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2.21 00:00

지방교회 에세이 - 시몬 베드로 - 갓멘에세이 111

1892년에 간행된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시집에 수록된 낙엽[落葉]이라는 시에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문구와 함께 시몬이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시몬’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낙엽’ 혹은 ‘가을’이라는 개념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베드로후서 1장 1절을 읽다가 발견한 ‘시몬’이라는 이름은 ‘베드로’라는 말과 함께 놓임으로써 예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안에서 우리와 함께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할당받은 이들에게 편지합니다.

신약성경 회복역 해당 각주는 ‘시몬 베드로’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옛 이름인 시몬은 출생으로 말미암은 옛사람을 가리키고, 주님께서 주신 새 이름인 베드로는 거듭남으로 말미암은 새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두 이름이 하나로 합해져 있는데, 이것은 옛사람 시몬이 새사람 베드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 말씀에서 “시몬 베드로”라는 부분을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동안 알아왔던 베드로와 관련된 구절들이 전해주는 명암이 있던 베드로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제 안에 떠올랐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일생(밝은 면) : 베드로의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절대성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사람을 얻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으니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성경은 그가 “즉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변화 산’에 가셨을 때나 겟세마네에 가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 외 2명을 특별히 챙기셨습니다. 그 이후의 베드로의 생생한 활동기록은 다음에서 보듯이 사도행전 전반부(1-12장)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경 강림 사건을 놓고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설교하던 장면에서 그는 매우 돋보였습니다(행 2:14-41). 

그 후 그는 “모태로부터 서지 못하게 된 어떤 이”를 벌떡 일어나 걷게 했고, 공회에 붙잡혀가 심문을 당할 때도 당당했고, 거짓말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베드로의 말에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갔으며, 중풍병으로 팔 년 동안 고생하던 애니아를 고쳤고, 심지어는 죽은 다비다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보자기 환상 사건’이후,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 전한 것은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던 기존의 실행에 비춰볼 때 파격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헤롯 왕 때에 “네 패의 군인들”(모두 16명)의 감시하에 옥에 갇혀있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사건은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일 이후로는 사도행전이라는 주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대신에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사도행전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의 일생(어두운 면) : 그는 자주 덤벙댔습니다.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하다가 다른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물속에 빠져들지를 않나, 위 변화 산 위에서는 뜬금없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하다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마 17:5),  타의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모두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않겠습니다”라던 그의 맹세는 결국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그대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입니다”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처참하게 결말이 났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제삼 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주님을 그가 “붙잡고 한쪽으로 가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님을 책망”한 사건은 믿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그의 이러한 무모함과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한편 그는 위선을 행하다가 사역의 ‘후배’일 수도 있는 사도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각주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베드로가 그리스도인의 순수한 믿음에 있어서 매우 약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이방인들과의 교통에 관해 매우 분명한 이상을 하늘에서 받았고, 앞장서서 그것을 실행했다. 그러나 이방인 믿는 이들과 함께 먹다가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떠난 것은 얼마나 약한 것이며 퇴보한 것인가! 그가 사도들 가운데서 인도 직분을 잃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 예수님의 중보기도와 목양:  위에서 살펴본 베드로는 주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하나로서 특별한 분깃이 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공존하는 믿는 이들인 우리 각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침이 극심했던 베드로가 어떤 계기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 아름다운 마감을 하게 된 것인가를 묵상할 때, 주님은 문득 다음 두 가지 사건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그에 대한 중보기도입니다. 사탄이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베드로를 요구할 때 주님은 베드로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간구하셨고”, “그대가 다시 돌아오거든, 그대의 형제들을 견고하게 하십시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전히 주님을 믿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뒤로 물러나 디베랴 바닷가로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를 주님께서 목양해 주신 사건입니다. 이때 주님은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도 잡게 해 주셨고(6절), 생선과 떡으로 아침도 차려 주셨고(9, 13절), 여전히 믿고 목양을 부탁하셨습니다(15-17절).

한국 사회는 소위 ‘승자독식’ 사회인 것 같습니다. 한 번 경쟁에서 밀리거나 어떤 일로 실패를 맛본 사람은 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의 노정에는 위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의 주권 아래 안배된 성공과 실패가 있으며, 그 자체가 생명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읽은 <부흥의 법칙>이라는 책을 보면, 아가서에는 최소한 여섯 번의 <시작과 과정과 끝과 멈춤(pause)>이 있습니다. 특히 이 ‘멈춤’의 시기에 위 베드로가 맛보았던 주님의 목양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함을 깊이 느낍니다.

오 우리의 혼의 목자이신 주님! 

우리 모두를 목양하여 주사, 우리도 다른 이들을 목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2.07 03:14

지방교회 에세이 - 재산 불리기 - 갓멘에세이 109번

1. 레위기 25장의 희년은 원래 소유지로 돌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소유지'란 이런 저런 이유로 팔아먹었던 자기 명의였던 땅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희년 개념을 신약에서 적용할 때는 더 이상 '물질적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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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01 00:00

지방교회 에세이 - 성경교사의 도움을 받는 유익, 갓멘에세이 105번

1.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이디오피아 내시가 사막길을 여행 중 빌립의 방문을 받아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이사야 53:7-8 을 읽던 중이었는데, 빌립이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행8:30-31)

오늘날 우리의 어려움은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주일 집회에 가서 다른 이의 공급에 의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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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0.25 00:24

지방교회 에세이 - 씹을수록 깊은 맛 - 갓멘에세이 104번

1. 어릴 적에 칡뿌리를 캐서 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톱으로 적당히 자른 칡 토막 

한 귀퉁이를 쭈욱 찢어 입에 넣고 씹으면 처음에는 그저 씁스름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계속 씹다 보면 고소해지고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달착지근 해집니다. 

