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의 회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각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들대로 모든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이 회담을 최대한으로 선전하고 있다. 회담이 끝나고 북한은 ”70년간 첨예하게 대립해오던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끝장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확고한 결단과 의지를 가지고 양국 수뇌가 세기의 만남과 회담을 진행했다.“는 식으로 TV 방송을 반복해서 방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먼저 북한의 핵이 무서워서 김정은에게 회담을 요청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세계정세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보이는 물질세계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구약시대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물질세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였다. 다니엘은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영적인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무역 등에서 오직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볼 수 있다. 만약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잘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소위 그 방면에 전문가들은 한 마디씩 하겠지만 영적인 세계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만 알고, 영적인 세계는 알지 못한다.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그 영역이 다르다.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우주가운데는 세 가지 의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의지요, 둘째는 사탄의 의지요, 셋째는 사람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의지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고, 영원하며 창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의지인 사탄의 의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탄의 의지를 알기 위해서 창세기에서 첫 번째 창조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1잘 2절은 “그러나 땅이 황폐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을 품고 계셨다.”한다. 1절에서 하나님은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실 때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욥기 38장 7절은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그 때는 땅의 기초를 놓을 때를 말한다(욥38:4). 1장 2절에서 ’그러나‘로 시작한 것은 1절과 2절 사이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겔 28장과 이사야 14장을 보면 이 사건이 사탄의 반역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사장 루시퍼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을 보고 교만해져서 “뭇별들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말하면서 반역을 일으켰던 것이다(사14:13).
사탄의 의지
하나님은 반역한 천사장과 악한 천사들을 하늘에서 추방시켰고, 하늘들과 땅을 심판하셨다. 그 결과 땅은 황폐하고 공허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모든 천사들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존재했었다. 첫 번째 창조의 주인공은 천사들이다. 천사들의 으뜸인 천사장은 교만 때문에 악한 의도를 품게 되었는데 그 악한 의도가 사탄의 의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의지에 더하여 추가로 사탄의 의지가 있게 된 것이다. 우주가운데 싸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사장의 반역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사탄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항하고 있다. 모든 영적 전쟁의 근원은 두 의지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사탄의 의지가 신성한 의지에 대항하여 일어나기 전에는 우주 안에 전쟁이 없었다. 우주 가운데 싸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사장의 배역에서 시작되었다. 그 배역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국가 사이에, 종족 사이에, 사회 계층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제 1차, 2차 세계 대전도 그 배후에 사탄의 반역에서 비롯되었다. 영적 세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쥐고 계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갖는다면 밖으로 시시각각 변화는 정세에 대하여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 간의 전쟁이 배후에 하나님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오늘날의 다니엘이 되어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의지
하나님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와의 전쟁은 교회와 사탄과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 안에 혼란과 다툼과 냉담함이 있는 것은 그 원인이 타락한 사탄 때문이다. 사탄은 사람들을 탈취하고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가 충돌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세 번째 의지인 사람의 의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사탄을 처리해야 한다. 현시대는 바로 교회가 이 땅에서 주님의 승리를 실지적으로 실현하는 시기이다. 머리가 승리하셨기 때문에 몸 또한 승리해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고, 부활생명으로 교회를 건축하셨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승리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우주 안에 하나님의 왕국도 있고, 사탄의 왕국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언급한 영적 전쟁은 이 두 왕국간의 전쟁이다. 따라서 영적 전쟁에 우리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이 서로 대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행함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며,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교회의 위치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교회의 책임은 그리스도께서 싸우셨던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교회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계시록 12장 10절,11절에 있는 것처럼 밤낮으로 형제들을 참소하는 참소자에 대해서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로 마귀의 참소를 이겨야 한다. 그들은 또한 죽기까지 자기들의 혼 생명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사탄의 입지는 우리 가운데 없어질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다. 사탄의 왕국은 사탄이 왕이고, 반역한 천사들이 부하들이고, 더러운 귀신들이 하인들이고, 사탄의 지시를 받는 타락한 사람들이 한 패거리들이다. 교회와 사탄과의 전쟁은 우리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다. 우리는 사람 속에 있는 사탄은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탄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는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사탄을 처리하지 않으시고, 피조물인 사람에 의하여 그를 처리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적극적인 의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고, 소극적인 의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갖고 하나님을 대표함으로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는 이중 목적을 완성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통치권을 주신 의도는 사람이
1)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정복하고
2) 사탄에게 강탈당한 땅을 회복하며
3)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마6:10,13). 따라서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악한 영들인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대항해서 반역할 때 사탄을 따랐으며, 지금은 하늘들의 영역에서 세상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배역한 천사들이다. 오늘날 이 세상은 완전히 마귀의 어두운 통치아래 있고, 마귀는 악한 천사들을 통해 다스린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변하는 세상의 흐름보다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예의 주시하고 끊임없이 기도함으로 하나님 편에서 싸워야 한다. 아멘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로 알려져 있는 한국(지방)교회들이 지난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앞으로 이단결의 철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예장통합측은 1991년 제76회 총회에서 지방교회를 위트니스 리가 이끌고 있는 신일합일주의, 삼위일체론의 양태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며 ‘이단’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받은 바 있다.
