분리됨이 없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288쪽).

님은 오직은혜님이 이 문제에 대해 관찰 방에서 질문 하자 '지방교회측의 아버지가 예수 안에 계시는 것은 맞지만,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시다는 주장은 다릅니다.'라고 슬쩍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디서 지방교회측이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까? 또한 님의 이단사상인 '인격 안에 인격은 없다'는 말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이 두가지 점들을 위 질문에 대한 님의 답변에서 상세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님의 이러한 이단적인 관점은 성육신, 인생, 부활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분이 누구신가 에 대하여 님이 가지고 계신 총체적인 혼동의 한 단면 즉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참고로 다음과 같은 정통 신학자들과 성경말씀 자체가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인규 님의 주장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폭로시켜 주고 있습니다.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실체의 단일성을 위하여 삼위를 희생시키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삼위의 구별을 위해서 실체의 단일성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후대에 '페리코레시스'라는 이름으로 설명된 이론을 체계화했다. 즉 각 위격 안에 한 동일실체 전부가 다 들어 있다. 각 위격 상호간에 또 위격과 실체간에 '공동내재성' 또는 상호상통성이 있다. 두 위격이나 세 위격을 합하더라도 다른 한 위격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수많은 이단들을 모두 다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이 이론의 성경적인 근거는 요한 복음 14:10의 말씀이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박사학위 논문), 29쪽). 

요한 복음 1:18은 이 땅 위에 내려오신 독생하신 아들이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속에 계시다(현재시제)고 하고, 요3:13 (영어 킹제임스 본문)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사실임과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님의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주장은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치명적인 변형된 삼신론 이단사상입니다. 이러한 이단 사상의 극심한 피해는 추후 구원론 토론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될 것입니다. 

  2. 성경본문 자체가 소위 정통 삼위일체교리와 충돌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저는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며 신구약 66권이 다 무오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외견상 불합리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도 자기 생각을 따라 함부로 불신하거나 무리하게 체계화 하려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을 포함한 지방교회 모든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교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성경본문 자체가 '아버지=아들', '아들=성령'이라고 말함으로 외견상 삼위의 독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성경본문 자체를 불신하거나 함부로 왜곡시켜 해석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이제 이인규님께 질문 드립니다.  

1) 이사야 9:6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 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이며 '영존 하시는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2) 고전15:45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살려주는 영)이 되셨나니' 에서 마지막 아담은 누구(몇 격)이며, 생명 주는 영은 누구(몇 격)입니까? 그리고 '되었나니'는 무엇이 언제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3) 고후3:17의 '주는 영이시니'에서 앞의 '주'는 누구이며 뒤의 '영이시니'는 누구입니까?  

4) 계5:6 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어린양이 섰는데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양은 누구이며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일곱 영은 누구입니까? 

위 질문들 각각에 대해 이인규님의 해석관점을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성경본문 내용들은 그 자체가 '삼위의 독립된 인격'이라는 교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눈엔 양태론 이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본문 그대로 믿고 말함으로 이인규님 같은 교리지상주의자들에게 '양태론자'라는 비난을 받든지 아니면 그러한 비난을 피하도록 성경본문을 왜곡되게 해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이인규님의 두 번째 부딪치는 부분입니다. 소위 님의 요14장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보혜사 성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여기에 해당 되는 문제들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인규 님처럼 소위 정통교리에 따른다면 이단이 되기 싫어서 성경 본문을 엉뚱하게 왜곡시켜 해석해 버리면 그 구절에 대한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날 많은 참된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과연 누구 신지-성령인지, 예수님인지, 둘 다인지, 아버지는 아닌지....-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은 이처럼 성경본문을 성경대로 해석하기를 꺼려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위 말씀들을 문맥대로 깊이 연구한 정통 신학자들이 예를 들어 고후3:17의 본문대로 '예수 그리스도=성령'이라고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아래 내용들은 풀러신학교 교수인 루이스 스미디즈가 쓰고 현재 월간 교회와 신앙에 고정 글을 쓰고 있는 현 장신신학원 교수인 오광만 님이 번역하여 국내 기독교계에 소개하신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여수룬, 1991년)의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바울)의 말은 극적이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고린도후서3:17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는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은 삼위일체의 삼위이시다. 바울이 주라고 부르고 있는 예수님은 이제 성령이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64-65쪽).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다섯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은 지상에서 그의 구속계획을 실현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2.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해서 체험되는 그리스도이시다.
  3. 성령은 지금 여기 존재하시는, 그러나 장차 완전히 실현될 새로운 창조를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그의 세상적인 기능들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4. 성령은 새로운 창조 안에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한 객관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규범이시다.
  5. 따라서, 새 언약 안에서의 삶에 관한 한, 성령은 현재의 그리스도이시다(위 책87-88쪽)'.

