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3 13:40

재평가 된 지방 교회 소개(머리말)

머리말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그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런 분이심 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반대하고 거절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특히 이단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성경 말씀과 건전한 신학이 기 준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면에 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단 감별 사들이 임의대로 이단을 결정하는 일들이 자행되어왔다. 예를 들어 예장 통합 측 총회에 제출한 C 목사의“ 지방 교회 연구보고서”(1991년)는 그 내용이 네 쪽에 불과하다. 이 짧은 보고서를 근거로 이단을 결정지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저명한 이단 변증 기관인 CRI는 지방 교회에 대해 6년 간 연구하여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CRI 저널 잡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을 다 조사했으며, 각 나라에 있는 지방 교회들을 직접 방문하 여 사람들을 만났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다. 그들은 자신 들의 이익이나 기존의 전통이나 사적인 판단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건전한 신학에 기초하여 조사했다. 그 결과 CRI는 과거의 평 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얼마나 신 뢰할만하고 수준 높은 연구기관인가? 한국에서는“ 한 번 이단으로 정죄되면, 영원한 이단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 번 이단의 누명을 쓰게 되면 벗 기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일단 이단감별사들의 표적이 되어 교계 신문에 오르면, 실제 이단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변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인격적 인 살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이런 식으로 매도되었기 때문에“ 재평가 된 지방 교회”를 출 판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두에서 지방 교회(local Church)가 어떻게 해서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되었는지 원인과 과정을 설명했고, 이어서 C 목사와의 진리토론, 그리고 미국에서 지방 교회들을 재평가한 책들(우리가 틀렸었다, 복음의 확증, 지방 교회들)을 소개했다. 또한 관련 참고자료들을 부록으로 첨부했다. 우리는 지방 교회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목회자, 신학자, 교수, 신학생들, 성도들)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 안에 서 공정하게 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2011년 7월 15일 DCP Korea 편집부

- 재평가 된 지방 교회 머리말 -


재평가 된 지방 교회
국내도서
저자 : DCP Korea 편집부
출판 : DCPKorea(디씨피코리아)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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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3 13:35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 6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저기요. 제 친구 한명이 지방교회를 다닙니다. 한번은 그 친구와 함께 지방교회 나가는 분들과 식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기도를 한 사람만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하더라구요. 좀 생소했지만, 그것은 이해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를 안 붙이는 것은 왜 그래요?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기도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어떤 때는 붙이고, 어떤 때는 생략하기도 합니다.


- 어떤 때는 붙이고, 어떤 때는 안 한다니요? 성경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되어 있지 않나요? 
아 예,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 융통성있게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안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만 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영의 인도를 따라서 융통성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언급한 성경구절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후문맥을 잘 보면 기도할 때 항상 그런 말을 끝에 붙이라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통교단에 속한 곳은 거의 다 기도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마치지 않나요? 가능하면 이질적으로 보이기보다는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같은데요.
 맞습니다. 저희도 핵심진리에 반하거나 죄 짓는 실행만 아니라면 덕이 되는 쪽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성경 문맥의 의도와 다르게 실행할 경우, 적극 동조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더군요.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붙이는 것이 해당 성경 문맥의 의도와는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라>는 취지의 말씀은 요한복음14:13-14, 15:16, 16:23-24 에 있습니다. 이 본문의 문맥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조금 후에 살펴보기로 하고요, 우선 기도시 맨 끝에 그런 ‘후렴구’를 꼭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글에 검색을 해 보니 의견이 나뉘더군요. 어떤 분은 그렇게 안하면 기도에 효력이 없다는 식으로 강하게 주장 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꼭 기도할 때마다 그 ‘후렴구’를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융통성을 두는 쪽도 있었습니다.

-정통교회 나가는 분들 중에 꼭 안 붙여도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예, 두 가지 예를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한 분은 고신대 대학원 교수로 계신 변종길 교수님입니다. 이 분이 <크리스챤 Q&A >라는 곳에서 답변하신 것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안 했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성급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칼빈의 기도에 보면 이런 문장이 없는 것이 많습니다.” http://www.christianqna.org/bbs/board.php?bo_table=z3_3&wr_id=829
다음은 이광호 목사님 답변 중 일부인용 입니다.
“…기도 마지막에 그런 후렴구로 마무리하지만 사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후렴구를 붙이지 않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마음대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이거나 도용하는 것이 되며, 지나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http://www.siloam-church.org/lecture/sesin/sesin195.htm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기도 끝에 그런 후렴구를 붙이는 것만 듣고 자라와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줄 알았지 솔직히 이 문제를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일단 정통 교회 신학자가 심지어 칼빈 기도문에도 그런 후렴구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렇게 안 하면 이단 뭐 이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네요.
 맞습니다. 사실 성경에 쓰여진 기도문들에도 그런 후렴구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선 주기도문도 그냥 ‘아멘’으로 끝납니다(마6장). 그리고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일심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는 심지어 ‘아멘’도 없습니다(24-30절). 또한 사도 바울의 경우도 에베소서에서 두 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장의 기도(17-19절)나 3장의 기도(14-21절)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없이 그냥 아멘으로 끝납니다.