그러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대체로 그 이름 조차 생소한 ‘지방교회’는 무엇이며, 무엇을 믿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중국의 평신도 전도자 워치만니의 ‘주의 회복’의 유래
워치만 니(Wachman Nee)는 1903년 중국 복주(福州)에서 2대째 그리스도인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복건성(福建省) 북부의 회중교회의 목사였다. 워치만 니는 성공회가 세운 ‘앵글리칸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17세에 구원의 체험을 가졌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에 다닌 일은 없지만, 그리스도와 그 영의 일과 교회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체험을 갖고 있었다. 특히 영어를 잘했던 그는 1세기 이후의 탁월한 기독교 저술들 약 삼천 권을 수집하여 독파할만큼 한국적이었다. 그리고 26세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써 당시 교계를 놀라게 했다.
워치만 니가 1922년에 시작한 ‘주의 회복’은 기독교가 역사속에서 잃었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회복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워치만 니와 함께 동역했던 위트니스 리는 1905년 중국 북부 연대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19세에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후 일생을 복음전파에 헌신했다. 그는 문서를 통해 워치만 니를 알게 되었고 1934년 상해로 이주하여 정식으로 워치만 니와 동역을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수고하고 고난 받고 사역을 확장시키고 계시를 받고 부흥을 일으켰다.
이 두 사람의 열정적 사역으로 1949년까지 중국 본토에 약 400여개의 지방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몸’이라 한다. 워치만 니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자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내 400여명에 불과했던 대만 섬의 성도 수를 5년 사이에 4만명으로 증가시켰다.
본토에 남아 있던 워치만 니는 1952년 3월에 지방교회들의 인도자이며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20년간 투옥되었다가 1972년 5월30일 감옥에서 죽었다. 순교한 것이다. 그리고 1962년 위트니스 리는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후 1997년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신구약성경 강해와 주석서를 남겼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천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중국 본토 제외)과 약30만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한국에 전래된 지방교회
한국에서의 지방교회 운동은 1966년 9월에 대만에서 권익원(일명 왕중생)이라는 전도자가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일제시대 때 19세의 나이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갔다가 중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중국의 공산화 이후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가 폐병으로 입원해 있던 중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가 받은 복음에 대한 부담을 안고 3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주의 회복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집회를 열고 모든 부정적인 것을 끝내는 십자가와 우주안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심과 그리스도의 표현인 교회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시직된 한국지방교회는 현재 약100여개가 있고, 1만5천여명의 성도들과 200여명의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지방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생명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3.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지방교회는 초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수립한 근본주의 신앙인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적인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기적의 인정 또는 재림 소망 등의 핵심교리를 믿고 고백한다.
특히 각 주제별 성경적 신앙고백이 ‘신약의 결론’이란 총 8권의 책자(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 ① ②,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 한국복음서원 발간) 안에 약 460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 정통 교부 아타나시우스 등이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신화(神化) 교리,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인식함과 십자가에 대한 주관적인 적용,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관점으로 보는 것 등은 기성교회가 주목할만한 확신있는 교리이다.
또 각 지방마다 교회행정을 책임지는 복수의 장로들이 있고, 이들은 이러한 제반 교회실행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질서와 조화 가운데 이뤄지도록 감독하고 여러 방면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목사’직을 가진 목회자가 따로 없고 ‘장로’가 기성교회 목회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지방교회란 말은 성경에서 초대교회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빌립보에 있는 교회 하는 식으로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며, 오늘날에도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고집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들은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아래 각 지역에 여러 개의 집회소를 두고 있다.
지방교회는 예장통합측의 위트리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결정을 철회되어야 한다며 해지 요청서와 함께 총회 이대위에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주의 회복’이 활동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없는데, 유독 한국교회만이 이단이라 한다며, 지방교회를 이단시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통합측 이대위가 어떤 재론 결과를 내어놓을지가 주목된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우리를 향한 이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우리 안에서 성취될 때까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한다.
하나님의 원수는 이 놀라운 일들에 자극을 받아 온갖 고난과 재난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들은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고통과 재난을 넉넉히 이긴다(롬 8:37).
