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것은 생각을 바꾸어 과거에 대해 뉘우치고 미래를 위하여 돌이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처리하는 면에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은 죄들과 그릇 행한 것들을 회개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위해 창조하신 사람을 빼앗아 부패시키는 세상과 그 세상의 부패함에서 돌이키고 또 과거에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의 생활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것을 이루는 면에서 회개하는 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길과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를 믿는 것이며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합되도록 그분을 믿어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 것이고 그분을 우리 안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러한 믿음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복음의 모든 축복 안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같은 보배로운 믿음에 앞서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레위기 LS 메시지 57번, “안식년과 희년(2)”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 속죄일에 나팔소리가 퍼져 나감
25장 9절 “너는 일곱째 달이 되면 그달 초 열흘날에 숫양 뿔 나팔을 크게 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희년이 속죄에 근거하여 완전한 자유가 온 백성들에게 선포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 예표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에 의해 성취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내어 나팔을 불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희년을 선포하며 나팔을 분다면, 사람들은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칠 것이다.
10절은 사람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도록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완전한 책임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희년에는 수고가 없으며, 책임이 없다.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 심지어 수확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어떤 부담이나 책임 없이 밭에 나가서 먹을 수 있다. 책임을 지는 대신에 우리는 안식과 누림과 외침을 갖는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을 때 그런 체험을 했다. 우리가 구원받던 날 우리는 해방되었으며 모든 묶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이것이 희년의 체험이며 누림이다.
* 각 사람은 자신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감
10절 “너희는 각자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자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신약의 믿는 이들이 그들의 잃어버렸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소유지를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곧 신약의 희년 때에 우리는 우리의 가족, 곧 신성한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부유하며 우리의 신성한 가족 안에서 자유롭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외쳐야 하며, 교회 집회 안에서 주님을 향한 기쁨의 소리를 내어야 한다. 이것이 참된 희년이다.
* 일곱절기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다.
레위기 25장의 일곱 절기들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의 네 절기는(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한 오순절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그룹의 세 절기들은(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천년 왕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완성은 교회 생활을 산출한 오순절이며, 두 번째 완성은 완전한 희년을 가져오는 장막절 곧 천년 왕국이다. 11절-12절 “오십년째 되는 해는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되고, 수확한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어들여서도 안되며,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딘다. 이 해는 희년이며, 너희에게 거룩한 해이다. 너희는 저절로 난 것을 먹어야 한다. 이것은 희년 때에는 사람의 일이 불필요함을 의미한다. 희년은 전적으로 사람이 안식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책임을 지신다.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토지는 영원히 팔지 못함
23절 ”땅을 영구히 팔지 못한다. 왜냐하면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고 체류자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신성한 소유지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우리가 패배하고 타락하더라도 영원히 그것을 잃어버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보호하심이다. 신약에는 왕국의 보상과 왕국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천년 왕국 동안에 패배할 수 있으며 심지어 징계받을 수 있으나, 우리의 영적 소유권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 천년 왕국이 끝난 후 징계받았던 믿는 이들은 그들의 신성한 소유지를 다시 돌려받을 것이며 특별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 팔렸던 땅을 되사는 것에 관하여
레위기 25장 24절부터 28절까지는 팔렸던 땅을 되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그의 잃어버린 소유지를 회복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이 있었음을 본다. 첫째, 그의 잃어버린 소유지는 가까운 친척에 의해 다시 살 수 있었다. 이것은 은혜의 문제이다. 둘째, 그에게 재산이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다시 살 수 있었다. 셋째, 그것을 다시 살 수 있는 친척이 없고 스스로도 그것을 살 수 없다면, 그는 희년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은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매우 잘 나타내는 예표이다.
* 레위기 25장 29절부터 34절까지는 팔렸던 집을 되사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29절-30절은 만일 어떤 믿는 이가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렸다면, 그 누림은 하나님의 짧은 은혜의 범위 내에서는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일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 것이 교회 시대 안에서 회복되지 않는다면, 천년 왕국에서도 그 누림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없는 자에게서 있는 것까지 뺏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마 25:29). 그러므로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성벽 있는 성내의 집은 교회 생활의 예표이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팔 수 있으나 교회 생활만은 팔아서는 안 된다. 교회 생활을 판다면 우리는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받으며, 희년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를 도울 수 없다. 교회 생활의 누림은 일 년으로 예표된 하나님의 짧은 은혜의 범위 내에서만 회복될 수 있다.
