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7:00
요14: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결론은 하나의 건축물인 새 예루살렘이다. 이 건축불은 신성과 인성의 섞임과 연합니다. 요한계시록21장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가 이것을 입증해 준다. ......하나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위한 것이며, 성전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은 구속된 성도들이 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거처임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이 건축물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문들은 진주들로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열두기초석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새예루실렘이 본질과 중심과 전부가 되시는 삼일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된백성으로 이루어진 구성체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말씀누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말씀  (0) 2018.05.13
오늘의 말씀  (0) 2018.05.13
오늘의 누림  (0) 2018.05.13
오늘의 누림  (0) 2018.05.13
오늘의누림  (0) 2018.05.13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55
성경말씀 

 (눅15:22下)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오늘의 만나

 
 아버지는 또한 노예들에게 아들의 손에 반지를 끼우라고 하십니다(눅15:22). 이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에 대한 그림입니다(엡1:13, 4:30). 반지는 성령을 가리키며, 우리가 아버지의 소유라는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들의 발에 신기운 신발은 에베소서 6장 15절에서 언급된 신발과는 다릅니다. 에베소서에서의 신발은 전쟁에서 견디고 버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5장에서의 신발은 행하기 위한 것, 이 땅과의 접촉으로부터 오는 먼지와 오물과 진흙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50
성경말씀  

(눅15:22上)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노예들에게 ‘어서 그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 입히고, 

 오늘의 말씀

 
 탕자는 모든 방면에서 가련한 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 왔습니다.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자백하지만 아버지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노예들에게 ‘그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라고 하십니다. ‘그 옷’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면 입을 수 있도록 미리 특별히 준비해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그 옷을 입음으로 외적인 면에서는 그의 아버지와 어울리는 의롭다 함을 받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화려한 집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 제일 좋은 옷은 의이신 그리스도를 표징합니다. 그러나 옷은 단지 객관적인 의를 대표하며, 외적인 가림만을 줄 수 있을 뿐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이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방교회] 살진 송아지  (0) 2018.05.13
[지방교회] 반지와 신  (0) 2018.05.13
[지방교회] 생명나무의 의미  (0) 2018.05.13
[지방교회] 그분은 왕이 아닌 떡이심  (0) 2018.05.13
[지방교회] 가장 높은 위임  (0) 2018.05.13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45
성경말씀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창세기에 있던 생명나무가 왜 성경을 종결하는 책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그분의 의도가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의 불순종은 일시적인 방해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갈망은 그분의 피조물이 그분을 음식으로 받아들여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상은 사람이 점잖게 행동하거나 그분을 창조자로 공경하여 그에 맞는 경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 나무는 거기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을 너희 안에 취하여 들여 이 생명으로 인하여 살라”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계셨습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요6:57). 우리는 자신을 열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생명나무에 참예합니다. 그분은 심지어 새예루살렘에서도 우리의 양식과 음료이십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