저자는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은 성령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지배하는 내용들이다. 바울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은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한 교리적인 강설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령에 관해서 말하는 바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움직임'-이것이 바로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라는 것임-필자 주-배경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아래 글은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신 이 동근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홈페이지인 http://new-jerusalem.org/mean.htm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 어거스틴은 '영(성령)을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는 위배이다. 신학이 삼위일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며, 주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 전혀 훼손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또는 '예수는 영이시고(고후3:17) 예수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해도 삼위일체를 훼손하지도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이다'와 '예수님의 영은 성령이다'(또는 '주의 영은 성령이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해석상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똑같은 말이다.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 라는 성서적 표현만큼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극복하고 함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안에 성부는 성령이시며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하늘나라인 의와 희락과 평강으로 함께 한 작용으로 역사 되고 있다.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까지 교리를 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성령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첫째, 성경의 위배이며 두 번째, 어거스틴의 20여 년 간의 노작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파괴 행위인 것이다.  

신학을 향한 충고:'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하면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양태론(Modalismus)을 운운하며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성급하고 극단적인 편견은 버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거스틴도 양태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이유는 신학자들이 너무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삼위일체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또 다시 악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지극히 성경적인 해석은 이외에도 앤드류 머레이, 존 넬슨 다아비, 헨리 알포드, MR 빈센트, 제이 오스왈드 샌더스 같은 신실한 정통 신학자들도 주장하는 것입니다(신약의 결론-하나님 331-332쪽). 성경을 섣불리 알고 자신의 교리만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이 함부로 '양태론'이라고 경솔한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 곧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어떤 비평가들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는 아버지요(사9:6), 그 영(고후3:17)이라고 가르칠 때, 그는 신격의 세 위격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를 부인하고 삼위양식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한다. 비평가들이 ...마 3:16-17을 믿는지를 물어 본다면, 나는 마 3:16-17을 믿을 뿐 아니라 이 주제에 관계된 모든 구절들(계1:4-5, 고후13:13, 엡3:14-17)을 다 믿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양태론자라는 비난은 거짓된 것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을 부인한다.'(윗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305-306쪽). 

3. 고전15:45의 '생명주는 영'(완결된 영)에 대한 이해 부족 

이인규 님은 지난 글에서 '첫 번째 영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하여 과정을 거친 하나님 자신이다. 이 영은 최종 완성된 삼일 하나님이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호내재한다고 하여 양태론이 아니라는 주장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 중 하나로 님이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이인규님이 분리된 셋을 주장하는 증거입니다.  

이인규 님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한 고전15:45에서 '생명주는 영'이 아래 넷 중 무엇이라고 해석하십니까? 생명주는 영은,  

1) 예수님의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2) 1격과 2격은 제외된 3격 성령하나님(보혜사 성령)이시다. 

3) 1격과 2격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 내재하시는 3격 성령님 이시되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은 인성은 절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4) 생명주는 영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생명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됨을 상실치 않고 상호 내재하시는 아들하나님(또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다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 + 예수님의 영화롭게 된 인성(육신) 즉 신성과 인성을 포함한 복합적인 영이시다. 