완전한 일 년은 교회 시대를 예표한다. 우리는 교회 시대가 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상 교회 시대는 짧다. 신약은 교회 시대가 짧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주 예수님은, 『내가 속히 갈 것이다.』(계 3:11)라고 말씀하셨다. 게으르고 악한 종만이,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오심을 서두르고 계시며 교회 시대는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다. 교회 시대는 길어지거나, 연장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생활이 내일 끝나게 될지 아닐지 장담할 수 없다. 교회 시대는 짧은 시간 동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시대는 짧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 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은 주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고 빨리 그것을 되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천년 왕국 안에서도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년 왕국 동안에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에게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적한 바와같이 이것은 없는 자에게서 있는 것까지 빼앗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시대에서 교회 생활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는 시대에 교회 생활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은 회복되기 쉽지만, 그러나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회복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생활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팔지 않도록 경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것을 팔았다면, 우리는 가능한 빨리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찾도록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의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년 왕국 동안 징계받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면, 장차 올 천년 왕국에서도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는 것보다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심각한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32절-33절은 레위인들이 누림을 잃었어도 쉽게 회복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합당하게 봉사하는 믿는 이들이 누림을 잃게 되어도, 시간의 제한 없이 누림이 회복됨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많이 봉사할수록 우리에게 유익됨을 본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봉사할수록 우리의 교회 생활의 누림은 더 안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쉽게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만일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그리고 빨리 그것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합당하게 하나님께 봉사하는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3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과 교회 생활의 누림 모두를 위하여 우리는 교회 봉사에 더욱 참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다시 찾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한정된 시간 내에 잃어버렸던 교회 생활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장차 오는 시대에도 교회 생활을 잃어버릴 것이며 우리가 영원한 시대를 위하여 징계받고, 훈련받고, 교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레위기 25장의 예표에서 볼 수 있으며 또한 신약의 분명한 말씀들 안에서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느슨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 즉시 교회 생활을 회복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 시대가 얼마 동안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천 년이 하나님께는 단 하루가 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천 년이다.
장차 올 천년 왕국 동안의 시대적인 상벌의 심각한 문제는 복음이며, 특별히 마태복음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상과 벌에 관하여 여러번 경고하고 있다(마8:12,11:17,13:42,22:13,24:51,25:30). 레위기 25장에는 두 가지 누림-땅을 누리는 것과 집을 누리는 것-이 있다. 땅을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예표하고, 집을 누리는 것은 교회 생활을 누리는 것을 예표한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교회 생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시대에 교회 생활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으며, 잃어버리게 되면, 장차 오는 시대, 곧 왕국 시대의 천 년 동안 징계받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로고스코리아, 한국복음서원, 성경진리사역원이 공동 주최한‘컨퍼런스 2007 복음절기 성경으로 돌아가자’가 지난 26일 주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1만6천여명의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우리의 일곱가지 선언”을 시작으로 성대히 개최돼 한국에서 회복교회의 세를 과시했다.
①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②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③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靈)을 받았음을 선언한다.
④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⑤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⑥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⑦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의 주제에 대한 이 일곱가지 선언은,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진리요, 복음임으로 곧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고, 진리는 생명이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주최측의 이날 행사는 일곱가지 선언에 이어 앤드류 유의 설교와 ‘성경말씀의 역사’라는 영상물 상영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신언자(예
언자)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인류에게 생명의 말씀을 선물로 주었으나, 교회는 때때로 이 말씀을 가리우고 잘못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종들을 통해 그 말씀을 밝히 드러내었으니, 그들이 바로 위클리프, 틴데일, 마일즈 커버데일, 마르틴 루터, 존 녹스와 칼빈 등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 왔고, 20세기 들어 위치만 니에 의해 많은 부분이 회복되었음이 강조되었다.
또 최근 출판된 한국어 신약 회복역성경에 대한 소개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배우, 치과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이 차례로 나와 성경을 읽음으로써 받은 은혜의 체험을 간증했다. 그리고 이날 간증은 해외 교포 및 외국인들도 참여했는데, 미국, 중국, 대만, 러시아, 몽골, 일본 등에서 온 성도들이 직장이나 집에서 성경을 읽고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체험의 역사를 간증해 감동을 주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가장 위대한 선물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모든 일들의 해답
이날 소개된 한국어신약 회복역성경은 첫째, 헬라어 원문을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하되 일관성을 유지하여 직역했으며 둘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의 문체를 사용하였고 셋째, 9천개 이상의 방대한 각주를 달아 분문 해석을 도왔으며 넷째, 1만3천개 이상의 관주가 붙어있고 다섯째, 성경 각권의 개요을 첨부해 그 책 전체에 대한 호감도를 갖게 했으며 여섯째, 각종 도표와 지도는 신약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편집되었다.
