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샬롬1 2018. 7. 6. 09:56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확산

사도행전 6장 7절은 [화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성장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신앙에 복종하니라] 고 말한다
[성장하여]라는 말은 생명 안에서의 성장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겨진 씨처럼 자라는 문제임을 가리킨다[막 4;14]
12장 24절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장하고 번성하더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먈씀은 사실상 주님 자신이신데 왜냐하면 말씀은 주님은 담는 용기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 주님이 성장했다는 것을 뜻한다
24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했을 뿐 아니라 번성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말씀은 스스로 자라거나 번성하지 않는다
그보다 말씀은 믿는이들과 함께 자라며 교회와 함께 번성한다
믿는이들이 성장할 때 그들 속에 있는 말씀도 성장한다
교회들이 번성할 때 말씀도 교회들 속에서 번성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하고 번성했다는 사실은 고대의 믿는이들과 교회들이 말씀으로 충만했으며 말씀과 하나였다는 것를 가리킨다
이는 악한 자를 대항하는 그분의 싸움에서 주님이 승리하셨다는 강한 표시이다
12장 24절에서 말씀의 성장과 번성은 베드로의 사역의 결과요 산물이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베드로의 사역이 승리로 끝맺었음을 가리킨다
사도행전에서 그의 사역에 관한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하고 번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사역이 승리로 끝맺었음을 가리킨다
사도행전에서 그의 사역에 관한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하고 번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사역의 영광스럽고 승리에 찬 끝맺음이다
더욱이 이 구절은 땅 위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 세계에 이르게 된 주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선포이다
오늘날의 많은 전파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별로 없다
말씀 대신에 이야기와 예화들이 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이와 같지 않아야 한다
오히러 우리는 신약 안의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잇다
우리는 신약을 연구해야 하며 그것으로 흠뻑 적셔져야 한다
만일 이런 식으로 신약으로 흠뻑 적셔진다면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할 때 말씀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어야 한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주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으로 득해야한다.
성도들은 이야기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견고하고 신성한 말씀으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복음을 확산시키러 나갈 때 우리는 말씀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왕국의 복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오직 신성한 말씀만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을 담을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다
오로지 거룩한 말씀 신성한 말씀만이 하나님의 왕국이신 그리스도를 다른이들에게 전달해 주는 데 유용하다
말씀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뿌릴 때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그들 안으로 뿌리는 것이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말씀은 분리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는 씨이고
씨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으로 충만해서 그것을 다른이들 안으로 뿌려야 한다


[지방교회들]주의 회복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로 조성됨과
이를 확산함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6. 05:00

찬송가 552 - 오 아름다운 날 - 지방교회들 찬송

찬송가 552 - 오 아름다운 날 - 지방교회들 찬송

1. 오 아름다운 날 즐거운 날 내 어이 잊으리오 어두움 속에서 헤매던 나 주 예수님 만났네

다정하고 따뜻한 내 친구 내 마음 채우셨네 어두움 물리친 구주 예수님을 기쁨으로 증거해

2. 성령이 내 맘을 주장하사 내 생활 변화되고 갈보리 십자가 그 사랑이 내 죄를 사하셨네

이전에 죄악된 내 생활은 모두 다 물러가고 놀라운 주 은혜 넘치게 주시니 주 이름 찬양하세


3. 세월은 흘러도 내 맘 속엔 희망은 변함 없고 하늘의 확실한 참 소망은 나 항상 갖고 있네

놀라운 그 축복 받은 날은 내 주님 알게 된 날 영원한 하늘의 고귀한 축복은 내 주님 알게 된 날

(후  렴)

하늘 영광 내 맘에 임했네 - 임했네 주 십자가로 나를 구했네 - 구했네

나 죄사함 받고 밤이 밝은 낮 되었네 하늘 영광 내 맘에 임했네 - 임했네

하늘 영광 내 맘에 임했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6. 05:00

생명이만나 333 - 나는 여호와 이다 - 지방교회들 이만나

생명이만나 333 - 나는 여호와 이다 - 지방교회들 이만나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나는...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뿐 그분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추가하도록 그분 자신이 무엇이라는 항목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6. 05:00

