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5. 05:00

갓멘에세이 86 - 목욕탕은 절대 함께 가지 마라 - 지방교회들 에세이

목욕탕은 절대 함께 가지 마라 

목사님과 성도들은 가깝고도 먼 사이이어야 하는가 봅니다. 

너무 가까우면 목사 알기를 우습게 여기고 같이 놀자고 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친밀감이 없으니 정작 어려울 때는 그냥 각자 실익을 따라 처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자와 양의 사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괴리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경험에 의하면, 함께 축구를 해도 좋고 등산을 함께 가도 좋지만 목욕탕만은 함께 안 가는 것이 좋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성도들과 사이를 적당히 유지할 수 있는 이런 저런 노우 하우가 알음알음 전수되나 봅니다. 

여기서 웬 목사 처신 비법을 거론하나 싶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5.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4)- 주님이 생명주는 영이시라구요?

-지방 교회들 서적들을 보거나 거기 사람들을 만나 보면 '생명주는 영'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 성경에 있는 말인가요? 


, 당연히 성경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하반절에 보면,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요? 개역성경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가만 있자, 고전 15장이라고 했지요? 45절이고..."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되어 있는데요? 

 우선, 첫 사람 아담은 영어로 'living soul' 이니까 '산 혼' 이 맞구요, '살려주는 영'도 'life- giving Spirit ' 이니까 '생명 주는 영'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영어 회복 역 말고 권위 있는 영어 성경 중에 'life-giving Spirit'이라고 번역한 것이 있는지요?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 그대로 직역한 핸드릭슨사의 'A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 (Jay P. Green 번역)도 'a life-giving Spirit' 이라고 되어 있구요(932쪽), 참고로 NIV 도 'life-giving spiri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 좋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주는 영'은 한 마디로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신가요? 

 생명주는 영은 한 마디로 '부활 후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후 예수님을 성령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삼위는 본체적으로 영원토록 구별되심으로 부활했다고 해서 2격이 3격이 될 수는 없겠지요. 

  -님의 논리대로라면 바울은 '부활 전 예수님'이 '부활 후 예수님'이 되셨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의하시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방면에서는 부활 전 이건 후이건 전혀 차이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십니다. 
 부활 전 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은 주로 그분의 사람 방면에서 그렇습니다. 즉 그분의 인성은 부활 후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으로 변형되신 것입니다(고전 15:44, 빌3:21). 
 더 쉽게 말한다면, 부활 후 그분의 인성은 보이다가 갑자기 안 보이는 분(눅24:31), 문이 다 닫혀 있었는데도 불쑥 들어오실 수 있는 분(요20:26)이 되신 것입니다. 

  -그거야 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구태여 강조하여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주와 생명으로 영접한 분이 바로 이 부활하신 예수님 즉 생명주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고전 6:17은 '주님과 연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영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한 주님은 바로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와 연합되신 <부활하신 예수님> 즉 '생명주는 영'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갈 2:20에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성령이 내 안에 사신다고 하지 않고)라고 말할 수 있었지요. 

  -성령님이 주 예수님을 '대리'해서 우리 안에 계시니까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웠는데요?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 하늘에 남아 있게 하시고 우리 사람 안에는 성령만 계시게 하는 신학구조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저 하늘에서 중보 기도하실 뿐 아니라(롬8:34) 동시에 생명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심(롬8:10, 골3:4, 1:27, 갈2:20)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양면 모두를 믿는 것이 더 균형잡힌 믿음이겠지요. 

  -'그영'과 '생명주는 영' 그리고 '성령'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우선 요7:39은 그 당시 기준으로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고 말함으로, 여기서의 '그영'은 '영원 전부터 계시는 성령님'과는 구별된 개념입니다. 
또한 이 본문에서 말하는 '그영'은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신 시기인 부활을 깃점으로 그후에 존재하셨다는 점에서 고전 15장 45절의 '생명주는 영'과 동의어로 볼수 있습니다. 

  -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안 계신 것이라기 보다는 믿는 이들 안에 (저희에게) 안 계신다는 말이 아닌가요? 