이날 복음절기 행사는 실내행사가 끝난후 1만5천여명의 참가자들이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2Km를 악대와 기수단을 앞세우고 각 대대로 나누어 행진했는데, 이들은 행진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성경은 영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 △성경은 모든 일들의 해답이다. △성경은 매일의 필독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양육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라를 축복한다라는 피켓과 프랭카드를 들고 행진구호를 외쳐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최측의 이날 복음절기 행사의 복음행진은 그동안 정치적 시위만을 보아온 서울시민들에게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
오는 26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컨퍼런스 2007, 성경으로 돌아가자”(Recovered to the Bible) 라는 주제하에 약 1만5천명(해외 성도500여명 포함)이 모여 대규모 복음전파 행사가 진행된다. 이 행사는 한국복음서원, 로고스코리아, 성경진리사역원(이하 ‘주최측’이라 표기함)이 주최하는 것이다. 주최측 관계자에 따르면, 실내 체육관 복음집회 후에 약 1만 여명이 가두행진을 할 예정이다. 행진코스는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약 2km이며, 한국전력 앞 광장에서 해산할 예정이다. 많은 경우에 가두행진은 불만이나 요구조건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주최측의 가두 행진은 아주 평화적이고 특별하다고 한다.
주최측에 따르면 가두행진을 하는 목적은 복음의 영을 회복 하는데 있다. 그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그 중간 중간에서 크고 작은 북을 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도덕을 사랑하자는 표어를 선포함으로 포괄적이고 합당한 복음전파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 행진기간 동안 이번 행사의 주제인“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도 반복해서 선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주제아래서 다음의 일곱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 된 선언문 내용을 보면 이번행사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2.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3.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靈)이 있음을 선언한다.
4.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5.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6.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사실‘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말은 이번에 처음 나온 구호는 아니다. 멀리는 종교개혁자들도‘오직성경’을 외치며‘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주최측이 말하는‘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의 설명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오(無誤)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런 가운데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근본 신앙을 손상시키는 심각한 요소들 중 하나임을 지적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따라서 성경을 참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정도까지 성경을 신뢰해야 한다.
둘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자는 제안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왜 이런 제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미국교회의 경우 성별된 근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성도들 중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5%미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고 또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같은 원칙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들어서 읽자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이다. 성경에서는“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마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성경 지식은 많은데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의 힘으로 사는 체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하고 소화하여 성경의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 소화하여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이 목표
주최측은 대회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일년일독(一年一讀)하는 성경읽기표를 나눠주고, 포켓 성경(마태복음 요한복음)을 선물로 줄 모든 믿는 이들은 누구나 각지에서 적절한 숫자의 그룹을 형성하여 규칙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도록 도운다.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 의주된 초점은 그 모임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믿지 않는 가족들, 친구와 친지들, 직장 동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있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이번 행사 후반부에는 복음 대행진이 예정되어있다. 여러 사람이 큰 거리에서 행진한 번 한다고 해서 과연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복음화율은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교인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선교학적으로 '사회 복음화 비율이 20%를 넘게 되면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오이코스 코리아 대표 이상만 목사는 “현재는 완전한 하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전도의 효과가 없는 시대”라고 말한 다.