- 그런데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잘못된 기도라고 하는 목사님도 있더라구요.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있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만일 그런 논리라면 위에서 소개드린 성경본문들도 문제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할 때, 누구를 생각하나요? 삼위의 1격만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로레인 뵈트너라고요 개혁신학을 공부한 분들은 다 아는 정통 신학자는,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성부만 배타적으로 가리키지 않고 성자, 성령이 포함된 <삼일 하나님>(Triune God) 전체를 가리킨다 고 말합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하니까 이 분이 한 말의 영어원문을 직접 소개해 보겠습니다.
“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 (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107쪽)
사실은 이것이 정통 삼위일체입니다. 왜냐하면 삼위 하나님은 셋으로 구별되시지만 결코 분리된 분이 아니니까요. 한국교계 내에는 무의식중에 세 하나님들을 믿는 분들이 계십니다. 
 
- 그냥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뭐 삼위일체도 나오고 좀 복잡하게 되돌아가는 것같아 좀 그렇긴한데…좀 정리를 해야 할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기도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를 꼭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그 구절의 전후 문맥이 의미하는 내용이 기도에 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뭐 이런 것인가요?
 맞습니다.

-그러면 ‘내 이름 안에서’라는 문맥이 뭘 의미하나요?
 우선 요14:13절만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또 여러분이 내 이름 안에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위 말씀에서 ‘내 이름 안에서’라는 말이 중요한데, 이 말은 ‘주님의 인격(이름)과 연합된 상태’에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18:20의 ‘두세사람이 네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는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위 ‘이름 안에(안으로)’에 대한 회복역 성경 각주 취지는 집회에 올 때는 ‘우리를 점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문제들과 일들에서” (나와서) “그분의 풍성한 임재를 누리는 상태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어렵지요? 쉽게 말해서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생각은 다른 것에 빠져있지 말고 거기서 나와서 모임 안에 임재하시는 주님과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사실 위 요14:13만 봐도 나의 필요, 나의 선호와 갈망을 이것 저것 구한 후 끝에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첫째 “다 이뤄 지지도 않고”, 둘째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지도 않음”으로 위 본문에 따른 기도가 아닙니다. 대신에 주님의 뜻과 주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이 원하는 것을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사시는 주님의 인격과 연합되어 마치 예수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직접 기도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도 되고 아버지 하나님도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런 기도를 하려면 쉽지는 않겠네요. 예수님과 하나되는 상태라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맞춰 기도하라는 말씀이잖아요.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 저희의 기도생활이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늘 배우고 있습니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저도 많이 배웠네요. 나중에 위에서 소개해 주신 본문들을 좀 차분히 살펴볼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튼 저의 질문에 성심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사실 후렴구를 붙이고 안 붙이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 진리 자체는 깊은 연합을 전제한 것이라 신약의 핵심진리에 해당될 수 있지요. 사실 요한복음 14-16장은 그런 연합사상을 담고 있어서 겉보기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저도 사실 이런 교제가 쉽지 않은데, 무익한 변론으로 빠지지 않고 좋은 대화로 마무리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또 뵙지요. 안녕히 가십시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3 13:00

6년여 재연구 끝에 실수 인정… “믿는 이들의 정통단체” 평가

▲지방 교회에 대한 과거 비판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CRI의 저널 특집판.

