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7 15:05
성경말씀  

 
(히3:8) 광야에서 그분을 시험한 날에 그분을 노엽게 했던 것처럼, 너희 마음을 굳어지게 하지 마라.

오늘의 만나

 하나님은 사시고 신실하시지만, 악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하여 강퍅한 것입니다(히3:8). 어떤 의미에서 악한 마음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며 많은 것을 이론적으로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고집이 세고 강퍅한 것이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올바른 궤도를 벗어나 곁길로 간 것이며 하나님의 길이나 원칙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는 것입니다(히3:9). 결국 그와 같은 마음은 스스! 로 속이는 것이며 속게 될 것입니다(히3:13). 이것이 악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와 같은 악한 마음은 항상 강퍅함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기를 위해 거듭거듭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나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결코 강퍅하게 되도록 허락하지 마옵소서.”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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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6 14:40
성경말씀  

(롬12:3) 나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의 종점은 교회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그리스도의 몸에 이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칩니다. 이 때문에 십자가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사람을 약함의 경지로 이끌어가고 할 수 없음의 경지로 끌고 가서 사람이 옛 창조에 대해 철저하게 실망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사람은 실제적으로 옛 창조에서 벗어나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다 정죄받은 것이며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끝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새 창조이며, 옛 창조와 무관합니다. 우리가 만약 교회의 일에 대해 여전히 사람의 이전의 방법과 수단과 기능 등을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아주 좋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옛 창조의 사물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또한 절대로 옛 창조의 사물이 새 창조 안에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옛 창조 안의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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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9:10
성경말씀  

(마16:18) 또 내가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한다면 진실로 당신 안에 교회 생활을 위한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아침에 주 예수님과 접촉한다면 분명히 저녁에 집회에 갈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누렸지만 당신은 당신의 삶을 위해 교회 안에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경우 교회에 관해 사람들에게 말로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그리스도를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인식하면 할수록 점점 더 교회를 갈망할 것입니다. 어린양이 성막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반드시 당신에 의해 체험되고 누린바 되어야 합니다. 먼저 당신은 유월절 양을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위한 처소로 건축된 성막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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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5 15:20
성경말씀 

 (엡5:25~27)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또한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 앞에 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결혼하는 날 신랑은 신부의 능력보다 그 아름다움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생활 안에서 결국 우리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기능보다 주님께 더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기능에 있어서, 능력을 갖추고 자격을 구비하고 은사있게 되는 것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이것이 교회생활 안에서 다소 중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주님은 그분이 관심하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성을 통하여 표현되는 그분 자신의 아름다움을 관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을 다소 낮게 평가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소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와 동화됨으로써 아름답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내주하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체험하면 할수록 그분은 우리의 티들과 주름들을 그분의 요소로 대치시키실 것이며, 더욱더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그분의 풍성이 우리의 아름다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스러운 신부로서 그분께 드려질 준비가 될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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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9:15
성경말씀  

(행6:5) 그 말이 온 무리를 기쁘게 하였다. 그래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또 빌립과 ...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복음 전파자인 한 무리와 집회장소를 청소하는 것을 관심하는 또 다른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로서 온전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또한 엄격히 말해서 그것이 봉사가 아닐지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을 돌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그의 지위가 너무 높아서 화장실을 청소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몇몇 사람이 식사를 봉사하기 위해 택함을 받았습니다(행6:~5). 그들 중 두 사람은 빌립과 스데반이었습니다. 몇몇 성경 교사들은 이 두 사람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은 말에 능했으며(행7장), 빌립은 복음 전파자였기 때문입니다(행21:8). 의자를 배열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가 되었을 때, 그는 잔디 깎는 것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합당한 봉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실행적인 일은 봉사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돌보아야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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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4 18:55
성경말씀 

 (고전 7:24) 형제님들, 각 사람이 어떤 신분에서 부름을 받았든지 하나님과 함께 그대로 지내십시오. 