그렇다면 주최측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번 복음 행사를 기획했으며, 그들이 말하는 복음 전파는 과연 무엇인가. 주최측도 이런 행사를 통해 당장복음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런 행사를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의 영을 분발시킴으로 복음 전파에 대한 담대함을 갖고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통계상으로는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네 사람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생활 가운데서 불신자들에게 본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목표는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사복음서의 각 권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마쳐진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이었다(행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 전파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자 교회의 가장 큰 위임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주최측은 이번 행사의 주된 목표가 일부 성직자들이나 직분이 있는 사람들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또한 온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25%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75%의 이웃임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복음 전파를 강조하지만,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전파보다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끌어오는 ‘교회 바꾸기’ 또는 ‘수평이동’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는 건전하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복음서원은 미국 ECPA(복음주의기독교 출판연합회)의 정회원이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Stream Ministry(LSM)’의 출판물을 한글로 번역 소개하는 곳이다. 로고스코리아는 지난 20세기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성경 진리 중에서 엄선된 소중한 진리들을 담은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는 문서선교기관이며, 성경진리사역원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성격을 훈련하여 유용한 복음전파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위트니스 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만 창조물이실 뿐 참 하나님은 아니시라고 가르친다는 거짓 비방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비방은 위트니스 리가 첫 번째로 감내해야 했던 비방으로서, 그 시기는 그가 대만과 홍콩에서 사역을 수행하던 19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위트니스 리는 골로새서 1장 15절의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라는 표현을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가지신 것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했는데, 그 당시 그의 젊은 동역자 중 일부는
마치 그가 4세기의 아리우스 (Arius) 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며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비방은 주로 극동 지역에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골로새서 1장 15절에 대한 현재의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았지만 서양의 독자들은 대부분 그가 의미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해 왔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 글에서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래에 소개해 드릴 몇 가지 예문만으로도 그의 실제 관점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창조물 중에서 먼저 나신 분이라는 것은 그분이 모든 피조물 중 첫 번째 라는 뜻이다. 아리우스 (Arius) 이단 때문에 골로새서 1장 15절의 이 요점을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성경 교사들은 많지 않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신성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니며 오히려 영원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고 가르치면서 골로새서 1장 15절을 그의 이단적인 가르침의 근거로 삼았다. 역사에 의하면 아리우스는 그의 이단 때문에 정죄받고 쫒겨났으며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했다. 아리우스의 이러한 이단적인 가르침때문에 니케아 회의 때부터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성경 교사들은 골로새서 1장 15절을 문자적인 번역에 따라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리우스 같은 이단이라는 정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58년부터 나는 우리의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시자 피조물인 사람이시므로 명백히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피조물이시라는 것을 선포하는 글들을 출간해왔다 <장로 훈련 2권 주의 회복의 이상>, 22-23쪽).
이 요점에 관해서 우리는 교회사 가운데 아리안 주의 (the Arians) 라는 이단 종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아리안 주의자들은 비록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영원 안에서는 하나님이 아니셨고 어떤 시기에 하나님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4 세기의 아리우스 (Arius) 에게서 나온 이단 종파에 속한다.
아리우스는 골로새서 1장 15절 하반절의 말씀, ‘그 (아버지의 사랑의 아들) 는…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피조물이시므로 하나님의 동일한 본질 (헬라어ousia) 를 갖고 계시지 않으며, 비록 우주와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지만 (히1:2, 요1:3) 그분의 존재는 영원하지 않고 시작이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피조물이시므로 아버지와 동등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심각한 이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임을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믿음은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성경의 순수한 계시에 따른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그분의 신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의 인성에 따라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한다. 그분의 신성에 따르면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 창조자이시지만 육체가 되셔서 몸을 입으셨으므로 또한 인성을 소유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람인 면에 있어서 인성을 갖고 계시고 피조물이시다. <하나님의 계시와 이상>, 38-39쪽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이시나, 사람으로서 피조물이시다. 만일 그분이 피조
물이 아니시라면, 어떻게 피와 살과 뼈를 가지실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지 않았는가? 피와 살과 뼈가 있는 몸을 입지 않으셨는가? 정녕 그러하셨다…우리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니, 전에도 하나님이셨고, 항상 하나님이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육체 되심을 통하여 사람이 되셨다. 만일 그분이 사람이 되시지 않았다면 붙잡혀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없으셨을 것이고,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라는 진리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자!<(골로새서 라이프 스타디>, 81 쪽
단지 위트니스 리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라는 구절을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해서 그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아리우스도 이 구절이 그리스도가 피조물이심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했지만, 그는 위트니스 리와는 달리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자신의 잘못된 관념을 ‘입증하기’ 위해 그러한 해석을 사용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수없이 많이 가르쳤고, 골로새서 1장 15절에 대한 그의 해석이 결코 이 진리를 훼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위트니스 리가 이 주제에 대한 대다수 현대 해석가들의 견해를 따르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떤 면에서는,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삼일성과 기독론에 대한 정통 관점을 수립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아타나시우스 (Arianos 2.62-64), 닛사의 그레고리 (Eunom. 2.8, 3.3; Perf),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Thes. 25; Trin. Dial. 4; 6) 과 같은 성경 교사들도 이 구절이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창조물의 일부라는 것을 가리킨다고 인식했습니다. 이들 중 첫 번째 사람인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에 반대하여 논쟁했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이 구절을 해석할 때 그리스도께서 창조물의 일부라는 사상을 접지 않았습니다. 그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어떤 면에서는 창조물의 일부라고 보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그의 주요 주장을 훼손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위트니스 리 역시 이 구절이 그리스도께서 인간 존재라는 신분이시므로 창조된 영역의 일부라는 것을 가리킨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