‘지방 교회(local Church)’ 운동에 대해 가장 처음 비판을 제기해 이단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미국의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이하 CRI)가, 무려 6년여에 걸친 재연구 끝에 “우리가 틀렸었다(We Were Wrong)”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권위있는 기독교 연구단체인 CRI가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잘못됐었다고 전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 교회 운동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역동적인 운동 중 하나이며,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중국인 워치만 니에 의해 시작되고 위트니스 리에 의해 계승·발전된 것으로, 목사인 복수의 장로들,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의 폐지, 주님의 상을 중심으로 한 예배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양태론(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각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태로 나타난다는 이론)을 가르친다는 의혹을 CRI가 1970년대 중반 지적한 이래 미국에서 이단정죄를 받아왔다. 한국에서도 예장 통합측이 제76차 총회(1991)에서 경북노회가 제출한 “지방 교회(회복 교회)의 정체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동 교회의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에 대하여 연구한 후, “위트니스 리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어 제77차 총회에 “추가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어 채택됐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의 시발점이 됐던 CRI가 자신들의 과거 연구 내용을 뒤집고 반성하면서 미국에서 지방 교회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CRI는 최근 자신들이 발행하는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 특집판에서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지면 전체를 할애해 지방 교회 이단논쟁에 있어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방 교회들은 신약 기독교의 정통적인 교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재연구에는 과거 지방 교회에 대해 “정도를 벗어난 그리스도인 단체”라고 지적했었던 연구원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했다. CRI의 대표인 행크 해네그래프는 2003년 지방 교회측 대표들과 가진 만남에서 자신이 지방 교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재평가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그 만남에서 지방 교회들이 부인하는 것으로 알아왔던 바로 그 교리들을 그들이 인정하는 감동적인 말을 듣게 됐다”고 회고했다. 해네그래프는 “지방 교회 대표들은 영원히 구분되는 세 위격으로 계시되신 한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 사람은 본체론적으로 결코 하나님의 신격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그들은 ‘단지 교회(only the church)’라고 말한 것을 ‘유일한 교회(the only church)’로 오해받아 반대받았던 사실을 하나하나 증언했다”고 했다. 

 이에 CRI는 지방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대만, 한국, 영국에서도 이뤄졌다. 이 연구에는 수백권의 책과 논문과 교회 문서와 음성자료와 영상물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가 포함됐고, 법정 자료들까지도 참고했다. 그리고 해네그래프 대표는 “우리가 한 근본적인 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틀렸었다!’라는 말로 압축된다”고 했다. 지방 교회에 대한 CRI의 최초 연구와 이번 재연구에 참여한 엘리옷 밀러(크리스천 리서치 저널 편집장)는 “우리가 전에 그들을 ‘정도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 단체’라고 평가했던 것은 우리가 그들을 올바르게 평가한 것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며 “비록 우리가 여기 서방에서 익숙하게 된 것들과는 다르지만, 이들(지방 교회)은 확실히 믿는 이들의 정통 단체”라고 강조했다. 밀러 편집장은 물론 지방 교회에 비판받을 만한 요소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지방 교회들이 인간 본성에 관해 삼분설을 취하고 그리스도인의생활에 대해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보다는 더 신비스럽게 접근하는 것 ▲세대주의를 포함한 그들의 해석학적인 방법,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보다 예표론에 대해 더 사변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밀러 편집장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의 이러한 방면 중 정통 교리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지방 교회에 대한 CRI의 이번 재평가에 대해 미국 교계 일각에서는 강한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CRI의 재정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행크 해너그래프 대표는 “이러한 소란 가운데서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의 사역은 인기 경쟁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다”며 “우리의 사역은 강대상의 크기나 정치적인 결탁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한다. 왜냐하면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어떤 대가가 든다 할지라도, 중국과 전 세계에서 박해당한 교회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틀렸었다’라는 말보다 더 하기 힘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냐하면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사역으로서, 기꺼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밝혔다.  

앞서 세계적 권위의 신학 명문 풀러신학교 역시 지방 교회에 대해 이단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풀러신학교의 리처드 마우 총장, 하워드 로웬 신학부 학장, 베리마티 카케년 조직신학 교수가 참여한 위트니스 리 연구프로젝트(2년)에서 내린 결론은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믿는 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 쉽고도 편안하게 받아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방 교회에 대한 이단 논쟁이 시작됐던 미국에서 잇따라 이같은 재평가가 이뤄짐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내에 위트니(지방 교회)에 대한 연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887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05.03 10:11

당신은 하나님과 화목하셨습니까?


성경말씀

(고후5:19~20)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고, 그들의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화목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권면하시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은 세상이었고, 20절에서 이미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또 더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믿는이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하여 두 단계가 요구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리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죄인들을 죄에서부터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목적을 위하여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객관적인 방면입니다. 이 방면에서 그분은, 하나님에 의해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우리의 죄들을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천연적인 생명으로 사는 믿는이들을 육체로부터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가 부활 생명 안에서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주관적인 방면입니다. 이 방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어 하나님께 심판받고 끝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죽음의 두 방면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택하신 백성을 완전히 하나님과 화목시켰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