갓멘에세이 89 -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 지방교회들 에세이

갓멘에세이 89 -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 지방교회들 에세이

함께 사역했던 바울과 바나바와는 쉽게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지만, 바울과 베드로는 그동안 전혀 별개의 사도들로만 알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아래 말씀을 여러 번 읽고 관련 구절들을 찾아본 결과, 두 사도 사이에 접촉점이 의외로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2장의 책망 사건>을 알고 있었기에, 베드로가 바울을 가리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쓴 부분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또한 자기가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무식하고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부분도 잘못 풀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벧후 3:15-16).

제 기억으로는 자기가 쓴 서신에서 다른 사도의 서신을 거론한 것은 위 경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뒤에 사역을 시작했고, 심지어 책망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던 바울을 베드로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른 것과 바울이 쓴 어떤 내용은 자기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 것은 같은 사도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관련 각주도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각주2) 베드로가 이렇게 추천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신약의 믿음에 대해서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갈 2:11-21). 

이것은 베드로가, 요한과 바울과 자기 자신과 같은 초기의 사도들이 비록 일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용어와 말하는 방식과 어떤 일에 대한 관점과 가르침을 제시하는 법은 서로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동일하고 유일한 사역, 곧 신약의 사역에 참여했다는 것을 담대하게 인정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참고로 베드로는 총 여덟 장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창세 전 영원 과거부터(벧전 1:2, 20) 영원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까지(벧후 3:13)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각각 계시와 지혜를 받았지만, ‘새 하늘들과 새 땅’ 만 제외하면 바울 역시 베드로와 같은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위에서 바울을 거론한 것은 특별히 그가 모든 믿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적인 징계와 심판을 언급한 대목에서였습니다. 

바울도 그 점을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문득 그렇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사역하는 동안에 언제 어떤 식의 만남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즉 바울이 회심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온 후 삼 년 뒤에 내가 게바(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 동안 머물렀으나(갈 1:18)(여기서 <방문하다> (‘히스토레오’)는 “헬라어로 ‘친분을 맺기 위하여 방문하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관련 각주). ”혈육과 의논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도 그릇된 것이다. 계시를 받은 후 합당한 시간에, 우리는 앞서 주님을 안 주의 몸의 다른 지체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교통은 필요한 것이다”.

-(십사 년 후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기둥같이 여겨지는 야보고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나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교통의 악수를 하였습니다(갈 2:9).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나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갈 2:11). (“신약에서 최소한 두 번 베드로가 소극적인 길로 앞장을 섰고 다른 이들이 그를 따랐던 것을 본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고기잡이하러 가는 데 앞장을 섰다. 여기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 베드로는 위선을 행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LS, #6)).

-여러분이 각각 나는 바울에게, … 나는 게바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1:1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십니다(고전 3:22-23).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게바처럼, 아내인 자매를 동반하고 다닐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단 말입니까(고전 9:5)? 성경대로 제삼 일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 마지막으로는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4-8).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 그때 사도들과 장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그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선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는 것을 좋게 여겼다(행 15:6-7, 22).

이런 추구를 통해, 베드로와 바울은 서로가 가르친 진리 내용은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서로를 알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갈라 선’(행 15:39) 예에서 보듯이, 아무리 사도이고 분량 있는 사역자라고 해도 다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나름대로 업적이 생기고 지위를 얻게 되고, 심지어 따르는 사람들이 생긴 후에는(고전 1:12)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일이 초신자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 베드로후서를 쓸 때의 베드로는 바울 앞에서 위선 된 모습을 보였던 때보다는 더 변화되고 넓어진 사람이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와 바울’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 직분”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분”을 받아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유일한 신약의 사역을 가르쳤고, 한 몸 안에서 한 교통을 추구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렘브란
트 반 레인이 그린 ‘논쟁하는 두 노인’이라는 그림 속에서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은 모두 네로 황제 시절, 비슷한 시기에 순교했습니다. 전언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방식으로 처형되었고, 바울 사도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논쟁 두 노인'