 오늘의 만나

 
 나는 자신의 선호와 맞는 곳을 찾으려고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주하는 성도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 안에서의 성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진실로 생명 안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황이 가장 어려운 교회에서조차 당신은 여전히 하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하나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함으로 하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곳으로 이주 한다면 당신이 있었던 곳보다 더 좋지 않음을 발견할 지도 모릅니다. 이로 인해 당신은 또 다시 세 번째 장소로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똑같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려워하는 장소에 그대로 머무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은 생명 안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 안에서의 성장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생명 안에서 성장한다면 성도들과 하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건축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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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3 15:55
질문 질문: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작년에 저는 대학에서 거의 매일 열다섯 사람들을 위해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도했는데, 그중 한 사람도 우리의 구성원으로 더해지지 않았고, 그러한 수고는 사람을 지치게 했습니다. 

 답변

 
최상의 기도 방식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여러분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하는 길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 안에 머무르며,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닌 그분의 말씀에 따른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할 그분의 거하는 말씀을 얻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입을 열어서 그분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며 우리는 안에서 느끼는 어떤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말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과 하나 되십시오. 일단 당신이 그분의 말씀들을 당신 안에 취하여 들이고 실제적으로 그분과 하나이며 그분이 당신과 하나 되었다면 당신의 깊은 속에 어떤 의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 느낌을 따랄 기도하십시오. 많은 경우 기도의 말을 시작할 때 더욱 많은 느낌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 느낌이 말로 표현될 때 그것이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이 인도하실 때 당신의 내적 느낌에 따라 말하십시오. 여전히 어떤 사람, 어떤 상황들 또는 교회들을 위해 기도할 부담이 있다면 다만 그 부담을 말하십시오. 그 부담이 당신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주님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분석하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말하는 내적 제한이 있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다만 주님께 나아간 다음 주님이 당신에게 주시는 느낌에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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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1 14:50
성경말씀  

(고전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9)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경작지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입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경작지에서 일하는 동안 하나님도 일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자라시는 하나님의 경작지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어떤한 특권이며 영광입니까! 바울은 믿는이들이 “하나님의 경작지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믿는이들은 하나님의 경작지 즉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보배로운 재료들이 산출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새창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라시는 경작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건축물입니다. 단체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인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심겨진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자라셔야 하는데, 고린도전서 3장의 의미에 따르면 땅 위에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해 우리에게서 과일이 아니라 보배로운 재료인 금, 은, 보석들을 산출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건축이요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가이며, 무한한 그리스도의 확대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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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10 13:10
성경말씀 

(요17: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드시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오늘의 만나

 신성한 비밀에 관한 주님의 기도는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이 기도는 주님의 부활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부활 안에서 주님의 신성한 요소, 신성한 생명이 주님의 인성 안에서 많은 믿는이들 안으로 해방되었고, 주님의 인성을 포함한 전 존재가 영광 안으로 이끌렸으며 또한 아버지의 신성한 요소가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활 안에서 주님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이루셨습니다. 둘째로 이 기도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교회 안에서 주님의 부활 생명이 많은 지체들을 통하여 표현됨으로 주님은 그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셋째, 이 기도는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새 예루살렘 안에서 주님은 영광 안에서 충만히 표현되시고, 하나님은 영원히 주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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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5.09 19:35
성경말씀  

(히1:1)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신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방식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오늘의 만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심인 히브리서의 제목을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한 것은 매우 적절하면서도 의미가 깊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은 ‘넘어가다’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특별히 강을 건너는 것 즉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 한 편에서 다른 편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은 강을 건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강 유브라데의 다른 편에 있었던 우상의 땅 갈대아에서 유브라데 강 이편에 있었던 가나안 곧 하나님을 경배하던 땅으로 건너왔습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주님을 믿었으나 여전히 유대교를 떠나지 못하던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떠나 은혜로, 옛 언약을 떠나 새 언약으로, 구약의 의식적인 봉사를 떠나 신약의 영적인 실재로 건너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유대교를 떠나 교회로, 땅에 속한 것을 떠나 하늘에 속한 것으로, 제단이 있는 바깥뜰을 떠나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안으로, 혼을 떠나 영으로, 진리와 생명의 초보를 떠나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의 성숙함으로 건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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