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55
성경말씀 

 (수7: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오늘의 만나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믿는 이들의 첫 번째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일종의 습관이라 할 수 있고 주일에 집회에 가는 것 또한 습관이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믿는 이들이 더욱 갖추어야 할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믿는 이들은 이런 습관을 양성시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은 지 수년이 되었는데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축복과 은혜를 누린 적이 한 번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가련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얻고자 한다면 일찍 일어나는 공과를 잘 배워야 합니다. 만일 많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배운다면 교회는 전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 형제가 빛을 얻을 때 교회 전체가 빛을 얻게 됩니다. 한사람이라도 빛을 조금 더 얻는다면 교회가 전체적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교회가 빈곤한 이유는 머리로부터 공급을 받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만일 개개인 성도가 머리로부터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 얻은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모두 합하면 매우 풍성하게 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50
성경말씀 

 (고후6:17)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분별되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하셨고 

 오늘의 만나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모두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세상 사람이 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각각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정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당신은 끝난 것입니다. 당신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도 이런 일을 하느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끝난 것입니다. 가령 당신이 어떤 장소에서 이방인에게 발견되어 그가 당신에게 “그리스도인도 이런 장소에 오십니까?”라고 말한다 합시다. 물론 이방인들은 많은 장소에 갑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런 곳에 간다면 그는 당신도 갈 수 있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45
성경말씀 

 (계3:8) 나는 너의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을 너의 앞에 두었다. 왜냐하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만나

 
 요한계시록 3장 8절에서 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25년 이후 ‘형제들’은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감리교에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는 “나는 감리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장로교에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나는 장로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침례교에 다니는 사람은 “나는 침례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외의 많은 이름을 붙여 자기 자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하나의 이름만으로 자기를 부릅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기도하고’, ‘내 이름으로 모이라,(요16:26, 마18:20)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이름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휘트필드(Whitefield)는 말했습니다. “모든 이름은 다 버려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여지기를 원합니다.” ’형제들‘은 일어나서 바로 이와 같이 했습니다. 주님의 예언과 같이 그들은 주의 이름을 가장 존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들의 중심이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40
성경말씀  

(롬12:3) 나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의 종점은 교회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그리스도의 몸에 이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칩니다. 이 때문에 십자가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사람을 약함의 경지로 이끌어가고 할 수 없음의 경지로 끌고 가서 사람이 옛 창조에 대해 철저하게 실망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사람은 실제적으로 옛 창조에서 벗어나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다 정죄받은 것이며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끝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새 창조이며, 옛 창조와 무관합니다. 우리가 만약 교회의 일에 대해 여전히 사람의 이전의 방법과 수단과 기능 등을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아주 좋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옛 창조의 사물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또한 절대로 옛 창조의 사물이 새 창조 안에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옛 창조 안의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35
성경말씀  

(고전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이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와 거룩하게 함과 구속이 되셨습니다.  

오늘의 만나 

당신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안에 있는 것은 여전히 더러움과 사악함과 거룩하지 않음과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그리스도 안의 모든 것은 당신 안에 통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와 끊어질 때 모든 더러움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청결한 파이프를 연결하면 깨끗한 물을 얻게 되고, 더러운 파이프를 연결하면 더러운 물을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으므로 적어도 오늘이 이전보다 좋으며 어찌하든지 이전보다는 낫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이후 당신의 옛 아담이 점점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이러한 일은 없으며 영원히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은 아담 안에서 여전히 더러운 사람입니다. 당신을 이전과 다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이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30
성경말씀  

(요일3:19) 이것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평온해질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요한일서 3장 19절의 하반절에서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구를 삽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신성한 실제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항의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조용한 마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과 마음이 주 앞에 있다는 필수적인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평온한 마음을 갖기 위해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기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 안에는 가끔 기쁨이 없습니까?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평강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강 대신 소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 살 때 우리는 진리 안에, 즉 실재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을 굳세고 화해되고 확신되게 할 수 있으며 평온케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기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25
성경말씀 

 (삼상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오늘의 만나

 
 다윗이 매끄러운 돌을 고른 이유는 그러한 돌의 힘은 균형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은 다윗의 손에 있지만 다윗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매끄러운 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매끄러운 돌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날카롭고 예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교회 가운데 두시고 한 차례의 풍랑으로 벽에 부딪혀 깎이게 하시는데, 삼 년, 오 년이 지난 후에는 당신과 나는 모두 매끄럽게 됩니다. 그러나 깎일 때 얼마나 아픈지요! 그러나 깎이지 않으면 어떻게 매끄러워질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계속하여 어떤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이 한 무리의 사람이 당신을 깎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매끄러워질 수 있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오해하여 행하고, 십자가가 임하면 계속하여 벗어나려고 하며 자유롭기를 고대합니다. 이렇게 하면 비록 고통은 감소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공과는 배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십자가를 주신 것은, 당신이 환경 가운데서 그분의 주권적인 권위에 순종하고 완전히 순복하여 저항하지 않고 기꺼이 제한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20
성경말씀 

 (마5: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비난하고 박해하고 거짓말로 여러분을 반대하여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은 사람의 천연적인 성실과 고상함을 볼 때 그것들을 감상하고 존경하며 신임을 표합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은 우리 안에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즉 우리가 참여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게 되면 즉시 그것에 대해 적의(敵意)를 갖습니다. 세상에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열매를 보여 주면 세상은 칭찬을 할 것이지만, 세상에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보여 주면 세상은 극히 반대할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세상이 마음대로 발전하도록 놓아둔다면, 그것은 결코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산출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성실, 그리스도인의 예절,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리스도인을 산출하기를 갈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의 문명은 세상으로부터 감상과 존경을 얻었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용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 흡수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명, 곧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세상은 이 생명을 만나면 틀림없이 이 생명을 반대할 것이며 그것을 사지(死地)에 놓으려 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15
성경말씀  

(요3: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여기에 한 가지 엄중한 문제가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영적인 일에서 추구하고 인식하고 얻는 것이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만일 그리스도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실재를 만지는 것이며, 만일 다른 것이라면 비록 우리가 볼 때는 매우 좋고 가치가 있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만지는 것은 여전히 공허하고 무익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영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만지려면 우리는 반드시 영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분 이외에 다른 것은 머리로 만질 수 있으나 그분 자신을 만지려면 반드시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그분 이외의 것을 만지려면 사람의 열심과 총명만 있으면 족하지만 그분 자신을 만지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앙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10
성경말씀 

 (고전12:25) 이것이 몸 안에서 분열이 없이 오히려 지체들이 서로를 동일하게 돌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의 몸을 발견한 사람, 곧 몸의 느낌을 가진 사람은 분쟁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자녀를 나누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의 속의 느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를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몸의 사랑은 자연적인 것이나 몸의 분쟁은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데 한쪽 손이 다른 쪽 손이 나쁘다고 그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두 손은 나뉠 수 없으며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종파(宗派)를 벗어났다고 하며 자기가 그리스도의 몸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종파를 벗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을 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본 사람은 반드시 종파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종파를 벗어난 사람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종파를 벗어났으나 그들 자신이 또 하나의 종파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가 종파를 벗어난 것은 자기의 ‘특수함’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모든 지체가 다 우리의 사랑스런 형제라는 것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분파(分派)적인 사상, 분쟁하는 일체의 태도, 하나님의 자녀를 분열시키는 일체의 행동,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열시키는 일체의 이념은 다 그리스도의 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