이처럼 다른 듯하면서 같은 베드로와 바울의 삶이, 한 몸 안에 있는 우리 많은 지체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각자의 타고난 기질은 다르지만, 신약의 사역에 신실하고, 한 몸을 존중하며, 자신을 비우고, 형제 사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 주 예수님,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서 또 말씀하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이 아침에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여러분 각 사람은 그 지체들입니다.”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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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췌
1. EL GRECO 베드로와 바울(1587-9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at St. Petersburg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www.andong-ch.org/webgallery/42833
2. 1628|패널에 유채물감|72×60㎝|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https://www.jejudomin.co.kr/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6. 05:00

워치만 니 에 대한 오동생 (吳東生) 박사의 평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연합 신학대학원(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  Berkeley) 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TED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리젠트 대학(Regent College)에서 ‘영성 형성의 신학과 실행’ 과목을 가르쳤다. 그의  저술 중에 워치만 니의 이해영성지식형성 ( 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1] 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기독교적 영성 안의 전통들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 워치만 니의 영성 신학을 면밀히 조사한 책이다. 

워치만 니 의 영성 신학은 보편적인 복음주의 신학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토착 중국 신학의 걸작이기도 하다.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함,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와 조망,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추론(reasoning)의 차이, 믿는 이들의 삶 속에 있는 성령의 다스림, 자아 생명을 깨뜨릴 필요성, 교회 안에서의 믿는 이들의 생명의 교제에 관해 깊이 이해 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것들을 실제로 적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비록 워치만 니의 인간 삼분론이 존재론에서 충분한 근거가 부족한 듯 하지만, 최근의 성경적 연구는 사람의 기호(inclination)와 기능 안에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이 있다는 관점을 지지하고 있으며,  모든 세대에 걸친 성도들의 체험 역시 이러한 관점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영과 생각의 기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워치만 니의 견해는 성경과 부합하고 기독교 영성의 역사 안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뛰어난 인물들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워치만 니의 영성 신학은 중국 신학에게는 위대한 보물이다. 이 신학은 우리가 오늘날의 믿는 이들과 교회들의 생활과 삶 속에 더 깊게 탐구하고 실제적으로 적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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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amazon.com/Understanding-Watchman-Nee-Spirituality-Knowledge/dp/1610975324

Dongsheng Wu (吳東生), Ph.D.

holds a Ph.D. in Christian Spirituality from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 Berkeley, CA, and a master’s degree fro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in Chicago, IL. He taught theology and the practice of spiritual formation atRegent College in Vancouver, Canada. His publications include 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 a book that examines the spiritual theology of Watchman Nee in dialogue with traditions in Christian spirituality.  Watchman Nee’s spiritual theology is a masterpiece of indigenous Chinese theology as well as a great contribution to evangelical theology universally. Watchman Nee had a very deep understanding concerning the riches of the life of Christ, the revelation in and enlightenment from God’s Word, the distinction between God’s revelation and man’s reasoning, the ruling of the Holy Spirit in a believer’s living, the necessity of the breaking of the life of the self, and the believers’ life of fellowship in the church; he also had a practical way to apply them. Even though Watchman Nee’s view of trichotomy may not seem to have sufficient basis in ontology, contemporary biblical research is able to support the view that in man’s inclination and function there are three parts: spirit, soul, and body, and the experiences of the saints throughout the generations also match this view. Furthermore, Watchman Nee’s view with regard to the distinction between the functions of the spirit and the mind not only corresponds to the Bible but is also in accordance with the understanding of many important figures in the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 Watchman Nee’s spiritual theology is a great treasure to Chinese theology. It awaits our further mining and practical application to the life and living of today’s believers and the churches.