물론 4)이 저와 지방교회 측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성경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는 인식되지 못한 진리입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님도 위 본문 말씀에 대해 저처럼 빛비춤을 위트니스 리 책자를 보는 눈의 비늘이 한 꺼풀 벗겨지는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요한 복음 7:39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씀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님은 2)번 또는 3)번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저와 이인규님의 기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차이가 위트니스 리의 가장 균형 잡히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련 언급들이 님의 눈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핵심원인인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에 대한 님의 해석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주실 차례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기준들에 대한 쌍방의 이견들이 풀리면 이인규님이 지난 글에서 이것저것 문제점이라고 갖다가 제시한 내용들은 다 풀려나갈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4. 그 외에 몇 가지 추가적인 문제들  

 1) 소위 10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위의 님의 질문들은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와 인격적으로 구별된 삼위가 각기 다른 삼위라는 전제가 정당해야 답변의 가치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상호내재 하시는 아버지와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각기 다른 분이라는 님의 삼신론 이단사상이 맞다고 볼 때 성립되는 질문입니다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와 저 하늘 보좌에 계신 아버지가 다른 분이라고 보는 님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이 땅에 오셨고(요8:16, 29), 부활 승천 후 하늘 보좌 우편에 게신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지금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십니다(롬8:10, 34). 그리고 이 분은 각기 다른 두 분이 아니고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이 점이 해결되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실 것입니다. 

 2) 분리와 독립의 차이 

 이인규님은 분리와 독립을 왜 상호내재와 연관 짓느냐고 항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 인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곡 상호내재의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님은 지금 계속해서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되심을 잃지 않은 상태로 상호 내재하신다는 지방교회측 주장을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고 계시고, 삼위의 관계 안에서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고 고집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님이 삼위의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를 주장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님이 이단적인 신관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할 사항이지 누가 사과할 문제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3)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에 대하여 

님은 엉뚱하게 로마서 1:4의 아들 하나님이 부활 후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을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억지 정죄와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님은 이런 말을 하실 때 잘 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말과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성을 분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통상 '예수님이 하나님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님처럼 예수님의 양성을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이다 라고 꼬아서 들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골1:15-18에 대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대해 우리도 님 이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추후 더 상세히 말할 필요가 있다면 그 때 하기로 하겠습니다. 

진리의변호와확증

님의 이런 엉뚱한 정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방교회의 다양한 이단성'이기는커녕 이미 그 모든 항목들에 대한 반박자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케케묵은 거짓 정죄들일 뿐입니다. 그 한가지 증거만 제시한다면 님의 피조물 운운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대한 반박의 글은 지금부터 20년 전에 이미 쓰여졌고 '진리변호와 확증'(한국복음서원) 122-128쪽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님은 자기 생각만이 항상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일을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신학교리는 성경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위 정통교리라고 알려진 것이라고 해도 성경본문을 왜곡시키거나 부인케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경본문을 기준으로 그 교리를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성경은 다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진리에 교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다만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기를 주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교리나 혹은 성경을 남을 부당하게 정죄 하는 도구로 가볍게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보존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05:00

삼위일체 토론은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

삼위일체는 복잡합니다. 그래서 똑 부러지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자세히 열거하자면, 첫째, 하나님 자신이 숨어 계십니다(사45:15). 둘째, 그리스도는 그러한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골2:2). 셋째, 사도신경 등에서 보듯이 성령님 (the Holy Spirit)에 대한 교리나 신조 상의 언급은 극히 짧고, 그에 대한 신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의는 아직도 미 완성 단계라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종 교리집이나 이단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이런 인터넷 상의 토론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꼭 토론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성경본문을 토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 한계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계시를 주사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겸손한 마음 자세가 요구됩니다(엡1:17, 마11:27). 

 이제 아래에서 스가랴 4장 10절과 계시록 5장 6절을 근거로 두 종류의 잘못된 삼위일체관을 바로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본문들 

슥4:10 -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일곱 눈이라(the eyes of the Jehovah(AsV), the eyes of the LORD (KJV), the eyes of Jehovah(Darby)). 

 계5:6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2.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합니다. 대신에 성령님을 하나의 능력으로 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아들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 요8:24 (예수님이 출3:14의 여호와 즉 ‘That I Am’(에고 에이미)이심). 2) 계1:8과 22:13-16의 비교(알파와 오메가=전능하신 하나님=예수). 3) 슥 4:10(여호와의 일곱 눈)과 계5:6 (어린양의 일곱 눈)의 비교를 통하여 충분히 예수님이 여호와이심이 입증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금도 열심히 여호와를 증거합니다. 그러나 거짓되게 증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 삼신론의 오류

삼신론은 간단히 말해서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님)를 ‘분리’시키는 이단 사상입니다. 양태론은 이와 반대로 삼위의 ‘구별’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위를 구별함에서 더 지나쳐 분리 독립시켜 생각하는 사실상의 삼신론적인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종성, 삼위일체

그러나 칼빈이 존경하는 교부인 어거스틴은 그런 삼위 분리 사상과 달리 “(세) 위격이 상호 내재한다”(이종성, 삼위일체, 269쪽) 또는 “하나님과 아들이 분할 할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분” 이라고 했습니다(위 책, 267쪽). 