로마서는 처음부터 8장 끝까지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전반부를 다룬다. 한 면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이 구원의 근원인 하나님의 사랑, 즉 어떤 사람이나 문제나 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정도까지 구원받았다.
다른 한 면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주영에 의해 그분과 같은 형상을 이루며, 이 구원의 최종 목표에 이르는 정도까지, 즉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한 영광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는 정도까지 구원받았다.
기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입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아멘
우리의 사역의 중요한 초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며, 우리는 그러한 체험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나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오시며,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을 수행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분명한 동일시를 발견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의 세 위격의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운행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이 부활 안에서 동일시되시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아래의 발췌문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령이시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는 누구이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영은 누구이신가? 물론 성령이시다.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이시고, 그 영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을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는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 이라는 자신의 책 25장에서 “주 예수님은 높여지시어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주 영’이 되셨다.”라고 말했다. <삼일성에관한진리> ,영문판 14-15쪽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거룩한 숨으로 내쉬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숨이시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영이신 그리스도, 즉 숨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모든 과정을 완성하신 후에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 이 생명 주시는 영은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분,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영이신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의 영적인 생명과 존재의 신성한 본질이 되셨다. <신약의 결론 성령>, 194-195쪽
위의 예문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는 영의 관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오해한다면 이러한 글이야말로 그가 명백한 양태론자라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성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시도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우리가 받는 오해와 유사한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면 이레니우스 (Irenaeus), 터툴리안 (Tertullian), 어거스틴 (Augustine) 그리고 정통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다른 교사들의 글도 정도에서 빗나간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나, 그들의 글의 다른 부분에는 그들의 정통성을 확증해 주는 균형잡힌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 역시 이와 같은 균형잡힌 언급들을 하였으나, 근거 없이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 위해 소위 ‘증거’로 출판한 책자들에서는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균형잡힌 언급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그의 온전한 관점을 보여주는 두 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주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주님으로서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통치권과 머리의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고 계신다… 그분이 주님으로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은 그 영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리스도의하늘에서의사역>, 95-96쪽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숨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인 내적이고 주관적인 면에서 볼 때 두 번째 보혜사이신 그 영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숨이시다. 따라서 내적인 방면을 조망할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은 하나이시다. <요한복음 강해 속편 3권>, 273쪽
많은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에는 역행하는 것 같지만, 신약의 서신서들과 같이, 자신의 사역의 커다란 강조점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종종 생명 주시는 영과 동일시되신다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중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을 추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위트니스 리 외에도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임스 던 (James D. G. Dunn) 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신학자 중 한 분으로서 위트니스 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성경 구절들 중 일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적인 존재의 모형이라면,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의 모형이다…요약하자면 45절 하반절은 이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바울은 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이면서도 몸이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로 새로운 인성의 본과 선구자이시라는 것을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기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체험한 생명 주시는 영은 다시사신예수,마지막아담이시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를 영적인 존재…또는 영적인 범위나 영역이 아니라 그 영, 곧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바울에게 있어 내재적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이며, 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에는차이가없다.물론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The Christ and the Spirit, vol. 1, Christology[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8], 164-165쪽)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에 관해 자주 인용한,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저명한 신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 (W. H. Griffith Thomas) 역시 이러한 신성한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뛰어난 요약을 했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양면 모두를 주의하며 보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위격의 특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의 임재는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The Holy Spirit[Grand Rapids, MI: Kregel, 1986; reprint ofThe Holy Spirit of God, 4th edition,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3] 144쪽)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인용문을 읽는다면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영역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스웨트 (H. B. Swete) 도 동일한 사상을 아래와 같이 확증했습니다.
그 영은 그분의 일에 있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신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영이신 주 (the Lord the Spirit) 즉 그분의 영화롭게 된 생명의 능력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The Holy Spirit in the New Testament, [London, New York: Macmillan, 1912] 306쪽)
이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를 추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각주는 위트니스 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를 동일하게 인정한 저명한 주석가들인 마빈 빈센트 (Marvin Vincent),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윌리스톤 워커 (Williston Walker) 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 이 부분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의 ‘주님’은 틀림없이 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2:12, 14-15, 17, 3:3-4, 14, 16, 4:5). 이것은 성경에 있는 분명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널리 퍼지게 하시고 활력 있게 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고 (고후 3:6) 새 언약의 사역에는 영광이 있다 (고후 3:8).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 요한복음 14장 16절, 18절과 비교해보라” (빈센트).
“3장 16절의 주님은 3장 6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의미상, 여기서 언급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은 바로 성령과 동일하시다…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알포드). “변화시키시고 내주하시는 영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주님은 그 영이시다’” (윌리스톤 워커). <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후서 3장 17절 각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