 출처: http://an-open-letter.org/testimonies/#19

Dongsheng John Wu (吳東生), Ph.D.

伯克萊神學研究聯院(GTU)基督教靈修學博士(Ph.D.),三一福音神學院(TEDS)碩士。曾 在溫哥華維真神學院(Regent College)教授「靈命塑造的神學與實踐」。出版了一本研究倪 柝聲屬靈神學與靈修傳統對話的論著《Understanding Watchman Nee: Spirituality, Knowledge, and Formation》。
倪柝聲的屬靈神學是華人本土神學的傑作,也是對普世福音派神學的一大貢獻。對於基督生命的豐盛、神話語的啟示與光照、神的啟示與人的理性的區別、聖靈在信徒生活中的管制、人的己生命破碎的必須、教會信徒交通的生活等方面,倪柝声都有非常深刻的理解、及切合實際的應用。 倪柝聲的三元人論雖然似乎不能在本體論上有足夠的論據,但是認為人有靈、魂、體三方面的傾向與功用的觀點,是當代的聖經研究可以支持的,也與歷代的聖徒經歷相吻合。倪柝聲關於靈性與理性之分別的看法,既合乎聖經,也與靈修歷史中許多重要人物的理解相似。 倪柝聲的屬靈神學是華人神學的一大寶庫,有待我們繼續挖掘、且切實應用到今天信徒與教會的生命和生活當中。

출처 : http://an-open-letter.org/ch/testimonies/


posted by 샬롬1 2018. 7. 5. 08:26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확산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공급하신 영적인 풍성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아야 한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들 속에는 공급이 결여 되어 있다
우리 가운데에는 신성한 계시가 부족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의 풍성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풍성들을 사람들에게 공급헤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들을 섬길 때 먼저 당신 자신이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당신이 누린 영양 공급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교직에 있어본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가르칠 때 당신이 가르친 것들이 더욱 안에 조성 된다
비록 우리가 매주 집회를 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추구하지만 우리 안에 조성된 것은 그리 많지 않고 우리가 읽은 것들은 금방 잊어 버린다
그러나 한가지 놀라운 것은 우리가 신성한 계시의 풍성들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 우리가 전한 것들이 더욱 우리 안에 조성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한 번 전하면 그만큼 더해지고 열 번 전하면 또 그만큼 더해진다
우리는 이 형제님에게서 이러한 본을 본다
이 형제님은 주님으로부터 위임을 밥을 때 끊임없이 그것을 사람들애게 전했다
그는 집회에서 메시지를 정식으로 전할 때뿐 아니라 또한 각종 집회를 붙잡아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한다
때로 형제들이 어떤 질문을 가지고 그에게 갔을 때 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를 붙잡아 그가 얻은 신성한 계시를 다시 한 번 전해 주었다
우리 또한 영적인 풍성들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은혜 받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때 우리 자신이 더욱 그것으로 자양분을 얻고 신성한 계시로 조성된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이행하는 면에서 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조성되었는가?
교회를 섬길 때 우리 마음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리는 각성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신약에 있는 하늘에 속한 이상을 우리는 얼마나 보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분의 이 땅에서의 인간 생활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 분명히 보았는가?
또한 그분이 생명 주는 영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연결되고 연합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이 섞이는 생활에 대해 분명히 보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본 이상을 이행하며 이러한 신성한 계시를 살아낼 것인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부담으로 충만되도록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풍성으로 충만되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부담을 이행해야 한다
주의 회복 안에서 주님은 고봉의 진리와 신성한 계시들을 앞선 형제님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듣고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이 풍성들을 확산할 부담을 빋아야 한다
이러한 확산의 가장 좋은 길은 문서를 통한 것이다
동시에 주님은 방송 매체와 인터넷 등의 첨단 과학 기술을 사용하여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를 공급하도록 우리를 이끄셨다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또한 이러한 확산이 그리스도의 몸을 확장시키고 건축하며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게 하시기를 바란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로 조성됨과 이를 확산함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찬송가 551 - Lord, I just love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51 - Lord, I just love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Lord, I just love You. And there’s no one like You. In the whole universe I have no other one like You. Lord Jesus, I love You.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생명이만나 332 -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 지방교회들 이만나