언뜻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 성경의 '저희에게' (영어성경의 givin)는 원문에는 없고 후대에 임의로 써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이탤릭체로 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헬라어 원문 그대로 읽으면 'the Spirit was not yet, 이고 그 이유는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입니다. 즉 그영 자체가 예수님이 영광을 받는 시기인 부활 전까지는 안 계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생명주는 영 즉 아들하나님과 그 안에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 하시는 아버지와 성령님 그리고 아들이 성육신 때 입으셨던 인성까지 영화되어 포함된 그영이 예수님 부활 이후에 비로소 계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고전 15:45 말고 그런 그영을 말하는 구절이 또 있나요? 한 곳만 말해 줄수 있나요? 

계시록 22장 17절입니다. 개역성경은 '성령과 신부'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은 'the Spirit and the bride'입니다. 
우선 여기서 언급된 영은 'the Holy Spirit' 즉 성령이 아니라 the Sprit 즉'그영'입니다. 전후 문맥을 보더라도 그렇고 신부와 함께 언급된 것을 보아도 여기서의 '그영'은 신랑이신 어린양 즉 부활하신 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영은 다만 주 예수님 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성령님이 존재론적으로 상호내주 하시는 아들 하나님 그러니까 삼일 하나님 전체이십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에서는 어느 한 위격을 말할 때는 다른 두 위격이 늘 함께 하신다는 점입니다. 세 위격은 구별되나 분리되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끝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지방)교회 측에서는 주님을 성령님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까?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할 때는 우리도 똑같이 성경을 따라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후 3:17은 '주는 영이시니' 라고 말합니다. 명망있는 신학자인 헨리 알포드는 앞의 '주'는 그리스도를, 뒤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the Lord,' as here spoken of, 'Christ', 'is the Spirit' is identical with the Holy Sprit: not personally nor essentially)(Alford's Greek Testament, 648쪽)

그런데 이것은 본체론적으로 주님이 성령이라는 말이 아니지요.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에서 본 기능에 있어서 주님은 성령과 동일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국내에서는 양태론으로 오해를 했지만, 합동 신학원의 박형용 박사나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개핀 교수는 경륜적인 방면 즉 기능에 있어서 위 본문은 주님= 성령을 말한다고 제대로 가르칩니다(차영배, 성령론-구원론 부교재, 49쪽). 


  -대화를 할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예, 그렇지요.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바로 아는 비결은 어떤 신학체계 안에 본문 말씀을 담으려 하지 말고, 그냥 성경 말씀 그대로를 다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전15:45, 요7:39, 고전6:17, 골1:27, 3:4, 요일 5:11-12, 고후3:17 그리고 골 2:9, 요14:10-11, 롬8:34, 10 같은 말씀들이 그것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위 본문들을 차분히 묵상하면서 주님께 빛 비춰 주시기를 간구하면 주님이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깊은 진리는 머리로 알기 이전에 주님이 우리 마음을 열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 주셔야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무튼 질문들에 대해서 성의있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더 교제하기로 하지요.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4. 05:00

찬송가 531 - I have a Friend whose faithful love - 지방교회들 찬송가
New Zealand Saints (Each One Has)


1. I have a Friend, whose faith ful love Is more than all the world to me:
’Tis high er than the heights above, And deeper than the sound less sea;
So old, so new, So strong, so true;
Before the earth received its frame, He loved me Blessed be His name!

2. He held the highest place above, Adored by all the sons of flame,
Yet such His self-denying love, He laid aside His crown and came
To seek the lost, And at the cost
Of heavenly rank and earthly fame He sought me—Blessed be His name!

3. It was a lonely path He trod,
From every human soul apart; Known only to Himself and God
Was all the grief that filled His heart, Yet from the track He turned not back,
Till where I lay in want and shame, He found me—Blessed be His name!

4. Then dawned at last that day of dread, When desolate, yet undismayed,
With wearied frame and thorn-crowned head, He, God-forsaken, man-betrayed,
Was then made sin On Calvary,
And, dying there in grief and shame, He saved me—Blessed be His name!

