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7:05

성경말씀

(히12:2)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합시다.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혼을 잃는 것에 관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혼을 잃는다면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혼을 잃는 것은 외면상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참된 기쁨입니다. 한 자매가 그녀의 남편을 용서함으로써 그녀의 혼을 잃는다면, 그것은 그녀 자신과 그 가정에 기쁨이 됩니다. 그것은 합당한 가정생활의 건축을 낳습니다. 교회 건축을 갖는 것에 있어서도 원칙상 동일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혼의 누림을 잃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교회의 건축을 보기 때문에 기쁨입니다. 실제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이 기꺼이 혼을 잃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을 통해 영양 공급을 받고 여러분을 통해 건축됩니다. 이것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주님은 눈물로 십자가에 가지 않으셨고 오히려 기쁨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그분의 혼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결과를 미리 보셨기 때문에 그분의 혼을 잃는 것에 관해 그분 자신을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 많은 밀알들이 산출될 것을 아셨습니다(요12:24).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50

성경말씀

(히9:14)  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오늘의 만나

우리의 양심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생명의 좋은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철저한 처리를 거친 후에는 느낌이 갈수록 예민해집니다. 이것은 마치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에 광선이 투사될 수 없지만 유리창을 조금이라고 닦으면 조금 밝아지고 닦을수록 더 밝아지게 되고 밝아질수록 빛이 더 많이 투사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을 처리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양심을 처리할수록 더욱 밝아지고 느낌도 더욱 예민해집니다. 양심이 예민할수록 마음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부드러워진 마음속의 양심은 매우 예민하여 조그만 감각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양심은 반드시 부드러운 마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강팍한 사람은 모두 양심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양심이 마비될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집니다. 예민하고 거리낌이 없는 양심은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으므로 자연히 우리 속에서 생명을 자라날 수 있게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35

성경말씀

(롬12:1)  그러므로 형제님들, 내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권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거룩하고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합리적인 봉사입니다.

오늘의 만나

몸을 헌신하려면 일정한 시간을 내서 주님을 위해 써야 합니다. 시간을 드리면 몸도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헌신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시간을 정해 놓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 읽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이 반드시 계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누가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매주 두 시간을 온전히 드린다면, 그것은 매우 값진 일일 것입니다. 시간이 드려지면 몸 또한 드려질 것입니다. 몸이 드려지면 사역이 오고 축복도 오게 됩니다.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 섬길 일이 많아지고 휴식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지만,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25

성경말씀

(골2:18~19) 겸허한 척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들에 사로잡혀, 육체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교만에 빠져서 머리를 붙들지 않습니다. …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모든 소극적인 것들 중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인 천사숭배입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것, 천사들과 같은 피조물 등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골로새에 사는 어떤 이단 교사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직접 접촉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천사 숭배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분이지만 사람은 극히 천하며, 또한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지만 사람은 부패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런 이단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접촉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로는 우리에게는 어떤 중재자가 필요하며 천사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된 천사숭배의 뒤에 깔린 관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경배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을 겸손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단 교사들은 성도들을 권하여 이같은 방식으로 경배함으로 겸손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골로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 직접 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라. 너희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서 천사들이 중재자로 봉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바울은 그러한 관념과 싸우며 “겸허한 척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십시오.(골2:18)”라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20

성경말씀

(딤후4: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매사에 오래 참고 가르침으로써, 책망하고 꾸짖고 권유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나는 지금도 D.L. 무디의 임종시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는 그를 둘러선 모든 성도들에게 행복하게 말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전파를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그가 죽을 때 신실하게 복음을 전파해 수천 명을 주님께로 이끌었던 지난 날들의 주님을 위한 그의 일을 생각했으리라고 믿습니다. 죽어 가는 동안 그는 환호할만큼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행복하게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형제들과 친척들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의 심판대에서 주님 앞에 나타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가정과 개인의 관심사를 돌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열매를 맺을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의 관심으로 완전히 점령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심판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입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노예야...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마25:21, 23). 만일에 우리가 주님과 동역하기 위해 이 시대에서 신실하지 않다면 그분은 우리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를 것이며 우리를 바깥 어두운 데로 던질 것입니다(마25:26, 30).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10

성경말씀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고전6:17)  

오늘의 만나

 '합하는'은 믿는 이들이 주님을 믿어 주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연결은 포도나무와 가지들이 연결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생명에 속한 문제일 뿐 아니라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문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이렇게 연결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영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고전6:17/1 각주)   '한 영'은 영이신 주님과 우리 영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났고, 하나님의 영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 영과 하나이십니다. 이 한 영은 부활을 통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과 함께 계신 주님의 실재화입니다. (고전6:17/2 각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5:50

성경말씀

(마9:13)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오늘의 만나

사람의 사상과 하나님의 사상은 완전히 상반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9:13)고 하십니다. 긍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시는 것이고, 제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원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원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무엇인가를 사람에게 주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무언가를 그분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사람에게 주실 때 통쾌하게 느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5:20

성경말씀

(시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오늘의 만나  

처음 이 구절을 읽는 사람은 아주 특별하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무가 가득한 땅 위를 달려갈 때는 올무를 주목하여 피해 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하늘의 여호와를 앙망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앞으로 달려갈 때 지면에 쳐진 올무에 넘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마귀가 세운 올무가 반드시 물질적인 것은 아니며 그것이 어디에 설치되었는지도 쉽게 알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올무를 주목하며 자기 힘으로 벗어나려고 할지라도 앞을 향해 달려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올무의 소재지를 알고 계시고,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발을 붙잡으시고, 푯대에 이르도록 한 걸음씩 우리를 돌보십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4:45

감추인 만나이신 그리스도는 성막의 중심이시다. 감추인 만나는 금항아리 속에 있다.금항아리는 법궤 안에 있으며 , 이 법궤는 금을 입힌 조각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도를 표징하는 감추인 만나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금항아리 속에 있다. 금항아리 속에 있는 만나는 그리스도가 아버지 안에 계심을 가리킨다. 법궤는 지성소 안에 있으며, 지성소는 우리의 영이다.

오늘날 거룩한 영이 내주하시는 우리의 영은 지성소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추인 만나이신 그리스도가 금항아리이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가진 법궤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내주하는 영이신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사시면서 지성소의 실제가 되신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들은 지성소의 실제 이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요한복음14장16절에서 20절까지에 있는 네번의 『안에』와 상통한다.

20절은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하며, 17절은 『실제의 영이 오시면 너희 속에 거하시겠음이라』고 말한다. 이글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우리는 아들 안에 있으며 아들은 우리 안에 계시고 실제의 영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이것이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이들의 합병이다. 성막안으로 합병 되는길은 감추인 만나를 먹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는 우주적인 합병이신 삼일하나님 안으로 합병된다. 감추인 만나를 먹음으로 우리는 성막 안으로 합병된다. 구약에서 성막은 하나님의 장막이라 불리우는 새예루살렘의 예표였다.

출처:위트니리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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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4:40

참된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두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증가시키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 개인이 소멸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확대되심은 우리가 거듭날때 시작되었으며, 우리가 구원받은 후 주님은 우리 자신을 소멸하기 위해 날마다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우리가 그준앞에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지체들간의 상호 협력의 원칙에 따라 된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몸의 원칙인 교통의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 라고 말하게 될 때까지 주님은 끊임없이 역사하실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교회이며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교회가 아니다. <출처:영광스러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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