생명이만나 332 -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 지방교회들 이만나

(마6:19)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십시오.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훔쳐 갑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기쁨에 차서 아내와 가족에게 가장 좋은 암소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 전통따라"

지방교회, 바른이해와 교제희망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대해 존경하는 목회자신문 독자 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목회자 신문사측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글은 예장통합 교단과의 오해로 인한 간격을 좁히는 차원에서 통합교단 제 77차 총회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인 진리항목들을 다루기에 앞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신앙의 특색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지방)교회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근본주의 신앙>과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의 교집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근본주의 5대 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육체적 재림(또는 기적의 인정)을 굳게 믿는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체험함(골1:27)을 추구한다. 

따라서 일부 성경해석상 이견이나 용어표현상 이질적인 면이 다소 있을 수 있으나, 핵심진리(유다서, 3절)에 관한 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지면의 제한상 77차 총회 결의를 통해 통합교단이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핵심 요점만 간략하게 해명을 드리고자 한다. 

  1. 신론에 대하여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 -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함이니라'(롬8:29)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요일3:2)라는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경우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처럼 일부 설명에 본의 아니게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 한영>이 지방교회 삼위일체이다. 이에 대해 통합측 토론자는 <세 인격, 세영들>을 기준삼아 양태론 이라고 함으로 양측에 이견이 생겼다.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란 표현은 출처로 제시된 책 110쪽에 발견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존재하심을 전제로 한 설명임으로 양태론이 아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다. 

  2. 기독론에 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는 지적-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 육신은 부활을 기점으로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몸>-영광의 몸(빌3:21)-으로 바뀌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5:42, 44). 그러나 이것을 인성의 변질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3. 인간론에 대하여 

1) 삼분설을 가르친다는 지적- 지방교회측이 삼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분설, 이분설은 상대적 관점일뿐 이단성 여부를 가릴 진리항목은 아니라고 본다.

2)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며 전인적 타락을 부인한다는 지적 - 이 점은 통합교단 토론자가 토론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 잘 해결되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지방교회측은 전인적 타락을 굳게 믿는다. 

  4. 교회론에 대하여 

1) 기독교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천주교'로 이해했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경교사들 대다수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2)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한다는 지적 -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풀타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이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풀러신학교측 총장과 신학대학장이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2년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지방교회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통합교단과도 더 많은 교제를 통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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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4. 05:00

찬송가 550 - 신성한 사랑의 이야기 - 지방교회들 찬송가

오 놀라운 비밀 사랑의 이야기 

1. 오 놀라운 비밀 사랑의 이야기 감취었었지만 이제 나타난네 오 신성한 사랑 하나님과 사람 측량할수 없네 그분의 그 마음

2. 거절당한 그분 눈먼 자들 인해 그러나 그 사랑 그 마음 변찮네 사람으로 오셔 완전한 뜻 따라 예수라 불렸네 우릴 찾아 왔네

3. 죄인 되었지만 구속함 받았네 날 위해 죽으신 부활하신 그분 그분과 연결돼 언제나 함께해 그분을 누리며 화해함 받았네

4. 부드런 주사랑 내마음 드리네 그이름의 향기 기뻐 기도하네 그분께 매혹돼 승리함 넘치네 억제치 않으리 그분만 원하네

후렴
사랑에 빠졌네 그분 사랑만이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 닮게하네 우린 그의 표현 신부 그분 확장 영원히 함께할 나눠질수 없는 부부가 되어 함께 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