5. Long as I live my song shall tell The wonders of His dying love;
And when at last I go to dwell With Him His sovereign grace to prove,
My joy shall be His face to see,
And bowing there with loud acclaim I’ll praise Him—Blessed be His name


1. 기묘하신 나의 구주 비할 데 없는 큰 사랑 바다보다도 더 깊고 하늘보다도 더 높네
새롭고도 오랜 사랑 언제나 어디서든지 참된 주 그를 찬양해

2. 존귀한 곳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셔 잃은 양들 찾으려고 영광 버리고 오셨네
하늘의 복 다 버리고 견고한 그 사랑으로 내 주님 나를 찾았네

3. 외로운 길 가신 주님 동정하는 자 없었네 마음 같이하는 자도 동반자도 없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서 나아가신 주님 이제 내 안에 들어오셨네

4. 사람에게 팔린 그 날 사람들의 고소받고 굴욕과 고통 속에서 가시 면류관 쓰고서
채찍 맞으며 골고다 홀로 나 위해 오르신 내 주님 나를 구했네

5. 죽기까지 나는 그를 그 사랑을 간증하리 이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그 사랑
그의 얼굴 친히 뵈올 그날 올 때까지 나는 주님을 찬양 하리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4. 05:00

창세기 이만나 1 – 그릇으로 창조된 사람 - 지방교회들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4.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3) - 성령보다 그리스도를 많이 강조한다면서요?

- 지방교회 측이 믿는 그리스도는 한 마디로 누구십니까? 


 지방교회측 성도들이 믿는 그리스도라 음...한 마디로 말자면,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하나님, 온전하신 사람' 즉 하나님-사람 (God-man)이십니다. 

  -그쪽에서 나온 책에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근거가 있나요? 꼭 이런 식으로 복잡한 표현들을 써야 하는지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The All Inclusive Christ)라는 말은 사실은 책 제목입니다. 신명기 8장의 단 몇 구절 내용을 가지고 책 한 권을 쓴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그리스도로 보고, 그 땅의 젖과 꿀을 포함한 다양한 소산물들은 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본 것입니다. 신약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라고 한 골로새서 3장 11절, 그리고...골로새서2장 16-17절의 '먹는 것, 마시는 것, ....안식일 등은 다 그림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도 근거 구절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그리스도는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체이시다' 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귀측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신학이론이 있나요? (지방)교회 측은 체계적인 신학이 없다고 많이들 알고 있던데... 

저희도 '그리스도'(위트니스 리, 한국 복음서원)라는 단행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언급한 거의 모든 구절들을 성경에서 찾아 내어 그 본문의 의미들을 해설한 것이지요. 약 700 여 쪽 되는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목차를 보면 '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 '역사'(work)를 두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이라 함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주시다 뭐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구주'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호칭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이 그분을 지칭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분은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골2:2).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도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계4:5). '교회의 머리'(골1:18), '처음과 마지막'(계2:8)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친히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계22:13), 또는(나는...이다' (I Am, ego imi)라고 소개한 적도 있으십니다(요8:24). 이런 모든 명칭들의 성경근거와 의미를 '그리스도'라는 위 책이 설명하고 있지요. 

  -아, 그래요. (지방)교회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심으로 구속을 이루신 것을 믿으시나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이런 구속의 역사는 물론 예수님의 성육신, 인생을 사심, 죽음, 부활, 승천, 사람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하심, 혼을 변화시킴, 몸을 변형되게 하심 등도 그분의 일하심의 내용이요 결과라고 믿습니다. 

  -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좀 물어보겠습니다. 보통 기성교회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많이 이야기 하고 성령 충만 받는 것을 사모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방교회 책으로 보거나 그쪽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성령보다는 그리스도를 많이 강조하는 것 같던데요. 