 이런 삼위의 분리불가 원칙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삼신론적 표현들 중 하나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 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저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 안 계셨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한국 교계에서 정통과 이단을 상담하는 책임을 맡은 현 한기총 이단 상담소장 자신조차도 이런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상 사역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고 말씀하심으로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합니다. 

  4. 성경적 삼위일체론-구별되나 분리는 안 되는 세 위격께서 한 신격과 한 본성을 공유함 

 삼위 하나님(Trinity 또는 Triune God)에 대한 성경기록은 양면적입니다.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삼위의 존재 자체를, 후자는 그 기능의 방면을 가리킵니다.  

존재론적(내재적)삼위일체(Immanent Trinity)는 영원 전에 하나님만 계실 때 어떤 존재 형태로 계셨는지를 정의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한 신격(one Godhead)과 한 본성 (one Nature)을 공유한 세 위격들(three Persons)이 구별은 되시지만 분리되지는 않으신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경륜적(경세적)삼위일체(Economic Trinity)는 그러한 존재론적인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사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엡1:5), 그것을 성취 하시고, 또한 마침내 사람인 우리에게 그것을 적용 하시는 각 방면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 두 방면을 함께 말함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까지도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깊게 안 만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래 인용 본문들은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균형있게 이해하는데 작은 힌트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존재론적 삼위일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요14:11). 

  -경륜적 삼위일체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 :16) 

(만일 위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침례 받기 전에는 성령님은 예수님 안에 안 계셨다 라고 주장한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포함한 삼위 각자는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론적으로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십니다(요14:11). 이러한 양면성이 사람의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의 성경본문을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륜적/ 존재론적 삼위일체 –“나를 보내신 이가(경륜적 방면) 나와 함께 하시도다 (존재론적 방면).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 

  5. 결론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비결 중 하나는 성경이 삼위 중 어느 한 위격을 언급할 때, 그 위격만 분리하여 생각하지 말고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시는 다른 두 위격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8장 6절의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좋은 예입니다. 

 즉 아들의 성육신과 지상 사역시, 아버지는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셨다 고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이 땅 위의 아들 안에 상호 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들께서 승천하신 후 성부와 성자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위 계시록 5장 6절은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동일한 로마서 8장에서,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심을, 34절에서는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심을 말함으로 이런 관점이 성경적임을 재차 확증해 줍니다. 

그러나 한국 교계의 주류에 해당되는 개혁신학은 아들 자신이 아닌, '아들을 대리한 성령님'만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주장함으로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을 담기에는 그 그릇이 작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개혁신학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골1:26), 또는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아들 하나님 자신'(요일 5:12, 골3:4)을 인정 할수 없는 '신학적 구조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성도들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혼란스러워 하는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각주1) 위 '하나님의 일곱영'(계5:6)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글이 더 복잡해짐으로, 주님이 허락하시면 또 다른 기회를 빌려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00
성경말씀 

 (호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오늘의 만나

 
 이스라엘은 호세아서 전체에 걸쳐 여호와의 아내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다룰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데(출 4:22~23), 이는 이스라엘이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양자가 아닌 참 아들만이 자기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합니다. 호세아 11장 1절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위해 이스라엘과 연합하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분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을 지적합니다(마2:13~15).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과 같은 애정 어린 사랑이 아니라,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생명에 속한 사랑입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애정 어린 사랑이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은 생명에 속한 사랑입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남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아내로서 사랑하시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4. 17:00
성경말씀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카이 싸이린 자매는 6주 정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도 그녀와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무척 가슴 아파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이 싸이린 자매여, 당신은 계속해서 밖의 느낌  안에서 나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난 6주 동안 나는 오히려 당신 안에서 당신을 기다려왔답니다. 당신의 영 안의 내실로 돌이켜 마음 속에서 나를 찾아 보십시오, 내가 그곳에 있습니다."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