섬유질이 잘근 잘근 씹힐 때 쯤은 칡의 진수가 다 빠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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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0.11 05:00

희년 : 물질적인 소유지를 되찾는 것만이 희년인가? 지방교회 에세이, 갓멘에세이 102

1. 년(Jubilee) 개념에 '자기 소유로 돌아가고'가 있습니다.

레위기 25:10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원래 가졌던 소유도 아마 

처음엔 국가가 분할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원 땅 덩어리인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모가 잘 살아서 도움을 받지 않는 한 그야말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또 불리려면 최소한 부부 둘 중 하나는 이것에 밝아야 합니다. 


2. 
대학 졸업하던 해에 취직을 했고 그 다음 해에 결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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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9.20 05:00

갓멘에세이 99 - 이렇게...저렇게 외쳐대니 - 지방교회 에세이

기도집회로 모이면 우선 성경 한장을 함께 읽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어제는 그 동안 사도행전을 쭈욱 읽어 온 터라 19장을 그것도 '소란' 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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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31 05:00

갓멘에세이 96 - 서로 눈 마주치기 - 지방교회 에세이

1.

"방금 전만해도 큰 오빠가 폐암 말기라는 소식듣고 울다가 왔는데

여기 왔다 가면서 이렇게 기뻐서 가게 되네요. 참 신기하네요."

주일 오후 마다 라이프 스타디 추구모임이 있습니다. 만 2 년 여를

창세기를 끝내고 이제 계시록을 하기 시작한지가 4주째입니다.

인근 다른 지방에 있는 교회 자매님이시고 교파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시는데 주일 오후 이 성경공부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

지신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 그야말로 소설을 써도 몇권 될 그 자매님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5 살 때인가 육 이오 사변이 나서 가족과 헤어져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그 당시 해병대 장교로 복무 중이던 큰

오빠가 휴가 나가는 장병들만 있으면 인적 사항을 적어주고 

본인도 틈만 나면 전국 고아원을 뒤져 마침내 가족이 상봉을

했답니다.  

그 큰오빠는 나이만 먹었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막내 여동생을

지극정성으로 가갸거겨..부터 가르쳐서 일반 학교를 다니게 했고...

아버지처럼 오빠처럼 믿고 의지해 오던 그런 분입니다.

이 외에도 밖의 환경은 정말 숨이 막히는 그런 상황이지만 말씀을

공급하면 그토록 사모하며 달게 받아 먹으십니다. 

처음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더니 어느 날부터 화색이 돌고

활짝 웃으실 때는 환갑도 넘은 연세지만 소녀처럼 해맑으십니다. 

2.

어제 다룬 주제는 계시록에 나타난 삼위일체(삼일 하나님)입니다.

신학교를 다녀도 어려울 주제를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지신

열 댓 분의 지체들에게 어떻게 합당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참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28:19, 요14:10-11, 마3:16-17, 요8:16, 29, 사45:15, 54:5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의 남편이자

구속자이신 그분,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나 단수의 이름을

가지신 분, 상호내재, 구별은 되나 분리는 안되시는 분, 본질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이런 꼭 알아야 하는 신학개념들을

알기 쉽게 반복해서 설명을 드리고...

정해진 두 시간 중 15분 정도 남았을 때 오늘의 진도인 계시록 LS 

#4 를 다뤘습니다. 계시록에는 삼일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방면들이

성부에 해당되는 것 하나, 성령(그영) 에 3개 아들에 26개가 있습니다.

저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계1:4)는 아버지를, 

일곱 영, 일곱 등불, 일곱 눈(계1:4, 4:5, :6) 은 성령을, 충성된 증인,

아멘이시요, 하나님의 말씀, 남편...등 26개의 표현은 아들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대강의 윤곽을 말씀드린 후 저는 '일곱 눈'이신 그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어짜피 짧은 시간에 그 많은 항목들을 다 다룰

수 없다면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3.

한국 사람들은 선생님이나 어른들 앞에서 말할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면 건방져 보이거나 반항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곳 미국은 반대로 눈을 바로 쳐다보지 않으면

뭔가 감추는 것이 있는 것처럼 비쳐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그 마음 안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담박에 알아볼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보통 속에 문제가

있어도 악수도 할수 있고 안부 인사도 나눌 수는 있지만 눈과

눈을 마주 응시하는 것은 가능하면 회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부부가 한 집에 살아도 얼마든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은 일곱 눈이십니다. 이 분의

눈을 마지막으로 마주치신 때가 언제이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 그분과 눈을 마주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심지어 기도

하거나 이렇게 성경공부 하는 시간도 그분의 눈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후3:18은 우리가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한다고 말합니다. 히12:2는 믿음의 주(창시자)

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눈을 마주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밖의 육신의 눈이 있을 뿐

아니라 안에 마음의 눈도 있습니다(엡1:18). 

이렇게 서로 나누다 보면 듣는 지체들 뿐 아니라 저도 공급이

넘칩니다. 이것이 주님의 눈을 바라본 사람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분의 대강의 이야기였습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24 05:00

갓멘에세이 95 - 잊혀진 시간들 1 - 지방교회 에세이

1.

세상의 범주에서는...어떻게든 자꾸 노출되고 대중에게 각인되어야 여러 가지 기회도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눈 도장'이라는 말도 생겨 났습니다. 요즘은 어떻게든 '튀어야 ' 살아 남는다 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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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08.10 05:00

갓멘에세이 94 - 정말 다시 오실까요? - 지방교회들 에세이

특정 날짜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던 모 목사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예정된 그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한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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