 매우 관찰력이 뛰어나신 것같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같은 (지방)교회 주축 성경교사들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약 사역의 성취를 강조하다보니 그런 면이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되심,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거처를 정하심, 그리스도의 충만인 교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감,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처럼 우리의 낮은 몸도 변형됨.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됨 등의 신약의 핵심진리는 다 그리스도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성령님의 역사를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는 개역성경이 '성령'이라고 번역한 구절들의 상당부분이 꼭 제 3격 성령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 또는 영이신 하나님 자신 또는 심지어 사람의 영(또는 연합된 영)을 가리키는 곳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주는 영'과 그리스도는 어떤 관계인가요? 이 점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것같던데요. 

예. 안 그래도 이 주제는 별도로 다루려고 생각합니다만 우선 생명주는 영이라는 말은 고린도전서 15장 45절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에 근거한 말이고요. 그 의미는 '마지막 아담'은 부활 전 예수님을, '생명주는 영'은 부활 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부활 전 예수님, 부활 후 예수님이라구요? 예수님은 부활 전이든 후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 아닌가요?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라고 성경이 말하지 않던가요? 

예 맞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사람이시다 라고 서두에 말했던 것 생각나세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방면에서는 영원토록 변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사람이신 방면에서는 부활 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부활 후에는 문을 닫고 있어도 들어 가실 수 있고, 사람의 눈에 보이셨다가 갑자기 안 보이실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차이가 바로 마지막 아담과 생명주는 영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다른 곳에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잠시 후 다시 뵙지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3. 05:00

찬송가 530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 - 지방교회들 찬송가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 할렐루야!
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린 그와 연합 되었네.
포도나무와 가지가 생명안에 하나 이듯이
부활하신 주와 하나 됐네! 영안에서 주와 하나 되었네! 

He who is joined to the Lord is One spirit! Hallelujah!
This is our organic union with the Lord
through believing into Him.
It is like the branches abiding in the vine
in and of the life, the divine life.
Such a union with The resurrected Lord
can only be in our spirit!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3. 05:00

말씀과각주 317 - 로마서 8장 13절 - 지방교회들 말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3. 05:00

지체들의 누림글 91 - 떡 세 개 - 지방교회들 누림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3.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2)- 왜 하필 삼일 하나님이라고 하나요?

-지방교회 측 성도들과 달리 일반적으로는 삼위일체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지방교회 성도들은 삼위일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삼일 하나님' 또는 '삼일성'이라고 하는지요?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보통 영어권에서도 '삼위일체'(Trinity)와 '삼일하나님'(Triune God)이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어요. 즉 '삼일 하나님'이란 말을 (지방)교회들만 쓰는 표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혹시 미심쩍으시면 구글 검색 같은 곳에 'Triune God'을 한번 쳐넣어 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아니 그럴 것 없이 제가 검색을 한 결과를 보여 드릴께요. 보세요. 우리 외에도 루터교단도 그런 표현을 쓰고 있고 그외에도 다양한 사람과 단체들이 그렇게 혼용해서 쓰고 있답니다.
http://www.google.co.kr/search?complete=1&hl=ko&q=triune+God&lr=&aq=f 

  -만일 삼위일체와 삼일 하나님 둘다 사용할 수 있다면, 왜 거기는 '삼일 하나님'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지요? 제게는 (지방)교회분들이 삼위일체라는 말보다는 삼일 하나님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잘 보셨습니다. 사실 둘 다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삼일( 라틴어로 셋-하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성경의 계시에 더 접근된 표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권위있는 신학자로 평가되는 이종성 박사는 삼위일체론(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답니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는 Trinity를 삼위일체로 부른다. 그렇게 번역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수 없으나 매우 모호하고 부적당한 번역이다. 왜냐하면 '위'의 개념이나 '체'의 개념이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학적 연구가 요청된다."(300쪽)

- 거기는 삼위일체를 '세 인격, 한 본질' (three persons, one nature)
로 요약해 온 정통 삼위일체의 정의에 동의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상 이단들과의 싸움을 통해 정립된 정통 삼위일체 교리들을 다 동일하게 믿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계 내에서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론이 자꾸 문제가 되는지요? 

 자꾸 문제가 된다기 보다는 어떤 한 목사님이 (지방)교회 삼위일체론에 대해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연구를 해서 발표하신 것이 인터넷 같은데서 반복해서 인용 소개되다 보니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큰 문제 없고요(풀러측 조직신학 교수님들이 3년간 연구한 결론), 오히려 삼위일체론에 대해 좀 더 깊이와 균형을 갖춘 이해를 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방)교회측이.... 

  - 죄송하지만 그런 말이 제겐 조금 도전적으로 들리는데요, 어떤 점이 (지방)교회측이 깊이 있고 균형있게 삼위일체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인지요? 근거를 제시하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근거없이 말하면 거짓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삼위일체론은 신학 대학원을 나온 분들도 설명이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고 핵심만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삼위일체론 (또는 삼일 하나님)을 깊이 있고 균형있게 이해하려면 다음 요점들을 다 포함해야 합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인격들, 한 동일 본질을 가지신다. 2) 삼위는 각각 하나님이시고, 영원하시고, 동시에 존재하신다. 3) 삼위는 구별은 되시나 분리되시지는 않는다. 4) 삼위는 상호내재하신다(이것을 전문 신학용어로는 '페리코레시스' 라고도 함) 5) 삼위일체는 본질적인 삼위일체 방면과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

-그 쪽에서는 기성교회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삼신론' 또는 '삼신론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고 들었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요? 

 아, 예. 그것은 앞서 말한 그 목사님이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안 계신다' '하나님은 하나의 영이 아니라 세 영들이다.' 라는 주장하시는 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는 잘못 말하면 꼬투리 잡히기 쉬워서 단정적인 표현은 가급적이면 조심하고 성경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부분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주장은 성경 본문에 의해 반박 될 여지가 많은 주장이예요. 예를 들면,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니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요14:11) 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위 주장은 이런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을 '세 영들'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장로교 신학자분들도 다수 공감하시는 것같습니다. 한 마디로 삼신론은 '세 하나님들을 믿는다'는 의심을 받게 하는 주장들입니다. 마치 <사람이라는 동일본질을 가진 갑, 을, 병처럼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식>이지요. 이것도 <세 인격, 한 본질>이라는 조건은 충족시키거든요. 그렇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삼위가 구별은 되나 분리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긴 이해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권위자로 인정하는 어거스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사람이 한 인류에 속하면서 세 개인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셋으로 나눌 수 없다"(위책, 269쪽).


-글쎄요. 저는 신학을 안해서 어떤 신학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오늘 귀한 교제 감사합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서로 복잡해 지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예. 그러지요. 사실 저도 이렇게 말은 해도 삼위일체 (삼일 하나님)는 늘 어려운 주제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언급한 대목들 (마28:19, 고후13:13)은 대부분 우리의 체험과 관련이 깊은데 그런 분을 온전히 체험하여 아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명드리는 과정에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을 비난하는 것처럼 혹시 비쳐졌기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저 사실에 근거한 설명을 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언급하게 된 것 뿐입니다. 다시 한번 이점 양해를 구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2. 05:00

Sisters - All My Life Long I Have Panted - Loving the Lord - 지방교회들 찬송가 


*작사:Clara Tear Williams / 작곡:Natalie Pagel*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257장의 새 곡조

1. 일생 동안 사모하던 시원한 샘 찾았네 그 샘 내 속 타는 갈증 해결하여 주셨네

후) 할렐루야 갈망했던 그를 이제 찾았네 주의 생명 날 구원해 나의 갈망 채우네

2. 배고픔을 달래려고 쥐엄 열매 구했네 내 힘 모두 소모해도 굶주림 못 면했네

3. 굶주림을 채우려고 애써 구한 모든 것 나로 치욕 느끼게 한 배설물과 같았네

4. 그침 없는 생수의 샘 생명 떡은 값 없어 나를 위한 주의 풍성 영영 부족함 없네

http://www.praisenote.net/stanza/5931
http://www.praisenote.net/newtune/4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